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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시작에 관하여 시와 달 감상주의에 관하여 테마에 관하여 비밀에 관하여 두려움에 관하여 광기, 고통, 그리고 달콤함 나의 에밀리 디킨슨 누군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에 질서가 있다는 징표 편지에 대한 고찰 캥거루 해변 나는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스물두 편의 짧은 강의 내가 결코 하지 않을 강의들 감사의 말 참고 문헌 |
Mary Rue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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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을 때마다 나는 기꺼이 죽는다. 다른 사람의 말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누군가 감정을 추하게 타락시킨 자리에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당신은 내 죽음을 준비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 p.97 시의 기원은 명백히도 모호함과 은밀함, 주문과 주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주술은 신성한 힘을 불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지켜야 하고, 비밀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감추어야 한다. --- p.106 우리 가운데 누가 신경증적이지 않으며, 이해받지 못한다고 불평 한번 해본 적 없겠는가? 당신이 이곳에 온 것도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이해받기를, 비밀을 나누는 유대감 속에서 그들에게 안기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안기고 싶다. --- p.119 어떤 의미에서 독서는 커다란 시간 낭비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독서는 시간의 커다란 확장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한 번의 생애 안에서 1001개의 삶을 살아보는 방법이며, 거대한 비인격적 우주가 작동하는 모습을 거듭 바라보게 하고 거대한 개인의 정신이 그 우주와 맞서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고통과 나약함과 상처를 겪고, 죽고, 사랑하는 이들이 죽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방법이다. 마침내 그 모든 것에서 오는 현기증 자체가 우리 자신에 대한, 오직 우리 힘으로 만들어낸 언어에 대한 연민의 원천이 될 때까지. --- p.243 내가 지고의 기쁨에 대해 말한 적이 있던가? 그것이 내가 독서를 하는 이유다. 나는 모든 게 괜찮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외로운 아이였을 때도 그런 이유로 읽었고, 두려움 많은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이유로 읽는다. --- p.244 내가 이해하는 것은 나를 사로잡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만이 나를 사로잡는 힘을 가진다. --- p.254 문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일이 나는 너무도 지겹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방 안에 앉아 워즈워스나 애슈버리의 시에서 주체성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죽은 이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책을 통해 나에게 이 세상의 삶에 대해 편지를 썼고, 나는 거기에 답장을 쓰고 싶었다. 그래, 집, 다리, 강, 머리카락, 아니, 어쩌면, 결코, 영원히, 라고. --- p.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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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유 재산』 메리 루플의 강의 모음집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작 비평의 언어 바깥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 산문집 『나의 사유 재산』과 『가장 별난 것』으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미국 시인 메리 루플의 강의 모음집 『광기, 고통, 그리고 달콤함』이 출간되었다.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이 작품은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리 루플의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비평과 강의, 시론과 에세이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글을 시작한다. “정말이지, 내가 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의 작은 표류이자 유랑이라는 것 말고는.” 그러나 평생을 시와 문학에 헌신해 온 시인이 정형화된 이론이나 작법 강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써낸 이 경이로운 글들은 기존 비평 담론의 바깥에서야말로 얼마나 새롭고 깊은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는지를 새삼 보여준다. 루플은 시에 관한 독창적인 주제들을 열네 편의 글을 통해 펼쳐 보인다. 그는 시를 하나의 지적 체계로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시를 향한 생각이 어떻게 또 다른 생각으로 옮겨 가는지 즐겁게 관찰하고 사유한다. 몇몇 글은 전통적 비평의 모습을 띠지만, 대부분은 혼종적이고 파편적이며 때론 자전적으로 쓰였다. 인용과 은유, 도약과 회고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루플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내가 시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나만의 방식과 용어로 한 걸음 한 걸음 익혀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식들이 내게 지루해졌을 때, 나는 내 방법론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내 강의들이 점점 더 파편화되어 가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거스르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루플은 약 15년간 반년에 한 번씩 문예 창작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쓰는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완결된 강의 원고를 쓴 뒤 그것을 학생들 앞에서 읽었다. 첫 번째 장 〈시작에 관하여〉는 시의 시작과 끝이라는 시단의 오랜 논쟁적 주제를 다루는데, 독자는 첫 페이지부터 이 글이 대개의 강의나 학술적 글쓰기와 달리 은유적이고 연상적인 방식으로 쓰였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는 루플이 끝내 완성하지 않은 강의들을 모은 마지막 장 〈내가 결코 하지 않을 강의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가 슬플 때, 슬픈 얼굴을 한 인형은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해준다.”