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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망 끝의 희망
2. 뜨거운 바람 3. 위대한 사랑 4. 슬픈 계절 5. 깨끗한 꿈 6. 최진이의 고백 |
孫錫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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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던 날 새벽, 평양 집을 떠날 때 서돌이가 한 말이 더더욱 가슴을 울린다. 오래 보지 못할 터이니 엄마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하자 서돌이가 눈빛을 반짝이며 또박또박 씩씩하게 말했다.
'아부지 어디 가는지 난 다 안다.' 근심이 가득한 여린(주인공의 아내)을 바라보며 난 웃었다. '응, 그래? 우리 서돌이 똘똘하구나. 어디 가는데?' '혁명하러 가시죠?' 다시 여린과 눈길이 마주치며 눈웃음을 지었다. '우리 아들이 혁명이 뭔지 알까?' '그럼요. 왜 몰라요.' 서돌이의 해맑은 눈이 다소 진지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 --- p.134-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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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이 혁명이 뭔지 알까?'
'그럼요. 왜 몰라요.' 서돌이의 해맑은 눈이 다소 진지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예요. 맞죠?' --- p.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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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은 그 까닭도 분명히 밝힌다.
'왜 모두 고루 잘살자는데 그걸 싫다 할까요.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을 청산하자는데, 왜 그걸 반대할까요. 도대체 저 사람들은 자신들만 잘살면 된다는 것인가요. 친일과 친미로 외세에 빌붙으려 하는 저들이 끔찍스러워요. 설마 저 사람들도 자본주의가 모두에게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자본이 주인이 되는 사회, 돈이 사람을 좌우하는 사회를 저 사람들도 이상사회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그러니 더욱 용서할 수 없지요. 저 ㅅ람들이 우리들의 아들딸까지 지배하도록 보고만 있을 수는 더더욱 없어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 인민이 중심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나가야죠.' 그랬다. 바로 그것이 '위대한 사랑'이었다. 이진선과 신여린, 해방공간의 맑은 젊은이들에게 혁명은 사랑의 방법이었다. --- p.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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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더 이상 지난 시절처럼 소락소락 걸어갈 수는 없다. 나 이제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삶의 마디마다 사색의 편린들을 기록해야겠다.
--- p.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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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시했을 때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성숙이라는 물질적 조건과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이라는 주체적 조건이 그것입니다.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사회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848년 파리의 혁명이 그러했거니와 1917년 러시아혁명 또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 p.423-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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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선 동지와 대동강변을 산책하는데 거먹구름이 밀려왔습니다. 인차 소나기가 쏟아졌지요. 서둘러 우리들의 '작은 해방구'로 돌아왔어요. 리동지가 어디서 구했는지 나무탁자 위에 커피잔을 내놓더군요. 따뜻하게 퍼지는 향기가 유리창 너머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와 더불어 감미롭게 느껴졌어요. 매혹적이 미소를 띤 그이를 바라보면서 삶이란, 인생이란 어쩌면 아름다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대였어요. 느닷없이 현관문이 부서지며 정치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쳤겠지요. 그들은 다짜고짜 우리가 반혁명분자들이라며 체포했습니다.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무슨 반혁명이냐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더군요. 갑자기 리 동지가 소리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20대 청년처럼 낭랑한 목소리였어요. '박헌영 동지 만세! 조선 노동계급 만세!' 그 소리에 정치보위부 요원 한 명이 권총을 뽑아들어 그이의 가슴노리를 겨눴습니다. '이, 미제의 간접!' --- pp.40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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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행복감에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여린이 놀라 일어서면서 맑은 눈 가득 물기를 머금은 채 말없이 미소지었다. 나도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마주 보았다. 아, 그리고 생글거리며 외친 서돌이의 음성.
'야! 아부지다. 엄마, 아부지 왔어요.' 서로 부둥켜안으려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저주스런 공습 사이렌이 악마의 소리처럼 울려댔다. 서돌이를 안은 아내를 서둘러 내보내고, 보도수첩 등이 가득 담긴 가방을 책상 밑에 밀어넣었다. 문 밖으로 나오자 아내가 골목길 끝에서 기다리며 빨리 오라고 손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폭탄이 여린이 바로 앞에서 터졌다. 아내 여린과 아들 서돌이가 내 두 눈앞에서 산산히 찢겨나갔다. 아, 누가 이 이상의 저주스러운 경험을 겪을 터인가. 거의 형체조차 찾을 수 없었던 아내와 아들의 찢겨진 몸을 수습하면서 실신했다. --- p.137-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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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거니와 명백히 난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가 반드시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으나 그보다 더 분명하게 자부할 수 있다. 옳은 길을 걸어왔노라고. 내게 주어진 삶을 온 순간마다 사랑했노라고. 주어진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 한계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무너질 것을 확신하노라고.
