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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행천 밀서 몸 밖의 아이 염소 씨의 외출 북극 거미 눈사람 무덤 사냥꾼 등대 양파의 궤도 제의祭儀 젖은 달 9H 백치 거울 나비 날다 태어나는 편지 잠행 2부 뱀의 전설 나비족 꼭지 백일몽 삭망朔望 감전 병 미래의 새 검은 숨 달과 바다 세계사 천진항을 지나다 죽 수상한 일기 몽유 야사 3부 해변의 코끼리 주술사 방 밀행 문암리 틈 구두 바닷가 민박집 칼국수 빚는 저녁 봉포항 판타지 축제 원주민 동굴 이야기 소문의 형식 새 일곱 번째 골목의 비밀 입 4부 비늘 농성장 백지족 물오리를 읽는 시간 부서진 귀 삼각대 암전 번제 혈점 외계 공중을 주무르는 남자 금요일의 유적 무밭의 저녁 소실점 푸른 손을 고백하는 숲 북극 여우 해설 밤의 저 끝으로의 여행 - 조재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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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붉은 것은 햇볕의 농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 손은 순록의 뿔이 된다 다 안다는 듯 아이가 물방울처럼 웃는다
전화번호를 지우고 주소를 지우고 마지막 저녁의 표정도 지운다 새롭게 얼굴을 내민 아침의 각도가 거미줄에 걸려 있다 거미줄에서 부서지던 햇살들이 폭설로 흩날리는 밤에 나는 공중의 혈맥을 더듬던 금빛 거미를 찾는다 어제 살았던 아침을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씻어내다가 어느덧 나는 국경 밖의 눈보라가 된다 열두 시간 전에 이국의 골목에서 듣던 눈썹 흰 노래였다 사라진 손으로 귀에 도착하지 않은 북극의 물소리를 만지는 밤 툰드라의 측백나무로 서서 여자의 몸에서 자라는 달을 본다 나는 들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밤의 중심에서 밤을 포획하는 금빛 거미를 찾는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손을 잡고 눈먼 남자가 천천히 걸어온다 검은 남자의 수세기를 지나 베링해의 어두운 해안에 닿는 저녁 내 안의 거미가 긴 다리를 뻗어 얼음 같은 그믐달을 잘게 씹어 먹는다 ---「북극 거미」중에서 개의 귀에 도달한 소리의 빛깔에 따라 저녁의 방향이 달라지고 이목구비가 없는 사물들의 심장 소리에 감전된 개는 컹컹 보랏빛 꽃으로 핀다 밤을 열면 어젯밤의 결심과 두 번 다시를 중얼거리던 어두운 거리와 심장이 없는 목각인형들이 또박또박 걸어 나오고 소나기는 제 슬픔의 무게에 놀라 쥐고 있던 허공을 놓아버린다 어둠은 어둠을 지우기 위해 태어나지만 물의 목소리를 잊고 얼음 조각이 되는 시간 하늘엔 죽은 새들이 몰려다니며 구름 속에서 폭발하고 가끔 거룩하게 눈이 내린다 순간, 순간 태어났다 죽는 숨기면서 보이는 아침 파닥이던 물결이 결심하기 전에 다시 개들이 짖는다 얼어붙는 강물을 흔들며 컥컥, 물의 숨결에서 숨이 빠져나간다 ---「태어나지 않은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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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노래, 그리고 존재와 시간
『밀서』에서도 ‘미지’를 향한 노력은 지난 시집에 이어 돌올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조재룡 평론가는, “지난 시집에 비해 조금 더 중요해진 것은 죽음의 ‘노래들’이며, 이 노래 속에서 태어나고 생명을 부여받는 존재와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 도처의 어휘들은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죽음에 바쳐진 노래, 차마 따라 부르지 못하는 애가, 병자와 동행하는 만가(輓歌), ‘꽃피지 못하고 말라붙은 요절한 노래’(「봉포항 판타지」), ‘이곳에 없는 죽은 이의 연애를 완성’하는 데 바쳐진 ‘바람의 악보에서 흘러나와 내 몸을 핥고 있는 노래’(「소문의 형식」)를 짓는 데 몰두하며, 삶에 찾아든 비애와 그 구석구석에서 신음하는 고통의 순간들을 자연에 스며 있는 고독과 슬픔으로 전화하여 단단하고도 실존적인 밤의 사건으로 바꿔”(「해설」중에서)놓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대의 어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심장이다 도처의 죽음은 날마다 태어나고 여러 번 죽은 계절은 어디로 가나 나는 빛으로 살아남은 다리를 주무르며 밝아지지 않는 오늘의 악몽에 골몰한다 병상에 누운 당신의 통증이 통증을 잊고 화장실에 갈 때 부축한 남자의 심장에서도 새가 운다 죽음은 망가지지 않는 검은 현악기라서 몸속에 들어와 살지 못한다 물속의 눈, 허파, 마지막까지 짧게 몰아쉰 숨 그리고 당신이 잡지 못한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죽음은 번식하고 담요 한 장으로 살아남은 자의 한 조각 목숨을 덮는다 총구를 돌려 나를 겨누는 밤에 나는 검은 머리카락처럼 여자를 숨 쉰다 피가 돌지 않아 아픈 다리가 구름으로 흩어지며 안녕, 안녕 중얼거리는 동안 심장 속의 딱딱한 뼈가 종유석처럼 자라나는 밤이다 ―「공중을 주무르는 남자」 전문 위의 시는 한 남자가 병자 곁에서 간호하면서, 자주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경험하는 심정을 잘 담아내어 슬픔과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시 사이사이에 포개어지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 속에서, 죽음을 한껏 벼려내며, 시간과 존재가 눈부신 도약을 하는 지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대해 조재룡 평론가는 “중요한 것은 시적 단위인 ‘구’ 각각이 서로 뭉치거나 흩어지며 시에서 죽음의 선율 하나를 울려내는 데 있다. 개별적이고 이질적인 통사구들이, 사물의 물질성에 기대어 죽음을 한껏 벼려내면, 죽음이 어른거리는 순간과 순간으로 시에서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풍경이, 주변이, 일상이, 자연이, 타자와 나를 무수히 포개어놓는 죽음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시 전반에서 존재와 존재를 연결해주는 비유로 되살아나며, 이는 포갤수록 검어지는 색채의 원리처럼, 검은 점 하나로 시 세계 전반이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구와 구, 절과 절, 문장과 문장을 떠돌며, 그 사이사이에 포개어지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 속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검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다시 돌아 나와, 범람하는 그의 검은 노래로 뒤덮일 때, 시간과 존재가 눈부신 시적 도약을 준비한다.”고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