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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그림에는 그들의 성장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옆에서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기억을 하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도 아이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단어가 무엇인지를 기억하는 부모들은 많아도 아이가 그린 첫 번째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시는 부모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 아이가 태어나 몸을 뒤집고, 기고, 서고, 또 첫발을 내딛었던 시점을 기억하는 부모들은 많아도 아이가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를 기억하는 부모들 또한 많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아이의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선을 종이 위에 앉히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의식을 확장한다. 아이는 두 눈에 광채를 띠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어른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른으로서 이러한 종이 위에 그려진 산물에 대해 진심어린 관심을 표하기는 보통 쉽지 않다. 숱한 아이들의 그림이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아이들 그림의 이면에 일정한 법칙성들이 숨어 있어서, 아이가 어느 성장 단계에 와 있는지, 어떤 질환을 앓았는지, 어떤 신체의 고통을 겪었는지를 드러내준다는 점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그때까지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끄적거린 선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일은 그들이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여길 만큼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아이들 그림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비중은 더욱 커져야 할 것입니다. 덴마크에서 30년 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의 그림을 연구해왔던 저자 잉에 브로흐만은 이 책에서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성장과 변화를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의 발전은 종이 위로 '내리꽂히는 선들'로 시작된다. .......하나는 날아가는 곡선들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나선 형태이다. 이것은 점차 가운데 또렷한 점이 있는 둥그런 닫힌 머리 형태로 된다. 이런 그림들은 대략 세 살 때 완성되며, 아이가 자기 자신을 "나"라고 말할 때 나타나는, 흔히 자아 형태라고 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원들로부터 기다란 선들이 마치 감각신경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가지들이 간혹 한 방향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마치 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를 우리는 "머리 발 그림"이라고 일컫는다. ....... 또 다른 그림의 방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가 열과 성을 다해 같은 곳에 많은 선들을 중첩해서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에 나타난다. 처음에 나타나는 형상은 공중에 떠 있는 나무 둥치 모양으로, 종이 위에 비스듬히 그려진다. 같은 시기에 아이는 이와 같은 힘찬 가로선들을 그리고, 그 위에 나선형의 둥근 머리 모양을 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체는 점점 수직에 가까워지고, 많은 가로선이 중첩되게 그려지던 양상은 점차 하나의 개별적인 선으로 되어가고, 아울러 양 손은 균형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형태 아래쪽에 두 발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우리는 이 형상을 "나무 인간"이라고 한다. "나무 인간"의 형상은 무엇보다도 직립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주변이 지나치게 시끄럽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그리라는 지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경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일정한 발전 양상을 아주 뚜렷하게 보인다.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 아이들의 그림은, 똑바로 서고 걷는 것을 습득할 때 일어난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므로 모든 아이들이 예외 없이 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활동의 결실들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큰 주목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다섯 살 이후에는 무엇보다도 두 팔과 두 다리가 나타나는 발전을 보인다. 이 때 다리는 커다랗게 그려진 발로 인해 뚜렷하게 드러나며, 다시 두 발은 땅을 굳건히 딛고 서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때부터 아이는 주변 세계의 사물들을 그리기 시작하며, 그림의 윤곽과 배경도 상세히 그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서술하는 첫 번째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의 그림과 아이의 육체적, 생물학적 발달은 서로 나란히 놓일 수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른은 그러한 능력이 자유롭게 발휘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일단 종이와 색연필을 손에 쥐면, 설령 어른이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이라 할지라도 즉각 그림을 그릴 것이다. 아이는 알아서 호흡을 하고 또 배우지 않고도 엄마의 젖을 빨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아서 그림을 그릴 능력이 있다....... 아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건네주면, 흥미를 표하며 그것을 받되,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묻지 말아야 한다........아이가 자신이 그린 형태들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는데, 이것은 아이가 자기 그림에서 묘사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 일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설명하는 내용을 수정하는 일도 없어야 하며, 그저 그림이 멋지다고 말하는 것으로 족하다. 일찍부터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보내어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고, 테두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의 본을 색칠하게 하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지적이 아닌가 합니다. 그림에 묘사된 고통의 모습들 또한 저자는 아이들의 그림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아이들이 병이나 치료로 인해 고통을 겪고 난 뒤 그러한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그림이 그들의 성장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인데, "아이들은 통증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아팠던 기관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영혼의 삶도 엄연히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인간의 한 부분이다........ 즉 첫 7년 동안 그림 그리는 힘을 조율하는 생명력과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체험한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학령기가 되면 이러한 능력은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다." 라는 그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