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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이경림
문예중앙 201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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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우리가 한 바퀴 온전히 어두워지려면
푸른 호랑이
빈 병
녹슨 자전거와 해바라기와 나
수목장 숲에서
고고학적 아침
검은 구멍이 검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살구나무 장롱
유리의 지금
달밤


神 5
虎患

2부
飛翔
울음 1
한 생각과 생각 사이
고양이들
시계방
설마…… 간다는 일
새우는 어떻게 새우가 될까
이글루
투겅가와 터헝하 사이
하룻밤

구룩구룩
푸른 호랑이의 시간
얼음의 찰나
전화
그렇지만!
타박타박

3부

밤, 전철
나무, 사슴
사람아, 사람아,

나의 아들의 딸을 이름 짓는 일은
조개산
고생대
팜 스프링스에서, 울다
琉璃
유년
암, 암!
상견례
모서 춘인당 한약방
검은
근대
벚꽃들
모래들

4부
타인들
얼룩
누런 풀이
神 2
神 3
이시가와 신전에서
神들의 도매상
밤산, 밤 산
혜화동

울음 2
먼지 아버지
오늘
사과
봄비
흰 구름 역 3번 출구
點心

해설
이녁의 시학· 황현산

저자 소개 1

1947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고, 1989년 『문학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 『내 몸 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 엽편소설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시론집 『사유의 깊이, 관찰의 깊이』 등이 있다. 지리산문학상 윤동주서시문학상 애지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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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73쪽 | 258g | 127*204*20mm
ISBN13
9788927802297

책 속으로

푸른 호랑이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저 높은 굴뚝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푸른 연기와
사라지는 뼈
사라지는 살들 사이에는

낡은 의자에 앉아 곰탕을 먹는 노신사와
그 앞에서 설렁탕을 먹는 시든 달리아 같은 아내 사이에는

그것들의 배경인 더러운 유리창과
산발을 하고 흔들리는 수양버들 사이에는
날개를 빳빳이 펴고 태양 속으로 질주하는 새
반원을 그리며 느리게 불어가는 바람 사이에는, 그래!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 p.18


검은 구멍이 검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마도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나는 한 거대한 방에서 몇몇의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자신들의 호랑이를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 위를 돌고 있는 것을 보았으리라 그들은 영문 모를 일로 한없이 분주한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결국 그 일들은 보이지 않는 자신들의 호랑이를 확인시켜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완벽한 갓난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으리라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호랑이가 짜놓았을 수세기의 시간표 속에서 같은 궤도 위를 정신없이 돌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다른 호랑이들처럼 나의 호랑이 역시 보이지 않았다 셀 수 없는 날들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누구도 자신들의 호랑이를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거대한 방 안의 공기와 호랑이들의 빛깔이 같기 때문인 것 같았다

--- p.28~29 중에서


새우는 어떻게 새우가 될까

한 떼의 여자들 새우 소금구이 집에서 새우를 굽네
등껍질이 시꺼멓고 미끌미끌한 새우들이
소금 화엄에서
수염을 오그라뜨리며
등을 휘며
몸 붉히고 있네

새우의 이녁이 새우의 저쪽이 되는 순간이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네

이쪽이 이쪽인지 모르고
저쪽이 저쪽인지 모르고
파도 속에서
휙휙 날다가
통통 튀다가

不知不識間, 소금의 불 위에 누운 시간이
생면부지의 목젖을 넘고 있네

不知不識間의 붉은 껍질이
양은 쟁반 위에 수북이 쌓이네

不知不識間!
새우의 來生이 된 여자들이
입술에 묻은 새우껍질을 털어내고 립스틱을 바르네
핑크빛 입술의 새우들이 왁자하니 몰려나간 자리

또 한 쌍의 남녀가
킥킥킥
새우가 되고 있네

--- p.56~57


點心―푸른 호랑이 35

오늘 점심은 야들야들한 호랑이 쌈밥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의 접시에
목을 쳐도 피 한 점 흘리지 않는 착한 이파리 같은
호랑이들을 차려놓고
쌈을 싸야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날들로 반죽된 이 눈부신
단 하루의 정오에는
온갖 무늬의 호라이들을 다 불러
암, 쌈을 싸야지

노랑 줄무늬 호랑이 똥으로 만든 쌈장은 너무 구수해
한 숟갈 푹 퍼 넣고 싸먹으면
아아,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거야

바람은 공짜로 산들거리지
햇빛은 무장무장 쏟아붓지

이봐, 저 시푸른 호랑이 초무침 좀 먹어봐

펄쩍펄쩍 뛰는
찌개 같은 정오잖아?

뭐라구?
여기가 그 푸른 호랑이의 배 속이라구?

젠장, 그럼
나, 지금 놈에게 ‘點心’하고 있는 거니?

--- p.161

출판사 리뷰

“아픈 마음이 아픈 몸 곁에 나란히 누을 때” 적어 내린 아름다운 시편들
… 6년 만에 돌아온 이경림 시인의 다섯 번째 신작 시집


「문예중앙시선」의 일곱 번째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가 출간되었다. 1989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시집 『토씨찾기』(1992),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1995),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1997), 『상자들』(2005)을 펴내며 오랜 시간 동안 시인만의 유니크한 시세계를 펼쳐온 중견시인 이경림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집 『상자들』에서 우리 시대의 불행과 운명과 희망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이경림 시인이 6년 만에 새 시집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산다』로 돌아온 것.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아픈 마음이 아픈 몸 곁에 나란히 누울 때, 그 ‘살’(肉)의 언어로 적어 내려간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이경림의 시는 문장 전부가 감탄사이자 의태어이다. 몸의 현상학을 가장 잘 구현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고, 아픔의 지극함이 희망의 지극함으로 변환되는 순간의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다.

