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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독서, 여성적인 행위가 되다
I 독서 열정의 시작 -18세기 시 낭송회의 탄생 마그데부르크와 취리히, 1750 아름다운 편지들: 사랑과 소설 런던, 1756 베르테르 효과 베츨라, 1774 생존을 위한 독서: 카롤리네 슐레겔 셸링 클라우스탈, 1786 독서 혁명: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파리, 1792 II 독서의 힘-19세기 여성 독자의 독립 선언: 제인 오스틴 스티븐턴, 1808 비가 지독히도 많이 내렸던 여름: 메리 셸리와 괴물 제네바 호수, 1816 소설을 사랑하는 여자: 보바리 부인 루앙, 1857 책 읽어주는 여자의 출세: E. 마를리트 아른슈타트, 1866 여성 독자, 깨어나다 뉴올리언스, 1899 III 책의 여인들-20세기 인간, 변하다: 버지니아 울프 블룸즈버리, 1910 제임스 조이스와 여인들 파리, 1922 마릴린 먼로, 책 읽는 섹스 심벌 할리우드, 1955 독서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수전 손택 뉴욕, 1960 여성 독자의 미래 www.FanFiction.net, 1998 IV 계속 읽어가기-현재 경계를 넘나드는 책 읽기 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애틀, 2012 감사의 말 | 참고문헌 | 도판 목록 |
Stefan Boll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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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온 두 소설처럼 역시나 여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취한 프랜시스 버니의 새로운 소설 《캐밀라Camilla》에 약 1,100명의 독자가 예약 주문을 했다. 1795년에 1기니는 오늘날로 따지면 약 125유로에 해당했다. 당시 책값이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그리하여 파니 버니는 인쇄비와 출판사 커미션을 제하고도 예약 주문으로 10만 유로가 넘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오늘날의 작가가 소매가격의 10퍼센트 정도 선에서 인세를 받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5만 부 이상 팔렸을 때의 수익에 해당하고, 이 정도 판매 부수면 〈슈피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몇 주간 상위 순위, 또는 몇 달간 중위 순위에 링크되었을 정도의 굵직한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 마담 다블레(파니 버니)는 책을 팔아 번 돈으로 웨스트험블에 가족을 위한 집을 짓고, 그 집을 “캐밀라 코티지”라 이름 지었다.
저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1기니의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 예약 구매가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소설의 초판본을 소장하게 된다는 매력뿐 아니라, 예약 구매자 이름이 리스트에 실린다는 것도 커다란 작용을 했다. 예약 구매자 리스트는 38쪽에 이르렀으며, 많은 저명 인사의 이름이 실렸다. --- pp.147-148 플로베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독서 전통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여성의 독서는 우선 수도사나 학자처럼 지식을 얻으려는 독서가 아니었고, 남성 편에서 늘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처럼 순전히 즐거움에 치우친 독서도 아니었다는 것. 여성의 독서는 몽테뉴가 물은 바로 그 질문, 즉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답을 주는 독서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살기 위해 하는 독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플로베르는 마리 조피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서를 일종의 여행으로 생각하라고 추천한다. 여행은 친숙한 것을 떠나 길을 나서는 것, 미지의 것을 경험하는 것, 변화를 위한 자극을 얻는 것이다. 책으로 여행하는 독자 역시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게 될 테지만, 일단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동안 낯설던 세계를 알게 된다. “당신이 스무 살 남자라면 세계여행을 권하겠지만, 좋아요! 방안에 앉아서 세계를 여행해도 됩니다!” 플로베르는 나이나 다른 조건들?19세기 프랑스 시골 여성의 제한된 삶의 반경?이 방을 나서서 세계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세계를 방으로 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이야 영화나 인터넷 서핑 같은 것도 있다고 치지만, 당시로서야 책 말고 무엇이 그런 목적을 이루게 해주겠는가. --- pp.203-204 E. 