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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허슬 노엘 어느 시대에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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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태어나던 순간이 기억나나?”
‘태어나던 순간’? ‘만들어진 순간’을 말하는 것인가? 노엘은 고개를 저었다. 곧 발이 날아와 복부를 강하게 찼다. ---p.47~48 “……정말 멋지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키나의 말이 이어졌다. 허슬이었다. 허슬이 들어오고 있었다. 허슬은 노엘을 보자마자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려 했다. 허슬의 목에 매인 줄을 잡고 있던 부하 두 명이 휘청거렸다. “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좋은 증인이네요.” 키나가 낮게 탄성을 뱉었다. ---p.57 “여기서 살고 싶다.” 노엘이 말했다. 뭐? 허슬이 되물었다. “여기서 살고 싶어. 깨끗하고 시원하고 환하고. 물도 있고, 오줌이랑 똥도 없어지고.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새끼야, 다른 방에서 살다가 볼일 급할 때만 여기로 오면 되는 거야. 그리고 화장실 물은 마시는 거 아니고.” ---p.77 ‘개보다 나은 프랑’. 셸리 숍의 광고 카피 중 하나였다. 개처럼 충성하면서도 개와 달리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그리하여 훈련이 용이한 것이 바로 프랑이었다. ---p.103 지금 이 분노가 자신의 머리에 칩이 아닌 대뇌가 박혀 있다는 증거라고 노엘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뇌에는 미친 인간에게 주인이랍시고 복종하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어가 입력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얼굴 예쁘단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마누라가 너를 입양한 걸 가지고 얼마나 지랄을 했던지.” 그딴 걸 칭찬이라고 여기고 발라당 배를 보일 수 없었으므로. ---p.122 “혹시 인간을 공격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인간답나요? 노엘은 속으로 물었다. 그러나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가 막중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진짜 살의는 마지막까지 숨길 수 있을 것이었다. ---p.134 “……당신은, 프랑이군요.” 노엘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인간과 똑같이 생긴 프랑이에요.” 그러자 여자는 치마를 들어 올렸다. 여자의 아랫도리를 노엘은 보았다. 그건……. “아니, 너랑은 달라. 그러니 꺼져. 주인은 내 거야.” 아랫도리에 여섯 개의 ‘밑’과 세 개의 살덩이를 가진 여자가 속삭였다. ---p.147 천둥 같은 허슬의 목소리가 들렸다. 폭우의 소음을 뚫을 정도로 확실한 크기였다.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 ---p.164 걷다 보니 무언가 발에 차였다. 노엘은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허슬, 누군지 알아보겠어?” 노엘의 말에 허슬이 허리를 굽혔다. 예니, 하고 허슬이 속삭였다. 노엘이 중얼거렸다. “예니는 재활용하기에 참 좋은 자원이었을 거야. 팔이 여덟 개나 되니까…….” ---p.180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프랑임을 솔직히 드러내어 인간의 위선만을 진짜라 믿을 수 있었다면, 그러면 현재는 달라졌을까? 궁금했으나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나는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확증을 얻고 싶어. 그래서 끝까지 싸울 거야. 백주영이 말했잖아, 인간은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고. 그게 인간다운 인간인 거라고. 그러면서도 프랑은 쉽게 죽이지. 그러니 나는 프랑들을 살리고 인간들을 죽일 거야. 그게 확증이야.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는 게. 그게 목표야.” ---p.226 “역사가 순환한다고 얘기했지? 인간들은 언제나 혐오할 군집을 찾아내곤 했어. 신분제가 없어지면 인종을 따졌고, 인종차별이 완화되면 성별을 따졌고, 그마저도 사라지자 다시금 경제적 계급을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건 현재진행형이지.” “하지만 예전의 인간은 프랑을 사랑했잖아요. ‘애완’이었잖아요.” ---p.29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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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몸, 썩어가는 살, 재활용되는 기관
