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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한국 독자 여러분께 신숙옥, 나의 주인공 제1부 호루몽 0 자이니치와 호루몽 1901 할머니의 꿈 -간토대지진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 1934 조선인의 딸 -모스크바 3상회의 1953 마작과 결혼한 남자 1959 멋진 조선인 1965 낙원으로 떠난 사람들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1967 경계인의 학교 1977 여기 남아 -통명과 본명, 본명선언 1980 나를 사달라고 1985 사람이 자라는 회사 -여성차별철폐협약 1990 어머니가 고른 국적 1999 사과하고 싶지 않다면 2000 이시하라는 물러나라 -삼국인 2002 극우의 표적 2013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 2017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인류관 사건 -오키나와 평화 운동 2018 반격 2021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2023 함께 살아가요 -DHC와 NO 재팬 제2부 여자, 자이니치, 그리고 싸움 -신숙옥, 민지형 대담- 여자는 평생 싸울 수밖에 없다 죽을 거냐, 지옥에 갈 거냐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와 한국 남자 살아남는다는 것 좋아하는 사람만 도울 순 없으니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반경 5미터의 활동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마흔에 시작된 싸움 가족 참 어렵다 미디어 속 한국 군대와 서바이벌 차별의 본질 더 많은 프리라이더를 만들자 제3부 어느 싸움의 기록 2017 - 2023 『뉴스여자』 방송부터 재판까지 판결문 |
シン.スゴ,辛 淑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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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몽(곱창구이)은 자이니치의 문화입니다.
일본인이 내버린 내장을 주워 먹으면서 살아남은 것이죠. 산다는 것은 이기는 것입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찬가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죽을 만큼의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 p.18 잠든 채로 걸어 다니는 할머니에게 숙옥은 물었다. “할머니, 무슨 꿈을 꾸는 거야?” “일본인이 쫓아와.” 할머니는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했다. 평생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하염없이 헤매던 할머니의 모습은 숙옥에게 간토대지진을 영원한 현재로 각인시켰다. --- pp.22-23 처음에 나는 돈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가 새지 않는 집에 살고 가난에서 해방되면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돈 걱정을 하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후에도 행복해지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고통, 슬픔, 마음의 상처들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죠. (중략) 저는 조선 여자이고 가방끈도 짧아서 먹고살 수 있다는 게 기적이거든요. 그 기적은 내가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그 운을 나만을 위해 쓰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 p.103 생각나는 사람한테 전화하고, 또 생각나는 사람한테 전화하고… 근데 거짓말처럼 전화 걸 사람이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싸우는 동안에는 외롭다고 느꼈지만, 차분히 돌아보면 같은 마음으로 함께해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요. --- p.140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상대가 내 취향이든 아니든, 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가족에 대해서도 솔직히…. 우리 언니도 트럼프를 너무 좋아한다니까요! (웃음) 그렇다고 언니 집에 쌀을 안 가져다줄 수는 없잖아요. --- p.149 이건 아주 작은 활동이에요. 반경 5미터의 활동을 제대로 하자는 취지의. 내가 5미터만큼 하고, 내 친구가 5미터만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5미터를 하면 점점 넓어질 테니까…. 결국 세상은 그런 것으로만 바뀔 수 있어요. --- p.161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은 이제 겨우 가시화되었어요. 지금껏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되어 있던 문제인 거죠. 어느 쪽이 먼저냐가 아니라, 차별이라는 두꺼운 벽에 다 함께 망치로 구멍을 뚫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 pp.196-197 그래도 우리가 그렇게 힘들었으니까 다음 세대는 프리라이더(Free Rider, 무임승차자)가 되어줬으면 하는 거예요. 다음 세대가 같은 싸움을 안 해도 되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성과인 거죠. 그게 인간으로서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라고 생각해요. ---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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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이기는 것입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찬가입니다.” 이 책의 출발점에는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호루몽』이 있다. 일본 유학 시절,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처음 신숙옥을 본 이 감독은 우익 논객들의 말을 거침없이 받아치는 그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었다. 훗날 다시 만난 신숙옥에게 그는 “신숙옥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했고, 그 만남은 영화 『호루몽』으로 이어졌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호루몽』은 제22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과 시청자·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이어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까지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확인했다. 영화의 제목인 호루몽(ホルモン)은 일본에서 소나 돼지의 내장 요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버리는 것(放る物)’을 의미하는 간사이 방언에서 유래했으며, 조선인들이 이 버려진 내장을 구워 먹으며 삶을 이어가던 것이 대중화되었다고 전해진다. 버려지고 배척당한 자이니치의 시간이 새겨진 음식인 셈이다. 본명을 감추고 일본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의 고통,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음지로 내몰린 이들의 분노,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던 이들의 회한이 이 한 단어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싸웠고, 결국 살아남았다. 신숙옥과 그의 가족이 걸어온 길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제목이 있을까. 영화가 신숙옥과 여성 3대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다면, 책은 그들의 생애를 자이니치 100년의 역사 속에서 더욱 깊이 들여다본다. 간토대지진을 겪은 할머니의 악몽, 북한으로 떠난 가족에게서 날아온 편지, 조선학교에서의 폭력,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 했던 이름과 직업…. 국가와 민족, 이념과 차별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한 가족의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든 경험이 신숙옥이라는 사람에게 남긴 흔적이다.