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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
양장
윤용호
종문화사 200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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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악커만
2장: 죽음
3장: 악커만
4장: 죽음
5장: 악커만
6장: 죽음
7장: 악커만
8장: 죽음
9장: 악커만
10장: 죽음
11장: 악커만
12장: 죽음
13장: 악커만
14장: 죽음
15장: 악커만
16장: 죽음
17장: 악커만
18장: 죽음
19장: 악커만
20장: 죽음
21장: 악커만
22장: 죽음
23장: 악커만
24장: 죽음
25장: 악커만
26장: 죽음
27장: 악커만
28장: 죽음
29장: 악커만
30장: 죽음
31장: 악커만
32장: 죽음
33장: 신의 판결
34장: 아내의 영혼을 위한 악커만의 기도

저자 소개 1

YUN,YONG-HO,尹庸鎬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페테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페터 한트케 연구』 윤용호 명예교수의 인문학 강좌1,2,3,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지중해 연안의 고대 신화들(신화편)』, 옮긴 책으로는 한트케(노벨문학상 수상자) 『반복』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 괴테의 『시와 진실』, 『여우 라이네케』 그리고 『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요하네스 폰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페테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페터 한트케 연구』 윤용호 명예교수의 인문학 강좌1,2,3,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지중해 연안의 고대 신화들(신화편)』, 옮긴 책으로는 한트케(노벨문학상 수상자) 『반복』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 괴테의 『시와 진실』, 『여우 라이네케』 그리고 『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요하네스 폰 탭플의 독일 최초의 인문주의 작품) 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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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요하네스 폰 탭플
작가는 문학 작가로서 뚜렷한 경력은 없으나 그의 아내가 1400년 8월에 산후욕으로 사망하자 그 죽음에 항의하는 논쟁서를 집필하는데, 이것이「뵈멘의 악커만Der Ackermann aus Bohmen」이란 제목을 달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해는 1401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2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5쪽 | 231g | 116*190*20mm
ISBN13
9788987444598

출판사 리뷰

이 작품은 다음 2가지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작은 논쟁서는 독일 최초의 인문주의 작품이다. 그리고 최초의 신고 독일어 산문작품이라는 점이다.
독일문학에서 1400-1500년 하면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이 불꽃처럼 피워 올랐던 시기다. 내세만 바라다보던 중세의 기독교 사상, 즉 신 중심 사상에서 벗어나, 무시되었던 인간의 개성을 다시 찾고, 현세를 긍정하는 적극적인 생활을 건설하려는 인간 중심의 태도가 싹을 틔우고 성장했던 시기다. 그 같은 인간성의 존중을 기독교 안에서 추진시킨 것이 바로 종교개혁인 것이다. 이처럼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은 지금까지의 인간 생활과 문화 전반을 변화시킨 것이어서 문학에서도 일대 전기가 되었다.
신에 대한 논쟁, 신학자와 인문주의자들의 논쟁은 이후 유럽 사회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가 된다. 프라하 대학 총장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요한 후스Johann Huss(1369-1415)가 고위 성직자들의 성직매매를 비판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1415년 화형으로 죽음을 당하자, 시민들이 이에 의분을 느껴 1419년에서 1434년에 걸쳐 일으킨 후스전쟁을 비롯해서, 네덜란드 인문학자로 어려서 성직자 교육을 받아 사제가 되었으나 만년에 성직을 포기하고 교회 타락을 비판하고 성서의 복음정신을 설파하며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6-1536)와 그의 제자들, 교황청과 맞서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개혁을 달성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 그리고 특히 1618년에서 1648년까지 일어났던 신교와 구교의 30년 종교 전쟁은 가톨릭을 믿는 왕과 신교를 믿는 시민들과의 충돌로 그 처음은 뵈멘에서 발생된 것이었다. 이처럼 뵈멘이란 지역은 오늘날은 유럽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지만 요한네스 폰 탭플이 살았던 당시에는 의미가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뵈멘왕 요한의 아들이었던 칼 4세Karl IV.(1316년생, 재위 기간 1347-1378)는 1347년 신성독일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1348년에 프라하에 독일어권 최초의 카를로바 대학을 설립했고, 새로운 시가(市街) 건설 등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토대를 닦는다. 황제 도시로서 국가 경영에 필요한 관청용어의 올바른 형성을 위해 대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의 측근인 요한네스 폰 노이마르크트Johannes von Neumarkt(um 1310 Hohenmaut /Bohmen - 24. 12. 1380 Leitomischl/ Bohmen)가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칼 4세가 황제로 즉위한 1347년부터 왕궁의 보좌신부로, 또 그의 비서이자 공증인으로, 1353년부터 1374년까지는 그의 궁내관으로 오랜 세월을 근무했다. 이 기간 그는 라틴어 번역을 통해 신고독일어 문어체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비록 독자적인 창작은 아니지만 번역을 통해 문학정신을 일깨우고 인문주의의 국어 순화 및 보호를 위해 국가적인 힘을 경주하고, 이탈리아 초기 인문주의자들의 최신 편지체 어록을 새로운 공문체로 수용하게 된다. 또 찬미가의 산문체로 된 독일 기도문 모음집을 저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업적들로 그는 비록 관리이기는 했지만, “알프스 북부의 최초 인문주의자, 뵈멘 인문주의자들의 중심 인물” 로 인정을 받고 있다. 요한네스 폰 탭플은 바로 이 요한네스 폰 노이마르크트의 제자로 인문주의 시대상황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신고 독일어 순화를 위해 대단히 중요했던 카를로바 대학은 이후 위에서 살펴 본대로 종교개혁가 후스가 총장으로 있으면서 체코민족의 교육기관으로 만들려고 힘썼으나, 교회제도를 비판하다가 화형에 처해져 1419년 후스 전쟁이 일어났는데, 민족주의 운동 성격을 띤 이 전쟁의 여파로 체코민족과 독일민족의 대립이 격화되어 쇠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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