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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이 내린 약초, 산상을 받는 사람들
2. 열한 살 되민서부터 산에 댕기는 까닭 3. 마지막 석이꾼으로 절벽에 매달려 살아온 30년 4. 우리 땅 으뜸 송이꾼 5.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달콤한 꿀을 딴다 6.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 농사꾼 7. 바다에 돌성을 쌓아 고기를 잡는다 8. 가는 고기는 두고, 드는 고기는 잡고 9. 바다를 텃밭 삼아 살아온 물질 인생 10. 반평생을 소금밭에 바친 짭짤한 인생 11. 산에서 매를 받아 부리는 마지막 매사냥꾼 12. "봄에는 두릅 따구, 여름에는 초피 따구" 13. 쇠를 치고, 춤판을 벌이며 떠돈 50여 년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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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 앞 할미섬 왼편에 남아 있는 그의 독살은 그가 열댓 살 때 부터 거의 매일같이 조금씩 쌓아 약 50여 년에 걸쳐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독살의 나이가 60여 년은 족히 되는 셈.
'하루에 한 개 쌓을 때도 있고, 열흘에 한 개씩 쌓을 때도 있고, 그랬어.' --- p.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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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청은 한마디로 바위 틈에서 나는 토종꿀을 말한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토종 야생벌이 깊은 산속의 바위 틈에 집을 짓고 모아놓은 자연 그대로의 꿀을 석청이라고 한다. 야생벌들이 좁은 바위 틈새에 집을 짓다보니, 석청의 양은 기껏해야 두세 숟가락 정도이거나 많아봐야 한 되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인데, 이 때문에 석청은 예부터 매우 귀한 꿀로 여겨 약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석청꾼이라 함은 바로 이 귀한 석청을 채취하는 일종이 꿀사냥꾼인 셈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석청꾼이 남아 있는 곳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일대와 홍천군 내면 일대, 전북 장수군 산서면 정도이다. 이 가운데 강원도 일대의 석청꾼은 전업 석청꾼이라기 보다는 부업 석청꾼 정도라 할 수 있고, 전업 석청꾼이라 할 만한 사람은 장수군 산서면 이룡리에 사는 최근성 씨(40)가 유일하다. 물론 전업이라 함은 그것으로 업을 삼아 밥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나 옛날 방식 그대로 온 산을 돌아다니며 바위 틈을 찾아 꿀을 채취해서는 많은 양을 채취할 수 없으므로 밥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최씨는 전통적인 석청꾼의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한 방법으로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 pp. 105-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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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들어가구, 일하다 낮잠두 자구 그래유. 들어가 누워 있으면 아무 생각 없어유. 바댁이 바우가 돼 있어 시원하구, 여름엔 저 우에서 또 바람이 내리오니까 시원해유.' 고황용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 밖에 일하다 힘들 때나 새참을 먹을 때도 농막은 휴게실이자 주방이 된다. 또 농막은 밭일에 필요한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 노릇도 겸하고 있다. '호매나 낫 이런 거 이래 여기 놔두구 가유. 안 훔쳐가유. 왜 그런 말 있쥬. 쟁기 훔쳐가면 그 쟁기로 사람 파묻게 된다구유. 호매두 그래유. 이거 가져가면 사람 파묻게 된다구 아무도 안 가져가유.'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막 농사꾼 고황용 할아버지.
--- p.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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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의 느림'에 대한 기록
우리 곁에서 묵묵히 토종문화를 지켜온, 그러나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꾼'과 '장이'들의 살갑고도 눈물겨운 삶의 풍경이 담겨진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꾼』과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장이』, 두 권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급박한 세상에 아직도 미련스럽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유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 급박한 현대의 속도전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느리게 자신의 삶을 밀고 간다. 컴퓨터라는 기계 문명을 신봉하는 젊은이들 눈에는 그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구식'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림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힘이 아닐까. 사실 '꾼'이라 하면, 오랜 세월 하나의 일에 매달려오며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쪽이고, '장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이것저것 만들어 솜씨를 드러내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꾼'이나 '장이'라는 말이, 그들을 홀대하는 말이 아니냐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네 전통적인 서민생활 속에서 '꾼'과 '장이'의 노릇이란, 생산적 노동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며, 살갑고도 눈물겨운 주변부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한갓 초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고, 메를 두드려 낫 한 자루 만드는 것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초막 농사꾼도, 짚신장이도, 대장장이도 우리 역사에서 영영 퇴장하고 마는 것이다. 왜 하필 지금 '꾼'과 '장이'인가? 사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동안의 기록에 있어 아쉬운 점은 대부분이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 또는 명인, 왕실공예(골각, 금속, 칠공예 등) 장인 등을 다룬 것이었고,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자라는 것도 생생한 사진을 곁들이지 않아 못내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 두 권의 책에서는 단지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모두 400여 컷의 생생한 사진을 곁들여 하나의 사료(史料)로서의 노릇도 겸하도록 했다. 세기말을 건너 새로운 세기초에 이르는 이 시기에 '꾼'과 '장이'를 기록해 두는 일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로서 더욱 값진 작업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