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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며
제1부 판결문을 말하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여전히 어려운 판결문 판결문이 틀렸다? 국민은 얼마나 법원을 신뢰할까 제2부 노동자들 초코파이 하나와 카스타드 하나의 가격 반반족발 세트 사건 버스 요금 ‘삥땅’ 사건 독일 엠멜리 사건 제3부 부부들 이혼하느라 고생 많으셨다 몰염치한 남편의 최후 부부가 될 수 없는 사람들 제4부 사회적 약자들 따뜻한 가슴으로 내린 판결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제5부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 마지막 호명이길 바란다 제6부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진정한 사과와 통합을 위하여 이야기를 마치며 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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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국민의 알 권리를 두텁게 보장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알 권리’는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하거나,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보를 요구하고 접근할 권리라고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정의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알 권리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다. 판결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장애인들에게 점자 판결문이나 들을 수 있는 오디오 판결문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필요한 경우 번역된 판결문도 필요하다. 청소년이나 이주민, 발달장애인이나 언어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판결문을 써야 한다. 알 권리는 가장 먼저 자신의 권리를 알게 하도록 해주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법률 용어를 순화하고,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 개발과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 p.36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가 평생 벌어도 손에 쥘 수 없는 돈을 횡령하고 배임을 해도 법원이 정상참작하고, 감형을 해주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형 집행을 유예하는 선고를 하는 만큼, 법원이 노동자에게도 그만큼 정성을 들여 판단해 주면 좋겠다. 얼마 전 정치자금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종교지도자에 대해 법원이 감형 사유 중 하나로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를 들지 않았나. 앞서 초코파이 사건, 반반족발 세트 사건, 버스 요금 횡령 사건 등을 살펴보면서,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 pp.70-71 재판부는 판결의 결과에 이어, 구청이 지적장애인이 아니라고 결정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구청이 B 씨의 지적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첫째, 검사 결과를 믿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둘째, 더 어릴 때 했던 검사에서는 점수가 70점보다 높았다고 했습니다”라고 간략히 정리해 알려주었다. 아울러 70점이라는 수치의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기에 “점수가 70점보다 낮으면 지적장애로 봅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구청이 내린 결정이 틀렸다고 판단한 이유 3가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 p.136 말 한마디, 손길마저 닿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청년들이 찾은 곳은 소셜 네트워크였다. 이 판결문은 고립된 이들이 자살하기 전 찾은 곳이 소셜 네트워크라는 역설적 상황에 빗대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 한 편을 인용하고 있다. 세상은 더욱 촘촘하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고, “댓글과 좋아요, 구독자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정작 현실 세계에선 타인의 고통에 무심한 세태를 한 편의 시로 압축한 것은 이 판결문의 백미다. 숨을 고르고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놓치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길지만 이 시의 전문을 모두 실어 본다. --- p.185 장준하 선생의 재심은 선생의 아들이 청구하였는데, 재판부는 유가족에 대한 사과도 빼놓지 않았다. 사법부가 지난 과오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유가족이 명예를 회복하는 바람을 재판부는 진심으로 판결문에 담았다. 판결문엔 재심 판결의 의미가 장준하 선생의 명예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명예도 회복하기 위한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재심 판결에 비해 의미가 크다. 다른 판결과 달리 고인과 유가족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사과와 반성 그리고 다짐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여 재판부가 마지막 문단을 완성할 때까지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p.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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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읽고 눈물을 흘려본 건 처음이었다!”
판결문을 읽는 사람이 쓴, 판결문에 관한 가장 다정한 기록 법정을 다룬 책은 그동안 대개 법대 위에 앉은 사람이 썼다. 『판결의 온도』는 그 맞은편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노동 사건을 맡으며 해고당한 사람과 다친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 곁에서 판결문을 받아 들었던 저자가 자기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판결문을 찾아 읽었다. 그 안에서 위안을 얻고 마음이 따스해진 순간을 기록했다. 저자는 포크 그룹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빌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말한다. 소송은 결국 제자리를 잃은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싸움이다. 판결문은 그 싸움 끝에 받아 드는 단 한 장의 대답이다. 이 책은 그 대답에 사람의 온기가 실릴 수 있는지, 실제로 실린 적이 있는지를 판결문 원문으로 확인한다. 이 책의 사건들은 대부분 신문 사회면 한구석에도 실리기 어려운 것들이다. 폐기 대상인 줄 알고 5,900원짜리 반반족발 세트를 먹었다가 횡령범으로 법정에 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재판부는 그가 닷새 일하는 동안 그 편의점에서 자기 돈으로 15만 원어치를 샀다는 사실을 짚었다. 그리고 “정말 먹고 싶었다면 돈을 내고 먹었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승객에게 거슬러 줄 잔돈이 없어 400원씩 두 번, 800원을 덜 입금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 기사의 판결문은 정반대다. 회사의 순수익률까지 계산해 가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했다. 저자는 두 판결을 나란히 놓고 판결의 온도가 무엇으로 갈리는지 묻는다. 슈퍼마켓 계산원의 해고를 다룬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엠멜리 사건’도 함께 살핀다. 저자가 찾은 기준은 법의 잣대 앞에 선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들여다보았는가이다.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 진 사람도 존중하는 판결! 이 책은 이긴 판결만을 따뜻한 판결로 꼽지 않는다. 채용 면접에서 차별을 당했다며 소송을 낸 청각장애인은 결국 패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면접 상황을 법정에서 직접 재연했다. 평등과 공정의 차이는 그림으로 설명했다. 주문(主文)에는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는 말을 괄호 안에 덧붙였다. 패소한 사람이 자신이 왜 졌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끝까지 경청되었다고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적장애 청년을 위해 그림까지 곁들인 ‘쉬운 판결문’과, 중학생 원고와 그 부모에게 따로 당부를 남긴 학교폭력 판결도 같은 맥락에 있다. 저자는 이를 친절이라 부른다. 공정한 사법 접근권은 제도에서만이 아니라 판결문의 문장에서도 시작될 수 있음을 이 판결들이 보여준다. 저자가 판결문을 읽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는 사건이 있다. 아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살아남은 두 엄마의 사건이다. 재판부는 ‘동반 자살’이라는 말이 “가해 부모의 언어”일 뿐이며 아이의 언어로는 피살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동시에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판결문에 낱낱이 기록했다. 재판부는 단죄와 함께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우리가 맡아 키우겠다고 공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판결문의 끝에서는 숨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것이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했다. 이 대목에서 판결문은 한 사건의 결론을 넘어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향한 질문이 된다. 저자가 이 책을 법률서가 아닌 사회비평서로 쓴 이유다. 초코파이 절도 사건에서 다단계 하청 구조를, 학교폭력 소송에서 교육이 사라진 자리의 법 만능주의를, 나고야의 동성 동반자 판결에서 새로운 가족의 권리를 읽어내는 시선도 같다. 법원은 국가승인통계인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17개 기관 가운데 단 한 번도 신뢰도 10위 안에 든 적이 없다. 민사 합의부 사건의 항소율은 5년 사이 34.5%에서 47.0%로 뛰었다. 저자는 이 불신의 뿌리를 찾아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의 출처인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 제주 4·3의 불법 군사재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더 일찍 명예회복을 하여 드리지 못한 점을 머리 숙여 사과”한 재심 판결들에서 신뢰가 회복될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민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인공지능이 법률시장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저자가 법원에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내 법복 아래에는 판사의 배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있다”던 카프리오 판사처럼, 차가운 법의 온도를 사람의 마음으로 데워 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인세 전액을 전태일·이소선 장학재단에 기부한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독자의 마음을 “보슬비처럼” 적시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담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