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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_009
2장 _139 3장 _281 4장 _417 해설 | 백낙청(문학평론가) _561 『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_561 초판·개정판·출간 30주년 기념 작가의 말 _599 |
Shin Kyung-Sook,申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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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는 또랑가에 서서 또랑 너머의 겨울 들판을 보고 있다. 들판은, 아득한 흰 눈 아래, 유일하게 이방을 향해 열려 있는 철길 쪽에서 다시 몰아치기 시작하는 눈바람 아래, 청둥오리 무리들을 품고 있다. 풀씨며 나무열매며 무척추곤충 들을 잃어버리고 눈 속에서 벼이삭을 찾고 있는 청둥오리떼가 소녀에겐 아름다워 보인다. 그 광활한 겨울 들판을 뒤덮고 있는…… 배고픈 무리들이.
--- p.17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희망이 내 속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나 또한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으면 나로서도 행복하겠다. 문학은 삶의 문제에 뿌리를 두게 되어 있고, 삶의 문제는 옳은 것과 희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과 불행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희망 없는 불행 속에 놓여 있어도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질 않은가. --- pp.81-82 언니가 뭐라구 해도 나는 언니를 쓰려고 해. 언니가 예전대로 고스란히 재생되어질지 어쩔지는 나도 모르겠어. 때로 생각했지. 언젠가 내가 그녀들을 내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그때 언니와 그녀들이 머물 의젓한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사회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의젓한 자리 말야. 그러려면 언니의 진실을, 언니에 대한 나의 진실을, 제대로 따라가야 할 텐데. 내가 진실해질 수 있는 때는 내 기억을 들여다보고 있는 때도 남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도 아니었어. 그런 것들은 공허했어. 이렇게 엎드려 뭐라고뭐라고 적어보고 있을 때만 나는 나를 알겠었어. 나는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 해. --- p.256 왜 모르겠는가. 소설을 이루는 문장으로는 아무리 해도 삶에서 발생했다 사라지는 섬광들을, 앞설 수가 없다는 걸 그가 왜 모르겠는가. 과장되게 폐쇄시키고 보편성 없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 문장의 한계를. --- p.317 새벽. 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하나씩 사위고 있다. 사위는 별빛 아래, 옥상 난간에, 누군가 금방 날아갈 듯이 앉아 있다. 희재 언니다. 그녀가 새처럼 옥상 난간에 앉아 복숭아나무나 사과나무 대신 울뚝울뚝한 공장 굴뚝 사이로 날이 밝아오는 걸 보고 있다. 기름냄새 사이로도 새벽빛은 푸르다. 새벽 앞에선 세상의 모든 것이 부드럽고 찬란한 새순 냄새를 풍긴다. 공장의 굴뚝조차도. --- p.424 ……내 아무리 다른 길로 돌아간다 하여도 내 글쓰기는 그해 여름을 기억했다. 내가 아무리 밀어넣고 밀어넣어도 그해의 여름은 끊임없이 나의 내부를 뚫고 올라오곤 했다. 내가 그를 만나 웃고 있는 그 순간 속으로조차 그해 여름은 스며들었다. 전혀 예기치 않았을 때조차 밤바람처럼 밀물처럼 안개처럼. --- p.478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마. 네 가슴속에서 오래 살았잖아. 마음을 열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지난 이야기의 열쇠는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니라 너의 손에 쥐어져 있어. 네가 만났던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퍼뜨리렴. 그 사람들의 진실이 너를 변화시킬 거야. --- pp.533-534 내가 애착하는 것들은 끝끝내 숨어버리는 것들이다. 쉽게 끌려나오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들의 진실이 언젠가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문학은 그 진실의 고귀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 p.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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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책에 운명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작가가 마침표를 찍은 후 그 책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보살피는 손길이 따로 있고, 그중 가장 따스한 것은 독자의 다정한 손길이라고 생각한다. 출간 후 삼십 년이란 시간을 버텨온 이 작품이 그 증명이려니 여기려 한다. 삼십 년을…… 헤아려보면 새벽하늘에 떠 있는 달을 무심결에 바라볼 때처럼 물끄럼해진다. 이 책의 첫 독자가 이십대에 읽었다면 그는 오십대가 되었을 것이고 삼십대에 읽었다면 육십대가 되었을 것이며 십대에 읽었다 해도 사십대가 되었겠구나, 싶어서.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태생지도 이름도 만난 적도 없이 앞으로도 마주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태로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만…… 다가올 시간의 어느 틈에 당신의 외딴방 속에 이 작품이 물처럼, 나무처럼, 공기처럼 스며들어 “망설이지 말고 날아가”는 순간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썽이는 게 살아 있는 것 같고 충만하기는 하나,
좀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내가 되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해나가다 가만히 마무리할 수 있기를. _신경숙, ‘출간 30주년 기념 작가의 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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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프루스트의 소설, 에밀 졸라 작품 속 노동자들의 서사시를 한데 엮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방대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신경숙은 놀라운 힘과 열정적 감수성으로,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은 필치로 이 모든 것을 녹여냈다. 그녀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의 탄생, 노동자들의 삶, 여성의 권리 그리고 작가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놀라운 작품을 선보였다. - 리나페르쉬 상(Prix de l’inapercu) 선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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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면 등장인물 모두 서로에게 미안해한다. 