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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해벽海壁/ 감촉/ 미로/ 길에서의 키스/ 이제 됐어/ 내가 운다/ 바느질하는 바다/ 질문/ 사냥꾼의 노래/ 뜨거운 소식/ 잃어버린 반지 2부 꿈/ 젊음의 방/ 새 슬픔/ 마흔 살의 시/ 마흔 살 오후의 시/ 신록연가/ 순은純銀의 펜으로-이 땅의 시인을 위하여/ 짧은 햇살/ 이 가을에/ 왼팔의 사랑/ 파꽃길/ 수목 사이로/ 연극 대사조로/ 삶의 옆구리/ 어느 자화상/ 잘 가거라, 나비야/ 딸기를 깎으며/ 감옥 문을 열며/ 그리움의 신발/ 전보/ 이상한 소식/ 무섬증/ 동백 이야기/ 길을 떠나며/ 어머니의 편지 3부 젊음/ 찔레/ 자살/ 절망의 노래/ 첫눈/ 소포/ 타국에서/ 대못/ 시간 2/ 편지/ 고독/ 근황/ 철길/ 사랑은 불이 아님을/ 서리/ 석상石像/ 선線에 대하여/ 실/ 겨울 일기日記/ 발문| 모든 사물을 새롭게 마주하기, 직접성과 관능성의 시쓰기에 대하여| 황인찬(시인) |
문정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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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우리들 첫 숟갈의 밥이었던 것은 알지만
그것이 바다가 되어 지상을 칠 할하고도 반이나 덮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가슴마다 물결인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저 많은 눈물을 누가 다 흘렸을까 한껏 차오르다 기어이 무너지는 낮과 밤 밀려가고 밀려오는 미친 술병들의 바다 거대하게 떠밀리는 언어의 물거품들 어느새 다 마시고 어디로 떠났을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해벽海壁」중에서 내 친구 연이는 꿈 많던 계집애 그녀는 시집갈 때 이불보따리 속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한 질 넣고 갔었다 남편은 실업자 문학청년 그래서 쌀독은 늘 허공으로 가득했다 밤에만 나가는 재주 좋은 시동생이 가끔 쌀을 들고 와 먹고 지냈다 연이는 밤마다 세계일주 떠났다 (……)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만 뉴욕의 할렘 부근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밤에만 눈을 뜨는 재주꾼 시동생이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몽땅 들고 나가 라면 한 상자와 바꿔온 날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울었다 결혼반지를 팔던 날도 울지 않던 내 친구 연이는 그날 뉴욕의 할렘에 쓰러져서 꺽꺽 울었다 ---「꿈」중에서 (……) 축복은 고통의 보자기에 싸여 온다고? 생애를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표현할 것도 없어 시간을 지속적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일밖에 없다는 것이 기막히군 그래, 연애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여덟 시간을 그걸 할 수는 없잖아 노래 부르기? 술 마시기? 빌어먹을, 그대 눈 쳐다보기 모두가 그래 하루 여덟 시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일밖에 없다는 것이 기막히군 고통의 보자기 싸기 고통의 보자기 끄르기 그것을 싸고 끄르면서 즐거워하기 난 모르겠어 정말, 그 검정 나비를…… ---「삶의 옆구리」중에서 (……) 너와 나의 사랑이 썩을까봐 얼마나 괴로워했던가 그러나 사랑하는 나비야 썩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잘 썩어 흙이 된다는 것은 눈부신 일이다 (……) 따스한 햇살 아래 언젠가는 썩을 수 있는 것으로 생겨난 것은 아무래도 잘한 일이다 잘 가거라, 나비야 살아서는 더운 피로 사랑하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가슴 벅찬 축복이구나 ---「잘 가거라, 나비야」중에서 우리집 아이들은 딸기를 먹을 때마다 신을 느낀다고 한다 태양의 속살 사이 사이 깨알 같은 별을 박아놓으시고 혀 속에 넣으면 오호! 하고 비명을 지를 만큼 상큼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움 잇새에 별이 씹히는 재미 아무래도 딸기는 신 중에서도 가장 예쁜 신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딸기를 씻다 말고 부르르 몸을 떤다 씻어도 씻어도 씻기지 않는 독 사흘을 두어도 썩지 않는 저 요염한 살기 할 수 없이 딸기를 칼로 깎는다 날카로운 칼로 태양의 속살 신의 손길을 저며낸다 별을 떨어뜨린다 아이들이 곁에서 운다 ---「딸기를 깎으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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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시를 쓰며 살게 한 이 땅과