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던 아이는 차별의 의미를 깨닫고, 가난과 가족의 폭력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젊은 여성은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이 그의 싸움을 끝내주지는 못했다. 자신이 겪은 차별이 결코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숙옥은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자이니치의 문제를 넘어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문제와 여성, 장애인, 이주민의 싸움에까지 뛰어든다. 이 책은 그 답을 한 개인의 특별한 성격이나 타고난 용기에서 찾는 대신 그가 지나온 시간과 그를 둘러싼 역사를 통해 이해하게 한다. ‘한 많은 이 세상’에 던져진 여성들 그 위태로우면서도 강인한 연대에 대하여 『호루몽 - 살아남은 여자 신숙옥의 투쟁기』가 특히 매력적인 것은 한 인물의 생애와 가족사, 역사 해설, 생생한 대담, 실제 법정 기록이 한 권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는 점이다. 1부 ‘호루몽’은 1901년생 외할머니 이백란, 1934년생 어머니 김계선, 1959년생 신숙옥으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삶을 연대기 형식으로 따라간다. 특히 1999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TV 토론과 2017년 『뉴스여자』의 혐오 방송 등 신숙옥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들을 통해, 차별받던 소녀가 사업가를 거쳐 사회운동가로 성장하고 거대 기업과의 싸움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 통명과 본명, 삼국인, 인류관 사건, 오키나와 평화 운동처럼 한국 독자에게 낯선 사건과 개념을 별도 항목으로 정리했다.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지는 순간, 마치 백과사전을 펼쳐보듯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아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2부 ‘여자, 자이니치, 그리고 싸움 - 신숙옥, 민지형 대담’에서는 지금의 신숙옥을 ‘필터 없이’ 만난다. 라우더북스 대표이자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의 작가 민지형과 마주 앉아 가족과 여성, 차별과 연대, 사랑과 돌봄에 관한 생각을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놓는다. 신숙옥은 민지형의 소설을 일본어판으로 읽었다면서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눈치 못 채냐, 이 바보 남자야!’ 하고 말해주는 책이랄까”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들이 치열하게 싸운 만큼 다음 세대에는 더 많은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가 생겨나기를 바란다는 신숙옥. 그 거침없는 한마디 한마디에 오랜 세월 싸워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철학이 담겨 있다. 3부 ‘어느 싸움의 기록’에서는 신숙옥이 맞서 싸운 혐오의 실체를 법정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뉴스여자』의 허위 방송으로 시작된 대기업 DHC와의 6년간의 싸움을 사건 연표와 실제 판결문을 통해 따라가며,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은 혐오와 거짓에 어떻게 법적 책임을 물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평전이자 역사 입문서이고, 인터뷰집이면서 법정 기록이기도 한 『호루몽 - 살아남은 여자 신숙옥의 투쟁기』는 한 여성이 무엇을 겪었는지뿐 아니라, 그 모든 일에 어떻게 맞섰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혐오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한발 내디딜 것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신숙옥은 머리말 ‘한국 독자 여러분께’에서 차별과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선 한국 여성들을 호명한다. “페미사이드에 맞서 끝까지 싸우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한국은 멀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당신과 이어진 것이 정말로 기쁩니다. 당신도 혼자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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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그럼에도 신숙옥은 내게 늘 커다란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가장 위태롭고 취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가장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행보를 거침없이 이어갈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활짝 드러낼 수 있는 걸까. 그 모든 분노와 고통 앞에서 어떻게 감히 ‘함께 살자’고 외칠 수 있는 걸까. 그토록 용감하고 당당하게. 그처럼 우아하고 유쾌하게. 대체 무엇이 지금의 그를 만든 걸까. 또 그는 지금 무엇을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이 책이 너무도 반갑고 고맙다. 엄혹한 시대를 맨몸으로 맞이하고 맞서다 결국 ‘살아낸’ 신숙옥 집안 여성 3대의 역사를 마주하며, 우리는 자연스레 이 세상의 수많은 또 다른 신숙옥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냈음’을 새삼 절절하게 깨닫게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뿐이라는, 또 우리는 그렇게 힘들었으니 다음 세대는 좀 덜 힘든 세상에 ‘무임승차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놀랍도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말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한다. 역사가 그를 만들었고, 그는 다시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제 그는 역사의 일부이자 주인이다. - 윤가은 (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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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 3세 신숙옥에게 조선인이라는 인식은 부끄럽거나 고통스러운 자각이 아닌 ‘뜻밖의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그는 뜨는 해를 뜬 눈으로 마주 보는 삶을 살아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조센징’으로 알아보는 자들의 시선 따위는 챙기지 않았다. 신숙옥은 자기의 힘으로 자신을 알아보려 애썼다. 이름의 힘은 세다. 호루몽이 가진 ‘버리는 것’의 의미는 서서히 잊힐지언정 호루몽은 그 뜻을 끝내 움켜쥐고 있다. 여성, 약자, 인권 운동가, 소수자로서의 삶을 인식한 채 나아가는 신숙옥의 이름 또한 오래 남을 것이다. 차별의 흔적이 아닌 투쟁과 연대의 이름으로. 그의 싸움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품은 채 매일 새로 시작된다.
이 책은 신숙옥의 지금을 펼쳐 보인다. 한 사람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자이니치로서의 삶을 통해, 살아내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나’ 혹은 더 넓은 ‘우리’의 힘을 상상하게 한다. 우리는 이 책 한 권으로 자이니치의 삶을 전형화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확신했다. 여성 중에는 싸움꾼이 많다. 여성이라서 더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들이 좋다. 싸워대는 자신을 끝내 좋아하는 신숙옥처럼, 나도 나를 좋아하고 싶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의 힘을 이 책으로 건네고 싶다. - 임진아 (에세이스트, 삽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