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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1부 날개와 갈비뼈 2부 편지의 성 3부 앳의 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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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인터넷피아>의 프리랜서 기자인 나리는 어느 날 신문사 김 부장으로부터 프랑스 어느 성에서 열리는 편지 축제를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때마침 오랜 백수 생활에 지친 나리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친구 인경에게 가이드를 부탁하는 편지를 띄우고 비행기에 오른다.
인경의 부재와 성으로 기차 편을 잘못 탄 덕에 길을 잃은 나리는 폭우에 온몸이 젖어 가까스로 성에 당도한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우르공 성, 이곳은 해마다 ‘편지의 왕’을 뽑는 특이한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을 상속받을 후계자 자리를 놓고 각국 사람들이 모여들고, 성의 지하실, 딸기밭, 연못, 도서관, 비밀의 방을 오가며 참가자들은 연애편지를 둘러싼 기묘한 사랑과 거짓의 놀이를 시작한다. 유일한 동양인 여자로 주목받던 나리는 성에서 가장 많은 여성들이 선망하던 다니엘에게 뜻 모를 구애를 받는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갈 즈음 바람둥이 다니엘이 낭송한 ‘내 내밀한 사람에게’라는 연애편지 한 통으로 성 안이 발칵 뒤집히게 되고, 저마다 편지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믿는 여성들과 저마다 상속자가 될 거라고 믿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다니엘의 편지 한 통을 손에 넣기 위한 암투가 벌어진다. 급기야 우르공 성은 다니엘이 독살되는 황당한 살인사건에 말려들게 되고, 편지를 둘러싸고 다니엘을 죽인 범인을 밝히기 위한 수사가 진행된다. 다니엘과 편지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성을 떠나온 나리는 다니엘이 건네준 의문의 편지 한 통을 손에 들고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예기치 않게 편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각자 다른 이유로 편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편지가 <인터넷피아>의 김 부장 원혁의 손에 들어가면서 편지를 둘러싼 비밀의 또 다른 축이 밝혀진다. 비밀은 편지가 이미 17세기에 씌어졌다는 점, 편지를 공개한 사람은 누구나 불행한 생을 마감했다는 점, 그리고 지금 ‘성의 상속자 자리를 위해(카트린), 인문학의 보수파 후계자 자리를 위해(데로닉),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미래인간 ‘앳@’을 연구하는 뇌 전문가(들라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 편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우연히 우르공 성을 찾았다가 성의 여주인 카트린이 읽은 바로 그 편지 때문에 그녀를 사모하게 된 데로닉과 들라즈에게 그 편지는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을 넘어 묻어둔 감정을 자극하는 촉수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특히 그 시절 카트린을 열렬하게 사모했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자살을 통해 자신의 뇌를 인터넷으로 옮겨버린 들라즈에게 그 편지는 가상의 인터페이스에서 그의 정신에 화학작용을 일으켜 뇌를 활성화시키는 코드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편지를 통해 온전한 정신을 되찾게 된 들라즈의 뇌에 수많은 인터넷 네트워크가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진짜 편지를 손에 넣은 원혁은 인터페이스 안에 있는 들라즈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신을 위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들라즈에게 편지를 둘러싼 가짜 기억을 주입시키기 시작한다. 존재하는 인격은 기억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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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 편지가 문학 텍스트가 되기까지
작가의 고민은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숨 막히는 순간을 담은 연애편지가 감춰져야 할 은밀한 어떤 것으로 서랍 속에 박히고야 마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총 58통의 편지로 구성된 이 소설은 편지라는 수단, 특히나 연애편지라는 텍스트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주목한다. 청춘의 격정과 열정과 고통을 갈파하는 텍스트를 훔쳐보면서, 우리는 온갖 인간 군상이 드러내는 수많은 감정의 스펙트럼과 가치의 분출을 목도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편지에서 수신자와 발신자로 대리되는 단선적 관계는 결국 전 우주의 별처럼 무수히 많고 다양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일 대 일의 인간관계가 통합되어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듯, 소통하는 편지 한 통 한 통이 얽히고설켜 이야기의 잔가지를 뻗어나가면서 소설이라는 하나의 텍스트가 완성된다.