슬프고 아름다운 독자에게 이 시집을 드린다.” ‘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닐’ 한 사람의 혼돈과 상처 ‘날 것 그대로의 모든 것’이 담긴 젊은 날의 시 55편 “모든 시에서 피가 흐른다는 느낌. 모든 시가 날이 서 있다는 느낌.” 허연 시인의 말처럼 문정희 시인의 시는 “가슴 복판을 긋고 지나간다.” 십대 때 시집을 내고 한국 사회의 혼란한 시간을 함께 통과해내며 국립한국문학관장을 역임하기까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인은 쉬지 않고 시를 썼다. 시인의 말처럼 “시에 운명을 걸었기 때문”일까. 부자유와 모순과 위험으로 가득했던 시대의 혼돈과 상처는 그의 시에서 꺾이지 않는 강렬한 육체가 되었다. 가령 어느 완강한 팔목이 와서 우리의 숨통을 막고 부자유의 오랜 장마 속으로 우리를 집어넣었을 때도 (……) 참으로 목이 타게 기다렸던 우리 마음의 혀 순은의 펜으로 때리는 종소리가 일어서고 있다 -「순은純銀의 펜으로-이 땅의 시인을 위하여」 부분 숨통이 막히고 부자유의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에도, 막막한 현실로 떠밀리면서도 자리를 지키던 자세. 그리고 끝내 종소리로 일어서는 언어. 시인은 “슬프고도 찬란한 내 모국어”로 시대의 억압을 견디고, 마침내 자유의 언어를 일으켜 세운다. 오랜 시간 한국 문학의 자리를 지켜온 여성 시인의 기개와 기세는 이렇게 행간마다 살아 있다. 그 언어는 시대를 향한 목소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인이 살아온 몸과 그 몸에 축적된 감각 역시 자신만의 언어로 깨어난다. 한국어가 여성의 몸을 스스로 말한 처음 여성의 시가 제 자리를 찾아가는 움직임 “시인이 자신의 몸을 열어 시를 꺼냈을 맨 처음을 상상해본다. (……) 여성이 쓴 시는 있었던 몸이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 사건과 다름없다.”_김소연(시인) 시선집 『처음 슬픔이 깨어날 때』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몸이다. 지렁이를 밟는 발, 딸기를 깎는 손, 길에서 입을 맞추는 연인들, 마흔이라는 숫자가 팍 꺾어놓는 기운. 시인은 몸의 감각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낀다. 여성이 자기 몸으로 겪은 감각과 욕망을 스스로 말하는 순간, 몸은 시의 언어가 된다. 김소연 시인은 이를 “한국어가 여성의 몸을 스스로 말한 처음”이라 부른다. 딸에게 “네 목숨은 네 것”이니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어머니의 편지」) 이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내 몸속에서 끝없이 사운거리는 대나무 소리”를 따라 “천리 만리 먼 곳으로 가고 싶었”(「무섬증」)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 여성이 축적해온 감각과 욕망은 시인의 몸 안에서 오래 흔들리다 마침내 자기만의 언어로 발현된다. 삶의 고통을 알면서도 그것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자세 몸으로 세계를 감각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까지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황인찬 시인은 발문의 첫머리에서 문정희 시인을 “허리가 곧은” 시인이라 적는다. 외면하지도 군림하지도 않은 채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 곧음은 삶의 두려움과 비참함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 힘들지? 나는 갈수록 모르겠어 축복은 고통의 보자기에 싸여 온다고? (……) 고통의 보자기 싸기 고통의 보자기 끄르기 그것을 싸고 끄르면서 즐거워하기 -「삶의 옆구리」 부분 황인찬 시인의 말대로 기쁨은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육체”에서 함께 솟아난다.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 삶에 대한 애증을 시인은 관능적으로 드러내는데, 여기서 ‘관능’은 이성애적 사랑이나 욕망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물을 생생하게 감각하고, 그 감각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는 움직임이 시인의 관능성을 이룬다. “태양의 속살 신의 손길” 같던 딸기가 문득 “씻어도 씻어도 씻기지 않는 독”으로 느껴져 결국 칼로 열매를 깎아낸다(「딸기를 깎으며」). 이름을 알기도 전에 “손목을 잡”아 오는 접촉으로 봄을 받아들이고(「이상한 소식」), 슬픔도 자주 느끼면 “낡은 의자처럼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 슬픔을 끌어안는다(「새 슬픔」). 이처럼 문정희의 시는 아름다움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워내지 않는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삶을 사랑하려는 태도, 황인찬 시인은 이를 “부드러운 강함”이라 부른다. 「잘 가거라, 나비야」에서 시인은 “살아서는 더운 피로 사랑하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을 “가슴 벅찬 축복”이라 노래한다. 유한한 삶과 그 안의 고통을 알면서도 사랑하기로 한 것. 그래서 이 시들은 읽을수록 슬프고, 읽을수록 단단하다. 시선집 『처음 슬픔이 깨어날 때』는 시집 『카르마의 바다』(2012)에서 출발해 『새떼』(1975)의 시 「겨울 일기」로 닫힌다. 