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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침묵을 향하여
제2악장|레오의 세계 제3악장|각자의 방 보너스 트랙 |
Pier Vittorio Tond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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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는, 혹은 적어도 지상에서 그 이름을 가졌고 그에게나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그 이름으로 귀결되던 모든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죽었다. 벌써 2년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그리고 외로워지면 외로워질수록 점점 더 달라진다.
--- p.12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라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속도를 높일 수도, 피할 수도, 이끌 수도 없다. 사랑은 완전하고 충만하다. 그래서 레오는 사랑이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사랑이 다시 그 얼굴을 드러내게 될 사건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토마스의 후끈한 몸 옆에 누워 있는 지금 이 순간, 다시 찾아와 자신의 인생을 어루만지고 있는 사랑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 --- p.37 레오는 자신의 삶 전체가 생사가 달린 중요한 사건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듯 느낀다. 마치 평생 이 사회의 분리된 구역에서 살아온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의 불행이나 행복, 방황,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 것 같았다. 이제 공연은 끝났다. --- p.45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마치 한 번도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던 것처럼 느껴졌다. 부모도, 자식도 없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그를 붙잡아 줄 사람도 없고,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나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홀로 별들의 속도로 길을 잃은 채 창공의 어둠 속으로 점점 더 멀리 날아갔다. 영원히. 레오는 더 빨리 달려 길을 벗어나 들판을 가로질렀다. 피로도 느끼지 않았고, 자신의 심장 고동도, 이를 얼어붙게 하는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추위도 더위도, 선과 악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너무 심연까지 멀리 떨어져 있었다. --- p.56 그는 수백만의 삶을 동시에 살다가 점점 더 하나의 삶을 살게 되었다.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오랜 시간 동안, 혹은 수 세기, 심지어 몇 시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 환상들을 멈추게 하려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에 자신을 맡겼다. 그것은 고뇌였다. --- p.60 사실 그는 도망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은 전혀 없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나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다. --- p.79 정말 원한 것이 아닌데, 계속 살고 있다. 토마스 없이 살아가고 있다. 토마스 없는 레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레오도 죽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의 끝자락에 충실히 당도한 타인 안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이상 안에서 죽어 버렸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살아가야 할 운명이고, 이로 인해 ‘레오와 토마스’라고 불리던 그 조화로운 합체를 하루하루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합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05 토마스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관계가 설정되었다. 두 사람과 나눈 사랑의 수준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고통과 마찬가지로 커지거나 줄어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마스와의 사랑은 관점이 달랐다. 레오는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것’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랑을 ‘각자의 방’이라 불렀다. 레오는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예상하고 토마스와의 만남을 가졌다. 이별은 둘의 관계를 구성하는 힘이었고, 끌림과 성장, 성적 욕구에 대한 개념과 같은 그들 관계의 일부분이었다. 그것은 버림받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자각이었다. --- p.117 사실 그는 항상 혼자였기에 혼자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밤을 어떻게 보내든 그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토마스를 잃은 후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외로웠다. 왜냐하면 토마스의 상실 속에서, 대학에 가기 위해 시골길을 달리던 시절, 길고 고독했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던 그 무언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 p.160 레오는 고독에 대한 자신의 욕구가 자신을 쇠약하게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욕구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조화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계속해서 관대하고, 도움이 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싶어 한다. 고독은 실제로 그를 변화시키고 있다. --- p.167 레오의 머릿속에는 어느 순간 같은 기차에서 내린 두 여행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떤 우연으로 인해, 같은 방향으로 매우 천천히 나아가는 나란한 두 대의 기차에 각각 올라탔는데, 갑자기 선로가 갈라지기 시작하며 하나는 왼쪽으로,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꺾이는 모습이었다. 두 열차는 어떻게 보면 함께 달리는 듯했지만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갑자기 두 열차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 생겼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홀로 가게 되었고, 상대편 열차의 마지막 객차들이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기차의 속도는 갈수록 더 빨라진다. 아무도 내릴 수 없고, 아무도 되돌아갈 수 없다. 불현듯 레오는 이런 생각을 했다. ‘끝났구나.’ --- p.208~209 토마스가 자신의 부재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제3자는 레오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에 대한 생각이 토마스와 같은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 제3자는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토마스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행복했고 미래를 기대했지만, 레오와 함께 있을 때는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고통스럽고, 무엇보다 너무 큰 아픔을 견뎌야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레오가 유일한 남자라는 사실을 몰라준다는 것이 토마스를 더욱 괴롭게 했다. --- p.216 레오는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는 접근 불가능한 영역에 가두고, 고독 속에서 한 방울씩 증류해 온 것이 결국 슬픔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사회적 표현과 공동체 참여(그것이 비록 친구들과의 교류뿐일지라도)를 스스로 박탈하여, 두려움과 수동적인 고통의 영역에 가두었다. 