라는 문장에 연이어 이렇게 쓴다. “워크숍에서 보게 되는 많은 시들의 문제는, 그 시들이 행복과 슬픔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의 시에는 얼굴이 없다.” 흠결이 매혹이 되는 메리 루플의 세계 이 글들은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글 중 하나인 〈비밀에 관하여〉를 보자. 우리가 태아였을 때 자궁 속에서 엿듣던 세상의 비밀부터 표현(말해진 것)과 억압(말해지지 않은 것)이라는 비밀의 양면성까지, 루플은 삶에 얽혀 있는 비밀들의 여러 층위를 파고든다. 무엇보다 개인적 경험에 깊이 뿌리내린 그의 글은 내밀한 감정이나 취약함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흔들림 없는 통찰을 보여준다. 루플은 다시 한번 고백한다. “당신이 이곳에 온 것도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이해받기를, 비밀을 나누는 유대감 속에서 그들에게 안기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안기고 싶다.” 메리 루플의 이런 고유한 면모를 박연준 시인은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짚어낸 바 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와 없는 작가. 메리 루플은 전자다. 자신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면, 산발한 채 퀭한 얼굴로 침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는 작가다. 독자들은 영리해서, 그리고 영리하므로 이런 작가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눈물 닦고, 눈곱 떼고, 머리 빗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생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근사할 순 있지만 사랑하고 싶어지진 않는다. 이상한 일이지.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별난 것』 ‘추천의 말’ 중에서) 재미있게도 이 강의 모음집에서 루플은 강의라는 형식을 비판하고, 강의하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한다. “라마크리슈나는 말했다. 천국에 가는 것과 천국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강의를 택할 것이라고. 그 말은 놀랍도록 사실이며, 놀랍도록 슬프다.” 강의에 대한 그의 복합적인 태도가 더욱 또렷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나는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에 대해 단 하나라도 배운 사람이 있다고는 한순간도 믿어본 적이 없다. 오해하지 마시길. 강의는 시에 대해 어떻게 말할지를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강의는 시를 어떻게 쓸지에 대해선 결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리고 책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내 강의는 끝났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 내가 원래 그래야 했던 것처럼.” 이토록 지혜롭고 엉뚱한 문학 강의를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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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작가 중 루플만큼 시의 기묘한 마법을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쓴 사람은 없다. 그는 시를 쓰는 행위에 깃든 이상한 신비를 인정하고 찬미한다. 시란 무언가를 지키면서 드러내고, 넌지시 암시하면서도 한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케니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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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현명함과 엉뚱함은 나란히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끈다. 얼마나 많은 독자가 그 매력을 알아볼까? 이것은 내가 지난 수년간 읽은 가장 지혜로운 책 중 하나다. 시인들만 이 책을 읽는다면 아쉬울 것이다. 루플은 시의 소중함 같은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 정신이 자유롭게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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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엄밀한 지성과 단단한 비평 정신, 그리고 묽고 다정한 마음이 건네는 선물이다. 루플은 시에 관한 글쓰기라는 까다로운 과업을 한 편의 시적인 작품으로 빚어냈다. 이 책이 훗날 이러한 혼종적 글쓰기 형식의 고전으로 기억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 《더 럼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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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고, 예측 불가능하며, 매력적이고, 더없이 재미있다. 이 격식 없는 강의는 비슷한 종류의 다른 글들보다 훨씬 더 오랜 여운을 남기며 활기차다. 독자들은 감탄과 즐거움을 안고서 책장을 덮을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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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플의 목소리는 드넓으면서도 지적으로 유연하다. 정체성과 서사에 얽힌 난해한 질문들을 풀어내다가도 한순간에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이야기로 훌쩍 옮겨 간다. 특히 낡고 뻔한 진리나 안일한 사고를 지루해하는 그의 태도는 때로 답답함과 노여움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신선한 활력을 자아낸다.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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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플의 글은 기민하면서 다의적이기에 독자의 예상을 자주 거스른다. 그가 너무 멀리 나아갔거나 인용과 참고 문헌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 보이는 순간에도, 갑자기 능숙한 통찰력을 발휘해 흩어진 연결고리를 단숨에 꿰어 맞춘다. 루플은 모르는 체하며 딴청을 피우다가도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어 거의 잔인할 정도로 정밀한 지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은 정형화된 에세이도, 글쓰기 기법을 가르치는 강의도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시를 빚는 기예가 명확히 자리하고 있지만 말이다. 콜리지와 키츠, 바타유와 바르트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녹아 있으며, 사이 트웜블리와 존 크로 랜섬을 한자리에 불러들이는 솜씨를 드러낸다. - 《걸프 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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