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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13
1장 각본 2장 과학과 복음주의자들 3장 당신은 누구를 신뢰하는가? 4장 코비드 시대의 과학적 문해력 5장 두려움 대신 신앙을 6장 거품 안의 삶 7장 세상과 맞서는 당신과 나 8장 그들은 우리의 헌법상의 권리들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 것이다 9장 앤서니 파우치는 강아지들을 싫어한다 10장 지구는 열이 나고 있다 11장 돌리야, 안녕! 12장 현대 과학의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기 |
Janet Kellogg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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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들은 내가 속한 진영의 사람들이다. 나는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랐으며 복음주의자들이 나를 예수께 인도했다. 나는 외부인으로서 복음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진영 내부에서 복음주의자와 과학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기를 원한다. 나는 여전히 복음주의 교회에 속해 있다. 그것이 내가 속해 있는 전통이다. 내가 교회에서 듣는 모든 내용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나는 20년 전의 나 자신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내 교회의 대다수 교인의 과학에 대한 견해에 동의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어느 교회에 출석하는지 또는 교회에 출석하는지 여부처럼 단순명료하지 않다. 진화는 복음주의자들에게 매우 거슬리는 최초의 과학 분야여서 진화와 싸우기 위해 많은 기관이 조직되었다. 우리의 논의 목적상 우리가 진화 이론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
---「1장. 각본」중에서 당신은 진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이의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진화의 수용 여부가 현대 생물학은 진화 이론에 의존해서 오늘날 우리가 생물학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사실을 바꾸지 않는다. 당신이 진화를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진화 이론은 계속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강력한 예언자이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의 목적은 복음주의자들의 과학 부정을 탐구하는 것인데, 그 대화는 진화론에서 시작한다. 복음주의자들이 진화 과학에 관해 어떻게 말했는지(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가 복음주의자들이 다른 과학 분야에 관해 말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2장. 과학과 복음주의자들」중에서 우리는 무엇이 참된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당신은 누구를 신뢰할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당신은 어떤 사람을 믿는가? 우리의 신뢰는 얼마나 자주 직접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는가? 쉬운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우리 중 대다수는 항공 역학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자, 정비사, 조종사 등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믿고 비행기를 탄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우리 중 대다수는 생화학자나 분자 생물학자가 아니지만, 필요하면 약국에서 식품의약청의 승인을 받은 진통제를 사 먹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뼈를 맞추거나 수술을 받는다면, 우리가 본질적으로 국립보건원과 기타 연구 기관에서 수행된 작업을 신뢰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가운데 대다수는 모든 약품, 모든 기술, 생물학·화학·물리학의 가능한 모든 분야의 복잡성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과학을 이해하고 우리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일을 해온 전문가들을 신뢰한다. 과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어떤 아이디어의 가치에 근거하여 판단하는가 아니면 그 아이디어의 원천에 근거하여 판단하는가? 기침, 호흡, 재채기에 의한 호흡기 바이러스 확산에 기인한 팬데믹에서 누가 마스크가 그것에 관한 견해가 극명하게 갈리는 대상이 되리라고 예측했겠는가? ---「3장. 당신은 누구를 신뢰하는가」중에서 사회학자인 제이네프 투페크치(Zeynep Tufekci)는 실제 신문에서 상반되는 견해를 읽고 독립적으로 정보를 흡수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의 도래로 정보 교환은 팀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가 상반되는 견해들을 읽을 때 그것은 “축구 경기장에서 우리 편 팬들과 함께 앉아서 상대편 팀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와 마음이 같은 동료들로부터의 승인을 추구한다. 우리는 상대편의 팬들에게 야유함으로써 우리 팀과 결속한다.” 우리는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과학 공동체의 합의에 반하더라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진화론에 대해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물고기가 어떻게 원숭이로 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빠진 고리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무작위 진화가 그런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낳을 수 있는가? 나는 원숭이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성경을 믿는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서만 신경을 쓴다. 누가 증거를 필요로 하는가? 우리는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서 일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야기에 찬성한다. 옳은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마음에 대고 말하는 이야기에 말이다.우리는 우리 편과 보조를 맞춘다. ---「4장. 코비드 시대의 과학적 문해력」중에서 고립된 교육은 과학계가 신학에 정보를 제공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복음주의 성경 대학, 설교 학교, 신학교들에서 진화의 부정과 젊은 지구 창조론이 표준인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 교사, 목사, 설교자들에게서 반지성적이고 반과학적인 마음 자세를 영속화하는 대가를 지불한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기독교 대학과 대학교들에서 신학과 교수들이 과학 분야에서의 실제 연구를 수행하는 교수들과 더불어 가르치고 연구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독교 대학과 대학교들에서 생물학의 토대로서 진화가 가르쳐진다. 