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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친절한 얼굴로 대답해 올지라도 _ 홍민기 누가 지식과 지능을 갖는가 _ 박지니 모두가 디지털 틀니를 끼운다 _ 도우리 유령의 요령 _ 이다솜 0도 1도 될 수 있는 _ 전유진 이상하고 낯설고 침범하며 스며드는 새로운 _ 김예슬 주석들 _ 문지호 김양에게 _ 배채연 그 누구도 뒤에 남겨두고 가지 않을 것이다 _ 김화용 알고리즘은 노동을 모방한다 _ 고아침 부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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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신속하게 노동자의 힘들고 지루하며 위험한 업무를 대신 처리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공동의 번영을 위해서 단축된 노동 생산 시간이 노동자에게 온전히 돌아갈 것인가. 김 부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나. AI가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그 시간을 내 삶과 일상을 지키는 데 쓸 수 없고, 즐길 수 없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 p.28 만약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들이 자원과 사람 사이를 기술 부진이나 관료주의적 비효율 같은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어 생긴 것이고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재분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용자 편의성'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을 혁신일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기존의 어떤 '자원'을 신속 배달해 주는 것, 개개인의 상태를 교정하고 그를 교육시키는 것으로는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애초에 전혀 새로운 전제 아래서 헬스케어와 기술의 교착을 구상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 p.59 나는 벙쪘다, 총 세 번. 먼저 나도 공공장소에서 폰트 크기를 최대치로 설정한 중장년층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글씨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것, 그런데 엄마와 같은 중장년들은 그런 시선들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엄마는 시각적 불편을 감수하기를 선택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폰트 크기에 연루된 기술 감정, 기술-수치심을 처음 인지했다. --- p.65 섹슈얼리티라는 건 인간에게 너무 끈끈하게 붙어있는 모양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목장갑 위로 나사가 흐르고 있고, 자그마한 부속의 ‘암놈’과 ‘수놈’마다 진지하게 넌더리를 내기에는 모두가 너무 바빠 보입니다. 오래전 여기저기 암수를 부여했을 어느 조상님도 후손이 질색하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안 퀴어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 인류의 관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p.82 나는 컴퓨터 속 0과 1 사이를 오가며 전기적 모드를 전환하는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상상한다. 반도체로 만들어진 이 전환의 귀재가 수행하는 논바이너리한 움직임을 떠올린다. --- p.103 좋은 디자인이라 불리는 것은 특정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최적화를 수반하고 새로움은 이 과정에 끊임없는 관심을 유도하는 강력한 촉진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 동원되는 사용자로서 우리의 인지와 행위는 누구의 목적과 궤를 같이하는가? 지금의 디자인은 어떤 ‘새로움’에 부역하고 있는가? 이 새로움을 운행하는 연료는 무엇인가? 그 새로움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엔진을 견인하는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 p.111 물론 감정을 읽는 기술과 기술을 읽는 감정은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전문화되는가와 어떤 감정이 정당화되는가 하는 질문 사이에 유사한 상상이, 유사한 표준이, 유사한 신체가, 유사한 언어가 놓여있는 것을 나는 자주 목격한다. 어떤 기술이 전문화되는가? 어떤 감정이 정당화되는가? 어떤 감정이 전문화되는가? 어떤 기술이 정당화되는가? 이 긴 여담은 이러한 질문들이 상상적으로 용인될 장소들, 주석이 되지 못하는 주석들일지도 모르겠다. --- p.148 그날 저의 두려움을 채점하지 못한 폴리그래프가 탐지한다는 두려움이란 무엇일까요? 폴리그래프 검사를 위해서 피검사자는 적당한 조건에서 적당한 불안을 적당한 시점에 느껴야 합니다. 저의 경우 불안의 크기도 그 시점도 적당하지 않았던 거예요. 검사관은 그 적당함을 조율하는 데에 능숙해지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이렇게 폴리그래프 기술은 장비 혼자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관과 피검사자의 사이를 장비가 매개하면서 채점 가능한 정동을 생산하는 기술입니다. --- p.163 절멸의 세계는 정해진 미래다. 하지만 이 상황을 냉소적이거나 허무하게, 혹은 감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으로 전제하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는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멸종의 마지막 문을 가장 취약한 자들이 닫고 나오는 미래를 그리려는 것이다. 이미 멸종의 문턱을 수없이 오갔을 가창오리, 저어새, 수라갯벌의 생명들, 불구, 그리고 가장 바깥의 존재들이 그 문이 닫힐 때 가까스로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는 미래를 위해 어떤 저항을 해야 할까. --- p.196 Pasquinelli는 수학적 성취의 연속으로 묘사되는 기술 결정론적인 AI의 역사를 배격한다. ‘지능’을 자처하며 실제로는 불평등, 젠더·인종 편향, 새로운 지식 추출주의를 강화하는 알고리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비판적 AI 연구의 연장선에 이 책을 놓는다. ---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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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텍톡』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기술을 비평해 온 동명의 기술비평 zine 프로젝트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결과물입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총 여섯 호로 발간된 zine 펨텍톡은 AI, 헬스테크, 접근성, 퀴어니스, 디자인, 디자인, 노동 등 동시대 기술 담론을 비판적으로 짚으며, 매호 300부씩 무료로 배포되었습니다.
단행본에는 zine의 각 호를 대표하는 ‘기획 글’ 여섯 편을 중심으로, 일부 기술 에세이와 리뷰를 선별 수록했습니다. 기획 글은 매호 주제에 맞춰 국내 저자에게 직접 의뢰한 글로, 오늘날 기술이 사회의 위계와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밀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여섯 가지 주제를 가르키지만,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유기적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펨텍톡』은 기술 비평을 어렵고 무거운 담론이 아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언어와 형식으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손에 쥐는 순간부터 부담스럽지 않기를 바랐던 zine의 태도는 책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zine을 접하지 않았던 독자에게는 동시대 기술을 가로지르는 생생한 비평의 흐름을, 기존 독자에게는 프로젝트의 궤적을 한눈에 되짚는 단단한 기록을 제공할 것입니다. 가볍게 펼쳐 들었다가 오래 남는 질문을 안고 덮게 되는 책. 『펨텍톡』은 기술을 둘러싼 세계를 다른 감각으로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한 책입니다. 이런 독자에게 권합니다 AI와 신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막연한 불안 사이에서 다른 관점을 찾는 독자 기술과 젠더,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 있는 연구자와 학생 기술을 매체로 작업하는 예술가, 디자이너, 개발자 기술 교육과 기술 문화의 다양성을 고민하는 교육자와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