내색을 하든 안 하든 웬만하면 미안해한다. 참 섬세하게도 미안해한다. 거푸 읽으면서 나는 이런 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내가 속한 세계와 참 많이도 다른 그 세계에 한때 존재했던 사람들하고 뭔가를 나누고 싶었다. 이런 문학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자의 컴컴하고 협소하고 외딴 방에 갇힌 존재밖에 더 되겠는가. - 박찬욱 (각본가, 감독,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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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사회적 소명 중 하나가 재현의 공백 지대를 채우는 일이라면 이 소설이 한 여성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유신 말기 산업역군의 풍속화”를 그려낸 것은 큰 성과다. 그런데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작업이 ‘여공’ 출신 작가에 의해 수행됐다는 사실이다. 당사자만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당사자만 쓸 수 있는 건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한 정신의 고투가 있었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 한국문학사가 처음으로 경험한 문장들이 가세했다. 이 소설에서 내면과 문장은 상대를 부둥켜안은 채 치고받는다. 서로를 발견하거나 창조하고, 타오르거나 얼어붙는다. 그후로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 기준이 되었다. 그게 익숙해졌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는다. 흔히 간과되곤 하지만, 지난 세기에 탐구된 진정성의 윤리는 이번 세기에 폭발한 정체성 서사의 실천적 근원 중 하나다. 여공 서사에서 퀴어 서사로 이어지는 길은 외딴방 앞에 선 사람과 벽장 문 안쪽에 선 사람을 잇는 길이다. 제 진실을 가두어 고독해야만 했던 이들이 어느 날 그 문을 연다. 그게 문학이 세계 안에 한 세계를 열어 보이는 방식이다. 『외딴방』과 그 30년은 한 출판사의 것도, 1990년대라는 특정 시기의 것도, 심지어 그걸 쓴 개인의 것도 아니다. 그냥 문학의 것이다. 이것은, 문학이란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방에 유폐된 영혼들의 목소리이자 그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약속일 거라고 믿는, 한 편벽된 사람의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철회할 이유가 내게는 여전히 없다. - 신형철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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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철저히 고독하다고 믿었던 내게 『외딴방』은 일종의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나와 세대도, 성별도, 살아온 배경도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외로움을 완벽히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달까?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누군가와 그토록 내밀한 소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의 그 귀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되었으니, 『외딴방』은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만든 출발점이자 문학적 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는 『외딴방』을 펼쳐든다. 그 참혹하게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며, 문학이라는 것이 이토록 큰 위안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한다. - 박상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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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내가 사랑해온 작가는 신경숙이다. 나는 대학에 가서야 『외딴방』(문학동네, 1995)을 읽었는데 지금과 달리 분권이 되어 있던 그 책을 붙들고 느꼈던 감동과 슬픔,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환희를 잊지 못한다. 그 책은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어떤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닿는 곳은 마음, 나 자신의 마음에 있었다.
(…) 소설은 내게 나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가냘프고 투명한 ‘막’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했다. - 김금희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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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기억하지 않으려 할수록 어디서든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 모두는 얼굴 없는 괴물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신경숙은 그런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의 괴물을 그린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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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가 되지 않으려 저항하는 한 소설가의 몽환적인 내적 방황과 유년을 서술하며 감정을 자극하는 산문의 병치.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질문을 남기는, 잊을 수 없을 놀라운 소설. -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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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의 정치적 불안과 불안한 도시 생활을 생생하게 환기할 뿐 아니라, 글쓰기로써 과거를 받아들이려는 한 작가의 분투를 솜씨 좋게 좇아나간다. - [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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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린 듯이 빠져드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신경숙의 정치, 문학, 그리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는 고유의 테마를 놀랍도록 눈을 뗄 수 없는 한 편의 작품으로 통합한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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