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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성으로 구워내는 검은색 신비
2. 일곱 번 화덕에서 달구고, 천 번을 두드려야 낫이 된다 3. 으뜸 손솜씨로 꽃방석을 맨다 4. 짚신 삼기와 함께한 30여 년 세월 5. 사라져가는 짚풀문화를 지켜가고 재현한다 6. 베틀을 동무 삼아 살아온 한평생 7.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고 가벼운 한산모시의 맥을 잇는다 8. "이 편할라카는 세월에 누가 이거 하겠습니꺼" 9. 뽕잎 따서 누에 치고, 누에 쳐서 명주 짜고 10. 토종 참쪽의 맥을 잇는다 11. 오색 점토로 빚어서 전통 가마에 구워낸다 12. 접부채와 둥근부채 만들기 외길 인생 13. 사흘 품 들여 엿 만들기 60여 년 14. 사라져가는 옛 올챙이 국수맛을 지켜가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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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고려 말기 공민왕 때(1364) 문익점이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붓뚜껑에 숨겨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문익점이 가지고 와 심기 시작한 목화는 금세 전국으로 퍼져나가 조선시대 태종 원년인 1400년경에는 모든 백성이 무명옷을 입게 되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명주가 주로 그 고급스러움으로 양반네이 옷가지 행세를 해왔다면, 무명은 주로 서민들이 즐겨 입는 평상복 노릇을 해왔다.
과거 우리네 전통 옷감의 대명사였던 무명. 그러나 지금은 삼베나 모시보다도 훨씬 만나기 어려운 귀한 옷감이 되고 말았다. 기계로 마구 짜내는 면사에 밀려 베틀에 걸어 짜내던 옛날 방식이 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무명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에 '샛골나이'란 이름과 경북 성주군 용암면 본리에 '두리실'이란 이름으로 그 명맥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혀연이다. 무명짜기를 보기 위해 우리는 며칠 전에 미리 전화 연락을 넣어놓고, 두리실 마을 백문기 씨 댁을 찾았다. 때는 햇빛이 짱짱한 봄날이었다. 삐그덕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랑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노인 한 분이 베틀에 올라앉아 찰카당, 찰카당 무명을 짜고 있었다. 그 옆에는 또 한 노인이 오른 무릎을 세우고 앉아 시르렁, 시르렁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 p.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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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구워낸 옹기는 아무리 매끈하게 보여도 자디잔 숨구멍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데, 여기에더 숨구멍을 꽉꽉 막아버리는 광명단 유약이 아닌, 어느정도 숨구멍을 틔워놓는 천연유약을 쓰기 때문에 옹기를 '숨쉬는 그릇'이라 하는 것이다. 광명단 유약을 바른 옹기는 '숨죽인 그릇'혹은 '숨막힌 그릇'에 다름아니다.
옛날식대로 잿물을 바른 옹기는 안팎으로 뚫린 미세한 구멍을 통해 들숨과 날숨을 쉬어 음식의 조화로운 숙성을 돕는다. 또한 습기와 열 등을 조절하여 음식물을 오랫동안 숙성시키고, 저장하는 노릇을 한다. 하지만 시중에 나도는 광명단 유약을 바른 옹기는 이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며, 오히려 해를 입힌다. 광명단 유약이 옹기의 표면은 반들거리게 할지 모르나 그 성분이 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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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영산강을 따라가는 나주 들녘 너머에 눈이 시린 쪽빛 하늘이 걸려있다. 쪽빛 하늘, 쪽빛 바다. 왠지 쪽빛 하면 마음 한 구석이 파랗게 물드는 기분이다. 그 쪽빛 세상을 만나러 찾아간 곳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흔히 샛골로 불리는 곳.
---p.154, 머리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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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삶의 느림'에 대한 기록
우리 곁에서 묵묵히 토종문화를 지켜온, 그러나 언제부턴가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는 '꾼'과 '장이'들의 살갑고도 눈물겨운 삶의 풍경이 담겨진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꾼』과 『사라져가는 토종문화를 찾아서―장이』, 두 권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 급박한 세상에 아직도 미련스럽게, 여전히 고집스럽게 고유한 우리네 토종 생활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 급박한 현대의 속도전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느리게 자신의 삶을 밀고 간다. 컴퓨터라는 기계 문명을 신봉하는 젊은이들 눈에는 그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구식'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림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힘이 아닐까. 사실 '꾼'이라 하면, 오랜 세월 하나의 일에 매달려오며 주로 발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쪽이고, '장이'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이것저것 만들어 솜씨를 드러내는 쪽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꾼'이나 '장이'라는 말이, 그들을 홀대하는 말이 아니냐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네 전통적인 서민생활 속에서 '꾼'과 '장이'의 노릇이란, 생산적 노동과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며, 살갑고도 눈물겨운 주변부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한갓 초막을 지어놓고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끼를 꼬아 짚신을 만들고, 메를 두드려 낫 한 자루 만드는 것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초막 농사꾼도, 짚신장이도, 대장장이도 우리 역사에서 영영 퇴장하고 마는 것이다. 왜 하필 지금 '꾼'과 '장이'인가? 사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동안의 기록에 있어 아쉬운 점은 대부분이 잘 알려진 인간문화재 또는 명인, 왕실공예(골각, 금속, 칠공예 등) 장인 등을 다룬 것이었고,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자라는 것도 생생한 사진을 곁들이지 않아 못내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이 두 권의 책에서는 단지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모두 400여 컷의 생생한 사진을 곁들여 하나의 사료(史料)로서의 노릇도 겸하도록 했다. 세기말을 건너 새로운 세기초에 이르는 이 시기에 '꾼'과 '장이'를 기록해 두는 일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로서 더욱 값진 작업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