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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임곤택
문예중앙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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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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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그때
동작
집 찾기 놀이
네 눈 속 푸른
일몰의 싸움꾼
비는 이틀째
잎 잎들 소리 소리들
펜타토닉
다짐하는 아침
버스 증명
스티비 원더
무관한 대면
대화의 일치
바람과 blues

2부

지배하는 눈
돌아가는, 되돌아가는
몸의 꿈들
화요일은 봄
꽉 찬, 가득한
그곳은 늘
잎 잎들 소리 소리들 2
양들은 낙엽을 타고 온다
9월에서 시월

적당하지 않은 때
야스쿠니신사
추신

3부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
Boogie Street
제목은 숨겨진 이야기
뷰파인더
12시에서 13시
너의 약속된 오후
연착
모퉁이 돌면
두 번째 시월
발굴
세븐일레븐
눈이 쌓이다 눈이 그치다
적당한 때
천안에서 안양까지

4부

스프링클러
끝없는 제국
집요
저녁의 新婦 1
저녁의 新婦 2
저녁의 新婦 3
저녁의 新婦 4
저녁의 新婦 5
저녁의 新婦 6
젖을 빠는 동물
가장 작은 식사
젊은 도공
화해의 시간
한 장의 평화

저자 소개 1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지상의 하루』『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과 시론서 『현대시와 미디어』가 있다. 고려대 교양교직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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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08g | 125*204*10mm
ISBN13
9788927808633

책 속으로

가까스로 도착했다
부르튼 입술 아스팔트의 더운 습기
물고기처럼 끔벅거려 당신이 어떤 말을 그치지 않을 때
숨을 내쉰 아가미같이 당신이
잠잠해질 때

대합실에는 TV와 긴 의자, 붉게 그을린 사람들
환영합니다 기대합니다 우리와 함께 평화를 함께

추락하는 비행기를 쫓는 아이
검은 연기를 낙하산을 숲속으로 사라진 조종사를 만나려는 아이
어떤 예정은
기억으로 바뀌어 그만일 테지만

까다로운 풍경을 지나
미심쩍은 아침을 지나
이곳은 곧 그곳이 될 거야, 그곳이 이러했듯이
당신이 말할 때

커피를 뽑으려 멈춘 두 사람
주름이 많은 쪽과 먼지같이 웃는 쪽
---「그때」중에서


사그락사그락 소리 난다
쿵쾅쿵쾅 이렇게 소리 내고 싶은 듯이

어떤 모험이든 더 들으려는 女子와
모든 나라의 흙을 담아 온 兵士는
못 참을 것 같아 그러는 듯이

女子와 兵士의 집중은 부주의해서
발자국처럼
발자국처럼 뜻 없이
냉랭한 도시를 얻어 가는 참새들

그건 아니지, 그럴 수는 없어 라고 말했지
그렇게 되었어, 그렇게 될 것이었어 라고
말했지

사랑이거나 징벌인 듯이
서로에게 일으킨 반란인 듯이

꽃이면 꽃, 눈송이면 눈송이, 시는 詩여서
아무것도 아닌 날
겨울의 마음처럼 지금의 여름도 아무 일 없는 날
그들의 소리는 물소의 살을 찢는 사자 같아서

지루해도 우리는
군화 같은 거 말고는
---「잎 잎들 소리 소리들」중에서


블루스가 뭐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도레미솔라
네 개의 손가락으로, 다섯 개의 풍선을
도레미솔라

