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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벌사회와 학력사회의 본질
학벌은 신분이다 학벌은 붕당이다 학벌은 독점이다 학벌은 편견이다 2. 학벌사회 옹호론과 그 비판 경쟁동기론 기회균등론 능력지표론 3. 학벌사회의 수혜자와 방조자 그리고 피해자 매스컴은 학벌사회의 나팔수 사교육업자의 이권 명문대인가 권문대인가 학생도 인간이다 중등학교와 교육관청의 공모 기업과 사회의 편견과 차별 4. 학벌사회와 대학서열화 대학서열화의 역사적 배경 대학서열화는 학벌사회의 기반 대학서열화의 극복 방안 5. 학벌주의 불식의 핵심고리, 대학 입학 제도의 개혁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자 - 대학 입학 추첨제 '입시' 없는 대학 입학 커트라인을 없애자 학벌없는 사회, 비공개 선발의 원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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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한 젊은이가 수능에서 390점이 넘는 고득점을 받아, 명문사립대 인기학과에 특차 합격했지만 서울대를 가지 못한 것을 비관해 한 여관방에서 음독자살했다. 과학고를 자퇴하고 4수를 했으나 또 실패하자 막다른 골목에서 생을 포기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며 너무도 가슴이 아파 일간 신문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12년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이렇게 금메달 제일주의에 중독되도록 키워지고 있다. 바로 우리 기성세대들의 타락한 가치관이 전이되어 이런 안타까운 희생자를 낳는 것이다. 인간은 자긍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다. 이 자긍심이 가장 피어오르는 때가 바로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기이다. 그런데 우리의 철저히 서열화된 학벌사회에서는 이 사회의 모든 청소년들에게서부터 대학 입시를 기점으로 하여 극소수의 행운아들을 제외하고는 이 자긍심을 송두리째 압수해버린다. 자긍심이 강한 자일수록 더욱 열패감에 빠져들고 치유하기 힘든 심리의 상처를 입는다. 많은 경우에는 그 몰수된 자긍심이 그들의 가능성 자체를 봉쇄한다. 한번 기가 꺽인 여린 가지는 다시 피어오르지 못한다. 인간의 심성이란, 특히 여물어 터지는 청소년기에는 이렇게도 여린 것을, 그 여린 심성에 비수를 꽂는 듯한 아픔과 상처와 소외를 주는 이 서열의식." --- pp.7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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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고려대 법대 22명의 전임교수 중 서울대 출신 교수는 두엇 있지만 그 외 연세대 법대나 성균관대 법대 출신 교수는 전혀 없다. 따라서 출신 대학의 서열이 높지 않으면 아무리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실력을 쌓았다 해도 모교 교수가 되는 길 외에는 거의 길이 막혀 있다. 이래저래 모든 대학이 동문 교수로 넘쳐나 아름다운 한 가족을 이룬다. 한번 취득한 학벌은 영원히 의지할 고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임교수의 학벌을 다양화할 수 있다면 거꾸로 학생이나 일반인의 학벌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하버드 대학의 경우 1910년대 전체 교수의 70% 이상이 동문이었으나, 그 뒤 계속 본교 출신 채용을 줄여 현재 10% 대에 불과하다. 스탠포드 대학의 경우 모교 학사 출신이 아예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것이 미국 대학 경쟁력의 한 원인이다. 만일 서울대 교수 중 30% 정도만이라도 비서울대 출신이라면 서울대의 패권주의는 거의 무력화될 수 있을 것이다. --- p.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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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급박하고 핵심적인 의제가 '학벌'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200여 명씩 죽어나가는 죄없는 아이들, 이들과 함께 무한 경쟁의 불구덩이에 같이 뛰어들어야 하는 힘겨운 중년들, 학벌체제하에서 주눅이 들도록 강요받는 비명문대생들, 또 그들과 교감해야 하는 교수와 대학들의 무력감, 각종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속으로만 한을 새기며 이 공동체를 저주하는 많은 사회인들. 이들의 분노와 좌절과 절망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면서 원동력이다. 우리는 정말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적 역량이 부족한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저항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 들어가는 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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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고 말했던 학자가 있었다. 그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지식 권력의 핵심인 대학교수로서, 사회가 제공하는 이익을 묵묵히 향유하며 침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두 발을 담고 있는 교육 현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학자. 그의 노력이 이제 조금씩 공론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책의 저자 김동훈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이 지난 2000년 10월 인터넷 홈페이지(www.antihakbul.org)를 개설, 학벌사회의 질곡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산적인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리플에 리플을 달고 이어져 내려가는 학벌사회의 문제점. 더러는 이해하고 더러는 오해하며 충돌하고 있으나, 대부분 한국 사회의 학벌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임을 함께 인식한 듯하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제해결의 반을 차지한다. 개인의 실천적 노력에서 공론화로 향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한국 학벌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실현 가능한 문제해결 방안들을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7번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를 통해 구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학벌사회에 관한 영문 원고를 청탁받은 일이 있는데, 학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다 그냥 'hakbul'이라고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영어사전에 등록된 'chebul(재벌)'이라는 단어가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많은 부분 내포하고 있듯이 학벌이란 단어 또한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 일화는 학벌이 우리 사회의 일부분, 즉 교육에만 국한되는 범주가 아님을 시사한다. 