기괴한 몸으로 인간 사회의 폭력을 되비추는 바디 호러 설재인 작가는 바디 호러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인간 사회에서 작동하는 폭력과 차별의 문제를 겨눈다. 작품 속 신체 변형은 단순히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가 아니다. 인간이 약자를 어떻게 소비하고 파괴하는지를 드러내는 은유이자 부조리한 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로서 그려진다. 독자는 기괴하게 변형된 몸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을 마주하는 동시에 그 몸을 만들어낸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인간이 취향에 따라 커스텀하듯 주문 제작한 프랑은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필요에 따라 소비되고 폐기된다. 이때 인간과 다른 프랑의 몸은 열등함의 표식으로 취급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다름’은 새로운 가능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이 다양한 몸들은 인간 사회의 획일적 규범을 거부하는 존재들로 비친다. 다르다는 이유로 ‘미친 괴물’ 취급을 받는 프랑은 그 자체로 약자와 타자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비추면서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미친 괴력을 발휘한다. 저 커다란 존재는 온갖 미움을 자기 몸에 형상화했어. 여자, 폭력적일 정도로 흉측하게 생긴 여자. 몸, 인간보다 유능한 몸. 그리고 ‘다름’이라는 표현 그 자체. 그것을 자기 안에 직접 담아버렸어. (271~272쪽) 그러한 프랑과 인간의 한가운데에 인간과 똑같이 생긴 프랑, 노엘이 있다. 노엘은 인간과 프랑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서, 두 세계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다. 노엘은 프랑을 쉽게 죽이는 인간과 그런 인간에게 충성하도록 설계된 프랑을 보며 인간다움과 프랑다움에 관해 생각한다. 이 소설은 ‘무엇이 프랑인가’ 혹은 ‘무엇이 인간인가’ 하는 노엘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한다. 위태롭고도 끈끈한 콤비, 노엘과 허슬 기묘하고 강렬한 버디의 탄생 『셸리 숍앤센터』는 노엘과 허슬의 비전형적인 버디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버디물과 달리 이들의 관계에는 우정(혹은 사랑)과 연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끼어든다. 단순히 ‘증오’나 ‘지배욕’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모순되고 복잡한 감정이다. 150킬로그램에 달하는 거구에 폭력성을 지닌 허슬은 처음에는 노엘을 위협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들이 노엘을 괴롭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노엘을 지키려 한다. 노엘을 향한 허슬의 감정에는 폭력과 애정, 지배와 보호가 기묘하게 뒤엉켜 있다. 노엘 역시 허슬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인간인지 프랑인지, 혹은 제3의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을 더욱 깊이 던질 기회를 갖는다. 노엘은 허슬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와 함께할 때 프랑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고, 인간 없는 세계에서 더 행복할 수 있는 프랑임을 자각한다. 이 관계는 작품 전체에서 인간과 프랑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허슬은 두툼하고 커다란 손을 내밀더니 말했다.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생겼다고 했지? 쭉 읊어봐. 딱 세 명만 나랑 겹친다면 함께 나가지.” (162쪽) 입양되었던 저택에서 겪은 끔찍한 학대를 계기로 허슬은 노엘에게 폭력적 연대를 제안하는데, 이는 프랑이 인간에게 맞서 행동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연대와 구원, 그 너머에서 다시 쓰이는 이야기 인간에게 마음껏 이용되고 훼손되어온 프랑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순간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여느 디스토피아 작품들처럼 새로운 종의 반란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면 독자의 질문은 새로운 방향으로 향한다. 혁명이 끝난 뒤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그 세계는 과연 조화로운가? 이전 세계의 계급과 위계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뜻 에필로그처럼 보이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품고 있는 「어느 시대에」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서 설재인 작가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독자들은 여기에서 이 작품이 던지는 무수한 문학적 질문을 풀어갈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흉물들이 결코 흉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을 문장으로 선사하고, 왜 그것이 다시금 당신에게 흉하게 보이는지 묻는 것. (30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