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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베른트 비테 저 / 윤미애 역
한길사 200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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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베를린 유년기와 청년기(1892-1912)
2. 청년 운동, 유태 정신, 언어 철학(1912-1917)
3. 낭만주의 정신의 예술 비평(1917-1923)
4. 역사비관주의와 반고전주의 미학(1923-1925)
5. 파리-베를린-모스크바(1926-1929)
6. 위기와 비평(1929-1933)
7. 망명 : 아우라 없는 예술에 관한 이론(1933-1937)
8. 아케이드(1937-1939)
9. 역사의 종말(1940)

저자 소개

저자 : 베른트 비테
1942년 이다-오버슈타인에서 출생했다. 독어독문학, 고대 그리스어 문학 · 철학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67년부터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조교로 일했다. 1976년 발터 벤야민의 문학비평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으며 현대 독일 문학사와 미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1980년부터는 아헨 대학 문예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 : 윤미애
서울대학교에서 영어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 독어독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현대 독문학, 독어학 및 사회학을 공부하고 1997년 2월 호르스트 투르크 교수의 지도 아래 발터 벤야민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귀국한 뒤 서울대학교와 순천향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50쪽 | 43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5652648

책 속으로

1924년은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의 전환점이 일어난 해이다. 그동안 쌓은 경험들의 영향으로 벤야민은 비의적 철학자이자 언어 신비주의자에서 정치 참여적 저널리스트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자로 변모한다. 1924년 12월 숄렘에게 쓴 편지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은 벤야민 스스로 이러한 전환점을 얼마나 잘 의식했는지를 보여준다.

"공산주의적 신호들…… 이것들은 전환을 알리는 최초의 징표들이었네. 이 징표들로 말미암아 내게는 내 사상의 현실적, 정치적 계기들을 과거처럼 고상하게 위장하지 않고 그대로, 그것도 실험적이자 극단적으롤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싹텄다네. 물론 이 말은 독일 문학 작품에 주석을 다는 일, 기껏해야 문학 작품을 근본적으로 보존하고 표현주의에 의한 왜곡에 맞서 진정한 것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뒷전으로 물러난다는 것을 뜻하지. 전혀 다른 의미와 총체성을 지닌 텍스트를 접하고 내 나름의 방식대로 논평하는 경우가 아닌 한, 나는 내 안에 잠재된 '정치'를 짜낼 것이네. 물론 내가 극단적인 불셰비키 이론을 접하고 놀란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네."

---p.101

출판사 리뷰

'아우라'의 작가 벤야민 - "나를 뜨겁게 하지 않는 학문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발터 벤야민(Valter Benjamin, 1892~1940)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랜 약진의 시기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대다수의 작가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자기 주장이 뚜렷한 글을 썼다. 오늘날 예술 비평과 글쓰기 분야에서 그는 여전히 유효하며,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른바 '글쟁이'라고 불리는 많은 이들은 그의 짧은 글과 비평문에 담긴 무수한 상징성, 메타포, 그리고 이미지의 적확성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아우라'에 자유롭지 못하며.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모른다. 일례로 기술시대(技術時代)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개념의 변화를 탐구한 벤야민의 시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이 분야의 연구는 아직까지도 1930년대에 이루어진 벤야민의 이론적 수준을 크게 능가하지 못할 정도다.

생전에 출판시장에서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벤야민은 "후대에서 받을 보수도 매울 불확실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러한 우려와는 달리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예비평가로 인정받고자 했던 그의 목표는 이처럼 후대에 실현된 셈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독일을 비롯한 서구의 비평계와 문예학에서 하나의 산맥을 이루었던 벤야민. 나치 치하에서 '지식인 엑소더스'의 가능성이 좌초되자 스페인 국경지대 피레네 산맥에서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영락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탄압(유대인에 대한)과 생계의 곤란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그 절실함 속에서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평생 제도권 밖에서 글을 썼고, 빼어난 논문을 남긴 문예비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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