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추천사 - 김동현 » 5
서문. 가자를 기록하기, 가자를 변혁하기 - 배세진 » 11 다시 쓰는 투쟁의 기록 - 백종관 » 15 ‘서사적 전환’을 지속하기 - 최가은 » 41 커버링 팔레스타인 - 오학준 » 71 가자를 위한, 철학이란 무엇인가? - 배세진 » 109 부록.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금붕어, 레닌, 그리고 가자 - 배세진 » 145 용주골과 가자의 접면에서, 응답하기 - 한유리 » 171 거리에-있기, 팔레스타인에-묻기 - 강정섭 » 193 피드 너머의 가자 - 이민혜 » 235 페어와 폐허 사이, 펴내기, 펴내지 않기 - 지다율 » 257 대화. 우리는 왜, » 287 대담. 가자를 사유하다 - 에티엔 발리바르, 루카 살차 | 이세진 옮김, 배세진 감수 » 325 |
배세진의 다른 상품
최가은의 다른 상품
오학준의 다른 상품
이민혜의 다른 상품
한유리의 다른 상품
|
우리가 아는 연대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 당신은 인식의 순간을 늘려가 주기를 바란다. ‘이미’ 충분히 다 알거나 ‘아직’ 모른다는 이유로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은 되돌아봐 주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도저히 무얼 더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그 무지를 우리와 거리에서 나눠 주기를 부탁한다. 그 모든 용기를 내는 데 이 책이 발판이 되어 줄 것이다.
--- pp.6-7 지식인의 글은, 우리의 글은 과연 해방의 효과를 생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다지 대단한 근거 없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언한다. 이는 지식인으로서 내가 글쓰기에 관해 가지고 있는 신념 때문이다. --- p.13 이 집단적 에세이는 ‘거리감’을 기만적으로 지워버리거나 자신들이 고통받는 당사자인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리를 사유와 개입의 조건으로 바꾼다. 멀리 떨어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통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바로 그 중심부에서 서구 자본주의와 군산복합체가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학살을 가능하게 하는지 묻는 일이었다. --- p.35 이처럼 낯선 혼란 속에서 이 글을 준비하며 나는 매우 자주, 충실하고 게걸스러운 독자의 자리가 나의, 나아가 우리의 자리라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가자에서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들. 듣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목소리를 향해 귀를 바짝 열고 기다리는 것. 읽기를 강제하는 그 강렬한 활자의 운동을 따라 내 몸을 직접 움직이며 줄을 긋고, 소리 내어 따라 읽고, 더 많은 사람에게로 그것을 전달하고, 가끔 시위대 속에서 행진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인 것은 아닐까. 대체 내가 무엇을 쓸 수 있다는 말일까. --- p.60 저널리스트에게 편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저널리스트에게는 지구라는 명백한 옹호할 자리가 존재한다. 저널리스트도 ‘지구’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구를 건 내기를 반복하는 자들의 반대편에 위치해야 한다. 누가, 무엇이 지구를 걸고 내기하고 있는가? 저널리스트는 가자를 이야기할 때 이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질문을 얼마만큼 잘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럴 수 있는가? 그럴 역량과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그곳의 고립과 포위를 풀고, 진실을 길어 올리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저널리즘의 주변부에서 질문을 던져 본다. --- p.106 그러나……이제 가자로 되돌아오도록 하자. 철학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미 지적했듯 여기에는 ‘가자를 위한’이라는 말을 추가해야만 한다. 그것이 없다면 이 질문은 쓸모없어지고 말기에. ‘가자를 위한’과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두 어구의 결합에서, 전자는 데리다식으로 말해 ‘대체보충물supplément’의 지위를 점하고 있기에. 지금 여기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현실의 오늘날 ‘이후’, ‘가자를 위한’이라는 대체보충물 없이 철학이란 무엇인지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자를 위해서만 철학은 실존한다. 가자를 위해 투쟁하고 봉사하지 않는 철학은 철학을 파괴한다. 철학은 과학과의 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와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다. 그래서, 가자를 위한 철학이란 무엇인가? --- pp.135-136 이스라엘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주거지를 파괴한다. 그중에서도 용주골에서의 주거지 파괴와 가장 강하게 공명하는 방식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불법 건축물로 규정해 강제 철거하는 가옥 파괴 방식이다. 파주시가 불법·위반 건축물 정비라는 행정적 명분을 내세워 용주골 여성들의 집과 직장을 철거했듯, 이스라엘 역시 건축 허가가 없거나 소유권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등의 명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 p.186 “가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은 모든 연구가 가자를 직접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폭력, 기억과 책임을 말해 온 학문이 가자 앞에서도 자신의 언어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이다. 집단학살을 기억하고 분석하며 예방하겠다고 약속해 온 학문이 오늘의 가자를 외면한다면, 그 학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가자를 외면한 채 보편과 인권, 기술과 진보, 기억과 제노사이드를 계속 말할 수 있다면, 그 학문의 보편은 누구를 제외함으로써 성립해 온 것인가. --- p.213 만약 가족들의 피와 시신 사이에 홀로 살아남아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외치는 주체가 6살짜리 아이가 아니라, 30대 팔레스타인 남성이었다면 이 영화가 널리 상영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남성이 적신월사 상담원과의 통화에서 공포에 떨며 우는 대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스라엘의 점령 체제를 비난하고 점령군에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을 내세웠다면? 우리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소비하는 연대의 감정이 타자의 온전한 실재를 향한 진짜 연대인지, 아니면 체제가 안전하게 허용한 무해한 슬픔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 p.249 어쩐지 나는 페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는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서, 저 실존하는 폐허들 사이에서, 조금 더 고민하고 한 번이라도 더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2026년 한 해 동안 페어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 p.269 실제로 작금의 범죄가 통탄할 만한 침묵까지 덧입지 않게 하려면 그에게서, 그리고 다른 몇몇 인물에게서(가령, 다르위시의 친구 에드워드 사이드라든가) 영감을 구해야 합니다. 입을 열어 봤자 자신의 무력함을 말할 수밖에 없으니 심히 굴욕적이지만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침묵은 그 자체가 이미 공범이니까요. 당신이 보내 준 질문지를 읽어 보고서 거기에 제대로 답변하기에는 내 앎이 너무 ‘모자라다’는 것을 대번에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깨달았지요. --- p.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