--- p.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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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1일
혁명은 아직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으면, 마르크스와 엥겔스 모두 그럴 경우 사회주의가 왜곡될 가능성을 이미 당시에 경고했다. 따라서 실존했던 사회주의 붕괴로 사회주의 사상 자체의 오류가 드러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소령의 붕괴는 사회주의 고전적 사상가들의 혜안을 오히려 입증해준다. 혁명의 역사엔 비약이 없다는 것을, 혁명의 길엔 쉴손이 없다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가 지적으로 더 성숙하고 자본주의 태내에서 모든 생산력의 가능성이 소진될 무렵 언젠가 세계혁명이 반드시 이뤄질 것임을 나 이진선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따라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과업은 내가 평생을 바친 조선혁명과 조선로동당이 그 길을 올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온몸으로 방조하는데 있다. --- p.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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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17일
모스크바. 세계혁명의 수도에 온 지 나흘이 지났다. 지난 13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사흘 동안 혁명의 유적지들을 견학했다. 붉은광장에 자리한 화강암의 레닌 묘를 참배하며 조선혁명과 세계혁명을 가슴속에 새겼다. 세계혁명의 아버지 레닌은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수많은 세계의 혁명가들 가슴에 불을 지르며. 잠자는 레닌 앞에서 다시 아내 여린과 서돌이의 명복을 빌었다. 눈물이 눈 가득 고이다 가까스로 잦아들었다. 여린과 결혼한 날 다짐했던 혁명 공약을 되뇌었다. '모든 인류가 하나 되는 그날을 위해 우리의 삶, 우리의 목숨을 바치겠노라.' 목젖이 뜨겁게 아파왔다. 그랬다. 가장 사랑하는 혁명동지 두 명을 난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잃었다. 지금 이 순간도 미제와 맞선 혁명전쟁에서 산화해갈 혁명전사들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두 손을 모은 채 레닌 동지를 바라보았다. --- p.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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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편집국 기자로서 '엄청나다'라는 기사 제보가 기실 대부분 사사로운 고충들이었음을 경험으로 아는 이 소설의 내레이터는, '조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록'이라는 중국 연길의 한 노인이 보낸 편지도 그저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넘기다가, 그 노인이 다짜고짜 약속과 장소까지 지정해주는 바람에 연길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말대로 '조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기록'이 담긴, 낡아빠진 수첩 한 무더기를 안고 돌아온다.
거기에는 북한의 이름 없는 지식인으로 살아간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따금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잣대나 정서에 어긋나는 기록도 눈에 띄었으나 그의 일기를 관통하고 있는 순수하 민족애와 휴머니즘을 인식할 수 있는 독자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기에, 내레이터는 이를 책 한권으로 묶어내기로 했다. 그 내레이터가 저자 손석춘인지 헷갈리고 그렇다면 연길의 그 노인은 누구인지 하는 궁금증을 헤아릴 여유도 없이, 1938년부터 한반도의 역사는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독자들은 일기의 작성자인 이진선을 통해 우리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과 사건을 지척의 거리에서 마주하게 된다. 시인 윤동주, 불교계의 거목 휴허 스님, 남로당의 거물인 김상룡과 박헌영, 일본 유학시절에 만난 황장엽, 월북한 후로는 김일성과 그 주변 인물들과 어우러지면서, 안타까움과 분노의 60년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허난한 시대에도 꽃피우는 소중한 사랑을 목격하게 된다. 아내 여린고 아들 서돌이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광경에서는 어느덧 눈시울이 젖고, 최진이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에서는 가슴저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집』은 역사의 흐름과 개인의 삶을 거미줄처럼 잘 짜낸, 실화보다 더 실화 같은 소설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순수한 꿈이 일그러져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현실은 무엇이 문제인지 살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가족과 이웃, 나아가 우리 민족을 새삼 돌아보게 할 것이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을 보다 확연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