여든을 앞둔 시인이 오래된 ‘처음’으로 돌아가 문을 닫을 때, 이 시선집의 제목은 한번 더 깊어진다. 시인은 자신의 ‘처음’에는 “얼음번개 같은 고독으로 뉴욕을 떠돌고, 날것 그대로의 모든 것을 자유로 바꾸고 싶었던 벌거숭이 시절”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그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이 시집을 지금 자신과 같은 시절을 통과하고 있을 “슬프고 아름다운 독자”에게 드린다고 말한다. 시선집 『처음 슬픔에 깨어날 때』는 그 뜨거운 ‘처음’의 순간을 함께해줄 것이다. 시인의 말 처음 시에 눈뜰 때 시대는 부자유와 모순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시에 운명을 걸었기 때문이었을까. 혼돈과 상처는 모두 강렬한 시의 육체가 되어 돌아왔다. 한때 얼음번개 같은 고독으로 뉴욕을 떠돌았다. 날 것 그대로의 모든 것을 자유로 전환시키고 싶었던 벌거숭이 시절이었다. 그리고 세계와 지상의 시간을 탐험하려고, 대지의 혀 같은 베네치아를 유랑하며 온몸으로 카르마의 바다를 헤엄치기도 했다. 내 젊은 시집들을 깊이 읽고 탁월한 감각으로 이 시선집을 만들어준 이병률 시인께 감사한다. 시 속에 흐르는 피를 발견해준 허연 시인, 한국어가 여성의 몸을 스스로 말한 처음을 투명하게 짚어준 김소연 시인, 삶과 표현의 건강성을 읽어준 황인찬 시인께 아직도 내 뼛속에 부는 뜨거운 바람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오직 시를 쓰며 살게 한 이 땅과, 슬프고 아름다운 독자에게 이 시집을 드린다. 2026년 가을 문 정 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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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에서 피가 흐른다는 느낌. 모든 시가 날이 서 있다는 느낌. 문정희의 비교적 초기 시들을 읽으며 ‘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닐’ 한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이 설계한 진공관 안에 갇히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이 자기장은 문정희의 시가 강력한 파동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하다.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하고, 느낄 수 있는 ‘실명失明’을 주셔서 다시 감사하다는 변증법적 상승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시인은 시에다 대고 “너는 뭐냐”라고 외친다. 시라는 귀신놀음의 핵核을 만나고자 하는 자의 기백이다. 시가 어느새 가슴 복판을 긋고 지나간다. - 허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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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자신의 몸을 열어 시를 꺼냈을 맨 처음을 상상해본다. 그 장면은 참으로 여러 모의 처음이다. 한국어가 여성의 몸을 스스로 말한 처음. 우리 여성 시가 제 목소리를 찾아 익숙한 장소를 떠난 처음. 사랑하고 욕망하는 자기 자신으로 당당히 회귀하는 처음. 머뭇거림을 걷어낸 호방한 말하기의 처음. 슬퍼하면서도 어깨가 펴지는 기개의 처음. 자유에서 위험을 꺼내드는 처음. 여성이 쓴 시는 있었던 몸이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 사건과 다름없다. 이 시선집 『처음 슬픔이 깨어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몸이 깨어나는 오래된 사건을 위대한 사건으로 되살려내었다. 동시에 현대 여성 시인들의 왕성한 출현 속에서 뚜벅뚜벅 동행해온 현재진행형의 면모를 전하고 있다. 먼 미래까지 이 시선집은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영원히 되살아나고 되살아날 것이다. -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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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직시하고, 사물의 직접성과 감각의 육체성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시인에게 사랑이란 매 순간 대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갱신하는 일이고 매번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이 시작된다면, 사랑의 슬픔 또한 함께 시작되겠지. 관능과 슬픔을 두루 갖추는 시, 삶의 고통을 알면서도 그것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저 시적 자세, 그 부드러운 강함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황인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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