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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책을 열며
冬 겨울 | 차갑고 투명한 바람들 019 문 020 겨울이라서 그렇다 021 시공간을 걷는다 022 걷는 것이 삶의 방식 024 기점이자 종점인 이곳 026 눈 027 별 028 다름 아닌 나 030 이타의 계절 032 저 홀로, 고양이 034 돼지들 036 불가사의 038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다 040 육체의 성전 042 또 은행에 들르다 044 카페에 앉아 046 참 많은 물건이 필요하구나 048 달빛이 안부를 묻는다 050 자의식 052 왜 자꾸 기웃댄단 말인가 054 게으를 수 있는 권리 056 은유가 있을까 058 12월과 1월 060 자연과 인간 061 무리 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064 외롭고 쓸쓸한, 더없이 높디높은 067 단 한 번의 쓸모로 존재하는 것 068 마침내 070 떠나는 것이면서 돌아오는 것 071 자발적 고립 072 순종의 시대 074 자유로워서, 자유로우니까 075 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076 질문 077 크리스마스 078 제야의 종소리 春 봄 | 맑고 다정한 식물들 083 혼자 있는 방 084 사소한 장면들의 집합 085 제각각의 중심 086 열두 달이 모두 봄날이라면 087 봄날은 짧다 088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090 여백의 미 092 평화를 깨뜨리지 마 094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096 당연한 것은 없다 098 사랑은 스미는 것 100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기 102 인연은 공갈빵 104 먼 길 달려가는 창기병 106 안분지족 107 민들레를 바라보다 108 적자생존 109 나쁜 날씨는 없다 111 환영을 삼키다 112 실제를 환기하는 허구의 시간 114 가장 아름다운 경치 116 머물고 있는 자리가 다를 뿐 118 사진 밖 이야기 119 우호적 무관심 120 도넛 같은 기억 122 옷장 속 이야기 123 드러내기 124 흑야의 인생 125 유치원 앞에서 126 그깟 한마디 말 128 나는 어디에 서 있나 130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선택 132 허튼짓 134 상상력의 양면성 136 우연과 필연 138 회색 인간 夏 여름 | 뜨거워서 아름다운 당신들 143 검은색 144 기운다는 것 145 나의 수호천사 146 여름은 초록 148 아버지와 아들 149 취하고 싶은 인간 150 붉은 꽃들 151 때로는 말없이 기다릴밖에 152 여름을 견디게 하는 선풍기 154 식구는 한 방울의 피 156 습관적 기만 158 인간 유형 160 그날들의 울림과 떨림 162 인공 낙원 164 집 165 관계보다 중요한 것 166 뱀 168 비둘기가 불쌍해서 170 체념은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 171 가뭄의 길을 걷다 보면 173 희망은 전단지처럼 가벼운 것 174 얼마나 안락한 평화인가 176 그 사람 177 차이가 곧 다양성이다 179 높은 산 180 그 사람이 정말 그럴까 182 텃밭의 채소처럼 184 시를 쓰는 이유 186 목적어를 생략하다 188 마지막이 가장 빛나는 한때 190 한 걸음 한 걸음 192 생각의 감옥 194 인간의 최선 196 조문 가는 길 198 앙상블 199 뜨겁게 운다 秋 가을 | 아직 닿지 않은 저 길들 205 얼마나 덜컹거렸을까 206 그게 나잇값일 것이다 208 그리운 골목길 210 나의 진리는 불가지 212 면목 없는 짓 213 건널목에 멈춰 서서 214 서성이고 허정대던 편지의 시간들 216 두 가지 길이 있었다 218 해로운 것들이 사라진 세상은 항상 이로울까 220 저녁 산책 222 잠깐 224 추모원 풍경 226 초등학교 앞에서 227 숨을 쉰다는 것 228 노숙인 229 단풍 구경 230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 232 인간은 죽어 흙냄새를 남긴다 234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볼 수 없다면 236 추념하다 238 흥의 민족 240 분열 없는 단결의 순간 242 유사 고독 243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245 말 246 대화의 기술 248 죽인다는 말 250 안경으로 마음을 교정할 수는 없다 252 이면이 있다 255 한 줌의 침묵 256 열매가 가을의 보람은 아니다 257 몸 258 이해하는 사랑을 바라며 260 작별이 많은 계절 261 페이소스 262 별일 없이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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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지난날이 아름다웠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지.
