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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방가게 / 나뭇잎위 / 별 / 개똥지빠귀 / 분홍빛 / 잊혀진 거리(중략)
2. 오렌지 한 쪽 / 플래시 불빛/ 무덤으로 가는 길 / 자정(중략) 3. 노을 / 집 / 벚꽃 / 송장메뚜기 / 짐승들 / 마음(중략) 4. 슬픔 / 거울 / 목 / 바다 / 길 / 전화 / 쏘가리(중략) 5. 사이 I / 사이 II / 사이 III / 사이 Ⅳ(중략) 6, 밤 / 불면 / 갈밭 / 일출 / 고양이 울음/ 산책(중략) 7. 꿈 / 끝 / 보이지 않는 섬 / 돌멩이들 / 빛(이하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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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여기저기서 아버지 문상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정 앞에 향을 꽂고 합장 재배를 하고 참담하게 울었다. 자신의 상재들이 굴건 제복을 하고 서 있는 앞에서 엎드려 통곡하였다. 한 때 그들은 병원장이었고 교수였고 대법원장이었고 국회의장이었고 선생이었고 사장이었고 장사꾼이었고 룸펜이었고 좌절한 인테리었고 좌경분자였고 요주의 인물이었고 사기꾼이었지만 지금은 다만 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등이 휘어 있었다. 슾픔처럼. 문상을 마친 그들은 자신을 향한 독경 소리와 조화가 끝도 없이 늘어선 길로 돌아갔다. 자신 속으로 향하던 무한한 시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물끄러미 보고 있는 속을 걸어.
--- p.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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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얘기 하지마라. 머리 아프다.
-그래도 아부지가 장롱에 치여 죽...... -시끄럽다카이 -엄마, 우리 이 공같은 집에서 이사가자. -어데로? -옆집 할매가 카는데 벨벨 집이 다 있다 카더라. 못으로 된 집. 웃는 집. 깡통으로 만든 집. 똥으로 된 집도 있다 카더라. -맞다 그러니까 이 집이 그 중 낫다. 웃는 집은 너무 비싸서 못가고 못으로 된 집에 살아봐라. 밤낮 찔리고 피가나고, 또 똥으로 만든 집은 어떻고...... 생각만 해도 더럽다. -그래도 장롱에 치여 죽는 것보다 백배 낫제. -...... 엄마는 국수를 끓는 물 속에 넣고 저었다. 국수 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둥근 집안을 휘돌았다.그때였다. 바람이 부는지 또 집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조금조금 굴러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국수솥이 창틀 사이에서 줄줄 국수 가락을 흘리고 있었다. 붙박이 의자들이 천장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엄마가 가까스로 국수 솥을 붙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야들아 솥이 천장으로 올라가기 전에 쬐매라도 먹어야제. --- p.2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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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족들과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서 살았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살 것이다. 가족은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네 명으로, 많을 땐 일곱 명까지 되었다가 다시 세 명으로, 네 명으로……마치 그림자 놀이 하는 것처럼 줄었다 늘었다 하였다. 그들은 남 · 여가 아니었다. 어떤 이권도 못 말리는 사랑도 아니었다. 현재도 아니었고 미래도 아니었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집 안에선 이따금 '지긋지긋한 인간들!'하고 소리 치는 소리가 들리긷 했고, '내 눈앞에서 당장 없어져 버려!'하고 되받아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난 아무도 스스로 그 집을 나가는 사람으없었다.
--- p.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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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안에서 나는 섬으로 떠나는 배표를 사려고 줄을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이상한 광휘에 싸여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갔다. 바다 쪽으로 난 난간을 붙들고 몇 사람이 서 있었다. 펄떡거리는 생선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통을 든 중늙은이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천박스럽게 화장을 한 젊은 여자가 횟집 앞에서 껌을 씹고 서 있었다. 한 노인이 솜사탕을 팔고 있는 앞에 키가 솜사탕수레 만한 아이들 서넛이 서 있었다. 어디선가 밥 냄새가 났다. 한 집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줄에 매여 있었다. 그날 나는 그 해안의 끝까지 갔다.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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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뭇잎 위에서의 기이한 한 생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위에서의 날들이여! 내가 아버지라 불렀던, 어머니라 불렀던 것들이여. 한때 사랑이라 생각했던 수많은 姦女들이여, 이합집산하던 구름들이여......