고통을 공유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동료를 잃은 슬픔과 같은 공개적인 감정 표현이 지닌 정화의 가치도 스스로 박탈했다. --- p.227~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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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더 가디언』이 찬탄한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이 남긴 모던 클래식 1989년 첫 출간 이후 한 세대를 뛰어넘은 지금, 청춘의 아이콘 톤델리가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남긴 가장 완숙한 사랑의 기록, 그 고결한 작별 인사를 다시 만나다 『각자의 방』은 성공한 작가 레오와 그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독일인 음악가 토마스의 이야기다. 2,000킬로미터라는 물리적 거리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방’에서 자신들만의 고독을 지키며 살아간 두 영혼의 눈부시면서도 비극적인 평행선을 담아낸다. 소설은 레오의 회상과 현재를 유려하게 넘나든다. 파리와 뮌헨, 런던과 미국을 방랑하며 토마스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반추하는 고통스러운 애도의 여정을 담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고향의 부모님, 즉 ‘존재의 기원’과 끝내 속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세계인 ‘실존적 성숙’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이렇듯 작가가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마음의 빗장을 열어 보이기 위해 차가운 메스를 들이대듯 써 내려간 이 소설은, 절대적인 사랑을 잃고 허무의 심연을 맴돌던 한 인간이 고독을 피할 수 없는 형벌이 아닌,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집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정교한 모자이크처럼 그려 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더욱 높게 평가받으며 이탈리아 현대 문학의 정점이자 ‘절대적 고독’을 다룬 모던 클래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토마스의 상실은 레오를 저 멀리, 자기 자신을 향해 데려가고 있다. 토마스가 죽어 그의 내면에서만 맥박이 뛰고 살아 있는 존재가 된 지금,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고뇌는 자기 고독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알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3월의 어느 바람 부는 날, 레오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20년간 살았던 집으로, 부모님이 잠들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그 지붕 아래로 돌아가기로 한다. -본문 중에서 1980년대 말, 이탈리아 문학계의 청춘을 상징했던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가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내놓은, 그의 문학적 정수를 담아낸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남자의 연애사를 넘어, 현대인이 마주한 ‘절대적 고독’과 ‘실존적 성숙’에 대한 가장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탐구다. 데뷔작에서 보여 준 거칠고 파괴적인 언어로 일찍이 시대를 뒤흔들었던 작가는, 치열한 삶의 담금질을 겪어 낸 뒤 마침내 이 마지막 소설에 이르러 이전의 파편화된 언어들을 버리고 마치 당김음처럼 분절되면서도 우아한 리듬을 지닌 작가만의 고전적인 문체를 완성해 낸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 레오의 시선을 통해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비가시성과 사투를 벌이며, 잃어버린 ‘절대자’를 향한 고통스러운 애도의 여정을 더욱 처절하고 진솔하게 그려 냄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다시 한번 넘어섰다. “우리에게 느낌이란 곧 사라짐이다.” -『두이노의 비가』 중에서 사랑하는 연인 토마스의 죽음 이후, 주인공 레오가 마주한 것은 견딜 수 없는 부재의 공허함이다. 그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끝까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특히 서베를린에 살던 토마스가 수잔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을 때 레오가 느꼈던 치명적인 질투와 배신감, 그리고 토마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뮌헨에서 비극적인 임종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은 레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고, 이는 작가가 치밀하게 직조한 긴 회상을 통해 독자의 내면에도 깊이 파고든다. 토마스와의 관계에서 레오가 고집했던 ‘각자의 방’은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서로에게 온전히 소속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원할 때 만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각자의 고독 속에 스스로를 격리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절대적인 하나의 존재가 사라졌을 때, 레오는 한 사람이 아닌 그의 모든 세상이 사라진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작가는 레오의 성찰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공허함이 다시 미래를 향한 기다림의 신호가 될 수 있음을 묵묵히 증명한다. 레오는 이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미는 토마스의 육체에, 그가 내주는 숨 가쁜 고요 속에, 드디어 타인의 세상에 받아들여지게 된 기쁨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본문 중에서 레오에게 고독은 사회적 소외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역사를 자각하게 만드는 창조적인 상태다. 이 과정은 흡사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십자가의 길’과도 같으며, 작가는 이 비극적인 순례를 통해 글쓰기가 어떻게 인간의 존재를 스스로 정당화하는지를 보여 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단어들을 언어로 빚어내 또 다른 자아를 구축하고, 그렇게 생명을 얻은 자신의 모든 존재를 텍스트 속에 온전히 옮겨 놓음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 숭고한 헌신은 단순한 나르시시즘을 넘어, 타인의 고독에 깊이 파고들어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독자에게 고하는 고해성사와도 같다. 그의 고독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하거나 깊이 파고들었던 그 어떤 고독과도 다르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죽었다는 것을,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잃어버린 것은 연인의 죽음 앞에서, 수십 년 동안 문제투성이였던, 양면적인 희망과 꿈의 내면적 석회화를 산산이 조각낼 수 있었던 유일한 것,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미 죽었다는 두려움 앞에서였다. -본문 중에서 실제로 작가는 우연히 기내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침묵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의 숫자가 아닌, 객관적 현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한 인간이 마주한 실존적 표류의 시작이었다. 