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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그때 그 사람에 대한 기억
1부 소외와 상처는 마음 깊은 곳에 1. 자든지 먹든지 나를 놔두게: 양송당 김지(養松堂 金禔, 1524-1593) 2. 다리를 건너는 화가: 이흥효(李興孝, 1537-1593) 3. 낭창거리다가 붓을 적시다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 2부 누가 뭐래도 나의 색깔대로 4. 왕족의 품격: 학림정 이경윤(鶴林正 李慶胤, 1545-1611) 5. 끊어진 팔로 잡은 붓: 석양정 이정(石陽正 李霆, 1554-1626) 6. 붓이 움직이는 대로: 창강 조속(滄江 趙涑, 1595-1668) 7. 북쪽 창가의 선비: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 1712-1786?) 3부 좋은 친구가 나를 살리네 8. 그들만의 숲: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 9. 송별하는 친구들: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1686-1761) 10. 헐렁하게 놀다가 매섭게 날아오르는: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1843-1897) 4부 지금 여기에 있다 11. 먹빛이 쌓인 시간: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부록: 정선의 시선으로 본 금강산 12. 우리는 만났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이후) 5부 본능적으로 통하는 이야기 13. 흩어진 넋을 위하여: 연담 김명국(蓮潭 金明國, ?-1663 이후) 14. 젓대 소리 바람 소리: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1813 이후) 15.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화재 변상벽(和齋 卞相璧, 1726?-1775) 16. 물에 사는 목숨들: 옥산 장한종(玉山 張漢宗, 1768-1815) 부록: 장한종의 시선으로 본 바닷속 생물 참고문헌 도판목록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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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한쪽에 쓴 발문이나 제시나 관지에서 화가의 빛나는 눈빛을 보았고 진한 목소리를 들었다. 문장의 해석에는 다른 학자와 연구자들의 도움이 컸지만 글씨가 품은 이야기는 나의 눈과 귀에 오롯이 보이고 들렸던 내용이다. 또 그림에 투영된 삶의 부분이 언제 어떤 형편이었는지 찾아보는 일은 화가와 마주 앉아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결국 그림이 내게 하는 말은 명언이 되었고 아름다운 아포리즘이 되는 경험이었다.
--- p.9-10, 머리말 〈동자견려도〉에는 소년과 나귀가 등장한다. 가까운 들판의 풍경을 그렸는데 제목을 해석하면 ‘동자가 나귀를 끌어당기는 그림’이다. 그렇다면 동자는 왜 나귀를 끌어당기고 있으며 나귀는 왜 저리도 버티는 것일까. 미술사 연구자들은 〈동자견려도〉의 주제를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나는 기려(騎驢)에 뜻을 두기도 하고 소를 찾아가는 심우의 수행으로 보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반항의 정신이 투영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소년의 모습에서는 나귀를 끌어내야만 하는 애타는 심정이 읽힌다. 과연 저 소년은 나귀를 끌어내 다리를 건너게 했을까. 가고 싶지 않은 나귀의 마음과 데려가야만 하는 소년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묘사되었다. --- p.19~21, 양송당 김지 “저들이 그윽한 숲에 깃들어 / 남쪽 가지에 제 자리를 얻었네 / 하물며 마음을 가진 사람이 / 새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유림서조도〉는 윤두서가 그린 그림에 이잠이 제시를 썼고 이어서 이서와 윤두서가 화답시를 쓴 부채 그림이다. ‘유림서조’란 그윽한 숲에 새가 깃들었다는 뜻이다. 제시를 썼던 이잠과 이서는 성호 이익의 형이다. 이익은 부친 이하진의 유배지였던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부친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자 모친을 따라 경기도 안산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안산 지방은 근기남인의 중심이자 성호학파의 근거지가 되었다. 대표적인 남인이었던 해남 윤씨 윤두서는 여주 이씨 형제들과 교유하면서 새로운 학문을 익히고 문예를 나누며 정치적으로 소외된 시절을 견뎠다. --- p.127, 공재 윤두서 윤두서에게 해남은 그윽한 숲이었다. 해남은 한평생 열중했던 천문, 지리, 수학, 의학 등 새로운 학문을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었던 기회의 땅이었지 않은가. 그러다가 … 쓸쓸한 시간 속에 홀로 있으면 슬쩍 곁에 와서 함께하는 친구, 그들이 한평생 힘이 되어주었고 윤두서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도와준 벗이었다. 윤두서는 좋은 친구들과 그윽한 숲을 찾아 함께 숲을 이루었다. 윤두서는 떠났어도 그들이 이룬 숲은 3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늑하고 짙푸르다. --- p.145, 공재 윤두서 장승업은 헌종 9년인 1843년에 태어나 청소년기는 철종의 시대를 살았고 스무 살 이후에는 고종의 시대를 살았다. … 장지연의 『일사유사』에 고종이 불러들여 병풍을 그리게 했던 일화가 나온다. 장승업이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하더라도 감히 임금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궁궐에서는 마음대로 술을 주지 말 것이며 주더라도 하루에 두세 잔만 마시게 했다. 장승업은 열흘이 지나자 술이 생각나서 도망하려 했지만 경계가 심해서 결행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밤에 물감과 도구가 필요하다고 속이고 궁을 빠져나갔다. … 고종이 그 소식을 듣고 다시 잡아오게 하였고 장승업을 지키는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나 또다시 군졸의 옷을 몰래 훔쳐 입고 도망쳤다가 결국은 포도청에 갇힐 운명에 처했다. 어쩔 수 없이 민영환이 고종에게 아뢰어 차라리 자신의 집에 두고 그림을 그리게 하면 어떻겠냐고 설득하여 장승업을 데리고 나왔다. … 처음에는 스스로 조심하면서 화선지를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민영환의 집에서도 도망치고 말았다. 