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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기차 여행
불만족스러운 생각들 음악 발코니의 여인 사랑 제2의 고향 시골로의 귀환 니나와의 재회 테신의 성당과 예배당 희귀본 봄날의 산책 어느 여행에 대한 메모 백일홍 고향 사랑의 희생 불꽃놀이 오래된 나무를 슬퍼하며 행상 비 내리는 일요일 도시로의 나들이 어느 작가의 편지 교환 안과에서 여행하는 날 뮌헨에서의 그림 구경 꿈 한 젊은이의 편지 잠 안 오는 밤 여행에 대하여 구비오 가을이 오면 침대에서의 읽을 거리 크리스마스 즈음의 쇼윈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삭제한 말 |
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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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속도를 늦춘다. 곧 작은 역에 멈춰 설 것이다. 역이름은 알지 못한다. 기차가 내뿜는 뿌연 연기 때문에 표지판을 읽기도 어려울 테지. 하지만 무슨 역이건 간에 나는 내릴 것이다. 틀림없이 근처에 숲이 있을 테니 그 가장자리에 누워 한동안 구름을 올려다봐야지.
---p.15 아, 더 이상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파란 하늘도 별이 빛나는 밤도 우리를 더 이상 기쁘게 하지 못하고 어떤 책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 그럴 때 기억의 보물 속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이나 모차르트 작품의 한 소절, 미사곡이나 소나타의 한 부분은 얼마나 곧잘 떠오르고는 하는가. 언제 어디서 그 음악을 들었는지는 더 이상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음악들은 우리를 환히 비추고, 흔들어 깨우고, 아픈 상처 위에 사랑의 손을 얹는다…. 아, 음악이 없다면 어찌 살아갈까! ---p.34 더웠던 여름, 몇 주 동안 일로 바쁘게 보낸 뒤 지금은 소소히 쉼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지만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에는 도통 재능이 없답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여름의 끝자락에 약간의 호젓함을 누리는 것이 제겐 휴식이 됩니다. ---p.95 다만 제가 이 꽃들에 얼마나 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한참 전부터 백일홍을 볼 때면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하고 아늑한 기분이 됩니다. 오래되어 은근한, 그러나 결코 약해지지 않는 이런 애정은 특히 이 꽃들이 시들어가는 걸 볼 때 더 각별해집니다. 꽃병에 꽂혀 차츰 마르고 죽어가는 백일홍을 보면 죽음의 춤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덧없음에 슬프고도 황홀하게 동의하는 모습이랄까요. 가장 덧없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p.98 다시 그곳에 들러 소년 시절 무수히 낚싯대를 드리우곤 하던 다리 위에 15분쯤 앉아 있게 된다면, 어릴 적 경험이 얼마나 아름답고 특별했는지 가슴 절절하게 다가올 것이다. 한때 나는 고향을 가졌었다! 한때 나는 지구의 한 소읍에서 모든 집과, 모든 창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한때 나는 지상의 한 장소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뿌리와 생명으로 자신의 자리와 굳게 연결된 한 그루 나무처럼. ---p.102 여행할 때 우리는 이런 천국에 가장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시간에야 집이라면 불가능했을 일들을 할 수 있다. 몇몇 그림 앞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고요하고 감사한 시간을 보낸다든지, 숭고한 건축물의 조화로운 울림에 열린 마음으로 감각을 맡긴다든지, 풍경이 보여주는 윤곽을 내면 깊숙이 향유한다든지. 이런 시간에는 평소 정신없이 지내며 일과와 인간관계, 자잘한 걱정에 가려 흐릿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비로소 선명한 상으로 다가온다. ---p.188 잠은 자연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고 피난처이며, 마법사이자 고요한 위로이다. 그래서 오랜 불면의 고통을 아는 자, 반 시간 정도 잠시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족한 줄 아는 자를 보면 나는 마음이 몹시 아프다. 살면서 불면의 밤을 한 번도 보내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자연의 아이 같은 이가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pp.219-220 그럼에도 언젠가 여행을 해야 한다면, 더 행복하고 멋지게 할 수 있다. 그러려면 최소한 지도를 통해서라도 여행 전에 자신이 가는 나라와 장소의 중요한 것들을 훑어봐야 한다. 여행지의 지리적 위치, 지형, 기후가 지금 자신이 사는 익숙한 곳에 비해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낯선 지역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특성을 느껴보고자 해야 한다. 산, 폭포, 도시를 지나치면서 그저 건성으로 감탄하지 말고 그 지역이 왜 그런 자연을 갖추고 왜 그런 도시를 낳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리하여 그 풍광이 그 지역에 얼마나 아름답게 녹아들었는지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pp.228-229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평소의 삶에서도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별을 좇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삶의 원천에 대한 강한 향수, 모든 살아 있는 것, 창조하는 것, 성장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동질감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세상의 비밀을 여는 그들의 열쇠다. 그들은 멀리 여행할 때뿐 아니라 일상의 리듬 가운데서도 그런 비밀을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추구한다. ---p.242 권력도, 소유도, 지식도 인간을 구원하지 않으며, 오직 사랑만이 구원한다는 것이다. 모든 이타심, 사랑의 희생, 연민, 자기 비움은 겉으로는 내어주고 빼앗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풍요롭고 위대해지는 행동이다. 앞으로, 그리고 위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말들은 오래된 노래이고 나는 그런 노래들을 잘 부르지도, 설교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진리는 결코 낡지 않으며, 광야에서 설교되든, 시로 노래되든, 신문에 인쇄되든, 언제나 어디에서나 참되다. ---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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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속도가 아닌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평생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가 있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려 했던 사람, 고독과 자연, 침묵과 사색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는 누구보다 깊이 삶을 탐구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은 헤세가 평생 써온 산문들 가운데, 세상이 정한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의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게으름’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나태함과는 다르다. 