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수천 개의 뉴런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생각과 행동, 감정과 기억의 통로 역할을 하듯이, 편지는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는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감정과 기억의 파편을 담고 보듬어 안으면서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보완한다. 활자와 디지털, 새로운 인간의 출현 소설의 모티브가 된 ‘편지’는 비단 펜으로 쓰는 고전적인 종이 편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초고속 무선통신이 활개를 치는 오늘날, 우리는 어느새 더 이상 종이와 펜을 활용하지 않고도 가상 인터페이스를 통해 더욱 손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서 ‘편지’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는, 인터페이스를 사이에 두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 제국에 편입되어 단자화된 현실을 말하는 또 다른 의미로 확장되었다. 라틴어 ad(아드)에서 기원하였으며, 오늘날 이메일 주소 언어로 널리 통용되는 ‘앳@’을 다음 세대의 미래인으로 설정함으로써 ‘인간을 정보의 실크로드 속에 편입시키는 새로운 신분제, 인터넷’의 무제한적 발전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도 곁들인다. 가상 네트워크 안에서 영원불멸을 꿈꾸는 신인류 ‘앳’은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는 동시에 진화의 토대가 된 ‘인간’의 기억을 지우고자 한다. 그리하여 전세계 정보 네트워크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정신들의 네트워크’로 변성되기를 꿈꾸면서, 인간은 존재와 기억을 위협받는다. ‘말의 힘’으로 생성되는 ‘기억’ ‘편지’라는 모티브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기억’이다. 프랑스 소설가 로브그리예의 작품이자 알랭 레네의 영화로 잘 알려진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를 소설 속에 끌어옴으로써 작가는 인간의 기억이 기억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갑자기 나타난 X라는 남자가 끈질기게 여자 A를 유혹하는 이 이야기는, 처음에 A가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서로 만났다고 주장하는 X의 말을 믿지 않다가 차츰 X의 ‘말’에 현혹되어 저절로 지난해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 재구성해내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즉 말에 의해 만들어지는 환상이 곧 현실이 되고, 인간은 이 상상력으로 곧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진실이건 거짓이건 주인공 A와 독자는 차츰 그 이야기에 ‘설득’되고, 거짓을 믿게 되고, 그러면서 그 이야기는 곧 현실이 된다. 작가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주인공이 말로 기억을 재구성하면서 상상현실에 갇히게 되는 것처럼, ‘내 내밀한 사람에게’라는 편지를 전해들은 모든 여성이 사랑의 열정에 갇히게 되는 방식을 말하고자 한다. 기억이 기억되는 방식은 불완전하고 언제나 조작 가능하다. 그리하여 작가는 주인공 나리가 프랑스에서 휘말린 기묘한 사건들, 우르공 성의 독살사건, 17세기 백작부인의 편지, 미래인간 ‘앳’을 둘러싼 황당한 사건의 연속에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그녀의 경험은, 그리고 그녀의 기억은 거짓일까 진실일까. ‘연서들의 실존을 위하여’ -작가 김다은이 말하는 연애편지와 문학 독일에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프랑스에는 라클로의『위험한 관계』, 영국에는 리차드슨의 『파멜라』등 세계적인 서간체 작품이 있다. 작가의 개인편지를 문학 장르로 인정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서간체 작품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근대와 현대에 걸쳐 작품 속에 편지가 삽입된 형태이거나, 고백체에 가까운 중단편에 머물러 있어 다음성적(多音聲的) 서간체 장편소설이 없다. 나는 소위 우리나라 최초의 서간체 장편소설을 쓰는 데 몰두했다. ‘한 바람둥이 남자가 낭송한 가짜 연애편지에 수많은 여성들이 가슴을 다치고, 결국 그 편지 때문에 일어나는 기묘한 독살사건’에 얽힌 플롯을 수십 편의 편지로 엮어가기 시작했다. 17세기와 21세기의 시간적 경계와 한국과 프랑스라는 공간적 경계를 가로지르며, 나는 자유 분망한 내 세상의 건축에 힘을 쏟아 부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1억 원의 고료의 제3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소설가 김다은은 늘 잘된 서간체 장편소설을 쓰고자 했다. “유럽은 작가의 생전에도 연애편지를 적극 공개한다. 작가의 개인편지를 문학의 장르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문학의 백미로 여기기도 한다”고 말하는 작가 김다은은 “서랍 속에 죄처럼 움츠려 있는 연애편지가 서랍을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기쁨”을 맛보고자 이 소설을 구상했다. 58편의 편지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얽히고 설켜 한 편의 연애소설로 완성된 이 소설은 작가 김다은이 ‘연애편지의 문학성’을 두고 세상을 설득시키는 작업이다. 작가는 말한다. “생의 가장 황홀하고 찬란했던 순간을 저버릴 순 없지 않은가! 연서들의 실존을 위하여! 그렇게 마음을 먹자, 머리와 손가락들이 치열한 전쟁을 맞을 준비를 하기 시작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