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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낯설지만 친근한 세계
첫 번째 강의 연약한 그물망 단순한 지구인 | 질주하는 의자 | 마주침과 결정 | 목격담의 시차 두 번째 강의 내부의 관찰자 지식은 유령이 아니다 | 충분한 믿음과 유용한 의심 | 정보는 흔적이다 | 무한한 순환 세 번째 강의 흐르지도, 고정되지도 않는 사건을 꿰는 방식 | 무엇과 이웃하는가 | 휘어지고 출렁이는 중력장 | 단단한 무대를 떠나며 네 번째 강의 또다시 맞이하는 내일 요약된 세계에서 시간은 흐른다 | 흔적은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다 | 여전한 숙고와 자유 다섯 번째 강의 무엇이 존재하는가? 물병과 원자와 자본주의 | 다르게 말해도 같은 세계 |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 여섯 번째 강의 두려워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은 서로 기대어 있다 | 물고기의 즐거움 | 각자의 출발점에서 특별 강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나무를 봐도 숲은 남아 있다 | 무너지지 않은 뉴턴의 다리 | 명백함이 불러일으키는 오해 | 항해하는 배 | 변함없는 일몰 아래 | 우리가 생각하는 은유 | 궤도를 벗어난 물리학 주석 |
Carlo Rov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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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면, 즉 우리가 자란 이 지구라는 마을은 우리 안에 쉽게 떨쳐낼 수 없는 편견을 심어줍니다. 마을 바깥 물정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마을과 자신을 분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 광활한 세상에는 사물도, 빈 공간도, 사건을 절대적 위치에 두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앞으로 점차 알아가겠지만, 현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p.22 주체가 없는 언어는 없습니다. 언어는 현실의 일부입니다. 언제나 화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숨겨져 있든 드러나 있든, 인간이든 책이든, 새겨진 돌이든 컴퓨터든 항상 화자가 있습니다. 세상에 말로 표현되지 않거나, 글로 적히지 않거나, 인용되지 않거나, 기록되지 않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주체가 없는 문장은 없습니다. ‘주체가 없는 지식’이라는 환상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체화된 지식의 일부가 아니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문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pp.56~57 사건은 시간 속에서 특정한 위치를 가지는 어떤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만남이나 운동경기 같은 것이죠. 그리고 과정은 연결된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돌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 우리가 사랑에 빠지거나 전쟁을 벌이는 것, 초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 블랙홀이 형성되고 증발하고 소멸하는 것, 생명체가 태어나고 자라며 결국 죽어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도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실체가 아닌 과정의 존재입니다. ---pp.84~85 우리는 이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에너지 덕분에 작동하며 그 에너지는 우리가 엔트로피 기울기 속에 있기에 존재합니다. 우리의 작동 방식, 즉 우리의 숙고는 우리가 놓여 있는 엔트로피 기울기를 충분히 활용합니다. 미래는 실제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다르게 숙고하면 미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에 의존합니다. 물리학은 우리의 자유를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를 가능하게 하며 실재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미래는 진정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p.146 다른 언어를 항상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층위의 설명들 사이 모든 연결 고리를 제대로 밝혀내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화학과 물리학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과 생화학의 연결 고리는 상당히 많이 찾아냈지만, 생물학적 과정의 일반적인 열역학적 특성에 관한 질문들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층위의 설명들을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과학에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p.173 은하들이 서로 광자와 성간 먼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처럼, 우리도 말과 눈빛을 통해 정보를 교환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상호작용하는 대상입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현실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인식도 포함되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거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목격한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p.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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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린스턴대학교를 뜨겁게 달군 세계적 물리학자의 존재 수업 작고 단단한 행성, 지구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지구인 앞에 펼쳐진 시공간은 단순해 보인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며, 우리는 같은 현재를 공유한다. 의자에 앉아 친구와 통화하며 “지금 집에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데는 고민이 필요 없다. 이 집도, 책상 위의 펜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돌연 땅으로 꺼지거나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적 관점에서는 어떨까? 