그것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가깝다. 헤세는 오래전부터 쓸모와 효율만을 좇는 삶을 경계했다. 그는 때때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자기답게 만든다고 믿었다. 바람이 스치는 풍경 앞에 오래 머무는 일, 계획 없이 길을 떠나는 여행, 홀로 침묵 속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들. 헤세에게 이러한 시간들은 삶의 주변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이 책에서 헤세는 세상이 요구하는 부지런함 대신, 잠시 멈추어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흔히 멈춰 있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세는 바로 그 낭비 속에서 기쁨을 발견했고, 고요 속에서 비로소 세계를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잊고 지냈던 삶의 감각을 다시 일깨운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은 잠시 속도를 늦추고 삶을 천천히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세상이 잃어버린 고요와 여백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전하는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깊은 상징성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작가로 여겨져 왔다. 특히 《데미안》이나 《싯다르타》 같은 대표작들은 헤세 특유의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만큼 때로는 독자에게 적지 않은 집중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은 헤세가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짧은 산문들을 중심으로 엮여 있어 한 편 한 편 부담 없이 읽히면서도, 특유의 지적 서정성과 삶을 꿰뚫는 깊은 통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렵고 난해한 헤세가 아니라, 산책하듯 편안하게 곁을 내어주는 헤세. 그래서 이 책은 오래도록 헤세를 사랑해온 독자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헤세를 어렵게 느껴왔던 독자에게는 가장 좋은 첫 만남이 되어줄 것이다. 헤세에게 배우는 ‘게으름의 기술’ 헤세에게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이 정해 놓은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본질과 마주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 책은 헤세가 평생 실천해 온, 자신만의 속도로 더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게으름의 기술’을 들려준다. ▶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고 나만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시간 그곳에서 발견한 삶의 진짜 풍경들 헤세는 세상이 빠르게 지나쳐 버리는 것들을 천천히 포착한다. 꽃병 속에서 죽어가는 백일홍을 보며 덧없음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숭고한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울림에 열린 마음으로 감각을 맡기며, 밤하늘의 불꽃이 사라지는 찰나를 오래 되새긴다. 헤세는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성취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시간이야말로 삶의 깊이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는 잠 못 이루는 밤조차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불면의 시간에 마차 소리의 무게를 가늠하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서 리듬을 찾아내며, 자기 인생의 인과를 되짚는다. 헤세에게 잠 못 드는 밤은 삶의 균열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과 깊이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는 우리가 쉽게 지나쳐 버리는 침묵과 고독, 그리고 멈춰 있는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진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 ‘보기’에 그치지 말고 ‘살아보기’ 목적 없는 발걸음이 찾은 진정한 여행 이 책의 상당 부분은 헤르만 헤세의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 헤세는 끊임없이 길을 떠난다. 스위스 테신에서 바덴으로, 이탈리아 구비오와 베르가모를 거쳐 다시 알프스 남쪽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의 여행은 흔히 말하는 ‘관광’과는 다르다.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지도 않고, 유명한 미술관을 놓쳐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대신 낯선 도시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 관광객이라면 스쳐 지나갔을 식물과 생태,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한다. 헤세가 말하는 여행의 즐거움은 유명한 장소에 왔다는 ‘도장 찍기’가 아니라, 그곳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잠시라도 함께 ‘살아보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이름 없는 작은 성당에 들어가 미사를 드리고, 잘 알려진 관광지 대신 거친 시골길을 걷는다. 그렇게 헤세는 ‘관광객’이 아니라 진짜 ‘여행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풍경과 순간들을 마주한다. 헤세는 여행을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배우고, 길 위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의 숭고함을 발견한다. ▶ 작지만 눈부신 일상의 기적들 세상의 무시를 견디고 살아남는 ‘정말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헤세는 자동차 경주에는 무심하지만, 불꽃놀이에는 깊이 매료된다. 수천 프랑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그 찰나의 황홀함이 실용적인 발명품보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세상의 기준으로는 ‘효용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편에 선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명복을 빌고, 음악에 귀 기울이는 일들처럼 말이다. 이 책은 세상이 무용하다고 여기는 사랑과 아름다움이야말로 시대를 넘어 끝내 살아남는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100년 전 헤세가 남긴 이러한 생각은, 끊임없이 효율과 생산성을 요구받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매일 출퇴근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에게, 헤세는 비상벨을 누르고 이름 모를 역에 내려 숲 가장자리에 누워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그가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게으름’, 어쩌면 쓸모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낭비’들이야말로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본질임을 헤세는 몸소 보여준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서 벗어나 삶의 감각을 되찾고,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방법이 담긴 이 책은,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용하고 깊은 위로를 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