더는 미워할 것과 용서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겠지. 인생은 시끄러운데, 밤이 참 정숙하구나. ---p.48 한 생의 끝과 시작이 모두 겨울에 놓여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허구한 날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는 없다. ---p.59 인간의 삶 자체가 일회용 아닌가? 나는 재활용조차 되지 않는 오직 단 한 번의 쓸모로 존재하는 것. 단 한 번의 쓸모로 살아도 아주 슬픔은 아닐 수 있는 것. ---p.67 오늘이 당연한가? 다시 찾아온 봄날이 당연한가? 지금의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기 위해 온 우주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는지 생각해보라. ---p.96 사람들은 안쪽이 텅 빈 채 겉으로만 부풀어오른 인연을 허겁지겁 씹어 삼킨다. 그것이 헛일일지 모른다는 불안을 애써 외면한다. ---p.103 비록 운명에 기대는 어리석음이 있었으나, 우연의 시절은 어느 면에서 필연의 시절보다 아름다웠다. ---p.137 여름은 검다. 검은색은 뜨겁다. 청춘의 새까만 눈동자를 떠올려보라. 검은 열정이 반짝인다. 책 속의 새까만 활자들을 들여다보라. 검은 지성이 출렁인다. ---p.143 이제 서울에서는 새것을 지으려면 옛것을 허물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오는 만큼 밖으로 밀려나고, 살아 숨 쉬는 만큼 잘리고 베어진다. 서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 북적하다. ---p.163 인간의 희망은 전단지처럼 가벼운 것. 누구나 받아들지만 아무나 실현할 수는 없는 것. ---p.173 손으로 편지지에 다정한 내용을 적는 것, 어떤 소망을 품으며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것, 남몰래 조용히 비밀을 간직하는 것, 그 사람의 체온이 담긴 답장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기뻐하거나 슬픔에 잠기는 것. 용건이 아니라 사연을 적던, 그 시절이 영영 가버렸다. ---p.215 그러므로 가을의 보람은 열매가 아닐 것이다. 언 땅과 땡볕에 굴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은 인내와 투혼이 다름 아닌 가을의 긍지일 것이다. ---p.256 별일 없이 걷는 중이다. 이것이 나의 근황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소망이다. ---p.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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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닿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걷는 사람 -질문을 한 움큼 안고 나섰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산책의 기록
로베르트 발저는 산책의 본질을 두고 “평범한 꽃을 유심히 보고, 나 자신과 즐겁게 대화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라고 했다. 작가는 사계절 내내 그렇게 산책한다. 랭보처럼 “한낱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를” 바라며, 걷는 동안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풍경에 자기 자신을 슬쩍 비추어볼 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걸음이 있다고 한다. 어딘가에 닿기 위한 걸음과, 그저 걷기 위한 걸음. 저자 조항록의 걸음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매일 산책을 나간다. 눈이 내리고, 달빛이 길바닥을 비추고, 은행나무가 은은하게 물들어가고, 유치원 앞에서 아이들이 재잘댄다. 그런데 발걸음만을 남긴 하루하루 뒤로, 늘 걷던 그 길 위에 매일 다른 계절이 펼쳐진다.어쩌면 그의 걷기는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매번 다른 질문을 안고 나섰다가,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다. 겨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걸어 나가고, 봄에는 저 구름과 이 바람처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고, 여름에는 가장 뜨거운 색이 검정이라는 상념에 잠기고, 가을에는 비어가는 계절의 쓸쓸함을 고독의 환희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버려진 옷장을 보며 한 사람의 일생을, 도넛처럼 구멍 난 기억의 빈자리를 보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되묻는다. 그는 말없이 걷다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과, 세상이 조금 가벼워지고 하루가 채워지는 순간들을 가만히 길어 올린다. 목적지가 없어도 걸음은 걸음이라는 걸 증명하며, 산책은 우리를 아주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걸 되새기라도 하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