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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를 위한 일입니까?
2. "내가 너의 어두운 면을 담당하겠다": 군병들의 침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3. "너처럼 될 만큼 너를 사랑했다": 가시 면류관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4. "너를 용서한다": 못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5. "너의 언어로 말하겠다": 죄패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 6.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두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 7. "너를 버리지 않겠다": 갈보리 길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8. "내 옷을 너에게 주겠다": 옷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9. "내 임재로 너를 부른다": 찢긴 몸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 10. "너의 아픔을 이해한다": 포도주 적신 해융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11. "내가 너를 구원했고 너를 지킬 것이다": 물과 피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12. "영원히 너를 사랑하리라":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13. "너의 비극을 승리로 바꿔 주마": 수의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14. "나는 승리했노라": 빈 무덤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15. 당신은 십자가에 무엇을 내려놓으려는가? |
Max Lucado,맥스 루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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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르게하셨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목을 축일 포도주가 예수님께 건네졌다. 그렇다면 얼굴 닦을 수건이 주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예수님의 빰을 닦아 주지는 않았다. 그분의 기도 한마디면 천사들이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천사들이 예수님의 침을 닦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그렇게 명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못을 택하신 그분은 침도 택하셨다. 인간의 창, 해융과 더불어 그분은 인간의 침도 견디셨다. 왜? 야수 안에 있는 미녀를 보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p.37,38 내가 너의 어두운 면을 감당하겠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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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도 오직 한 번뿐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행위들이 영원히 우리의 생각에 남을 것을 아셨을진대 마땅히 그분은 그 행위들을 신중하게 고르지 않으셨을까? 정성 들여?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날 우연히 발생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들은 절대 우연에 맡겨지지 않았다. 하나님이 길을 고르셨다. 하나님이 못을 택하셨다. 우리 주님이 세 개의 십자가를 꽃으셨고 죄패를 써 붙이셨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세부 사항 - 하나님의 주권이 그 일보다 더 철저히 나타난 적은 없었다. 우리 아버지가 신중하게 그 편지를 쓰셨듯이 당신의 하늘 아버지도 신중하게 이 메시지를 남기셨다. '내가 너를 위해 한 일이다. 다 너를 위해 한 일이다.'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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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입술이 갈라지고 입이 부르튼다. 목이 너무 타 들어가 침조차 삼킬 수 없다. 목소리는 잔뜩 쉬어 말도 못한다. 그는 목마르다.그분의 입술에 마지막 물기가 닿았을 때를 찾으면 다락방의 식사 때로 족히 열두시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포도주를 입에 대신 후 예수님은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멍들고 찢겼다. 십자가를 져야 했고 죄를 지셔야 했다. 단 한 방울의 물도 그분의 목을 적셔 주지 못했다. 그분은 목이 마르다.
왜 그분은 가만히 계시는 걸까? 얼마든지 능력이 있지 않은가? 물 항아리를 포도주 항아리로 바꾸시지 않았던가? 요단 강에 벽을 세우고 홍해가 갈라지게 하시지 않았던가? 말씀 한 마디로 비가 그치게 하시고 파도를 잔잔케 하시지 않았던가? 성경은 그분이,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리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이런 질문에 덧붙여 물어야 할 질문이 또 있다. 그분은 왜 사마리아에서 피곤하셨고, 나사렛에서 괴로우셨으며 성전에서 화나셨을까? 왜 갈릴리 바다의 배 안에서 주무셨고 나사로의 무덤에서 슬프셨으며, 광야에서 배고프셨을까? 그분은 목말라 괴로워하시지 않아도 되셨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되셨다. 여섯 시간 전에 누군가 그분께 마실 것을 드렸었다. 그러나 그분은 거부하셨다. 예수를 끌고 골고라 하는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15:22~) 못 박히시기 전에 마실 것을 드렸었다. 마가는 그 포도주에 몰약을 탔다고 말한다. 마태는 쓸개 탄 포도주라고 표현했다. 몰약과 쓸개는 둘 다 감각을 마취시키는 진통 성분이 들어 있다. 예수님을 그것을 받지 않으셨다. 약물의 마취를 거부하셨다. 고통을 그대로 다 느끼려 하신 것이다. 왜? 왜 그분은 그 모든 감각을 견디신 것일까? 당신도 그런 아픔을 느끼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 pp.154-1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