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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코뱅 기질의 어린 시절
2. 파리-밀라노-마르세유-파리 3. 황제를 위한 복무 기간 4. 밀라노, 또는 스탕달의 탄생 5. 파리 유배 시절 6. 치비타베키아의 영사 7. 파리에서의 저술 8. 밀라노 사람 아리고 베일, 또는 무(無)와의 만남 9. 스탕달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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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을 '프랑스 낭만주의'에 편입시키는 것은 고정된 공식화에 흥미를 갖는 연구가 일으킨 오해들 중 하나이다. 실제로 그는 1823년에 '라신과 셰익스피어'라는 소논문으로 낭만주의자들을 편드는 것처럼 보이면서, 프랑스에서의 낭만파를 둘러싼 논쟁에 개입한다.
스탕달은, 몇 가지 외형에서 낭만주의자들의 관점과 일치하기는 하지만 사실 많은 점에 있어 고전주의자들에 가깝고, 최종적으로는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편입시킬 수 없다는 것이 물론 옳다.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탕달이 개인적으로 자기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쪽은 밀라노의 낭만주의, 공화주의적 좌파였는데, 프랑스에서의 낭만주의 운동은 반공화주의적 우파였다. --- p. 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