민영환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장승업을 찾아 데리고 왔지만 고종이 계획했던 그림 제작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 p.177~178, 오원 장승업 “이전 사람들이 미처 못 했으니 /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 - 혜원”(〈전모를 쓴 여인〉) 신윤복은 이전의 화가들이 차마 그리지 못했지만 자신이 기생의 모습을 그린 일에 스스로 흡족해하며 기이한 일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신윤복의 기녀 그림은 우리 미술사에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아무도 하지 않은, 하지 못했던 기녀들의 사생활을 드러내 보여준 신윤복의 붓질은 닫힌 성리학 사회를 향한 도전이며 용기였을 것이다. 그림 속 관지의 내용은 근엄했던 조선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차마 드러낼 수 없었던 인간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신윤복이 자기 자신을 은근하게 다독이는 심정으로 읽힌다. --- p.267-268, 혜원 신윤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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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말이 없지만, 글이 전해준다
관지·제시·발문을 따라 읽는 화가의 삶 옛 그림에는 간혹 글이 남아 있다. 하지만 한눈에 뜻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떤 화가는 그림 한쪽에 자신이 언제 어디에서 이 작품을 그렸는지를 적었고, 화가의 친구가 그림을 감상한 후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림을 소장한 사람이 감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림 속 글을 이해하면 그림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이 책은 작품의 부수적인 요소로 지나치기 쉬웠던 이 글에 주목한다. 관지와 제시, 발문을 읽으면 그림만 보았을 때는 알기 어려웠던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쟁을 피해 피난을 떠난 이흥효는 병중에도 붓을 놓지 않았고, 역적의 후손이라는 굴레를 짊어졌던 심사정은 하늘이 내린 붓 솜씨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평생 대나무를 그렸던 이정은 전쟁에서 팔이 거의 잘릴 뻔한 뒤 더 아름다운 대나무 그림을 남겼다. 따라서 이 책의 중심은 화가의 삶이다. 무엇을 그렸는가와 함께 왜 그 그림을 그렸는지, 그때 그는 어디에 있었고 누구를 만났는지, 그림에 남긴 몇 줄의 문장은 그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소개한다. 옛 그림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농담하고, 그리워하고, 함께 웃었던 사람들 옛 그림 속 글에서 만나는 조선 화가들의 인간적인 일상 옛 그림에 남은 글이라 해서 모두 근엄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교과서 속 이름으로만 기억했던 화가도 친구와 술을 마시고, 농담을 나누고,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살아간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림을 앞에 두고 장난스러운 말을 주고받았고, 함께한 날의 풍경과 감정을 오래 기억해두기도 했다. 1763년 봄의 모임을 그린 〈균와아집도〉에는 당대 화가와 문인들이 어울려 보내던 한때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강세황은 거문고를 타고, 최북은 바둑을 두며, 젊은 김홍도는 퉁소를 불었다. 심사정은 담뱃대를 문 채 앉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그림의 주인공인 동시에 그림을 함께 그렸다는 점이다. 김홍도는 인물을 그리고 심사정이 소나무와 바위를, 강세황은 전체 구도를 맡았으며 최북이 색을 칠했다. 그날 누가 무엇을 했고 어느 부분을 그렸는지까지 그림에 남아 있어 그날의 모임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심사정의 〈와룡암소집도〉에는 여름날의 우정이 남아 있다. 1744년 여름, 김광수의 와룡암에 사람들이 모여 서화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잠시 뒤 비가 그치고 정원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았는데, 심사정이 급하게 종이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함께 있던 김광국은 수십 년 뒤 그 그림을 우연히 다시 만나고, 이미 세상을 떠난 두 사람과 젊었던 자신의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남겼다. 한 점의 그림 안에 여름날의 빗소리와 세 사람의 우정,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마음까지 남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그림 한쪽에 남은 몇 줄의 글에는 작품에 대한 감상뿐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와 사람들 사이의 정, 사소한 취향과 일상의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따라서 옛 그림 속 글을 따라가다 보면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의 화가들이 한층 친근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미술사학자의 시선과 시인의 마음으로 오래된 그림 속 사람의 목소리를 듣다 저자에게 옛 그림은 연구 대상이자 오래 귀 기울여야 할 한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림을 면밀히 해설하는 미술사학자의 시선과 그림 속 작은 장면에도 오래 머무는 시인의 마음이 스며 있다. 그림에 대한 설명과 그림 속 글의 해석뿐만 아니라 실록과 문집 같은 당대의 문헌을 토대로 화가의 생애를 꼼꼼히 짚으면서도 그림 속 인물의 뒷모습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에서 화가의 마음을 읽어낸다. 무엇보다 저자는 과거의 화가를 역사적 인물로만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상처받고 실패하며 친구와 정을 나누고 자기답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던 한 인간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수백 년 전 그림에 남겨진 말은 어느 순간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