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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무도 모른다
2장 미안하다, 형철아 3장 나, 왔네 4장 또다른 여인 에필로그 장미 묵주 해설 | 정홍수 대담 | 신경숙·신수정 새로 쓴 작가의 말 초판 작가의 말 |
Shin Kyung-Sook,申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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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가을까지만 해도 너는 너의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화났을 때 어떻게 해야 누그러지는지, 엄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누가 지금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고사리를 말리고 있을걸요, 일요일이니 성당에 가셨겠는데, 십초 내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생각은 지난가을에 조각이 났다. 엄마에게 너란 존재가 딸이 아니라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 것은 엄마가 네 앞에서 집을 치울 때였다.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방에 떨어진 수건을 주워 걸었고,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면 얼른 집어냈다. 예고 없이 엄마 집에 갈 때 엄마는 너저분한 마당을,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연방 미안해했다.
--- p.29 엄마가 스스럼없이 너를 혼낼 때는 네가 엄마, 엄마 더 자주 불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 있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너는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금까지도. 엄마라고 부를 때의 너의 마음에는 엄마가 건강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섞여 있었다. 엄마는 힘이 세다고, 엄마는 무엇이든 거칠 게 없으며 엄마는 이 도시에서 네가 무언가에 좌절을 겪을 때마다 수화기 저편에 있는 존재라고. --- p.31 서울역에 도착한 엄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용산동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을 때 지나가던 청년이 본 모양이었다. 이 밤 안에 아들에게 꼭 전해줘야 할 것이 있다는 그의 엄마 말을 들은 청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동사무소까지 바래다준 것이었다. 그의 엄마는 한겨울인데도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가을 추수 때 낫을 잘못 써서 엄지 쪽 발등을 다쳤는데 아물지 않아 앞이 터진 신발을 찾다보니 슬리퍼였다 했다. 그의 엄마는 숙직실 문 앞에 슬리퍼를 벗어놓고 들어와, 늦지나 않었는지 몰르겄다!며 그 앞에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내밀었다. 엄마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는 얼음장 같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이 손을, 이 손을 가진 여인을 어쩌든 기쁘게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입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따라오란다고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엄마를 책망했다. 엄마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산다냐!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은 법이다!며 엄마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지었다. --- p.105 아내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리기 전까지 당신에게 아내는 형철 엄마였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이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 형철 엄마를 잃어버리고 당신은 형철 엄마가 아니라 아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오십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잊고 지낸 아내가 당신의 마음에서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육감적으로 다가왔다. --- p.172 —엄마 소리 지르는 거 너무 싫어하시는데…… 모두들 엄마한테 소리 지르잖아요, 우리는. 전화를 다시 걸어서 사과하려고 했는데…… 밥 먹고 거기 구경 다니고 사람들하고 얘기하느라고 그만 깜박 잊어버렸어요. 다시 전화를 드려서 사과만 했어도 엄마가 그리 머리가 아프진 않으셨을 텐데…… 그랬으면 아버지 뒤를 잘 따라다니셨을 텐데. 딸이 우는 것 같았다. —지헌아! —…… —니 엄마는 너를 아주 자랑스러워했어. —예? —어쩌다 니가 신문에 나먼 고거 접어서 가방에 넣고 다님서 꺼내 보고 꺼내 보고…… 읍내에 나가 누구 만나믄 보여주며 자랑허구 그랬다. —…… —딸이 뭐 하냐고 물으면…… 글씨 쓴다고 했지…… 니 엄마가 니가 쓴 책을 저 남산동의 소망원 여자한테 읽어달라고 했단다. 니가 뭔 글을 쓰는지 엄만 다 알고 있었어. 그 여자가 읽어주면 엄마 얼굴이 환해지고 웃음이 번지고 했단다. 그러니까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씨를 잘 써야 혀. —…… —말이란 게 다 할 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니 엄마한테 말을 안 하거나 할 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었고나. 인자는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들을 사람이 없구나. —…… —지헌아? —예.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 --- p.229~230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 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p.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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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는 가족들의 기억을 따라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해나가는 작품이다. 소설은 늘 곁에 있었기에 오히려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엄마를 딸과 큰아들, 남편과 엄마 자신의 시선을 차례로 통과하며 ‘엄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려온 사람의 서로 다른 얼굴을 펼쳐 보인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존재인 동시에 어린 시절과 꿈, 사랑과 욕망, 고독과 비밀을 지녔던 한 인간의 삶이 가족들의 뒤늦은 기억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얻는다. 엄마의 부재를 계기로 가족들이 저마다 자신의 과거와 상실, 사랑과 후회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는 일은 어느새 잃어버린 자기 자신과 삶의 근원을 다시 찾아가는 일이 된다. 출간 직후부터 『엄마를 부탁해』를 향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출간 한달 만에 약 15만부가 판매되었고, 2009년에는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한국문학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고 연극과 뮤지컬, 라디오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확장되며 하나의 사회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울림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이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한국문학이 세계 독자와 폭넓게 만날 수 있음을 증명해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가족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에서 출발한 소설이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음을 눈부시게 보여주는 귀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 리마스터판에는 초판 출간 당시 신경숙 작가와 문학평론가 신수정이 나눈 대담을 새롭게 수록했다. 작가가 사춘기 시절 어머니에게 마음속으로 건넨 약속에서 시작해 20여년 만에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을 만난 순간과 ‘너―그―당신―나’로 이어지는 독특한 시점이 탄생한 배경 등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 대담은 우리가 처음부터 ‘엄마’로만 여기던 한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하나의 시선으로는 결코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엄마의 삶을 여러 인물의 기억으로 복원하고, 마침내 엄마 자신에게 ‘나’라는 목소리를 돌려주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상세히 밝혀져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이번 책의 표지에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조숙진 작가가 니카라과에 직접 세운 ‘아트하우스 채플’의 사진을 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풍경 속 홀로 불을 밝힌 건물의 모습은 마치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오래도록 불을 켜둔 채 기다리는 집처럼 보인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 비로소 엄마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 가족들의 마음처럼, 그 불빛은 사라진 존재를 향한 기다림의 정동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한편으로 평생 가족에게 돌아갈 곳이 되어주었던 엄마가 사라지고 난 뒤 이제는 남겨진 이들이 엄마를 위해 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듯한 역전된 이미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에서 시작해 끝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는 간절한 청으로 나아가는 소설의 여정과 조응하며 고요히 빛나는 이 한채의 집은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존재를 다시 바라보고 기다리는 마음을 오래도록 환기한다. 여전히 유효한 질문, 다시 만나는 『엄마를 부탁해』 출간 이후 십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족의 모습도, 엄마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어느 정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조차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렇기에 이 소설이 독자에게 던지는 화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세대를 넘어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한국문학의 경계를 넓혀온 『엄마를 부탁해』,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우리 시대의 소설’을 이제 새로이 마주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