마를리트는 점점 더 시리즈물 창작의 기술을 능숙하게 발휘하게 되었다. 애초에 E. 마를리트가 투고한 원고에 카일이 열광적으로 반응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카일은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을 토대로, 마를리트의 이야기들이 잡지에 연재하기에 아주 적합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적절히 잘라 실으면, 매 권의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서 독자들이 다음 권에 계속될 이야기를 몹시 궁금해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다툼이 막 심해지려는 시점에서 끊는다든지, 아이가 연못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부분에서 끊는다든지, 비밀에 싸인 여인과 만나는 장면에서 끊는다든지, 아니면 E. 마를리트의 두 번째 소설 《노처녀의 비밀Das Geheimnis der alten Mamsell》 네 번째 연재 부분의 마지막 대사 “자, 그럼 두고 보겠어요!”처럼 아주 감정적이고 긴장이 감도는 문장에서 끊는다든지 말이다. (…) 문학비평가들이 나중에 출판된 단행본 버전을 토대로 마를리트 소설에 관해 부분적으로 굉장한 혹평을 한 것은 약간 부당한 일이다. 최소한 마를리트의 서술기법은 그 이야기들이 연재 소설로 구상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만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나 최근의 〈다운 톤 애비〉 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는 시리즈 서술의 원칙을 포착하여 그 기량을 한껏 발휘했다. 종종은 알지 못한 채, E 마를리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 pp.242-243 버지니아와 레오너드 울프가 함께 인쇄해서 출판한 첫 책은 32페이지짜리 작은 책이었다. 몇 페이지 되지 않지만 150부 찍어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그 일에 오후 시간만 할애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레오너드는 훗날 “한 달 남짓 식탁 앞에서 인쇄술을 독학한 두 사람에게 인쇄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영예로운 일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조판도 괜찮고 압력도 적절하고 잉크 분포도 좋았다. 그러나 종이 앞뒤의 인쇄된 부위가 서로 겹쳐지지 않고 어긋나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자신의 손으로 책을 만드는 뿌듯함을 반감시키지는 못했다. 부부는 책 표지로 특별히 일본에서 만든 고급 종이를 사용하기로 하고, 그것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찾아다녔다. 그 뒤에도 양질의 특별한, 때로는 재미있는 종이로 책을 제본하고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그들은 이런 것에 신경을 쓴 최초의 출 판업자였으며 이 분야에서 유행을 선도했다. 이따금 파리에 있는 로저 프라이의 딸에게 의뢰하여 마블링 종이를 제작하기도 했다. --- pp.294-295 실비아 비치는 서점을 운영하고 단 한 권의 책을 출판한 것을 넘어, 중재자이자 주모자로, 오늘날로 말하면 네트워커로 살았다. 그녀는 사람과 책, 작가와 독자, 또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작가들을 엮어주는 여자였다. 콘월 연안의 작은 섬 브라이어를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던 영국의 작가로, 자신의 유산으로 실비아 비치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애니 위니프레드 엘러만은 “실비아 비치는 조용하면서도 대범하게 우리 모두를 엮어주었다.”라며 “우리는 변했고, 도시도 변했다. 그러나 한동안 뜸하다가 가보면 늘 우리를 기다리는 실비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책으로 가득한 곳에 그녀가 있었고, 그녀 옆에 구석진 곳에는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서 있곤 했다.”라고 적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만남의 장소이자 클럽이었고 아방가르드 문학가들(그리고 스스로 아방가르드 문학가로 여기는 사람들)의 전초기지이자 도서실이었다. 이곳을 드나들며 실비아 비치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프랑스 작가들과도 친분을 쌓았던 작가들의 명단을 보면 당시 앵글로아메리카 문학의 굵직한 인물들이 다 들어 있다. (…) 그리고 만남은 결코 형식적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근 20년간 앵글로아메리카의 문화 중심지였다. 그 중심지는 파리에 있었던 것이다. --- pp.328-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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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여자들이 책 읽기에 빠져들다!
