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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왜 기어이 유전자 믿어볼까요 세렝게티는 죽지 않는다 사자의 결심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메뉴판은 됐고요 교실에 다녀와 나의 너 사랑이라는 흔한 말 어린이문학 사자를 쓰는 마음 작가의 말 |
以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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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후, 아이에게 말했다. 응, 그건 거짓말이야. 아이는 내게 다시 물었다. 서른은? 서른 되면 좀 쉬워져? 정직만은 꽤 보장하는 엄마로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마흔도 안 그래. 쉰도 안 그래. 예순도 안 그럴걸? 이게 원래 안 쉬워. 아이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건 정직한 대답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조언이었다. 좀 심술궂은 마음인지 모르지만 이게 원래 어렵다는,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사는 일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은 위안이 된다. 나만 못나서 이러고 내내 서투른 게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어려운 게 아니라, 원래 이 일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p.10 「왕과 나」 중에서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수백가지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지고, 다큐멘터리를 외우도록 되풀이해서 봤다. 낮이고 밤이고 눈만 뜨면 사자 다큐멘터리를 주야장천 틀어놨더니 하루는 밥을 먹다 말고 딸이 그랬다. 엄마, 밥 먹을 때는 좀 끄면 안 돼? 집에서 누린내 나는 거 같아. 그 말을 들으니 마침내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냈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나는 사자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pp.27-28 「왜」 중에서 나중에는 그냥 장단을 맞췄다. 보석처럼 예쁘게 깎은 까만 플라스틱이 촘촘히 박힌 반지를 끼고 학교에 갔던 날이었다.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던 5학년 여자 어린이들이 나를 흘금거리며 수군거렸다. 무슨 일이냐 묻자 한 어린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거…… 블랙 다이아몬드예요? 나는 웃음을 질끈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린이들의 웅성거림은 감탄이 되었다. 그래도 개중 어른은 믿을 바 못 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듯한 어린이가 다시 물었다. 블랙 다이아몬드도 있어요? 나는 자못 도도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설마 가짜 보석을 하고 다니겠어요? 어린이들의 감탄은 거의 감동이 되었다. 대박, 다이아몬드가 열개도 넘는대! 도대체 얼마나 부자이신 거야? ---pp.104-105 「메뉴판은 됐고요」 중에서 한달째 아프리카 여행 중이었고, 툭하면 아이 러브 아프리카 타령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너의 사랑입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는커녕 대거리 한마디도 못했다. 그녀의 아프리카에 대한 혐오적 태도에 분노했지만, 나 또한 그런 상황이 불편했다. (…) 나 또한 먹고살 걱정 없는 먼 도시에서 온 이방인일 따름이었다. 핀다 캠프의 뒷마당을 생각하면 가져보지 못한 고향을 떠올리듯 마음이 따듯해지고, 세렝게티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하지만, 나더러 그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칠 것이다. 그러므로 네번의 아프리카 여행이 아무리 아름다웠대도, 내가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을 썼대도, 그곳을 모욕하는 이에게 분노한대도, 그곳의 현실이 마음 아프다 해도, 나는 차마 내가 아프리카를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그렇다면 이 내 마음은 뭘까? 사랑이 아니라면 이것은? ---pp.165-167 「사랑이라는 흔한 말」 중에서 나는 지수 옆에 가만히 다가앉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어린이문학의 일이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마음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빚어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들려준다. 어린이는 이야기를 통해 그런 마음들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금쯤 덜 외로워진다. 곁에 있는 친구의 마음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털어놓을 수도, 서로 다독여줄 수도 있게 된다. ---p.176 「어린이문학」 중에서 그거면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오늘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물집이 생기지 않는 거였고, 알맞은 때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였고, 그늘이 나와주는 거였다. (…) 어제와 내일 같은 건 감히 오늘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는 오늘을 살았다. 