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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제1장 망명 음악가들- 떠난 자들의 삶과 음악 1. 독일 망명의 역사와 히틀러 파시즘의 돌연변이 2. 예술가들을 밖으로 내모는 '독일 사회 1933년' 3. 떠난자들의 삶- 창작자를 중심으로 4. 작품 세계의 변화 5. 망명과 음악의 변증법적 관계 제2장 나치 집단수용소의 음악가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1. 음악적 다다이스트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로 - 에르빈 슐호프 2. 운명적으로 살아남은 가수 - 에른스트 부슈 제3장 남은 자들 - 협력한 자들과 침묵한 자들 1. 협력한 자들 2. 침묵한 자들 3. 나치의 음악 정책에 동조 제4장 전후 독일 음악가의 과거 청산 1. 전후 독일 문화계의 상황 2. 전후 음악계의 상황 3. 독일 음악가의 과거 청산 4. 독일 과거 청산의 실상과 그 모순된 인상? 맺는 말 - 예술과 사회 주 더 읽어야할 자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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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이라는 말에는 타의적이고 강제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 의지로 자신의 국가를 떠나는 것을 망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 강제성에는 경제적인 측면보다 정치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 p.15 그런데 여기서 잠시 언급할 것은 서구 문명 내에서 음악은 국제적 언어이므로 어디를 가든 통용되리라는 일반적인 통념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음악도 언어처럼 음악 언어라고 칭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 p.45 지금까지의 단편적인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망명 음악가들은 음악적·양식적으로 또는 예술관에 따라 구분할 근거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대인이라는 한 개인이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혈통’이 대체로 망명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명 음악가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으라면 히틀러를 미워하고 히틀러의 패망을 바란다는 매우 포괄적이고 감정적인 이유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 p.84 만약 음악에 조금이라도 핏자국이나 생채기가 남아 있었다면, 나치에게 희생된 음악가들에 관해 이토록 오랫동안 무관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음악은 길다’ 혹은 ‘음악은 음악이다’라는 말이 옳음을 확인해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음악의 이중성도 볼 수 있어야 하리라. --- p.115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치의 베토벤이 독일인의 우월성과 정복자로서 승리를 상징하고 있었던 반면에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나 나치 반대자들에게도 베토벤의 음악은 ‘자유의 이상이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p.153 나치들은 재즈 음악가들 중 흑인이 많다는 사실에서 미국 재즈를 흑인과 동일시했다. 유대인뿐 아니라 흑인도 아리아인이 아닌 족속이므로 열등한 등급에 속했다.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흑인은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저주받은, 그리고 뇌가 없는 족속이라는 것이다. --- p.167 과거 청산이 과거의 일이 되지 못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학자와 예술가치고 ‘잘못된 세상에는 올바른 삶이 없다’(아도르노)는 인식 앞에서 자기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 p.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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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일까?
―음악의 자율성, 순수성은 가능한가 이 책은 “‘음악은 음악이다’라는 너무나도 단순명료한 명제가 실제로는 지배 권력의 의도를, 또 사회 구조와 연결된 끈들을 잘 숨겨주는 푸근한 은신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 음악가들이 처했던 환경과, 그들이 강요받은 혹은 앞장섰던 정치적 선택과 그들의 음악 행위와의 관련성을 되짚어보며 ‘만인은 형제’라고 선포하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합창 〈환희의 송가〉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침략전쟁과 팽창정책을 은폐하는 구실을 하였으며, 정치와는 무관하게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 했던 푸르트뱅글러는 비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다고 할지라도 나치 독일의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고, 카라얀은 나치당에 입당하여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나치 하에서 음악이 수행했던 기능과 그 효과는 음악의 향유와 음악 행위가 개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나치 치하 독일에서처럼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음악의 자율성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음악의 진정한 자율성은 사회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과 관련이 있으며, 낯선 시각과 비판의 칼날을 통해 사회와 역사에 책임 있는 의식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임을 이 책은 일깨우고 있다. 잘못된 세상에는 올바른 삶이 없다! ―독일에서 부쳐온 과거사 청산 문제 서구의 음악사 기술은 일반적으로 음악 양식이나 장르 혹은 개별 음악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렇게 기술된 음악사는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 음악사라기보다 음악만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록에 가까웠다. 망명 음악, 집단수용소의 음악, 나치 치하의 음악이라는 세 개의 퍼즐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서양 음악 문화의 그림을 맞추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은 나치즘이라는 광기와 야만에 강제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을 비춰낸다. 제1장에서는 망명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누가, 언제, 어디로 왜 떠났는지 뿐만 아니라 망명지에서의 삶과 망명 생활이 그들의 작품 세계에 미친 영향을 설명한다. 제2장에서는 집단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음악가들과 희생된 음악가들을 조명한다. 망명하지 않고 독일에 남은 음악가들 가운데 나치에 협력한 자들과 침묵한 자들을 구분해 설명하고 나치가 음악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함께 제시한다. 제4장에서는 앞의 내용을 갈무리하여 전후 독일 음악 문화를 설명한다. 당시 독일에서 희생된 자들과 떠난 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으며, 살아남은 자들의 ‘과거 청산’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맺는 말에서는 독일의 사례에 빗대어 우리 음악 문화의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룬다. 이와 같은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