베일러 대학교(남침례회), 애빌린 기독교 대학교(그리스도의 교회), 캘빈 대학교(기독 개혁 교회)의 생물학 부서가 유명하다. 베일러 대학교는 진화에 관한 부서의 선언문에서 선봉에 서 있다. “우리는 과학 부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엄격하게 검증될 수 없는 대안적인 가설들이나 철학적으로 추론된 이론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애빌린 대학교에서 진화는 생물학 전공자들의 첫날부터 학습 과정 안에 통합된다. 그리고 이 세 기독교 대학교 각각의 생물학 부서에서는 신앙이 생물학 교육에 정보를 제공한다 ---「6장. 거품 안의 삶」중에서 지구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을 고난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박해받는 흩어진 소수파로 본다. 우리는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수십 년 동안 그 전쟁에는 많은 전선이 있지만, 진화 과학이 많은 악의 근원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21세기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진화론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현대 유전학이 이 점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농업, 의학, 보존, 보건역학—사실상 모두 생물학이다—에서 진화론은 근본적이다. 진화론은 다른 모든 과학 이론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명확해지고 수정되지만,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다. 창조론자들에 의한 무서운 예측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은 편평한 지구, 지구가 중심인 우주,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는 이론처럼 틀렸음이 증명된 이론들을 모아둔 쓰레기통에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 전쟁에서 진화론이 폭력과 무신론 및 심지어 무례한 아이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기가 진화론이 틀렸음을 증명하기보다 훨씬 쉽다. 복음주의자들은 진화론과 전쟁을 벌이면서 세균 이론, 중력 이론, 원자 이론 같이 근본적이고 잘 받아들여진 과학에 맞선다. 복음주의자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대중에 맞서고 있다. 우리는 약자를 치켜세운다. 우리는 다수파와 맞서 일어설 때 자긍심으로 충만해진다. 그러나 다수파의 입장이 옳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중이 옳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후 변화와 팬데믹 같은 21세기의 과학적 문제들에 직면해서 우리는 전투태세를 갖춘다. 우리는 증거를 의심하고 전문가들을 의심하고 다수파의 입장을 의심하도록 조건 지워져 왔다.…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쟁 이슈가 있다. 하지만 기다려라. 그 밈의 2021년 판이 업데이트되었다. 엄마의 등과 방패를 뚫고 나온 불화살들 외에 많은 주사기도 있다. 2021년에 복음주의자들은 코비드 백신이라는 새로운 적과 싸웠다. 진화론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세심하게 훈련받았다. 우리는 그것이 전쟁이며 우리가 골리앗에 맞서 일어섰다고 들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과 우리의 믿음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들어왔다. 우리는 이 내러티브를 공급하는 정치적 이념에 끌려왔다. 우리는 전투를 통해 단련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다음 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7장. 세상과 맞서는 당신과 나」중에서 코비드 팬데믹은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최초의 공중 보건 위기가 아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최초의 공공 병원을 세운 사람들이었다. 병에 걸린 사람을 돌본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최초로 자신의 친족 집단 외부인들에게 돌봄을 제공한 사람들이었다. 고대 역사가들은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을 돌봤다고 언급했다. 1세기에 사람들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았다. 21세기에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 것이다. 팀 디벨(Tim Diebel)은 은퇴한 목사이자 종교 관련 작가다. 그는 팬데믹 초기에 자기 딸의 다음과 같은 따끔한 관찰을 인용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마스크가 주로 착용자를 보호한다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그들이 마스크가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거짓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신경 쓰는 것 같아요.” ---「8장. 그들은 우리의 헌법상의 권리들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 것이다」중에서 프랜시스 콜린스는 2022년에 은퇴했을 때 미국의 최장수 국립보건원 원장이었다. 그는 은퇴하기 전에 역사적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유전학자인 콜린스는 낭포성 섬유증과 헌팅턴 무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콜린스는 템플턴상, 미국 국가 과학상,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상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또한 변명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이력서를 보면 당신은 콜린스를 과학계의 팀 티보(Tim Tebow)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콜린스가 모든 복음주의 진영에서 축하받은 것은 아니다. 콜린스가 국립보건원에서 은퇴했을 때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존 G. 웨스트(John. G. West)는 축하가 아니라 슬픔이 복음주의자의 적절한 반응이라고 썼다. “콜린스는 세속주의자들이 아무튼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보호막을 제공함으로써 국립보건원에서 자기의 목적을 도모했다.” 콜린스는 10년 동안 자신의 과학적 입장을 타협하지 않고 정부 부처에서 성공적으로 일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으로 관료이자 정치인이라고 비난받는다. 개인적인 공격은 더 심하다. 콜린스는 폭스 뉴스에 출연할 때마다 악의적인 많은 이메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로부터 가장 심한 공격을 받은 사람은 앤서니 파우치다. 파우치는 콜린스와 마찬가지로 연구와 보건 행정에서 수십 년 동안 봉사했다. 그리고 파우치는 콜린스와 마찬가지로 정치와 가까이하지 않고 과학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파우치가 “국가의 얼굴”(Face the Nation) 프로에서 자신이 과학을 대표한다고 선언했을 때 그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그 주장의 대담성에 대해 통렬히 비난받았다. 