존재들의 푸른 저녁을 명상하다

그때, 궁창은
이루 셀 수도 없는 별들을 켜들고 달려오고
한 귀퉁이에서 달은 예의 그 노란 터널을 열리
그 속으로, 이녁이 한도 없이 흘러가는 소리……
―「우리가 한 바퀴 온전히 어두워지려면」부분

어느 날,
내가 짠 날개가 겨드랑이에서 요동쳤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끌고 위로, 위로 솟구쳤네
나, 그저 날개를 따라왔네
와서, 이녁이 되었네
이녁의 울음이 되었네
한 이레 울다 갈 날개가 되었네
―「안―푸른호랑이 20」부분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푸른 호랑이’(연작시 35편) 연작들이다. ‘푸른 호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의 경계에서 때로는 노을로, 때로는 얼룩으로, 그리고 때로는 숨결로 천변만화하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모순형용의 이름이다. 문학비평가 황현산은 해설 「이녁의 시학」에서 그것이 “이녁”의 다른 이름임을 말한다. 시간을 나타내기도 하고 공간을 지시하기도 하며, 때로는 상대방을 때로는 말하는 사람 자신을 또 때로는 각기 저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는 이 말은 이경림의 시에서 여러 차례 출현하면서 그 복잡한 갈래들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푸른 호랑이’는 이녁과 같이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서, 나와 너의 주고받음에서, 그리고 각자의 고독에서 출현하는 존재들의 푸르스름한 기미(機微)다.

숨어 있는, 포효하는, 도약하는 …… 호랑이들

설렁탕과 곰탕 사이에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어떤 생의 무릎과 혓바닥 사이에는
어떤 생의 머리뼈와 어떤 생의 허벅지 살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이 슬픈 눈과 사나운 관능을 가진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
미친 듯 포효하는
푸른 호랑이 한 마리가 산다
―「푸른 호랑이」 부분

이 호랑이들은 한 번 형체를 얻자마자 무섭도록 생생한 역동성의 상징이 된다. 내 안의 정동(情動)을 대신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성과 감성 외에 ‘기분’이라고 불리는 근본감정이 있다. 생생한 삶의 저변에 놓인, 그러면서 끊임없이 분출하여 우리 자신의 실존을 구체화하는 정념을 이르는 말이다. 푸른 호랑이들은 이성적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감성적으로 지각되지 않는 것이어서 바로 이 정념들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이경림의 ‘푸른 호랑이’는 시적 감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호랑이의 자취를 따라가다 일상에 이르다

오늘 점심은 야들야들한 호랑이 쌈밥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의 접시에
목을 쳐도 피 한 점을 흘리지 않는 착한 이파리 같은
호랑이들을 차려놓고
쌈을 싸야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날들로 반죽된 이 눈부신
단 하루의 정오에는
온갖 무늬의 호랑이들을 다 불러
암, 쌈을 싸야지
―「點心―푸른 호랑이 35」 부분

십우도 속의 동자처럼, 푸른 호랑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호랑이는 사라지고 일상의 고요한 순간으로 돌아와 있다. 시집을 덮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평화도 그럴 것이다. 호랑이는 내 안의 숨결로 잦아들고 주변은 적막한데, 문득 모든 것이 변해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안에 그토록 많은 호랑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렇게 시인 이경림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잠재해 있는, 그럼으로써 현실보다 더욱 크고 역동적인 가능성 하나를 우리에게 소개해준다.

추천평

푸른 호랑이란 무엇일까? “푸른”과 “호랑이”는 화두와 같은 언어의 조합이므로 논리적으로는 결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끊임없이 궁금증을 일으키고 호기심을 자극하여 몸과 내면과 삶과 주변에 숨어 있을 것 같은 수많은 호랑이들을 깨어나게 한다. 단지 푸른 호랑이의 의미만을 알려고 한다면 죽은 호랑이만 보게 될 것이다. 그 궁금증을 세차게 몰아가면서 상상력을 압박하고, 알 수 없는 모든 것에서 그것을 느낀다면, 자기도 모르게 역동적이고 아름다운 나의 호랑이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이경림 시인은 네 번째 시집 『상자들』에서 삶과 세상에는 있으나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상자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상자들 속에 갇혀 있던 어둡고 기괴한 것들이 이번 시집에서는 푸른 호랑이들로 변형되어 나왔다. “푸른”은 고요한 식물성을, “호랑이”는 야수적인 동물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두 힘은 서로 꼬리를 물고 대립하면서 결합하여 우리 안에 오랫동안 감춰진 깊은 비밀들을 깨우려고 한다. 당신의 푸른 호랑이는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모습인가?
김기택(시인)
나는 이 시집을 “생의 베란다”를 과감하고도 슬프게 발언하는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질문은 당신을 사로잡아 호리며 그 베란다를 들여다보게 할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특별한, 당신의 “생의 베란다”. 그곳에서 당신은 당신의 죽음과 거듭된 탄생의 과정을, 지금 이곳에 이른 생의 비밀을 부지불식간에 들춰보게 될 것이다. 아, 나의 생은 이런 내력으로 이곳에 살게 되었구나, 라며 짧은 찬탄과 긴 울음을 쏟아낼 것이다. 모든 당신들은 당신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 시간에 눈매가 순한 사슴이었거나, 나였거나, 새였다. 우리는 서로 몸을 바꾸며 존재하여왔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존재로 한생을 살았거나 살아갈, 과거 혹은 내생의 복수의 존재들과 홀로 대면할 차례다. 나는 이 시집의 이상하고 신비한 매력에 붙들리고 말았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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