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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눈송이 지층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나는 피와 흙이다 고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은 모래사장에 남는 물결무늬처럼 Homo Erectus의 회상 윤곽 겨울비 지적도 거울에 대하여 가야 토기 인체 해부도 골목 간절곶 등대 집중 순백의 졸음 맨드라미 정오 기다림은 언제나 길다 2부 말머리성운 별이 내리는 터전 외로운 벼랑 벼랑에 대하여 사랑의 별빛 추락 낙화암 날개에 대하여 확산 3부 그럴 수 없이 투명한 푸름 바다 물빛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야생의 빗소리 시간의 상흔 아프리카 감탄사 버드나무 잎 하나의 시간 한 마리 매미가 우는 것은 바람의 기슭 달빛 귀뚜라미 소리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것은 4부 바다 워낭 소리 모과 절개지 의자의 교감 부재의 거울 5부 비의 동행 암스테르담의 헌책방 하루살이의 날개 저녁노을 식탁 이란의 가을 뿔의 기억 오백 광년의 노을 제주도 제주도 추억 섬진강 물방울 밀양강 둔치에서 철길에 대한 에스키스 소나기가 지난 뒤의 풍경 세잔의 시론 눈동자 거울 물질은 이유를 초월한다 순서 6부 균열 석유 냄새의 방정식 전후의 내력 7부 나는 시의 현장이다 흰 종이의 전율 불타오르는 가을 숲까지 나비의 이륙 해설 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_최현식 |
허만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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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접하면 동상을 입는 세계의 극한을 찾는 여린 언어다. 예니세이 강을 건너 알타이에 이른 나의 언어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파토스의 얼음이다. 자작나무 숲 흰 줄기 사이에서 뿌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적설량보다 순수하다. 시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한겨울 바람 앞에서 내 언어는 땅 밑에서 파릇파릇 돋는 봄풀이다. 온몸으로 가늘게 떠는 연약한 한 줄기 감수성. 역사의 발에 밟힌 끝에 대답처럼 다시 본래의 체위를 찾고 마는 초록색 풀의 강인함.
나의 언어는 우주를 횡단하며 휘어질 줄 모르는 별빛의 직선이다. 영하의 겨울 하늘 별자리의 명석한 깜박임이다. 정신과 육신이 갈라서기 이전의 캄캄한 소용돌이가 내뿜던 은빛 시간의 물보라. 불멸을 허용하지 않는 시간의 물보라에 젖었던 광물의 침묵. 기어이 꽃잎처럼 입술에서 떨어지는 최초의 언어를 낳고 마는 침묵의 인내. 나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의 고독과 호명되기를 애절하게 기다리던 미지의 꽃 이름 틈새에서 치열하게 내리는 폭설처럼 타오르는 언어의 불길이다.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전문 어둠이 없이 빛이 빛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빛의 순수. 그것은 절망이 아닌 외로움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도 사물도 외로움으로 자신의 윤곽을 간신히 견디고 있다. 접시 위에 놓여 있는 한 덩이 모과의 연두색 침묵을 보라.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강철 구조물의 아름다운 휘어짐을 보라. 명석한 자기 윤곽을 찾아 하늘을 헤매는 구름을 보라. ---「윤곽」 전문 나는 골목길을 택했다. 골목에는 녹슨 양철 처마와 불빛 꺼진 꾸부러진 창과, 팔짱 낀 발자국 소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신의가 있다. 골목 끝에 간신히 그곳만이 환한 가게가 있다. 잠드는 일을 태만이라 믿는 반질반질한 사과 알들이 베개맡 책갈피처럼 잠들지 않고 있는 심야의 가게. 지워진 어릴 적 기억 속 풍경의 한 단 면이 망각의 깊이 밑바닥에서 정다운 오렌지 빛 삼투압을 띄고 조용히 수면 위에 떠오르는 별빛 얼어붙는 겨울 하늘 골목 끝. ---「골목」 전문 1 말은 가슴 안에서 다져진 뜨거운 언어가 폭발적으로 뛰쳐나온 순결한 질주다. 달리던 한 마리 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의 극한에서 세계의 기원을 생각해내려 수직으로 목을 치켜들고 멀리를 살피고 있는 한 마리 말. 목덜미 이하는 태초의 어둠이다. 처음으로 별빛을 만들어내는 어둠. 2 허무와 허무가 서로를 비치는 1억 광년 하늘을 말굽 소리도 없이 달리는 한 마리 말. 