슈테판 볼만은 클롭슈토크 시대부터 현대의 팬픽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이르기까지 책 읽는 여자들과 관련한 흥미진진한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낸다. 1부 〈독서 열정의 시작〉에서는 18세기에 들어 여자들이 독서에 빠지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대학을 중퇴한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는 1750년에 젊은 여성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시를 낭송해준 다음 그 대가로 여성들에게 돌아가면서 키스를 한 번씩 ‘징수’한다. 그렇게 탄생한 시 낭송회는 오늘날까지 여성들 사이에서 로맨틱한 문학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보다 10년 전에는 런던의 인쇄업자인 새뮤얼 리처드슨이 《파멜라》와 《클라리사 할로》라는 소설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파멜라》는 사랑을 통한 사회적 신분 상승을, 《클라리사 할로》는 사랑을 통한 실존적인 추락을 그린 작품이다. 이들 작품이 발표된 후 새뮤얼 리처드슨은 여성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팬레터를 받았다. 이렇듯 여성들이 책에 열광하게 된 것은 사랑의 굶주림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의 욕구보다 더 큰 욕구가 숨어 있었다. 바로 자유와 독립에의 욕구였다. 1789년의 프랑스 파리와 영국의 런던은 책 읽는 여자들의 도시였다. 특히 여성소설의 인기가 높았으며, 여성소설을 주로 평하는 문학비평가도 등장했다. 《여성의 권리 옹호》 저자로도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문학비평을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여성으로, 여성적인 삶의 형식을 전복시킬 것과 남녀평등을 외쳤다. 이 시기 여성들에게 독서, 특히 소설 읽기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 소설은 경험의 촉매제였다. 소설은 종교나 철학, 하물며 도덕에 갇히지 않은 “열린 시스템”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결정과 우회로, 놀라운 반전과 예기치 않은 결말, 마음이 원하는 길과 머리가 원하는 길, 나와 세계…… 바꿔 말해 소설은 엄청나게 현실적이었다. 소설 속 사건들이 왕왕은 환상적으로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소도시에서조차 그 들썩거리는 파장이 느껴졌던 소설과 혁명은 많은 여성의 반항정신을 자극했다. 여성들은 이제 자신의 현재의 삶을 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고, 종종은 극히 나쁜, 최소한 개선해야 하는 상태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성의 삶과, 그로써 또한 남성과 아동의 삶은 최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변하기 시작했다. _〈독서 혁명: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 19세기 여성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저자와 독자 역할을 해낸다. 2부 〈독서의 힘〉에는 여성들의 파트너 선택을 소재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드는 작품을 쓴 제인 오스틴이 등장한다. 제인 오스틴은 동시대 여성들이 더 독립적인 삶을 원한다면 책, 특히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보았다. *** 고딕소설의 대형 베스트셀러 중 하나는 1794년 출간된 앤 래드클리프의 《우돌포의 비밀(The Mysteries of Udolpho)》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이 소설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아서, 《노생거 사원》을 쓸 때 이 소설을 여주인공 캐서린이 즐겨 읽는 책으로 삼았다. 노생거 사원이라는 옛 영지를 방문하면서 젊은 캐서린은 우돌포 같은 끔찍한 가족의 비밀과 마주칠 것으로 예상한다. 성 주인이 그의 아내를 살해했을까, 아니면 최소한 어두운 방안에 가두었던 것일까? 오스틴의 소설 《노생거 사원》은 패러디로, 고딕소설이 불러일으킨 기대 행동을 비웃었다. 고딕소설 때문에 세상이 무슨 쇼킹한 비밀로 가득 차 있고, 우리 모두 그 어떤 음모의 희생자가 아닐까 착각하게 되지 않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1800년경에 이미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즉 오늘의 현실에서 유령은 결코 없으며, 아내가 방에 갇히는 경우는 극도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 캐서린이 알게 되는 바, 현대의 끔찍함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는 것, 그것은 돈 문제, 가령 금전적인 속셈이나 경제적인 계산, 주제넘은 권력, 잘못 이해된 권위, 신뢰의 오용과 관계된다는 것 말이다. _〈여성 독자의 독립 선언: 제인 오스틴〉에서 *** 얼마 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메리 셸리 역시 “세계문학”을 내놓았다. 1816년 비가 아주 많이 내린 여름, 메리 셸리는 제네바 호숫가의 한 저택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그의 괴물을 고안해냈다. 그 이름 없는 괴물은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이지만, 소설을 읽는 감수성 풍부한 인간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책 읽는 여자들은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고, 교사나 교육자, 나아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군주의 성에 고용되어 책 읽어주는 일을 하던 유제니 존은 E. 마를리트라는 필명으로 여성잡지 〈가르텐라우베〉에 소설을 연재하여 엄청난 독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책 읽는 여자를 매도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19세기는 소설을 읽는 것이 간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등은 소설에 등장하는 유명한 간통녀이자 이런 남성적 강박관념의 희생자다. 독서는 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3부 〈책의 여인들〉의 첫 문을 여는 인물은 버지니아 울프다. 