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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부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 제로시 프로젝트/ 이북과 e-book의 독서론적 만남/ 윤니학/ 따듯한 말/ 정보석사우나/ 식용돌과 황홀경/ 반찬 리필을 해줄 땐 처음 준 만큼 혹은 그것보다 적게/ 탑골공원에서 세운상가/ 동요 이 부 공상언어처리장/ 로버트와 로보트가 움직이는 소리 음~치킨/ 서광장례식장/ Made in Accept(수락산)/ 전선을 간다(POEM MIX)/ 수습 닌자 김민철/ 돼지국밥 곽두철/ 암살자는 이상해/ 초미세민지/ 소금빵리스트 삼 부 폰희주/ 예비와 미수/ 김혜순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겠다/ 감시키메라/ 양치기 소명/ 하이에나는 하하하하하고 운다/ (주의)나폴리탄 대담/ 스트리밍 서비스/ 김사라와 사라짐/ 실랑이와 가랑이 사 부 Hurt ≠ Youth/ 롤로노아 한남준/ 전부에서 유명한 전부비빔밥/ 무인도선언/ 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최선의 방어/ 이 편지는 북유럽으로부터 시작됐으며…/ 이건 편지의 내용이 아니다가 아니다/ 나도 언젠간 서정시를 쓸 수 있을까/ 디엔드 해설_최다영 키치 키친(Kitsch-Kitc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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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서전에서 만났다
재고가 너무 많이 남은 바람에 도서전에서 끼워 팔려지던 너와 나는 역시 인기가 없어 팔리지 않고 남았다 너는 전자책으로만 출간이 되었는데도 도서전에선 판매 링크를 홍보하고 있었다 아무리 마케팅을 하고 방송에 슬쩍 바이럴로 책 읽는 장면을 내보내도 이상하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건 우리의 제목 탓이기도 했다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이라니 ---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 중에서 제로시는 이렇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나는 킹받는다 같은… 또 이런 말을 하면 MZ세대니 뭐니 할 것 같아서 MZ는 그냥 요즘 것들이란 에잉 쯧쯧, 이란 말을 하기 위한 단어 아닌가요? --- 「제로시 프로젝트」 중에서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손에는 이북 리더기 대신 이북의 리더 손이 쥐어져 있다 나는 보이는 것을 믿지 않지만 그의 보이는 모습은 내 마음에 들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에게 기댄다 이북의 리더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귀여워 ㅋㅋ 통일할래요? --- 「이북과 e-book의 독서론적 만남」 중에서 김돌배는 누군가 물수제비를 하고 있으면 음식 갖고 장난치지 말라며 호통을 쳤고 돌을 차며 걷는 사람이 있으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찬 사람을 본 것마냥 나무랐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달이었다 그 유일한 자연 위성을 입안 가득 베어 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은 진짜 유명한 돌이다 --- 「식용돌과 황홀경」 중에서 공상의 말로 언어는 안아의 반대말이래 언어는 서로를 등지고 허공을 껴안는 행위 사람의 몸과 몸이 부대끼면 공상언어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애정 행각인 거지 --- 「공상언어처리장」 중에서 제가 중대장님을 가까이서 처음 본 날 중대장님에게선 달콤한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훈련을 하던 저는 노리쇠 후퇴 고정을 하다 손가락이 끼여 피가 났습니다 혼자 아파하고 있자 중대장님이 저를 구석으로 따로 불러 저의 손가락을 빨아 주셨습니다 지난번 각개전투를 하러 가는 길엔 행군 중에 저의 총을 들어 주는 척하시며 손을 잡기도 하시고 제 손엔 아직도 중대장님의 보헴 시가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합니다 --- 「전선을 간다(POEM MIX)」 중에서 그런데 9 to 6, 주 5일 닌자를 하다 보니 그런 의문이 듭니다 닌자라는 것의 본질이 대체 뭔가요 닌자에서 닌이 닌잘했냐?와 같은 타인을 지칭한다면 닌자도 역시 사회적남탓동물인가요 --- 「수습 닌자 김민철」 중에서 암살자는 이상해 죽이는 게 일인데 이름에 살자 같은 희망적인 말이 들어가다니 --- 「암살자는 이상해」 중에서 임윤찬 씨를 상상하려 합니다 임윤찬 씨도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선생님이 연주 한 번 할 때마다 칠하라고 준 빈 과일이 그려진 공책에 한 번 연주한 거 열 번 칠해 놓고 그랬나요? 그런 적 없나요? --- 「소금빵리스트」 중에서 저 사람 내 이상형인데? 한신포차에서 누군가 말했다 헤임달은 문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어제도 전 애인에게 연락 오는 주파수를 틀어 놓고 잠을 청하려다 영상을 끝까지 다 들어 버렸다 그때 누군가 헤임달의 어깨를 잡았다 오딘이었다 이봐 헤임달. 잠은 밤에 자라구. 