『푸른 사자 와니니』에서 무리에서 쫓겨나는 한살 난 와니니에게 엄마들은 말한다. 오늘 네가 할 일을 해. 그러면 내일이 올 거야. 어쩌면 그 대목을 좀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열심히 살면 오늘이 온다. 그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간이다. ---p.188 「사자를 쓰는 마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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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수는 있으니까”
월급도 퇴직금도 없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산다는 것 첫 책을 내고 전업 작가가 되자 현실이 닥쳤다. “월급도, 퇴직금도, 해고수당도 없다. 게다가 나는 싱글맘이었다.”(38면) 그래도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밥벌이로 삼는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압도적인 송곳니도, 남다른 속도도 없이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달리는 아프리카들개처럼, “쓸 수는 있으니까”(112면) 쓰고 또 써서 아이를 키웠다. 그 집요함은 집필 방식이기도 했다. 사자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작가는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쓰냐는 말에는 “그럼 타임머신 타고 가서 역사동화 쓰고, 에스에프 쓰냐?”(27면) 하고 큰소리친 뒤, 책과 다큐멘터리로 초원을 파고들었다. 딸이 “집에서 누린내 나는 거 같아”(28면)라며 항의할 정도였다. 그렇게 초원에 발 한번 들이지 않고 쓴 『푸른 사자 와니니』는 열권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밥벌이의 결산도 유쾌하다. 한병에 6천원 하는 유자주스 앞에서 망설이던 시절을 지나, 이제 강연장의 어린이들은 작가가 테슬라쯤은 타는 줄 안다. 까만 플라스틱 반지를 블랙 다이아몬드로 오해한 어린이들에게 “설마 가짜 보석을 하고 다니겠어요?”(105면)라며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성공에 운이 따랐다고 말하다가도 “저기, 제가 실력이 없다는 말씀은 드린 적 없습니다만?”(115면) 하고 받아치는 목소리가 통쾌하다. “편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딸과 어린이들, 교실과 초원의 생명 곁에 서는 일 밥벌이보다 어려운 건 엄마 노릇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어떤 면으로 ‘천덕꾸러기’였던 작가는 고학년이 되자 느닷없이 ‘서울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우량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교과서보다 만화책을 챙기던 우량주에게 돌아온 것은 날 선 질책이었다. 그래서 딸에게만큼은 공부나 성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았다. 뭐든 네가 행복한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하며, 자신이 갖고 싶었던 엄마가 되었다고 뿌듯해하던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 아니야?” 어린 시절의 부담을 고스란히 덜어주었으니 계산대로라면 좋은 엄마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돌아온 건 정반대의 의심이었다. “인생에는 도무지 수식이 적용되지 않는다.”(45면) 문학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이들이 사자도 사냥에 애를 먹는다는 생태의 재미를 알아줄 줄 알았지만, 정작 아이들 마음에 닿은 건 무리에서 쫓겨난 와니니의 처지였다. 학교를 찾은 작가에게 건넬 포스트잇에 어린이들은 자신이 “쓸모없는 아이인 것 같다고 연필로 한 자 한 자 적었다”(47면). 고민 끝에, 그리고 그 뒤로도 어린이들을 계속 만나며 알게 된 것은 그래도 아이들이 “기를 쓰고 괜찮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아이들이 가장 사랑한 캐릭터는 뜻밖에도 다리를 저는 떠돌이 수사자 아산테 아저씨였다. 작가조차 “응? 그 아저씨를?”(53면) 하고 놀랄 정도였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되묻자 어느 날 한 어린이가 답했다. “편이 없으면 와니니는 어떻게 살아요?”(53면) 특별하다고 장담하는 대신 ‘괜찮다’고 말해주는 내 편. 어쩌면 아산테 아저씨는 작가의 “어린 마음이 꿈꾸던 내 편”(54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글 또한 아이들 곁에 그렇게 머물기를 바란다. 돌봄의 시선은 초원의 생명에까지 닿는다. 엄마에게 “내가 사자를 낳았구나”(77면)라는 말을 듣던 육식주의자는 고기를 끊고,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다 보호구역에서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누던 어린 기린이 사자들에게 사냥당한 밤, 생태라는 말로는 다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을 마주한다. “다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너”(148면), 이현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네가 기어이 그랬구나” 세렝게티에서 산티아고, 그리고 낯선 바다까지 마침내 찾아간 세렝게티. 