랜드 폴 상원의원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과학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적인 오만이다. 관료가 그런 주장을 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9장. 앤서니 파우치는 강아지들을 싫어한다」중에서 진화를 설명할 때 오래된 지구가 필수적이었듯이, 기후 변화를 설명할 때도 오래된 지구가 필수적이다. 당신의 신학이 창세기의 첫 열한 장을 문자적으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과학의 이 두 분야 모두에 대해 문제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세속 과학자들이 지구 나이가 수십억 년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그들의 기후 데이터 해석은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 지구 나이가 6,000-10,000년에 지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이 어떻게 5,000년 전에 기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세속 과학자들은 성경이라는 여과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기후 과학 모두에 관해 틀린다. “약 3킬로미터 두께의 만년설이 형성되는 데 수억 년이 걸렸다고? 말도 안 된다! 만년설은 노아의 홍수에 이은 빙하기 때 빠르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독립적인 과학 연구들은 만년설의 나이에 관해 동의한다! 물론 그들은 동의한다. 모두 고대 지구를 전제하고 연구하는 세속 과학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기후 과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모델링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세속적인 모델들은 (젊은 지구와 지구 전체에 걸친 홍수를 포함한) 모든 요인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과도하게 예측한다. 극적인 기후 변화들은 인간의 활동 때문이 아니라 노아 홍수 때문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당신이 과거에 관해 믿는 내용이 당신이 어떻게 증거를 해석하고 결론을 도출하는지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래된 지구에 대한 믿음이 미끄러운 비탈길이라는 데 대한 의심을 지우기 위해 제이크 허버트(Jake Hebert)는 기후 변화를 “진화론적 사고의 쓴 열매”라고 부른다. 젊은 지구에 대한 믿음이 기후 과학을 거절할 것을 요구한다. ---「10장. 지구는 열이 나고 있다」중에서 세계적인 기후 재앙에 대한 단기 해결책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다. 홍수, 허리케인, 토네이도, 난민 위기에 대한 일차적인 대응자로서 크고 작은 이런 단체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장기적인 기후 문제 해결에 관해 말할 때에는 대화가 변한다. 우리는 캐서린 헤이호의 말마따나 “해결을 싫어한다.” 우리는 홍수, 허리케인, 토네이도, 가뭄을 악화시키고 있고 기후 온난화를 가져오는 온실 가스를 줄이려는 규제에 반대한다. 우리는 규제에 반대하기 때문에 기후 과학에 반대한다. 좀 더 많은 규제는 좀 더 큰 정부를 의미한다. 좀 더 큰 정부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의미한다. 우리가 인간이 기후 온난화를 초래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것이다. 기후 변화와 코비드 과학과 진화를 받아들이면 대가가 따를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 해법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회피한다. 인간의 문화에서는 진실인 믿음을 형성하는 것보다 사회적 수용에 이르는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너선 라우시(Jonathan Rauch)는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믿음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중요해지거나, 우리가 동일시하는 집단에 중요해지고 나면 그것을 바꾸는 데 큰 대가가 따른다.” 정치와 신앙이 수렴해서 함께 흐르는 복음주의 문화에서는 과학을 받아들이면 대가가 따른다. 경제적 비용, 자유 축소, 당신의 교회 교인들의 불승인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진화의 경우 인식론상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진화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해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믿음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문자적, 역사적,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면서도 진리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12장. 현대 과학의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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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진화과학, 팬데믹 과학, 기후과학을 모두 부정하는 집단 중 하나가 공교롭게도 복음주의자라는 실태 보고서다. 책에 소개된 여러 객관적 사례들을 목도하다 보면 서서히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이 건강한 신앙보다 사회와 정치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마치 결론을 미리 정해놓은 것처럼 자못 우월성에 도취된 채 비합리적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 지성보다 감정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과학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과학과 신앙이 충돌할 때면 단순한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지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이다.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보수주의자,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은 하나님을 거부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한 믿음은 좋은 것이고, 지성적이어야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바른 믿음과 신앙은 과학을 부정한다고 해서 얻거나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화과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 팬데믹 방역 조치에 대한 저항은 종교적 자유로 설명할 수 없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인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이 인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학은 신앙을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깊고 풍성하도록 돕는 선물이다. 균형 잡힌 신앙과 지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모든 (특히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여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권한다.