우리의 학벌은 우리 사회의 교육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방위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즉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라고 명명할 때, 그것은 사회학적으로는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정치학적으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파당적으로 분배되는 붕당적 사회임을, 경제학적으로는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부와 권력을 소수의 학벌집단이 독점으로 차지하는 독과점사회임을,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의 형성, 결혼, 취업, 자긍심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임을 두루 뜻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가장 급박하고 시급한 핵심적 의제가 '학벌'이라고 판단한 저자의 이 책은 학벌체제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금씩이라도 그 질곡의 고통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피부에 와닿는 매우 구체적인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우선 학벌사회를 옹호하는 견해들을 크게 경쟁동기론, 기회균등론, 능력지표론 등으로 분류하여 그 주장의 부당함을 논박한다. 흔히 학벌사회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로 경쟁에 의한 사회 활력, 공개시험을 통해 공정하고도 균일하게 제공되는 기회(예를 들면 현 입시제도), 근대사회에서 학벌은 가장 신뢰할 만한 능력 판단 기준이라는 것 등이 있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으로 이 세 가지 논리들을 비판한다. 첫째, 경쟁을 유발하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입시 후의 전 생애에 걸쳐 '출신대학'이라는 종신형 간판에 의해 경쟁의 모티프를 앗아감으로써 우리 사회를 정체시킨다는 것(결국 진정한 경쟁체제가 아니라는 것). 둘째, 사실상 공평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것. 오히려 계층 이동을 고착화시키고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대물림시킴으로써 실제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를 협소화시킨다는 것. 셋째, 현행의 입시제도가 개인의 능력 계발이나 판별과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꼭 수능성적 고득점자가 우수한 인재이거나 창조적 소수자는 아니라는 것. 명문대생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지닌 능력의 우월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 기회의 선점에서 온다는 것. 따라서 입시경쟁과 학벌에 기초한 현재의 학벌독점 현상은 어떠한 자기 정당화 근거도 갖고 있지 않은 기득권 세력의 수탈구조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학벌사회 옹호론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하여 학벌사회의 수혜자와 방조자,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 이해갈등 상황에 대한 차분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뒤이어 언론의 행태, 사교육업자의 이권, 명문대생의 탐욕, 중고등학교와 교육 관청의 방조 등도 면밀히 파헤친다. 그렇다면 이제 명백해진 학벌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현재 한국 사회의 모든 권력의 요직을 서울대학 출신의 동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보았을 때, 학벌사회 극복을 위한 가장 이상적 방안으로 서울대 폐교론이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의 실현불가능성을 염두에 둔 저자는 먼저 대학서열을 완화, 철폐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제도적 과제라고 말한다. 학벌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현재 고착된 대학서열 체제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약간 유보적이기는 하지만 대학평준화론, 국립대의 민영화를 통한 사립대와의 차별해소, 인제지역할당제 시행을 통한 비수도권 지역의 대학들에 대한 획기적 배려 등이 그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또한 학벌체제의 하나의 기둥인 대학입시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전국 단위 국가관리 입시제도를 즉각 철폐할 것, 대학 스스로가 다양하고 총체적인 접근에 의한 교육적 선발을 해나갈 것, 입학절차를 비공개로 하여 대학과 학생 간의 관계를 사적인 계약관계로 머물게 할 것 등이 그 제안들이다. 아울러 대학의 다원화, 개방화를 통해 학벌의식의 심리적 기반이 되는 폐쇄성을 깨뜨릴 것, 대학평가체제를 정착할 것도 덧붙인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개혁과 더불어 학벌차별과 편견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형태로 구체적인 의식개혁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학생도 인간이다'를 외치며 지난해 여름 고교생들이 두발 단속 문제를 제기하면서 스스로의 권익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상을 느끼며 가장 격렬하게 자아를 조형시켜나가야 할 시기에 거리로 내몰린 이들이야말로 학벌사회의 가장 큰 피해자일 것이다. 두발 단속을 비롯한 야만적 인권 탄압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근본적 토대는 바로 학교간 무한 입시경쟁에서 비롯한다. 무한 입시경쟁은 현 학벌 사회가 만들어낸 기형아다. 그러나 한편으로 희망적이기도 하다. 학벌의 피해자들인 고교생, 즉 당사가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한 목소리야말로 변화의 동력이자 엔진일 것이다. 김동훈의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가 마지막으로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다수 피해자들의 한 목소리가 소수 수혜자들로 하여금 각성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말미에 실린 '의식개혁을 위한 일곱 가지 요구사항'은 일독할 만하다. '하나, 학벌을 묻지 않고 밝히지도 않는 관행을 정착시키자. 둘, 학벌 관념을 조장하는 언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해나가자. 셋, 학벌을 차별하는 기업들을 고발하자. 넷, 대학 특히 명문대의 학벌조장 행위를 집중 고발하자. 다섯, 고등학교의 반교육적 입시지도를 지속적으로 고발하자. 여섯, 고등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끌어내자. 일곱, 사교육 시장의 학벌 관념 조장행위에 제동을 걸자'가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