그녀는 “1910년 12월쯤 인간의 성격이 변했다.”라고 쓴 바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어머니가 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주지 않자 교양에 굶주린 사람처럼 책을 읽어댔다. 블룸즈버리로 이사하고 나서는 블룸즈버리그룹(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의 모임)의 남성 동성애자들과 어울렸고, 그들과 성적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논했으며, 남자들과 똑같은 예술적/성적 자유를 누렸다. 레오너드 울프와 결혼하고 나서는 집에 수동 인쇄기를 들여놓고, 아침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직접 아방가르드 문학을 찍어냈다. 이 시기 여자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마따나 “시커멓게 될 때까지” 독서를 했다. 발전은 멈추지 않았다. 책 읽는 여자들은 출판업자가 되었고, 서점을 열었으며, 금지된 소설을 불법으로 인쇄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처럼 문학성은 높지만 음란하다고 치부된 책들이었다. 1950년대, 금발의 멍청한 섹스 심벌 이미지가 탐탁지 않았던 마릴린 먼로는 사진작가에게 《율리시즈》를 읽는 장면을 찍게 했다. 바야흐로 책 읽는 것은 섹시한 이미지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책 읽는 여자들이 점점 더 학계와 언론을 장악해나갔다. 그 대표적 인물이 뉴욕 출신의 지성인 수전 손택이다. 그녀는 문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이방인으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혁신적으로 격상시키고자 했다. *** 일흔 살의 수전 손택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우리는 늘 그렇게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만들어나가고 바꿀 수 있다고요.” 자기를 고안하고 만들어가는 것은 어느 정도 미국적인 생활 방식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적 생활방식의 기본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 핵심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주어진 환경적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물려받은 삶의 상황의 껍질을 깨고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이며, 전해 내려온 관습적인 세계관을 뒤로하고, 자신의 세대뿐 아니라 후세에게 매력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문학, 특히 소설 읽기(그리고 물론 쓰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수전 손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_〈독서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수전 손택〉에서 *** 3부 마지막 장에서는 출판계의 글로벌 트렌드인 팬픽션에 대해 다룬다. 팬픽션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보태거나 재구성하는 형식의 문학이다. 책을 다 읽은 뒤에 공백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자들(대부분 여성)은 뒷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팬픽션은 드디어 독자 스스로가 주역이 되어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모호해졌음을 입증한다. 독서는 그 자체로 창조적인 활동인 것이다. 또한 팬픽션은 지난 200년간 학계와 비평계가 설정한 고급문학과 통속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4부 〈계속 읽어가기〉에서는 《트와일라잇》 3부작의 팬픽션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나타난 ‘성적 자유에 관한 생각의 경계 확대’에 대해 알아본다. 소설 앞부분에서 주인공들의 성 역할 배분은 지독히도 관습적이다. 여자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젊고 순진하며 어리숙한 숫처녀다. 남자 주인공 그레이는 노련하고 부유하며 힘 있는 가학피학성애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섹스가 거듭되면서 여주인공은 점점 강인한 남성적 면모를 보여준다. 일시적으로 상대를 떠나는 쪽은 그가 아니라 그녀다. 관계의 진전을 결정하는 쪽 역시 그녀다. 결국 마지막에는 둘의 권력 관계가 뒤바뀐다. ***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나타나는 가학피학성애의 모습은 여성운동이 개방성이라는 면에서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볼 수 있다. 세 사람의 독일의 젊은 페미니스트인 메레디트 하프, 수잔네 클링어, 바바라 슈트라이들은 2008년 《우리는 알파 걸(Wir Alpha-Madchen)》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의 성은 우리 스스로가 정의하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주류 산업의 포르노 감독들이 정의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어떻게 쾌감을 느껴야 하고 무엇이 굴욕이 되는지를 설명해주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정의하는 것도 아니다.” 이어 마지막으로 그들은 여성들이 성적 레퍼토리를 확대할 수 있게끔 더 좋고 더 많은 포르노가 나와야 한다고 요구했다._〈경계를 넘나드는 책 읽기 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 슈테판 볼만은 “여성 독자는 많은 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늘 삶의 은밀하고 위험한 면을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소망에서 책을 읽는 것뿐.”이라는 문장으로 이 책의 끝을 맺는다. 여자들은 책을 읽으며 감정적인 모험을 하고, 낯선 인물과 세계에 감정이입을 하며 자신의 현실을 발견해왔다. 독서연구가 마리안 울프가 여성들의 책 읽기를 정보와 사실 위주의 책 읽기와 구별하여 “딥 리딩(deep reading, 깊이 읽기)”이라 부른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여자와 책, 그 열정의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