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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Pb
물질의 최종 구조에 대한 무례한 질문 화학적 거세 최후의 생각 자이언트 네틀 나와 너를 닮은, 나와 너 당신과 나의 비比 텅스텐 W 네온 Ne 금 Au 철 Fe 실험 노트 사랑 티타늄 Ti 산소 O 갈륨 Ga 수은 Hg 비소 As 주석 Sn 백금 Pt 헬륨 He 세계世界 태엽 인 P 황 S 칼슘 Ca 질소 N 염소 Cl 수소 H 탄소 C 은 Ag 먼지의 화학식 먼지의 화학식 2 먼지의 화학식 3 꽃잎의 화학식 물방울의 화학식 술의 화학식 C2H5OH 부검 실험실 바늘구멍 안이 만들어낸 상에 대한 광학적 측면 바늘구멍 안이 만들어낸 상에 대한 수리적 고찰 눈물의 지형 길 화학자 알루미늄 Al 너의 침묵 밤의 질량 화합물의 명명법 원소들의 사회 대마 연금술 종이피로 글자들 중력 무중력 실험 노트 2 죽은 나무에 고함 눈의 결정 한 노래에 얹힌 다른 노래 아르곤 Ar 마그네슘 Mg 밤의 화학식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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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네 마음일지라도
금속피로*가 오지 않는 이유는 늘 피로한 빛을 하고 있어서 그래. 계속되는 슬픔은 피로해지지 않아. 등등함마저 버리고 네가 이 세상의 중심처럼 평형의 추처럼 떨어져 있는걸. 어느 날 낚싯바늘을 매달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라도 숲 그늘에 드러누운 눈밭처럼 넌 너대로 거기 있으렴. 어느 계절엔 반짝이지 않는 게 더 큰 빛이야. * 금속 재료에 변형력을 가하면 연성(延性)이 점차 감소하는 현상. 결국에는 파괴된다. ---「납 Pb」중에서 너와 나를 붙들고 있는 힘은 무엇인가. 친절하거나 적대하도록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수조에 처박힌 나를 구원한 건 언제나 내가 체념한 후였다. 발버둥 치지 않는 것 내 체념이 그들에겐 나의 힘으로 보였다. 처박히며 깊게 숨을 들이마신 건 기포와 나란히 하려는 나만의 태도였던 것. 책이란, 세상의 눈물로 만든 얼음 고체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깎아내리고 사들인 뒤 부풀리지. 나는 적 없이 쓴 글을 읽지 않는다. 요즈음은 어떤가? 눈썹이 길면, 맺혀 눈물방울이 커지듯 모든 상실이 그러한가? 너와 나를 붙들고 있는 힘은 무엇인가. ---「물질의 최종 구조에 대한 무례한 질문」중에서 어둠이 폐쇄한 저자에서 나는 너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을 아꼈다. 그 기다림마저, 사라질 일이라며, 손해 보는 느낌을 가졌다. 네가 오는 동안 그 기다림은 그 무거웠던 질량들을 줄였다.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밤의 경비들이 네온이 주입된 유리관에 전기를 흘려 보냈다. 전기들이 저잣거리를 흘러 다녔다. 빛의 당혹, 속에 너는 오고 있었다. 네온이 전기를 기다리듯 나는 최후까지 기다렸다. 기다림을 아꼈다. 네가 오는 동안, 비와 눈과 낙엽과 꽃들이 빛의 당혹으로 명멸했다. 네가 도착하기 전 나는 모두의 저녁을, 모든 기다림을 압도해야만 한다. ---「네온 Ne」중에서 도요 마을 강 끝 물이 비늘을 얻는다. 물비늘을 반짝이며 사금을 실어 나르며, 반짝이며 강은 흘러간다. 저 큰 물고기는 어디로 가나. 어어, 라는 물고기야. 내가 어느새 어어, 하는 사이 가버리는 물고기야. 물이 길을 얻어, 물길을 가리킨다. 저녁이다. 노을이 떴는데도 자신의 금을 드러내지 못하는 저 물의 배앓이처럼 내가 나에게 말려보고 사정하고 해보는 저녁이다. ---「금 Au」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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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서 또 다른 밤으로 가는 한 남자의 절규
“사람이라서 얻은 설움의 끝”(「최후의 생각」)에서 쓰인 『밤의 화학식』은 무엇보다도 눈물과 슬픔의 시집이다. 시집에서 이 눈물과 슬픔의 정조는 우선 마모되고 소멸해가는 ‘먼지’ 같은 외로운 존재들과 쓸쓸한 삶의 풍경으로부터 기인한다. “먼지 속에서 살다, 먼지가 되는 세상의 수다들”(「먼지의 화학식」), “미세 먼지로 만든 사막 같은 당신”(「먼지의 화학식 3」)이라고 시집은 말한다. 한편 『밤의 화학식』에 나오는 모든 존재들은 “지구에 혼자 있”(「바늘구멍 안이 만들어낸 상에 대한 광학적 측면」)으면서 “늘 ‘사라지려 하는 일’을 몸속에 가둬놓고 있”(「갈륨 Ga」)다. 혼자 있는 모든 존재들의 삶은 어김없이 균열이 나고 마모되어 소멸을 향해 치닫는다. 빛나고 반짝이는 것들조차 소멸의 그림자를 두르고 있다.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며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가는 것”(「산소 O」)이라고 시집은 노래한다. 소멸은 밤의 작업에 속한다. 모든 것은 밤 속에서 어김없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밤 속에서 무언가를 향해 절규하는 한 사내의 모습이 출현한다. 