전 애인 연락을 받으려면 새벽에 깨어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야. --- 「이 편지는 북유럽으로부터 시작됐으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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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의 리더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귀여워 ㅋㅋ 통일할래요?” 시에서 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농담과 밈, 기발한 상상력으로 발명하는 시의 세계 2022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차한비 시인의 첫 시집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이 타이피스트 시인선 016번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당시 “언어를 부리는 힘과 시적인 장악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김언)는 평가와 함께, 다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시인으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모은 차한비가 첫 시집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4부에 걸쳐 수록된 41편의 시에는 인터넷 밈과 유행어,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과 힙합, 광고와 인터넷 방송까지 다양한 대중문화의 언어가 등장한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고, 하나의 농담은 또 다른 이야기를 낳으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차한비의 시를 읽는 일은 잘 짜인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에 기꺼이 휘말리는 경험에 가깝다. 말 한마디가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잘못 알아들은 단어 하나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농담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농담이 등장하고, 진지하게 이어지던 이야기는 뜻밖의 한 문장으로 뒤집힌다. 독자는 웃다가 의아해하고, 의아해하다가 다시 웃으며 이 이상한 세계를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저건 그냥 흔하디흔한 피싱 문자였고 그것이 단지 문학인들을 겨냥했다는 것뿐이었지만 문학인도 아닌 나는 저것이 나를 문학 인도해 줄 거라 생각해 링크를 눌러 버렸다 핸드폰은 순식간에 잠식당했고 그날 이후 전 자책을 하다 전자책이 되었습니다 -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 중에서 표제작은 도서전 초대 문자를 받은 화자가 피싱 링크를 눌렀다가 전자책이 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전 자책’이 ‘전자책’으로 변하는 순간, 언어의 우연한 유사성은 실제 사건이 된다. 사람이 책이 되고, 팔리지 않는 두 권의 책이 도서전에서 서로를 만난다. 아무리 홍보해도 화제가 되지 않고, 창고와 웹의 공간만 차지하던 책들은 서로의 등 뒤에 붙은 종이를 떼어 주며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차한비는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단순한 웃음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인물의 운명과 관계까지 만들어 낸다. “시에 시 없음” - 시를 없애겠다는 이상한 프로젝트 「제로시 프로젝트」에서는 영상전문매체 주식회사 인피니티가 새로운 구독 상품을 출시한다. 제로콜라와 제로소주에 이어 등장한 ‘제로시’는 이름 그대로 시가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시다. 제로시 제로투 아니고 구독의 형태로 구매 가능 시에 시 없음 넣을 수 없는 주머니 정확히 말하자면 0.000000001% poem 함유 우린 그걸 제로라고 부르기로 - 「제로시 프로젝트」 중에서 시에서 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차한비는 이 엉뚱한 질문을 하나의 사업 아이템으로 만들어 버린다. 구독자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콘텐츠를 기다리고, 그 사이 온갖 논쟁과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나 정작 모두가 기다리는 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엇이든 콘텐츠가 되고, 끊임없이 관심과 소비를 요구하는 시대에 시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차한비는 이러한 질문조차 진지하게 설명하는 대신 농담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손에는 이북 리더기 대신 이북의 리더 손이 쥐어져 있다 나는 보이는 것을 믿지 않지만 그의 보이는 모습은 내 마음에 들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에게 기댄다 이북의 리더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귀여워 ㅋㅋ 통일할래요? - 「이북과 e-book의 독서론적 만남」 중에서 「이북과 e-book의 독서론적 만남」에서는 이북 리더기를 들고 이북의 리더와 소개팅을 한다. 