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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1
안드레아스 레크비츠 도구로서의 사회의 이론 27 1 이론화하기 29 1. 1 사회이론 33 1. 2 사회학의 핵심 과제로서의 사회의 이론 36 1. 3 사회의 이론의 기능들 42 1. 4 도구로서의 이론 48 2 사회이론으로서의 실천이론 55 2. 1 실천이론의 특징들 57 2. 2. 실천론적 관점에서 본 사회적인 것의 네 가지 현상 63 2. 3 도구로서의 실천이론 70 3 근대의 실천 73 3. 1 우연성의 개방과 폐쇄: 목적 없는 변증법 76 3. 2 세계 생산의 급진화 82 3. 3 역설적 시간성 94 4 사회이론의 실제 적용: 부르주아적 근대에서 산업적 근대를 거쳐 포스트모던으로 103 4. 1 부르주아적 근대 104 4. 2. 산업적 근대 108 4. 3 포스트모던 113 4. 4. 포스트모던의 위기의 요소들 123 5 비판적 분석학으로서의 이론 133 6 꼬리말: 이론의 실험주의 149 하르트무트 로자 최적 설명: 근대 사회에 대한 체계적 이론의 개요. 157 1 사회의 이론은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59 1. 1 근대의 규정 그리고 [사회]구성체 개념의 문제들 159 1. 2 사회적 자기해석과 사회학의 과제 166 1. 3 관점적 이원론과 ‘최적 설명’의 세 가지 수준 181 2 역동적 안정화와 세계의 도달거리의 확대: 근대라는 사회구성체 분석 187 2. 1 모듈 1: 역동적 안정화 191 2. 2 모듈 2: 세계의 도달거리의 확대 197 3 비동기화와 소외: 근대에 대한 진단과 비판 209 3. 1 모듈 3: 단계적 확대와 비동기화 211 3. 1. 1 경제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금융위기 215 3. 1. 2 정치가 처리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민주주의의 위기 216 3. 1. 3 자연이 처리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생태 위기 218 3. 1. 4 영혼이 처리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심리적 위기 220 3. 2 모듈 4: 소외와 세계의 침묵 224 4 적응적 안정화와 공명: 대안적 지평을 향한 치료적·위반적 스케치 233 4. 1 모듈 4: 증대라는 절대 명령을 넘어 - 적응적 안정화 234 4. 1. 1 자연과의 물질대사 236 4. 1. 2 전원 차단: 부정적 추진 에너지의 차단 246 4. 1. 3 플러그의 전극 바꾸기: 긍정적 추진 에너지의 제도적 재정립 248 4. 2 모듈 6: 소외의 타자 - 공명 250 근대와 비판: 바우어와의 대화 261 감사의 말 325 |
Andreas Reck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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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와 루만을 거쳐 찰스 테일러와 기든스, 바우만 등 영미의 사회철학과 사회학과 접속한 21세기 독일 사회학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는 두 주요 사상사의 21세기 진단. 20세기에는 인간의 ‘소외’가 큰 문제였다면 21세기에는 ‘가속화’와 ‘단독화’가 인간의 ‘무관계의 관계’와 일차원화의 주요 근원이다.
20세기 지식의 주요한 상징이자 지표 중 하나였던 ‘체계’와 ‘비판’은 이제 영원히 사라진 것일까? 지식사회학적으로 볼 때 현재 바닥을 모른 채 하락 중인 한국의 사회과학과 인간과학 출판 또한 ‘체계’와 ‘비판’과 함께 운명을 함께해왔다. 1980년의 비극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것은 이제 자본주의가 - 인공지능을 통해 - 자기 체계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시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고 있는 듯하다. 20세기까지의 자본주의가 ‘자식을 잡아먹는 아버지’였다면 21세기의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는 ‘아버지를 잡아먹는 아들’인 듯하다. 그리고 ‘아들’에서는 ‘진선미’를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사회과학과 인간과학이 가장 만만한 가처분 대상이 되었다. 가령 단독화는 모든 보편적인 것을, 그러니까 공동체, 정의 등을 ‘꼰대’의 지위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이제 전략은 인공지능이 짜고 전투는 드론이 수행하고 있다. 거기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최저 비용으로 최단 시간 내에 승리하는 것이 알파요 오메가이다. 그것이 시대의 논리이자 윤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대 변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비판은 자기비판에서 출발해야 하고, 루만 말대로 체계의 오작동의 원인은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해 여전히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루만의 자장 안에 있는 독일학계와 한국학계 ‘내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가속화’와 ‘공명’ 그리고 ‘단독화’와 ‘상실’은 제목만으로도 앞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새로운 시대 의식 속에서 시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론’ 그리고 그와 관련해 자기비판을 내포하는 ‘비판’의 가능성은 진정 우리 학문을 21세기적인 것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속도와 접속에 중독된 21세기에 자연, 이웃, 자기와의 진정한 공명은 과연 가능할까? 개인의 개성화와 문화화를 넘어 ‘단독화’를 병적으로 추구하면서 모든 ‘보편적인 것’, ‘사회적인 것’은 꼰대와 낡아빠진 것으로 치부하는 21세기는 과연 ‘사회’로 지탱 가능한가? 21세기의 미궁에서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미래로 향하는 실마리를 찾는 방식을 과연 무엇일까? 두 저자의 글의 특징은 다소 딱딱하고 학문적 논의를 좀체 벗어나지 않는 기존의 ‘정통(?) 독일식 저술과 달리 상당히 에세이적이고 ‘영미적’(?)이다. 에세이는 ‘시도하다’라는 원래 의미대로 시론적이고 도전적 성격을 가진다. 동시에 개념 중심적이기 보다는 현실 밀착적이다. 그리고 참조 문헌이나 인용하는 저술가나 지적 전통 또한 영미권을 상당 부분 통섭하고 있다. 대륙 철학 대 영미 철학 식의 대립이 극복되는데, 그것은 21세기의 자본주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과 맞물려 두 사람이 진단하고 분석하는 현상 또한 상당히 글로벌하다. 즉 모든 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두 저자의 주저들의 제목만큼 우리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요긴한 이론 틀도 없을 것이다. 만약 이론이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보라’라는 말에 부합해야 하는 것이라면 두 사람의 이론만큼 적용성이 큰 이론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가령 MZ세대의 성지인 성수동을 ‘단독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것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연결’과 ‘접속’을 핵심 화두로 하는 각종 SNS를 ‘공명’ 개념에 비추어보면 그것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논의를 통해 두 저자는 ‘사회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등 포스트모던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 인간 문명의 두 기둥을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복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비판과 이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지적 도구라는 데 두 사람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다소 논쟁적이고, 단독화와 공명 등 우리 사상의 좌표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두 저자의 고민은 21세기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할지에 대해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