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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후의 문학적 망명
2. 상처투성이 이야기 3. 어머니가 나를 버렸어요 4. 할아버지는 스승이다 5. 삶과 글쓰기의 기술 6. 문학적 인정 7. 미의 복원 8. 죽음과도 같은 이 땅에서의 글쓰기 9. 죽음의 무도, 폭설, 그리고 세계의 폭우 10. 죽음에 반한 글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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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의 산문이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그에게 승인된 문학상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그때부터 매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의 작품이 시장에 나오고, 이에 따라 그는 거의 정기적으로 문학상을 받게 된다. 1964년 율리우스 캄페 상을 받았고, 1967년에는 독일 전경련에서 문화부문 문학 표창을 받기도 했다. 1968년 오스트리아 국가상과 안톤-빌트-간스 상, 1970년 독일언어문학 학술원이 주관하는 게오르크-뷔히너 상, 1972년에는 그릴파르처 상과 더불어 여러 상을 받았다.
--- pp.124~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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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지상으로부터 별과 고름을 뽑아냈다
절망 속에서 그리고 그 항아리에서 나의 고통으로 빚은 포도주를 따라 마신다. --- pp. 9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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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작가나 사상가를 이해하려 할 때 그가 살았던 역사적 배경을 추적하거나 저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유하고자 했던 정신을 간파하는 등 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한 입체적인 접근이어야 한다면 베른하르트만큼 한 시대의 비극적 역사와 어린 시절의 불운한 경험만을 철저히 요구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앙처럼 베른하르트 문학에 군림하고 있는 죽음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탁아소로 2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어머니를 보아야 했던 아이에게 세상은 이미 의지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상황이었다. 또 당시 유년의 그에게 제2차대전의 참상이란 다름 아닌 감시와 형벌의 시스템만 존재하는 나치 국가의 보호시설과 학교에 다니며 받은 생지옥과도 같은 교육이었으며, 전쟁이 종식된 후 열네 살 된 베른하르트가 복교한 국립 김나지움은 나치의 기숙사 운영이 단지 가톨릭적인 것으로 대체되었을 뿐 체벌방식에는 야만의 시대는 유년의 자아에 파괴적으로 작용해 그후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게 된다. 1949년 1월, 스무 살의 베른하르트는 완치되지 않은 감기가 심한 폐렴과 늑막염으로 진전되어 잘츠부르크 도립병원에서의 요양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기계적인 일상이 거듭되는 병원에서 베른하르트는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하고 처참하게 그곳에서 일과 사건에 자신을 내맡겨야 했다. 베른하르트는 이러한 자신의 불운한 경험을 자서전격인 5부작 '한 아이' '원인' '지하실' '호흡' '냉기'에서 그리고 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죽음과 질병, 고립과 광기라고 하는 지극히 부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그는 불행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대해 분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