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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격에 대한 논란
2. 교황을 옹호한 공화주의자 3. 최초의 스승들 4. 책과 건축 5. 망명자 6. 베네치아 - 볼로냐 - 로마 7. 피렌체 전체가 나를 보증한다 8. 시시포스 9. 시스티나 성당 10. 율리우스 묘비 11. 메디치 묘비 12. 최후의 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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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명성을 누리면서도 그는 외롭게 살았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면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끔 되어 있다. 이 곳에서 나는 근심이 많고 육체적으로 매우 힘이 든다. 친구도 없을 뿐 아니라 친구를 가질 생각도 없다.'
이 고백은 그의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외로움 속에서만 일할 수 있었다. 그의 고독한 기질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는 종종 무정하고 무례하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 등지고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변덕스러운 괴짜, 건방진 몽상가, 화를 잘 내는 불평쟁이라고 여겼다. 미켈란젤로는 이러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르투칼 출신의 화가 프란체스코 데 홀란다가 기록한 한 대화에서 미켈란젤로는 비토리아 콜로나와 다른 친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유명한 화가들에 대해서 온갖 거짓말을 퍼뜨리곤 하지요. 화가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별나고 비사교적이며 쌀쌀하다는 것입니다. 실은 자기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에 불과한데도 말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된 화가들이 비사교적인 것은 이를테면 자만심 때문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만 그림의 가치를 알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아주 드물게 만날 뿐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항상 사로잡혀 있는 고귀한 정신을 쓸데없는 잡담으로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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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미켈란젤로는 이 조각작품들을 깎아냈다. 그것은 「줄리아노」「로렌초」「낮과 밤」「아침과 저녁」「마돈나와 웅크린 소년」등으로, 「웅크린 소년」은 지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와 함께 모형용 석고로 만든 강물의 신의 토루소가 남아 있는데, 이는 메디치 가 지도자들의 발 앞에 놓인 시간의 조각상들 아래 저승의 강물을 배치함으로써, 지하세계를 표현하려 한 발상의 흔적이다. 메디치 예배당의 간주 받침을 위한 세 개의 설계도를 스케치한 종이에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놓았다.
"하늘 그리고 땅, 낮과 밤은 이야기하노라. 우리는 우리의 빠른 흐름에 의해서 줄리아노 공작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러니 그가 어떻게든 복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그 복수란 바로 이것이네. 우리가 그를 죽였으니까, 그가 죽은 자로서 우리에게서 빛을 앗아가서 그의 감은 눈으로 우리의 눈을 닫아놓음으로써, 우리의 눈이 더 이상 지상을 비출 수 없도록 하는 것일세. 그것은 그가 살아 있었을 때에도 이미 우리에게 하고자 했던 일이지." --- pp.171-1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