우리에게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 다른 행성에서는 아직 관측할 수 없는 미래가 되고, 보편적 현재는 공허한 약속이 된다. 팽창하는 우주 속 거대한 태양 주위를 질주하는 지구 위에서 우리의 행방은 묘연해지며, 위치와 공간은 쉽게 단언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세상의 단단한 기반이 허물어진 자리에, 저자는 양자역학의 관계론적 세계관을 내놓는다. “이 세계는 단순히 사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 동시에, 인과관계에 지배되지도 않습니다. 이 세계는 관계로 엮여 있고, 서로 교차되는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계는 관계와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펜을 펜으로 만드는 절대적 고유성이란 없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사물의 성질은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해진다. 널리 알려진 고전적 사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양자는 관측 방식에 따라 파동과 입자의 서로 다른 성질을 드러낸다. 관찰자와의 관계 속에서 양자의 성질이 정해진 것이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과정으로 존재하며, 그 성질은 만물의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 믿음직한 집, 안락한 의자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에게 이러한 관점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저자는 어려운 용어와 수식을 벗어나 특유의 문학성으로 우리를 그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물리학은 하나의 노래입니다. 그 노래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말을 걸고, 세상도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다양한 노래들은 서로 공명하고 반영하며, 서로에게 말을 겁니다. 이 거대한 소리의 벽화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물리학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은 결핍이 아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의미로 정의되지 않기에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에게서 그 어떤 자유도 빼앗지 않는다. “나는 과학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서로 기대어 나아가는 불완전한 지식의 힘 세상의 기본적 물리 방정식을 알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저자는 그것이 ‘헛소리’에 가까운 주장이라고 말한다. 과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도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과감한 주장과 함께, 프린스턴 철학자들에게 낯선 물리학적 제안을 내놓는다. 양자역학의 관계주의는 지식과 도덕 같은 정신적 영역까지 넓게 적용될 수 있다. 세상에 관한 수많은 정보와 판단도 그 자체로 세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현실의 일부입니다. 언제나 화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숨겨져 있든 드러나 있든, 인간이든 책이든, 새겨진 돌이든 컴퓨터든 항상 화자가 있습니다. 세상에 말로 표현되지 않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주체가 없는 문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실수할 수 있으므로, 모든 명제는 언제라도 틀릴 수 있습니다.” 탁자에 놓인 동전의 위쪽이 앞면이라면 아래쪽은 뒷면이다. 한쪽 면의 상태를 알면 다른 쪽 면의 상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보는 한 사물 안에 독립적으로 내재하지 않고, 사물들의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사물을 관찰하는 주체도 그 대상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관찰자의 눈과 뇌는 동전의 상태와 관계를 맺고, 그는 그것을 ‘앞면이 위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관찰과 기억, 표현이 잘못될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다. 하지만 오류의 가능성은 세상을 알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존에 확인한 사실이 잘못되었다면, 또 다른 관찰을 통해 그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수정하면 된다. 우리는 세상 바깥으로 나가 모든 관점을 한꺼번에 검증할 수 없다. 지식은 불완전하기에 진화한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유연하고 다층적인 개념 구조다. “부분적 확실성만으로도 다리를 건너고, 유죄를 선고하고, 재산을 맡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기에는 충분합니다. 설령 판단에 오류가 생기고, 다리가 무너지고, 은행이 파산하고, 사랑이 배신으로 끝나는 일이 있어도 말이죠.”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폐기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학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지식을 믿는 동시에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일렁이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태도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여전히 낯설지만, 필멸하는 우리에게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진리는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확신을 내려놓는 순간 세계는 넓어진다. 이 책은 불완전한 과학과 의미, 그리고 모든 존재에 보내는 아름다운 찬사다. [추천사] “물리학,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최고의 사상가.” _에르난 디아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불확실성을 향해 과감히 뛰어들고 싶어지는 책!” _〈커커스리뷰〉 “현실의 복잡한 측면을 섬세히 그려내며 시간과 사건의 관계, 진리에 관한 통념을 뒤흔든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쓰였다. 명료하게 담아낸, 존재에 관한 철학적 선언.” _〈레제레:투티〉 “오늘날 이루어지는 과학혁명의 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의 이상적 후속작!” _〈와이어드이탈리아〉 “양자 물리학에서 인간의 도덕과 삶에 이르기까지, 숨을 멎게 하는 지적 비행.” _〈코리에레델라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