- 김영웅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과학자의 신앙공부』 저자) 과학과 신앙은 오랫동안 서로를 의심해 왔다. 과학은 신앙을 미신이라 비웃었고, 신앙은 과학을 하나님께 반역하는 지식이라 경계했다. 그 사이에서 진실은 자주 길을 잃었다. 자네트 켈로그 레이의 『미국 복음주의의 파산』은 바로 그 불편한 골목에 우리를 세운다. 저자는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란 생물학자다. 그러므로 그의 비판은 성 밖에서 날아온 돌멩이가 아니라 집 안에서 울리는 화재 경보다. 복음주의 내부자의 정직한 자기비판에서 출발하는 그는 미국 복음주의가 진화론과 싸우면서 과학자들을 불신하는 법을 배웠고, 그 불신의 오래된 각본이 코로나19, 기후변화, 백신, 생명공학 논쟁에서 되풀이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실보다 진영을, 전문가보다 유명인을, 이웃의 안전보다 개인의 권리를 앞세울 때 신앙은 진리를 증언하기보다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미국 백인 복음주의의 경험을 복음주의 전체로 확대하는 경향이 있고, 과학계와 공공기관의 오류 및 권력성에 대한 비판은 충분하지 않다. 물론 성서학자는 아니지만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적극적인 성서 해석학도 다소 얇다. 또한 과학을 오해하지 않는 것만으로 생명윤리의 난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꼭 읽을 가치가 있다. 과학 앞에서 신앙을 버리라고 요구해서가 아니라, 신앙의 이름으로 진실을 버리지 말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다.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면 그리스도인은 진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과학이 창조주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창조세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우리의 눈을 씻어 줄 수는 있다. 이 책은 그 불편하고도 필요한 제안을 권하는 책이다. 특별히 한국의 보수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열린 자세로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은퇴 교수, 현 다니엘의 샘 원장) 이 책은 현대 과학의 세계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직하고 도전적으로 묻는 책이다. 저자는 생물학 교수이자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성장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진화론에서 시작된 과학에 대한 불신이 코로나19와 백신, 기후변화와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나의 문화적·정치적 각본으로 반복되는지를 날카롭게 추적한다. 특히 과학을 불신하는 태도가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어져 사회적 약자가 더 큰 피해를 본 것을 지적하며, 앞으로 닥칠 기후위기의 문제도 약자의 관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부분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이 책은 복음주의를 공격하는 외부인의 비판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기에 과학적 진실과 신앙의 책임을 외면할 수 없다는 내부자의 진솔한 성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 교계에도 과학에 대한 불신을 좋은 신앙으로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책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조세계를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며 진리를 살아가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안내자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 장재호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유튜브 “과학과신학연구소” 운영자) 『미국 복음주의의 파산』은 과학과 신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지식을 받아들이고, 누구의 목소리만을 신뢰하며 살아가는지를 묻는 책이다.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듯, 신앙 공동체가 자신만의 학교와 교재, 출판과 미디어 안에서 동일한 주장만을 반복할 때 그것은 어느새 외부의 질문과 검증이 차단된 필터 버블과 에코 체임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적은 미국 복음주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일부 교회와 기독교 대안교육 현장이 과학적 합리성 자체를 불신하고 자신들만의 지식체계를 재생산할 때, 기독교는 사회와 대화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된 하부집단이 될 위험이 있다.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 대해 정직하게 알려는 태도는 신앙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일부다. 동시에 과학이 세계를 설명한다고 해서 인간의 의미와 가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까지 소진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신앙의 과제는 과학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설명 체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과학이 밝혀낸 세계 안에서 인간과 공동체, 생명을 어떻게 책임 있게 돌볼 것인지를 묻는 데 있다. 이 책은 과학을 존중하면서 과학주의에 빠지지 않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길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자신이 만든 인식론적 거품을 넘어 다시 사회와 대화하기 위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 정대경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종교와 과학 전공) 자네트 켈로그 레이는 신문 기자처럼 쓰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며 대중문화 전문가처럼 일상생활을 연결한다. 충심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 토머스 제이 오어드 (『개방적·관계적 신학』[Open and Relational Theology] 저자) 레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해법을 회피하여” 자신과 이웃을 해친다는 주장을 재치 있고 읽기 쉬운 스타일로 설득력 있게 펼친다. 그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과학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대 과학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잘 살라고 도전한다. - 데이브 버하겐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사고방식』[How White Evangelicals Think] 저자) 읽기 쉽고 매력적인 이 책에서 자네트 켈로그 레이는 복음주의를 비판하지만, 적의 없이 내부로부터 비판한다. 레이 같은 그리스도인의 음성은 내게 복음주의자들이 과학을 전적으로 원숭이 과학으로 치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 짐 스텀프 (바이오로고스 부사장 겸 팟캐스트 “하나님의 언어”[Language of God] 운영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