군중 속에서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얼마나 외롭고도 쓸쓸한 것일까. 하지만 작가는 우리 모두가 생의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홀로 그 심연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작가 자신을 레오라는 인물에 투영하여 탄생시킨 고독의 순례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된다. 진정한 성숙이란 고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독을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어쩌면 문학이란 긴 애도의 과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거울 속의 고독〉, 잔니 데 마르티노와의 대화 중에서 리초네-아테르 연극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현대 문학의 거장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가 생의 끝자락에서 남긴 『각자의 방』. 함께하지 않기에 영원한 사랑, 그 눈부신 고독의 서사시는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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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우울의 무게 속에서도, 톤델리의 서정성은 우리가 ‘예술’이라 부르는 그 또 다른 현실과의 접점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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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타인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비극적 진실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수용했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남긴 유서와도 같다.” - 더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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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은 사랑과 죽음, 향수와 성숙, 무력과 숭고가 교차하는 경이롭고도 눈부신 소설이며, 작품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위기와 그 비밀스러운 이유를 마주하게 된다.” - 체사레 데 미켈리스 (일 가체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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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늘어나는 톤델리를 아끼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거의 성서와도 같다.” - 북차크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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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는 상실이라는 얼어붙은 풍경 위로 눈부시게 아름답고도 정교한 지도를 그려 냈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이 자신의 고독을 어떻게 건축해 나가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그의 문장은 너무나 투명해서 그 밑에 흐르는 거대한 슬픔의 깊이가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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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의 문체는 대단히 육체적이면서도 동시에 고도로 지적이다. 그는 ‘각자의 방’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랑을 잠식하는 일상으로부터 그 관계를 보존하려 했다. 이 책은 웅장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담은 걸작이다.” - 에드먼드 화이트 (뉴욕 타임스 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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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의 절제되고 우아한 산문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고독에 대한 세련된 성찰을 보여 준다. 주인공 레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독자의 가슴을 저미게 하며, 현대 이탈리아 문학이 도달한 가장 높은 지점 중 하나를 확인시켜 준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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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탈리아의 떠들썩한 목소리를 대변하던 톤델리가 이토록 엄격하고 고전적인 침묵으로 돌아온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각자의 방》은 한 세대의 종언을 고하는 가장 결정적인 소설이며, 유럽 현대 문학이 도달한 고결한 성취다.” - 로버트 어윈 (더 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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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고통을 직시하는 정직하고도 서늘한 시선. 톤델리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독자를 가장 깊은 감정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우아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이 작품은 그를 20세기 거장들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하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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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의 전환기를 증명하는 최고작. 위태로움 속에서 마주한 자기 발견과 성찰, 그리고 삶의 계시로서의 사랑.” - 오레스테 델 부오노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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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는 ‘각자의 방’이라는 은유를 통해 현대적 사랑의 역설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그는 유럽 문학의 전통적인 애가(Elegy)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그가 남긴 가장 빛나는 문학적 유산이다.”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T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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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별한 소리와 색채를 지니고 있다. 만가의 소리와 색채, 영혼을 침식하는 듯한 부식적인 우울함의 소리와 색채를 지니고 있다.” - 엔조 시칠리아노 (코리에레 델라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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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은 말 그대로 동거 없는 사랑, 온전함 없는 사랑, 즉 ‘소유가 아닌 지속성과 소속감의 관계’를 의미한다.” - 제노 팜팔로니 (일 조르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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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는 이 소설, 《각자의 방》을 통해 자신의 최고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동성애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가식 없이, 그렇다고 자기만족에 빠지지도 않고 풀어낸다.” - 루카 카날리 (파에세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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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용감한 책이다. 