담배 냄새, 입술에 가장 가까운 지옥
굵은 소금에 목젖을 절여놓았던 듯이
도레미솔라

농구화 구겨 신고 거리로 나갔지
그 뻔한 피로를, 이글거리는 한낮을
As the years go passing by

서른 번째 애인과 수유2리 뒷골목으로
어룽거리는 낙서들
뭘 제일 후회해? 물어왔을 때

길을 묻는 노인을 지나쳐 걸었지
링거 같은 소주를 종이컵 가득 부었지
빨간색 흰색 알약들

블루스가 뭐죠, 기타를 멘 그에게
물었을 때
도레미솔라 그리고 E플랫
네 개의 손가락으로 여섯 개의
날아오르는 풍선

커다란 몸을 들썩이며 우는 흑인 노예
그의 어린 아들이 장전하는 38리볼버

‘하루에 세 번 삼킬 것’ 봉지 뒷면에
그려진 악보 한 장
Tin Pan Ally, 빨간색 흰색 알약들

신호등을 건널 것인지 남반구의 겨울로 떠날 것인지

견딜 만하지만
변주가 필요해

스무 번째 바람맞은 애인이, 이제 그만해
말했을 때 나의 대답은
도레미솔라

시작도 끝도 없이
도레미솔라
---「펜타토닉」중에서


집 앞에서 멈추는 버스를
집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아이들은 낱낱이 엄마를 닮고
버스 안에는
노랑 풍선이 뒤엉켜 있네

주인이 정해진 땅과 염소들
정거장을 지나며 모은 나의 古代에는
동화는 없고

지금 이것과
똑같은 버스가 창밖으로 보이네
전속력으로 달리며 천천히 뒤처지는
저 안에도 아이들이 잠들고
엄마들이 따라 잠들고

기대 없이 기억 없이 오직
진군하는 순간의 황홀

버스 안의 평화보다
바깥의 속도를 나는 더 믿네
믿고 싶어지네
---「돌아가는, 되돌아가는」중에서


알아들을 수 없다

바람과 거울
문턱을 깨무는 소리의 궁금증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당신의 소리를 닮았을지 몰라
한번 부르면 나 활짝 문 열었으니
덜컥 문 열고 맨발로 뛰어나왔으니

당신은 그치지 않고
나는 죄인처럼 초조했으니

당신은 어떤 달변으로 자꾸 잎인지
어떤 밤에 길들어 그치지 않는지
귀와 종소리의 거울
바람과 야경꾼의 거울

흙으로 바람으로 분명해지려는 나는
당신으로 무덤을 지키듯 편안할는지

부스럭거리는 신음의 첩첩산중
당신은 몸도 마음도 아닌 나락을 열어 보여
당신의 소리로는 한마디 꿈꿀 수 없으니

한두 걸음으로 피로한
나는 당신의 물음에 답할 수 없으니
되도록 많은 그림자를 끌고 세상을 건너려는
당신의 속내 다 셀 수 없으니

당신은 어떤 아침에 밝아 자꾸 잎인지
그치지 않는지
흙으로 바람으로 분명해지려는 나는
귀 막은 듯 편안할는지

누구의 나이로도 당신은 처음이 아니고
당신이 닮은, 당신을 닮았을지 모르는
가을과 거울
무덤덤히 귀 후비며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잎 잎들 소리 소리들 2」중에서


이런 때를 잘 잡아야 해
비가 그치면서, 해가 질 때
사람과 집 들이
수천 개의 유리잔으로 보일 때

그리고 우리 며칠 만에 웃어보는지
붐비지 않아 다행이구나
부딪히다 보면 아무 데서나 멈추게 되거든

구름은 빠르고 으스스 추워지는 때 있지
한 손은 주머니 속에서 축축해지고
다른 손으로는 가방을 꼭 쥔

셔터를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봐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곳까지
세상과
더는 세상이 아닌 곳

구름 걷히면서 해가 질 때
하늘과 지붕은 물웅덩이에 맞닿아 출렁거리고
신호를 기다리는 자동차들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를 찰나

한 프레임 전체가 커다란
공백이거나
아주 작은 공백들

---「뷰파인더」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상의 허무를 견디는 뜨거운 허기

임곤택의 시에는 늘 반복이라는 테마가 짙게 깔려 있다. 반복은 무심하게 되풀이되는 삶의 저 끈덕진 구애와 추방,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는 운명의 잔인한 손사래에 대한 재현이자, 그 재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는 허무의 주조음이기도 하다. 일상은 버스 노선처럼, 버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처럼 반복되고 순환한다.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게 묘사되는 일상의 반복을 목격하며 우리는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허무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이 허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의 궤도는 자동화된 기계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궤도를 따라가는 인간의 안타까운 안간힘으로 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어이없고 틀림없는 반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대 없이 오직 / 진군하는 순간의 황홀”(「돌아가는, 되돌아가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지금-여기의 지나감 자체에 집중한다. 삶의 내용보다는 삶의 진군 그 자체를 믿고 가겠다는 단호한 허기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뜨거워지고 다시 뜨거워진다.

