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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들어가는 말 I. 게릭의 삶과 인품 II. 저서 III. 신비 신학 IV. 게릭, 영적 생활의 스승 V. 관상적 공동체 - 사랑의 학교 VI. 게릭이 미친 영향과 변함 없는 가치 대림절 강론 첫 번째 대림절 강론 두 번째 대림절 강론 세 번째 대림절 강론 네 번째 대림절 강론 다섯 번째 대림절 강론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네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다섯 번째 주님 성탄 대축일 강론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네 번째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주님 봉헌 축일 강론 첫 번째 주님 봉헌 축일 강론 두 번째 주님 봉헌 축일 강론 세 번째 주님 봉헌 축일 강론 네 번째 주님 봉헌 축일 강론 다섯 번째 주님 봉헌 축일 강론 사순절 강론 첫 번째 사순절 강론 두 번째 사순절 강론 성 베네딕토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성 베네딕토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성 베네딕토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성 베네딕토 대축일 강론 네 번째 성 베네딕토 대축일 강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강론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첫 번째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두 번째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세 번째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네 번째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강론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기원(祈願)의 날 강론 주님 승천 대축일 강론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네 번째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첫 번째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두 번째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세 번째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네 번째 성모 승천 대축일 강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강론 첫 번째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강론 두 번째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강론 모든 성인 대축일 강론 시편을 노래함에 있어 경건한 마음을 일깨우는 강론 |
Magddalena 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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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모습(모상, 이미지)
모상(Forma), 모습을 갖추다(formare), 모양새를 갖추지 않은(informare)이라는 용어들은 시토회 사부들에게 핵심어였다. 게릭은 특히 성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4장 19절을 익히 배워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우리 안에 “모습을 갖춤”의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다. 새롭게 되다(reformatio)(로마 12,2), 같은 모상이 되다(conformatio)(로마 8,29),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다(transformatio in imaginem Christ)(2코린 3,18)이다. 수도승이나 그리스도인은 두 번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지배적인 주제이다. “그리스도의 모상에 따라 모습을 갖추어가다.” 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게릭은 그의 수도승들에게 그리스도의 전체 삶이 변화되어가야 한다(formare)고 말하고, 이에 따라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서 모습을 갖춰가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서 forma는 단지 타입(Typus)이나 “현상 양태”가 아니라, 오히려 인과적으로 미치는 영향이라고 말한다. 마치 어떤 견본이나 주형에 재료를 넣어서 그 본 대로 유형을 만들어내듯이, 그리스도의 모상은 인간 안에서 신적 은총의 형상으로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다. 그 배경에는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불가항력적인 인과성(원인성)에 대한 설교가 있다. 베르나르도 역시 한 번은 하느님 자신이 모상(forma)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게릭은 모상(forma)과 만들다(formare)를 은총의 신적 근원이라고 말한다. 시토회 사부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상(forma Christi)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imago Dei)과 일치한다. 그들은 삼위일체적 구성 안에서 인간 안에 있는 imago Dei, 하느님 모상에 그들의 신비의 기초를 두고 있으며, 게릭은 모상(forma), 즉 그리스도의 모상에서 맴돌고 있다. 전통 안에서 그리고 게릭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상(forma)과 exemplum의 개념 안에서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하는(nach-bilden) 본보기(Vorbild)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과 행위의 신비(Mysterien)는 은총을 베풀어 주는, 즉 “성사(Sacramente)”이며, 그것은 상징적으로 묘사된 것이다 --- p.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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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강론집들은 하나의 고유 문학 장르에 속한다. 그것들의 본질적 요소는 청취자들을 상대로 상황이나 환경을 생생하게 구두로 묘사해내는 화법이었다. 게릭과 베르나르도 그리고 다른 중세의 유명한 저자들의 강론은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것과 똑같은 본래의 형식 그대로 보존된 것이 거의 없다. 베르나르도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강론들과 서간 모음집은 출판하기 전에 교정을 본 것들이다. 중세 설교가들은 완전하게 작성된 텍스트를 들고 설교대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강론 초안만 가지고 설교했으리라는 추측이다.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서 아주 짧거나 아주 상세했을 것이다. 나중에 그것을 문학적 기술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직접 교정했거나 그들의 지시를 받은 비서 혹은 직원, 제자들이 그 작업을 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 저자의 사망 후에 그런 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편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청취자가 속기로 강론을 받아썼거나, 기억을 더듬어서 기록한 것은 예외이다. 일반적 규범으로 보아 중세의 설교는 설교 형식이 아닌 문학적 관점에서 봐야 하고, 후대에는 “강론 독서”로 전해졌다.
모든 시토회 아빠스들과 마찬가지로 게릭 또한 적어도 한 해에 15회 정도 전체 수도 공동체를 위한 강론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공동체가 클 경우, 전례력의 절정 시기에는 조수도자들도 아빠스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십자 회랑의 집회실 창문을 열어놓고 들었다. 게릭은 어떤 언어로 설교했을까? 조수도자들은 성무일도, 성경 텍스트의 교회 라틴어는 이해했겠지만, 과연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 작가들의 학습된 라틴어 강론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게릭이 그의 형제들에게 모국어로 말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후차적으로 교정을 받은 강론이라는 개념을 밑받침 해주는 논증이다. 어느 누구도 게릭 만큼 수도승 양성 기간에 직접 베르나르도의 지도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베르나르도가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이보다 더 거룩한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게릭 아빠스의 영성이 녹아든 강론집은 사제들의 강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