자기 영혼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가차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용기, 이야기 속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놓고 황폐하고 지친 육체처럼 지면을 내주는 용기가 담겨 있다.” - 제네로소 피코네 (일 마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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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은 지나치게 정중하고 고전적인 문체를 구사하며, 단어보다는 리듬에, 사실보다는 감정에 우선순위를 둔다." - 주세페 보누라 (일 세콜로 X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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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은 한때 방탕아였던 작가가 이제 서사 조율에 능숙해짐에 따라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 파올로 마우리 (라 레푸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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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는 분명 우리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재능은 서사 그 자체에 있다.” - 잔니 투르케타 (루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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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의 이 최신작은 작가의 본격적인 도약과 맞물린다고들 한다. 이 책은 동성애라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는 방식과 거침없는 필치로 흥미로운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루이지 발다치 (에우로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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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구상은 의심할 여지 없이 웅장하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모든 것, 존재의 물질성과 의미의 비물질성을 하나의 환상 속에 담아내는 것은 톤델리가 마치 자신의 삶이 종국에 달했음을 예감한 듯 마지막 노력을 기울인 작업이다.” - 안젤로 굴리엘미 (소설과 현실 : 이탈리아 서사문학 60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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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의 죽음은 이 소설의 진정한 중심축이자, 마치 블랙홀처럼 레오라는 인물의 변화 과정과 이야기가 펼쳐지는 매개체다.” - 마리노 시니발디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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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이 객관화되면서 오히려 더 큰 힘과 의미를 얻게 된다.” - 로베르토 카르네로 (감정의 공간 :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 읽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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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슬픔과 열정이 뒤섞인 사랑 이야기이다. 성숙기의 문턱에 선 서른두 살의 레오가 2년 전 죽은 연인 토마스에게 품었던 사랑이다. 이는 절대적이고 강렬하며 불타오르는 듯한 감정이다.” - 필리포 라 포르타 (새로운 이탈리아 서사문학 : 세기말의 위장과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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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을 통해 삶을 멀리하는 것은 레오를 보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그 자신을 세상 밖으로 내몰았다.” - 엘레나 부이아 (집으로 :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 서사문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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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그 차원에서는 모든 분리의 벽이 무너지고, 그와 함께 충족되지 못한 삶의 불안함도 사라진다.” - 안토니오 스파다로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 : 기다림을 가로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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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델리는 레오의 과거 속에 몰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설을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작품 세계를 회고적으로 요약한다.” - 마우로 비아넬로 (피에르 비토리오 톤델리의 서사 전략과 기억의 글쓰기 사이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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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의 사건들을 대위적으로 연결하는 ‘내면의 서사시’라는 개념은,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 속에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서사의 방향성을 보여 주며, 글쓰기와 운명을 성취 가능한 세계로 제시한다.” - 줄리오 이아콜리 (모자이크를 위한 시도들 : 톤델리와 미국적 상상력의 유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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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방》에서 펼쳐지는 ‘개별적’이고 실존적인 이야기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타인과 인류를 위한 선택도 하게 되는 이야기다.” - 루이지 레브리니 (톤델리의 작품에 그려진 에밀리아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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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자신의 글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에 형체를 부여한다. 주인공은 서사를 통해 공허함과 결핍에 맞서 싸우며, 소설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삶 그 자체를 구현하는 것이 된다.” - 안제이 셰프치크 (희극, 여정, 정체성, 한계 : 톤델리에 대한 새로운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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