백숙집에서 시작된 만남은 엉뚱한 로맨스로 발전하고, 느닷없는 사랑 고백은 통일을 제안하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독서 기기와 정치 지도자, 연애와 분단이라는 서로 무관한 세계가 단어 하나를 매개로 뒤섞이는 것이다. 그리고 「수습 닌자 김민철」에서는 물류를 나르는 직장인이 자신을 닌자로 소개한다. 4대 보험 대신 4대 호카게를 희망하고, 물건을 잃어버리면 분실술을 썼다고 말한다. 「식용돌과 황홀경」에서는 반려돌과 식용돌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다가 급기야 사람이 돌이 되는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처럼 차한비의 시에서는 말이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 익숙한 단어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순간 세계의 규칙이 바뀌고, 사소한 농담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자라난다. 웃기려고 한 말인데, 왜 마음이 남을까 그러나 『산책과 사후세계에 대한 도서전』의 매력은 기발한 상상력과 능청스러운 유머에만 있지 않다. 소란스러운 문장들 사이로 외로움과 불안, 관계의 어려움과 죽음에 관한 생각들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따듯한 말」에서는 위로의 말이 음식과 사랑, 죽음에 관한 농담으로 이어지고, 「공상언어처리장」에서는 언어와 포옹의 관계가 기묘하게 뒤집힌다. 공상의 말로 언어는 안아의 반대말이래 언어는 서로를 등지고 허공을 껴안는 행위 사람의 몸과 몸이 부대끼면 공상언어가 발생하기 마련이니까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애정 행각인 거지 - 「공상언어처리장」 중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가까워지기 위해 건넨 말이 오히려 거리를 만들고, 진심을 전하려는 순간 그 진심이 농담으로 바뀌기도 한다. 차한비의 인물들은 왜 이렇게 많은 농담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어떤 감정은 진지하게 말하는 순간 더 어색해지고, 어떤 슬픔은 농담의 형식을 빌려야 겨우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다영은 수록 해설 「키치 키친(Kitsch-Kitchen)」에서 차한비의 시를 ‘밈 리터러시(詩)’와 ‘제로시학’의 관점으로 읽는다. 밈을 단순히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복제되고 변형되고 퍼져 나가는 방식 자체를 시의 원리로 삼는다는 것이다. 또한 농담과 허구, 진술의 번복을 통해 쉽게 규정되거나 소비될 수 없는 감정을 지켜 내려는 시인의 태도에 주목한다. “이상하다.” - 이상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첫 시집 추천사를 쓴 오은 시인은 차한비의 시에서 이상(異常)함과 이상(理想)이 만나는 순간을 발견한다. 말놀이는 다음 이야기를 열어 주는 징검돌이 되고, 사소한 연상은 끝없이 확장되는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시인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표현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정해진 의미 바깥에 숨어 있던 가능성을 발견한다. 시인의 말 또한 이 시집답다. 나의 동경 친구 이동경은 나의 시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시네 [시인의 말] 나의 동경 친구 이동경은 나의 시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시네 2026년 10월 차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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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비의 첫 시집은 이상(異常)함에서 이상(理想)을 발견하는 시집이다. 이 세계가 이상해서, 이 세계에 이상한 것이 아주 많아서 그의 탐험은 늘 이상(以上)을 추구한다. 시집에 가득한 말놀이는 리듬 장치라기보다 이야기 장치에 가깝다. 차한비에게 말놀이는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해 열어야 하는 주머니, 다음 말에 가닿기 위해 디뎌야 하는 징검돌이다.
시에서 흐르는 시간은 짧으면 몇 분, 길어야 반나절 정도지만, 그는 실시간의 빈틈에 이음새를 넣어 시 속에 흐르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인다. 공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낮이 랩 배틀이 한창인 저녁으로, 그것이 다시 셰에라자드가 펼치는 길고 긴 밤으로 이어진다. ‘덜렁댐’과 ‘덜렁덜렁댐’ 사이에서, ‘귀여움’과 ‘더러움’ 사이에서 이야기는 어떻게든 계속된다. 겉으론 ‘안전’이 제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완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자본주의를 비트는 유머러스함, ‘삶(life)’을 ‘리튬(Li)’과 ‘철(Fe)’로 나누고 ‘신발 끈’을 ‘신 발끈’으로 치환하는 천진난만함이 이 모험을 가능케 한다. 기분 좋은 어지러움이 한가득하다. 이상하다. - 오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