항공권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60면)는 작가는 머릿속으로만 그린 풍경이 틀렸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지만, 초원은 상상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나는 가보지도 않고 제법 갔다 오기라도 한 것처럼 동화를 썼던 것이다!”(63면) 사냥에는 소질이 없어 “뒷골목의 양아치”(25면)처럼 남의 먹이를 넘보는 수사자, 암컷이 무리를 다스리는 “자못 과격한 페미니스트”(67면) 점박이하이에나도 작가의 입담을 거치면 옆집 이웃처럼 살아난다. 네번의 아프리카 여행은 그에게 쉬운 낭만을 허락하지 않았다. 차를 세우고는 카카오페이 같은 방식으로만 ‘기부’를 받겠다는 ‘원칙 있는’ 경찰, 그 일화를 우스개로 주고받는 여행자들 틈에서 웃음기 없는 눈빛을 하던 현지 가이드 ‘피스’, 한달 내내 “아이 러브 아프리카”(166면)를 외치면서도 기념품을 팔러 달려드는 사람들에게는 투덜대는 여행자. 작가는 속으로 묻는다. 그러니까 그것이 너의 사랑입니까? 그러나 곧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 역시 먹고살 걱정 없는 먼 도시에서 온 이방인일 따름이었다. 세렝게티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여기면서도, 그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칠 것”(166면)이라고. 그래서 그는 끝내 이렇게 쓴다. “나는 차마 내가 아프리카를 사랑한다는 말은 못하겠다.”(167면) 쉽게 사랑을 말하는 대신 자신의 불편함까지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이 망설임이 이 책의 여행 이야기를 흔한 여행기와 다른 자리에 놓는다.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를 끝내고 맞은 육십은 “예의상 초대했을 뿐인데 진짜 문간에 나타난 손님”(185면) 같다. 집 청소도 안 끝냈는데 말이다. 그러니 떠나야 한다. 언제는 너한테 명분이 없었겠니, 지인들의 코웃음을 뒤로하고 오른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 몰골이 처참해 그날 만난 순례자들에게 두고두고 “너 아직 집에 안 갔구나?”(187면) 하는 놀림을 듣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갈 버스부터 검색했던 그는 새로 산 트레킹화가 아까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걷다가 결국 498킬로미터를 걷는다. 그리고 그 길에서 삶의 문장 하나를 고쳐 쓴다. “오늘을 열심히 살면 오늘이 온다.”(188면) 책 말미에 이르면 작가는 덮어놓고 등록한 스쿠버다이빙 강좌에서 “워언, 투우, 스리, 고!”(196면) 소리에 바다로 뛰어든다. 죽을지도 모른다며 떨던 작가는 어느새 산호초 사이에서 또 사랑에 빠져 다이버 취업을 궁리한다. “또 이러고 있다.”(197면) “오늘은 또 오늘의 기세로” 정답 대신 기세를 건네는 책 『오늘의 기세』는 이현이 어른 독자에게 건네는 제 삶의 기록이다. “어른에게도 이현이, 그가 쓰는 이런 글들이 꼭 필요하다”(추천사)는 말 그대로다. 이 책은 열심히 하면 반드시 잘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놓치지 말자고, 웃을 수 있을 때 웃자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해온 사람 혹은 그런 희망을 품어본 사람, 아이를 돌보고 가르쳐온 사람, 서른과 마흔과 쉰과 예순의 문턱에 선 사람, 언젠가 떠나기를 꿈꾸는 사람 모두가 이 책에서 자신을 닮은 장면을 만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답을 찾기보다 일단 뛰어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당신도 작가처럼 중얼거리게 될지 모른다. 오늘은 또 오늘의 기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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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에너지로 가득한 에세이를 만난 게 얼마 만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초원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녹록지 않은 인생사 속에서 ‘기어이’ 끌리는 대로 치열하게 살아내고 치열하게 계속 쓰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 어린이들과 그 주변 환경에 관한 고민, 이 세가지 이야기가 자유자재로 교차하면서 초원만큼 넓디넓은 백지 위에 펼쳐지는데, 글이 유려하다 못해 아주 시원시원하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위트와 유머에 정말 몇번을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보다 입체적인 시선까지 ‘기어이’ 끄집어내주는 힘차고 솔직담백한 글. 이건 오직 이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래서 앞으로 그가 동화만큼 에세이도 많이 써주면 좋겠다. 그의 동화를 열렬히 기다릴 수많은 어린이 독자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어른에게도 이현이, 그가 쓰는 이런 글들이 꼭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니 정말 그렇다. - 김혼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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