순간의 황홀을 포획하는 시라는 말의 운동

일상이 버스 노선처럼 거의 변하지 않는 궤도 위에서 돌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삶이 곧 단순해지거나 한 손에 그러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버스는 증명하기 어렵다 / 버스 기사의 동작은 거의 변하지 않고 / 어둡다 많다 / 구분할 수 없다”(「버스 증명」)고 말한다. 버스 노선처럼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지루한 일상 속에는 여전히 까다롭고 미심쩍은 순간들, 어둡고 많고 구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켜켜이 쟁여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일상의 흐름을 칼로 쳐내 순간의 단면을 잡아내고, 거대한 도시의 틈새와 균열마다 숨겨져 있는 미지의 공백들,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건너가는 사이의 무수히 꽉 찬 공백을 정밀하고도 신중한 손길로 빚어낸다. 그가 “이런 때를 잡아야 해”(「뷰파인더」)라고 말할 때, “이런 때”는 지루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던 일상이 비눗방울 같은 작은 사이들로 쪼개져 클로즈업되는 순간들, 반복의 예감이 알 수 없는 의욕으로 변주되는 순간, 예기치 못한 표정이나 감정이 도래하는 순간, 어둡고 많고 구분할 수 없는 일상이 선명한 시의 리듬으로 고양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포착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산책의 집중된 힘이자 시 쓰기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그의 산책은 지루한 예감을 정지시키고 순간의 황홀을 포획하는 저 시라는 말의 운동인 것이다.

스푸마토의 리듬을 타고 번지는 의미

임곤택의 시가 우리를 그의 반복되는 산책으로, 그의 시선이 머무는 도시 구석구석으로, 그의 말들이 열어 보이는 어떤 순간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보다도 저 매혹적인 리듬에서 나온다. 그의 문장은 잘 조율된 악기처럼 정밀한 긴장감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의외의 빈자리들이 생겨나면서 예기치 못했던 울림과 돌연한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것의 독특함은 오히려 문장 안에 쓰이지 않은 것, 그러니까 비워두거나 일부러 생략된 자리, 다른 것으로 대치되거나 종결된 자리에서 리듬과 의미가 생성된다는 데 있다. 경계선을 부드럽게 퍼트리는 스푸마토 기법처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불확정적 상태로 의미가 번져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를 단언하고 확정하기를 꺼리는 시인의 삶의 염결성과 언어에 대한 태도와 미학적 판단이 서려 있고, 의미가 충돌하고 겹치고 스미는 사이에 또 다른 의미의 가능성이 피어나게 하는 은밀한 배치가 숨겨져 있다.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감추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끝없이 지연되는 의미들의 뒷걸음질을 따라 형성되는 임곤택 시의 리듬은 허무와 안간힘과 집요함이 단단한 물질성을 입고 들어서는 의미의 자리이다. 이때 그가 포착한 순간들은 추상적 관념으로 함몰되기 쉬운 저 허무의 감각을 낱낱이 껴입은 채 돌처럼 단단한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도착한다.

시인의 말

마트 하나는 문을 닫고
편의점은 두 개 더 늘었다

담배와 연기
술이 채워진 아메리카노 미들 사이즈
이런 아침은 어떤가
창 너머 창들은 안녕하신가

일찍 싸우고 늦게까지 위로받으려는
사내들의 고성방가
두 겹으로 주차된 자동차

누가 가장 좋은 값을 치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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