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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nari Kawabata ,かわばた やすなり,川端 康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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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12/22 김선희(rosak@hanmail.net)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 <러브 레터>를 보고 나니까 <설국>이 생각나더군요. 그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눈(雪)이 지천이었거든요. 하다못해 여자 주인공이 감기에 걸려 담요를 휘감고 콜록거릴 때도 그녀의 침대 옆, 창문의 커튼을 제쳐 놓아서 영화 내내 펑펑 쏟아지는 눈을 포식하듯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아무리 추워도 그나마 눈이 있으면 왠지 포근해 지는 게. 그래서인지 옛날 기생들은 눈이 오는 날, 애기 기생에게 밀린 겨울빨래를 시켰답니다. '눈이 오면 푹하다'는 어른들 말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시각적으로만 여느 겨울날 보다 더 따뜻하다고 느껴서인지 어쨌든 눈이 오면 막내 수습기녀들은 개울가에서 빨래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눈을 맞으며 빨래를 비벼댔답니다. 그러고 보니 <설국>도 열 아홉 게이샤(일본기생)의 '사랑 이야기'군요.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 나타났다.' 소설 <설국>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단순하고 짧지만, 많은 얘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대단히 숙련된 작가의 완벽한 소설적 문장입니다. 그 곳에서는 기생의 사랑마저도 왠지 넉넉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무심한 듯 세상에서 한 걸음 비껴 사는 '이마무라'는 겨울이 되면 꼭 게이샤 '코마코'가 있는 눈의 고장을 찾습니다. 몇 년 전 산을 타고 내려오다 들른 마을에서 그녀를 만났기 때문이었지요. 그 후, 해마다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그는 '코마코'를 찾아 도쿄에서 이곳으로 내려옵니다. 그 곳에서 '이마무라'는 '코마코'의 사랑을 훔쳐보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어쩔 땐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하고, 부러 상황을 비틀어 어색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구요. '코마코'의 약혼자에 대한 희생과 '요오코'에 대한 질투, 그리고 '이마무라'에 대한 애정 표현. 이런 것 역시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눈이 있습니다. 합리성이라든가 이성적 설명이라는 잣대도 그 힘을 잃게 만드는 마력을 눈이 가지고 있더군요. 눈이라는 순결한 바탕화면 위에 애틋하고 슬픈 사랑의 수채화는 <설국>을 아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수채화가 주는 이미지가 참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건 영화 '러브레터'도 마찬가지 입니다. 1968년, 일본에게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설국>, 분명 눈이 있어 한층 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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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었다. (주-군바현/群馬縣과 니이가다현/新瀉縣의 접경지역인 기요미즈/淸水 터널을 가리키는데, 이 작품은 니이가다현의 온천이 주무대이다.) 밤의 밑바닥이 환해졌다. 신호소 앞에서 기차가 멎었다.
발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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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가 아래로 드리워지는 어두운 산 쪽으로 고마코는 달려가고 있었다. 옷자락을 걷어 올렸는지 팔을 흔들 때마다 빨간 속옷자락이 별빛이 밝게 내리비치는 눈 위에 펄럭거렸다. 시마무라는 단숨에 쫓아갔다. 고마코는 발걸음을 늦추더니 옷자락을 놓고 시마무라의 손을 잡았다.
'가시겠어요, 당신도?' '그래.' '호기심도 많으시네.' 고마코는 눈 위에 질질 끌리는 옷자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놀림을 당할 테니까 돌아가세요.' '알았어. 하지만 거기까지만이라도.' '거북하잖아요. 불난 곳까지 당신을 끌고 가면 마을 사람들이 흉봐요.' --- p.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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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서 실을 뽑고, 눈 속에서 옷감을 짜며, 눈으로 씻고, 눈 위에서 바래고, 하여간에 실 뽑는 데서부터 옷감을 다 짜기까지 모두 눈 속에서 하였다. '눈 있고 지지미있나니, 눈은 지지미의 어미'라고 옛사람도 책에 쓴 일이 있다.
눈에 갇힌 기나긴 겨울 동안에 마을 여자들은 길쌈을 했다. 눈나라의 삼(麻) 지지미를 시마무라도 애호하고 있어서 헌 옷집을 뒤져서 여름 옷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춤의 연고로 노(能)의상의 헌옷을 파는 가게도 알고 있어서 질이 좋은 지지미가 나오거든 언제든지 보여 달라고 부탁할 만큼 지지미를 좋아하여 홀겹의 속옷으로 입기도 했다. 방설용 발을 걷어 올리고 눈이 녹는 봄철이 되면 옛날엔 지지미의 첫 장(初市)이 섰다고 한다. 멀리서 지지미를 사러 오는 삼도(에도시대에는 교토, 에도, 오사카를 가리켰음)의 포목상들이 묵는 단골 여관까지 있었다고 한다. 처녀들이 반 년 동안이나 정성을 다하여 길쌈하던 것도 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원근 마을의 남녀들이 모여들고 장사치들이 늘어서서 마치 도회지의 명절처럼 붐볐다고 한다. 지지미에는 길쌈한 사람의 이름과 장소를 적은 쪽지를 붙여 그 솜씨를 1등, 2등 하는 식으로 등급을 매겼다. 그것이 며느리 선택의 조건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길쌈을 익혀 온 15, 6 세부터 24, 5 세까지 젊은 여자가 아니면, 질이 좋은 지지미를 짜내지 못한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면 짜내는 천에 윤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처녀들은 손꼽히는 직녀가 되려고 열심히 기술을 연마했을 것이다. 음력 10월부터 실을 뽑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 중순쯤에는 바램을 끝냈다. 이 일은 따로 할 일이 없는 눈 내리는 겨울 동안의 수공업이었기 때문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제품에도 자연 애착이 깃들어 있게 마련이었다. --- pp.12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