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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을 찾는 자들
2. 역사의 진상 3. 행복을 찾아서 4. 영생, 자유, 평등, 형제애 5. 유토피아의 미래 6. 형제애, 윈윈 시츄에이션 7. 지금 당장 시작하라 |
Jacques Att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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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인간을 사로잡으면,
이성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따라와 위험을 예고한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의 목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그래 맞아. 내가 미쳤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열정이 그에게 소리친다. 그러면 난, 나는 죽으란 말이냐고. 알프레드 드 뮈세,'어떤 세기적인 아이의 고백' 중에서 --- p.9 프롤로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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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이 커지면 연대의 기구들은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사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두 개의 집단적인 결정과정이며 그 결정의 결과는 잠재적으로 대립한다. 시장에 따르면, 사회의 최적 상태는 구성원 각자가 이기주의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때 도달된다. 민주주의에 따르면, 소수가 다수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집단적인 상황이 이상적으로 된다. 다시 말하면, 시장은 가난한 다수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데에 반해서, 민주주의는 부유한 소수집단에 이익을 준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제대로 작용할 때는, 어떤 결정으로 불이익을 당한 소수집단은 다수집단의 일부를 자기들 의견에 가담시켜 차후의 집단적인 의사결정에서 승리를 거두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 pp. 5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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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들이 비틀거리는 세계에서 유토피아는 더 이상 공개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와 시장 경제의 극대화는 결코 인간들에게 살가운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시장 경제는 민주주의의 시작을 부추겼지만, 시장 경제가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순간,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신경제와 세계화는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경쟁력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한계, 우리의 결함에 맞닥뜨리면서 그것들을 극복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세계와 지금 이렇게 전개되는 역사로 만족해야 하는가? 형제애가 넘치는 사회,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해 너그러운 사회가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모든 질문은 결국 자크 이탈리의 말처럼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가 다시 우리 운명의 주인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창안해야 한다.『합리적인 미치광이』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합리적인 미치광이』는 우리의 상상력에 활기를 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읽어야 할 책이다. 프롤로그와 1,2장에서는 시장의 극대화가 갖고 올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장이 민주주의를 부추겼지만, 결국은 시장의 독재가 전제군준의 독재를 이어갈 것이며 최첨단 과학의 재앙과 혁명세력의 씨앗을 잉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은 시장의 지원을 받으면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예상하게 해준다. 식량난의 완전한 해소, 사막 지역의 식림, 인류의 신체적,윤리적 변화 따위가 현실화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마침내 품귀나 결핍이 종말을 고하게 되리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향을 놓고 보면, 이러한 변화나 잠재력이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오늘날 부국들의 평균 소득은 빈국들의 평균 소득보다 72배나 높다. 19세기 초에는 3배밖에 되지 않았었다. 세계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장의 지속적인 지배, 빈곤층의 급격한 증대, 폭력과 전쟁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아탈리는 민주주의건 시장의 법칙이건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고, 21세기에 벌어질 전쟁을 여섯 가지의 유형으로 정리하고 있다. -세 가지는 가난한 자들끼리의 전쟁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사이의 전쟁이다. 3,4장에서는 지금 이대로의 세계와 이런 식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꿈꾸게 되는 '유토피아'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아탈리는 유토피아의 절실한 필요성과 유토피아적 담론이 세계 역사에 기여한 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는 인류의 모든 위대한 진보는 유토피아가 현실화된 덕분이라는 앙드레 지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아탈리는 역사에 출현했던 모든 유토피아를 네 개의 큰 범주, 즉 영생, 자유, 평등, 형제애로 묶는 분류법을 제시하면서, 각 범주의 유토피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 세 범주의 유토피아들은 상호 대립적이라서 다른 것들의 잔해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 영생의 유토피아는 자유의 유토피아를 희생시키고, 자유의 유토피아는 평등의 유토피아를 희생시키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영생의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유토피아이며 나머지 둘은 세속적이다. 5,6,7장에서는 형제애의 이데올로기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면서, 영생, 자유, 평등의 유토피아를 양립가능하게 하는 형제애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물론 형제애는 자발성과는 매우 거리가 먼 도덕절 범주이다. 아탈리도 "형제애는 자연 상태가 아니라 문명이 도달해야 할 하나의 목표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타인의 행복에서 기쁨을 얻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타인의 행복을 증대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복을 증대시킨다는 것, 곧 타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아탈리가 말하는 형제애 유토피아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고, 이 두 모순되는 말이 양립가능하기만 하다면 시장 자유주의의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는 <세계 속의 프랑스인> 1999년 11~12월호에 실린 인터뷰기사로 프랑수아즈 플로캥이 대담하고, 세바스티앵 랑쥬뱅이 정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