그는 “대부분을 실패”(「실험 노트」)한 그런 삶을 산 사내다. 그가 속한 밤은 낮으로 가는 밤이 아니라 또 다른 밤으로 가는 밤인 듯하다. “밤은 밤에게로만 가는구나. / 당신이 당신에게로만 갔듯이”(「종이피로」) 또 다른 밤으로 가는, 출구가 봉쇄된 밤에 사내는 울부짖는다.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밤의 화학식」) 시, 슬픔을 연금하는 과학 『밤의 화학식』에서 규정된 화학의 정의, “문학을 현장에 부려놓으면 화학이 된다. 그것은 화학이다.”(「글자들」)에 의하면 ‘문학/시’는 현장에 부려놓아진 과학이고, ‘문학/책’이란 “세상의 눈물로 만든 얼음 고체”(「물질의 최종 구조에 대한 무례한 질문」)다. 곡진한 삶의 현장에서 ‘눈물이 직조해낸 얼음’이 바로 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란 “글자들이 환원”(「글자들」)되는 삶의 현실을 질료로 삼아 슬픔을 연금하는 과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밤의 화학식』은 「물질의 최종 구조에 대한 무례한 질문」에 대한 시인 나름의 실험적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물음이 무례한 것은 ‘물질의 최종 구조’란 바로 이 세상의 최종 구조이자 삶의 최종 구조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그 구조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시인은 무례한 물음을 운명처럼 던진다. 블랑쇼에 의하면 ‘시는 추방’이고 ‘시에 속하는 시인은 바깥을 떠도는 영원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즉, 시인은 이미 세계의 바깥, 바깥의 세계로 추방된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물과 슬픔으로 얼룩진 이 세상과 삶의 최종 구조를 ‘견딤’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굴욕을 참았”(「화학적 거세」)던 사마천의 역사 쓰기와 마찬가지로 “시도 그런 것”일 터이다. 밤 속에서 어둠에 눈이 멀어 걷고 또 걷는 인고의 삶, “별빛의 이끌림과 달의 당김에 몸을 맡기고 / 희석된 화학 소주에 혈관을 다 내준 뒤, 걸어 걸어 가”(「최후의 생각」)고 있는, 밤의 어둠 속에서 스스로 “등이 되어 가야 하”(「칼슘」)는 그런 삶. 이러한 인고의 삶은 “뒤로는 어둠을 제압하고, 앞에서는 우는 사람을 안고 있”(「텅스텐 W」)는 ‘백열구’의 빛 같은 삶일 것이다. 사랑을 믿는 밤의 화학자 서로 떨어져 외롭게 뒹굴고 있는 각각의 입자들을, 존재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이 시집에서 눈물이나 눈물방울, 혹은 빗방울 같은 동일한 이미지의 계열체들로 변주되고 있는 ‘눈/물(방울)’의 이미지로 조형되어 있다. 그렇다면 『밤의 화학식』에서 이 물방울의 이미지는 중의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슬픔으로부터 연유하는 눈물의 변주이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외로움과 슬픔을 녹여내는 촉매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단 한 방울의 비만으로도, 나는 당신에게로, 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 「은 Ag」부분 당신을 만날 때마다 비가 오는 건지 / 비가 올 때마다 당신 만나는 건지 -「실험실」부분 『밤의 화학식』에는 이러한 ‘눈/물’의 이미지를 통하여 서로 분리되었던 입자들이 비로소 결합 가능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 결합은 또한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그 길을 “다 가는 것, 다가가는 것, 다 가서야 가는 것”「은 Ag」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 시집에서 ‘눈/물방물’은 당신과의 이별인 동시에 결합을 상징한다. 이러한 물방울의 이미지 속에서 저 ‘또 다른 밤’은 이제 밤 속에만 갇히지 않게 될 듯하다. 물론 밤은 또다시 밤으로 이어지겠지만, 적어도 저 ‘눈/물방울’의 매개로 인해서 ‘또 다른 밤’은 이제 최소한 견딜 수 있는 밤이 될 것이다. 그는 사랑을 믿었던 자, 믿고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창밖 꽃잎 속 허방들이 떨리며 울고 있을 때였단다. 벽시계와 형광등과 흰 벽들과 나무들과 지붕들과 창문들이 모두 눈동자를 가질 때였지. 시외버스들이 시외버스 속으로 들어가고 버스 속 내부 기관들을 지탱하는 접착제들이 미세하게 녹아 벌어지는, 아, 하고 벌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때였단다. 그때 봄비가 내렸단다. 봄비의 빗방울 하나하나를 다 세고 오! 빗방울은 모두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구름과 바닷속 물고기들의 부레가 부어 모두 부풀어 우는 세계가 오고 있었단다. ― 「사랑」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