그때 나는 그들이 잎맥 속으로 난 깊디깊은 길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벌레 구멍 속에서 울컥 솟아오르던 수천의 햇덩어리들을 보았다. 비단모래 같은 햇빛들이 흘러내렸다. 그 아래 수줍게 숨어 있던 연둣빛 떡잎들, 흔들리는 길 위로 교교히 지나가던 덤프 트럭들, 쥐죽은듯 나타났다 사라지던 전철들, 그 안에서 어른거리던 사람들의 실루엣을 보았다. 그 뒤, 배경으로 서 있던 검은 산 검은 강 검은 마을들...... 고요함이여! --- pp.238~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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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시의 언어로 짠 짧은 소설들, 그 비단 눈물 한 폭
짐작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이룸출판사에서 이경림 시인의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7개의 장(章) 97편의 짧은 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다. 우선 이 책은 어떤 특정한 장르로 규정지어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분명 시인이 시의 언어로 쓴 글이지만 시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각 작품이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본 것 같은 어떤 스토리가 그려진다는 점에서 산문집이나 소설을 닮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산문집이나 장편(掌篇)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또 너무나 시적이다. “나뭇잎 한 장에 쓴 소설”이라는 것. 그것은 이 책이 시와 소설과 산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혹은 그것들을 모두 통합하는 새로운 형식의 문학 장르임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 책에는 마치 이세상 사람이 아닌 듯이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삶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단단한 슬픔, 무서운 열정이 담겨져 있다. 이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경림만의 세계인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 사는 작가의 소우주 탐험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는 소설가 박상륭의 표현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신비스런 동화를 닮았다. 그 어떤 '사실'에서보다도 감동적인 '허구'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토끼를 따라 들어간 수직의 동굴, 열리지 않는 작은 문, 춤추는 바닷속 생물들과 카드 병정들……. 이경림 시인은 앨리스가 되어 '이상한 나라'의 환상 체험을 인도한다. 그곳에는 우리 주변의 익숙한 사물과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들로 앨리스가 빚어내는 이야기는 낯선 아름다움이다. 그녀는 모든 것에 동화되기도 하고 '낯설게'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면서 슬픔이나 고독, 그리움 등의 감성을 더욱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교체한다.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는 어떤 영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인체 내부로 들어가서 인간의 살과 뼈와 피 등을 들여다보는, 놀랄 만한 상상력으로 표현된 <이너 스페이스>라는 이 영화는 인간의 몸을 어마어마한 상징체계이자 환상적인 우주로서 묘사되어 있다. 좀더 문학적으로 심오한 <이너 스페이스>라고 비유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구체적인 빛깔과 냄새와 감촉을 구성하고 있는 온갖 관념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한마디로, 이경림 시인은 평범한 현실로부터 소우주(小宇宙)를 발견해 내는 예민한 투시경과 만화경의 눈을 타고난 작가다. 나뭇잎 한 장 위의 여행 그녀의 끝없이 이어질 듯한 여행은 사실 나뭇잎 한 장 위에서 시작되고 끝맺는다. 처음 “벌레 먹은 한 넓적한 이파리 위에 얹혀 있는 집”에 살면서 “나뭇잎 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나뭇잎맥을 따라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는 광경에서 시작하여 “책으로 된 가로수, 책으로 쌓인 담벼락들, 책으로 깔린 보도블록, 책을 지어진 집들……. 책으로 밥을 짓고 커피를 끓이고 감자를” 굽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어서 “바람만 불어도 굴러가고 집이 굴러갈 때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벽에 부딪히고 책상이 쓰러지고 장롱에 사람이 치여 죽고 코가 깨지고 난리 벅구통”인 공처럼 생긴 이상한 집에 사는 재미있는 풍경을 본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 “엄마는 가까스로 국수 솥을 붙들고 울먹이며 말한다. 야들아. 솥이 천장으로 올라가기 전에 쬐매라도 먹어야제” 한다. 나뭇잎 세상이나 책으로 만들어진 세상, 공처럼 굴러다니는 집에 대한 상상은 참으로 유쾌하고 독특하지만, 그것은 슬픔 속에서 자아진 누에고치임을 곧 눈치채게 된다. 시인이 들려주는 산뜻한 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얗고 단단한 슬픔의 덩어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낯선 곳과 낯선 이들을 만난 후 서 있게 되는 곳은 '다시, 나뭇잎 위'다. 오독은 있을 수 없다 그녀가 빚어낸 멋진 환상의 세계와 사람들은 때로 근원을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와 소설을 통해 제공되는 은유와 상징, 알레고리 등의 '해석'을 시도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녀가 그린 세상과 사람들은 현실에서의 무엇을, 어떻게 빗대고 인지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경우도 있다. 때로 깊은 안개 속에 덮인 듯한 세계는, 도저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단단한 슬픔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로를 헤매듯 이 '정원'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된다. 길을 잃어야만 제대로 환상의 세계에 들어온 것임을. 무장을 해제한 알몸의 정신으로, 자신을 마음의 흐름에 맡기고 느낌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시읽기'를 반성케 하는 혼란이다. 그래서 “현학적인 독자들은, 대번에 그것의 상징성을 찾으려, 부산스레 눈을 굴림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저 이상한 풍경의 뜻을 밝혀내기란 그렇게 어울운 일도 아닐 테다. 오독(誤讀)은 있을 수 없다”고 박상륭 소설가는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안내하는 길 위에서는 정자나무가 문득 하늘로 솟아올라 크고 빛나는 별이 되는 것을 보거나, 가방 안으로 난 길고긴 복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 포르말린에 잠긴 초원을 만나거나, '고통이라는 과자'로 만든 집에 살면서 고통의 유리 너머로 머리를 풀고 종일 흔들리는 수양버들 혹은 오렌지 한 쪽을 머리에 이고 있는 자를 만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즐거움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