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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상의 파괴 - 현대 예술
세잔느의 두 제자 가상의 파괴 전람회에서 2. 인간의 조건 - 위로부터의 미학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마그리뜨의 세계 1 세잔느의 회의 마그리뜨의 세계 2 예술가의 직관 신의 그림자 폭포 옆에서 아담의 언어 마그리뜨의 세계 3 렘브란트의 자화상 4성 대위법 마그리뜨의 세계 4 화랑에서 놀이와 미메시스 마그리뜨의 세계 5 내포된 독자 마그리뜨의 세계 6 정신병원에서 뒤샹의 '샘' 마그리뜨의 세계 7 수도원에서 3. 허공의 성 - 아래로부터의 미학 달리의 꿈 마그리뜨의 세계 8 예술과 실어증 마그리뜨의 세계 9 예술과 정보 마그리뜨의 세계 10 그래프 위에서 푸가를 만드는 기계 열린 예술 작품 연못가에서 4. 헤겔의 방학 괴델, 에셔, 바흐 엑스 리브리스 에셔와 마그리뜨 그림 속으로 |
陳重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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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코기토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건 어째서일까? 간단하다. 그건 신체와 세계가 똑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공통의 재료를 메를로-뽕띠는 '살'(chair)이라 부른다. 데모크리토스의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메를로-뽕띠의 세계는 이 '살'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건 정육점에서 파는 살코기를 말하는게 아니다. 세계는 단백질이 아니니까. 뽕띠는 이 말을 안과 밖이 하나로 겹쳐져 있는 존재 방식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가령 우리 신체는 정신과 겹쳐 있다. 정신은 신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신체의 이면이다. 정신과 신체는 안과 밖의 관계로서, 밖인 신체는 정신에 속해 있고, 동시에 안인 정신은 신체에 속해 있다. 가령 지각 속에선 신체 운동과 정신 작용이 분화되지 않은 채 통일되어 있잖은가. 데카르트는 신체와 정신을 칼로 자르듯이 나누었다. 그 결과 신체와 정신,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에 빠져버렸다. 뽕띠는 '살' 속에 양자를 녹여버림으로써, 이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신체가 이면에 정신을 감추고 있듯이, 사물 역시 겉은 '표면'과 실재성의 '깊이'를 갖고 있다. 사물도 이렇게 안과 밖이 겹쳐진 존재다. 세잔느가 인상주의와 고전주의의 대립을 넘어서려 했을 때, 결국 그는 '살'을 그리려고 한 게 아닐까? 왜냐면 사물의 '표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사물' 자체를 그리려 했으니까. --- pp.350-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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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살았던 당시의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었다. 영국의 크롬웰에게 제해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이 조그만 나라는 세계 해상 무역의중심지였다. 막강했던 카톨릭 교회의 권위도 신교도의 집합소인 이곳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사회를 주도하던 건 무역으로 돈을 번 상공업 부르주아지였다. 때문에 이 조그만 나라가 당시 유럽에선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다. 스피노자 같은 범신론자가 살았던 곳도 여기다. 적어도 여기선 범신론(변장한 유물론!)을 주장한다고 화형을 당하진 않았다.
렘브란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화가가 되었다. 부유한 상공업자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에게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상업 부르주아지의 안락한 삶 대신에 화가의 길을 택했다. 화가의 사회적 지위가 오늘날처럼 높진 않았을 터이니, 그 결심엔 많은 고뇌가 따랐을 게다. 당시 플랑르드 지방에서 활동하던 루벤스는 여전히 신화적, 종교적 제재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건 여전히 귀족들이다. 그러나 같은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렘브란트의 그림에선 새로운 제재, 새로운 인간이 등장한다. 누구? 그건 바로 후에 제3신분이라 불리워지는 시민, 즉 부르주아지였다. 귀공자가 환쟁이가 될 수 있었던 곳, 이곳에서 비로소 '직물조합의 간부들'도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 사회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 pp.396~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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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2』는 1994년 1월에 초판 1쇄를 찍은 이래 최근까지 20쇄를 찍으면서 온/오프라인 서점가에서 스테디 셀러 자리를 확고히 굳혀왔다.
『미학 오디세이 1,2』가 이렇듯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은 것은 한국 사회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전과 비교해 생활 형편이 대체로 나아지는 한편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짓누르는 권위주의의 잔재를 일부나마 걷어내기 시작했다는 점과, 그런 흐름 가운데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억눌린 욕구가 표출되면서 미학 개설서에 대한 대중적 수요가 뚜렷이 늘어났던 데에서 비롯한 게 아닌가 싶다. 『미학 오디세이 1,2』는 이렇듯 사회 전반의 물질적·정치적 조건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확대된 지적·정신적·인문학적 갈증에 정확히 부응하는 책 가운데 하나였고, 그래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우리는 이 책이 세상에 첫 선을 뵌 지 7년이 지난 지금 제2판을 내기로 했고, 부분적으로 수정 및 보완작업을 했다. 제2판 서문에서 저자는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고, 도판을 컬러로 바꾸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밝혔지만, 이 책은 초판과는 여러모로 사뭇 다르다. 우선 표지를 검은색 계통으로 바꿔 미적 깊이가 느껴지게끔 했고, 들고 다니기 간편하게끔 판형도 조금 줄였다. 종이도 훨씬 고급으로 바꿔, 전반으로 미학이라는 주제에 좀 더 걸맞는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또, 초판에서는 학술서 같은 인상을 줄까봐 본문의 인용한 부분에 각주를 달지도 참고서 목록을 싣지도 않은 반면, 제2판에는 각 절 끝에 참고 문헌들을 소개해 좀 더 공부하고픈 독자들을 배려했다. 본문은 가급적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에서 내[진중권]가 표명한 철학적 관점은 아직도 유효"하며, 내용도 "대체로 무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2판은 '완전'개정판이라기보다는 '부분'개정판으로 봐야 할 듯하다. 한편, 초판에는 싣지 못한 '글머리에 - 굿모닝 헤겔'을 제2판 2권의 맨 앞에 실었다. 여기서 저자는 이 책의 초판이 나온 90년대 초중반 무렵에 "예술이 철학의 영역을 정복해가는 현상"을 보고 자신이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편지 형식으로 썼다. 이런 "정복"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만큼 저자의 인식도 7년이라는 세월을 겪으면서 훌쩍 더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미학은 포스트 모던의 철학이 가한 충격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내야 한다. 두 가지 과제가 있을 것이다. 첫째, 이제까지 근대 철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 미학사의 새로운 서술이 필요하고, 둘째 미학이 이제까지 사용해왔던 낡은 근대적 개념틀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여 새로이 수정하는 것 …. "현재 나의 미학적 관심은 새로운 미학의 구상에 있다. 말하자면,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흐름, 즉 1)미학을 예술 철학의 좁은 울타리에서 꺼내 감각론으로 새로 정립하는 것, 2)미학과 윤리학 사이에 존재하던 근원적인 연관을 다시 회복하는 '존재미학'의 구상, 3)자연을 객체화하는 근대 철학의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을 또 하나의 대화의 주체로 바라보는 생태 미학, 이 세 가지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현대 미학을 구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과제와 구상이 어떻게 진전되는지 지켜보는 것은, 다소 어렵겠지만 매우 흥미진진한 철학적·인문학적 경험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학 오디세이 1,2』를 충실히 읽어둔다면 그것은 그리 어렵거나 지루한 일이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