영하의 온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말. 시여, 교만하지 마라! 중심도 없이 터지는 자욱한 불의 물보라 사이를 달리는 말의 영원은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한순간 별빛이다. ---「말머리성운」 전문 잔잔하게 불타오르는 모래를 밟던 최초의 낙타가 무릎을 꿇고 쓰러진 지점에서 사막은 사방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유순한 낙타의 걸음에게 넓이란 죽음으로부터의 끊임없는 탈출이다. 쓰러진 낙타가 눈감고 뜨거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마지막 숨을 들이 마시며 바라본 하늘에 떠 있던 한 송이 구름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구름에 윤곽이 없듯 슬픔에도 윤곽이 없다. ---「확산」 전문 뒷모습이 없는 내가 뒷모습이 없는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나 자신과, 어디서 본 듯한 도시의 한 구획 같은 또 하나의 나 사이의 위험한 틈새다. 가책과 회한 사이에 쏟아지는 별빛 같은 틈새. 나는 유리의 두께 위에 묻어 있는 쓸쓸한 기억이다. 미래라고 반드시 앞에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기억이라고 반드시 뒤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나의 기억에서 모순과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면, 내 걸음이 지구를 떠난 뒤에 하늘에 떠오르는 다양한 구름의 형태와 낯선 도시 밤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의 외로운 그늘을 사랑할 것이다. 물길은 새로 만나는 또 하나의 물의 깊이 속에서 익사한다. 바다에 이르는 길을 찾아 허리를 휘는 물의 등에 업혀 흐르는 것은 물소리가 아니라 햇빛을 반사하는 초록색 잎새처럼 반짝이는 시간의 죽음이다. 순간에서 영원이 태어나고 순간에서 영원이 사라진다. 시간은 부위에 따라 그 밀도가 다르다. 사람들이 시간의 실재를 느끼는 것은 기다리는 때다. 가시철조망 너머 바라보아야 했던 주홍색 노을의 아득한 깊이와 횟수를 못으로 가슴의 벽면에 새기며 바깥 세계의 신선한 자유를 기다렸던 암담한 시간.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나는 보고 있지만, 나의 시선 끝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의 빛과 그늘이 있다. 나의 숲에서는 새가 지저귀지 않고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독한 나무들이 철새처럼 무리 지어 조용히 눈이 내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시선은 호수 수면에 비치는 물 그늘의 미세한 떨림이 아니라, 빛과 그늘의 경계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는 눈동자의 심연이다. ---「눈동자 거울」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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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
전통적 서정을 거부하고 작품 속에 고유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담아온 허만하 시인의 신작 시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문예중앙시선 027)가 출간됐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병리학자로서 부산 고신대 의대 교수를 지낸 허만하 시인은 1957년 《문학예술》추천으로 등단한 뒤, 『해조』(1969),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1999) 등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이번 시집은 『바다의 성분』(2009)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여섯 번째 시집이다. 올해로 팔순을 넘어섰지만 언어에 대한 독특한 시선과 자의식으로 세계를 새롭게 번역해내는 그의 시는 여전히 젊다. 전통적인 서정시가 자연을 바라보며 화자의 상처를 고하고 위안을 돌려받는 방식이라면, 허만하 시인은 자연을 그대로 수용해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 고유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첨사하여 재해석하고, 순수를 갈망하며 시원에 다다르고자 한다. 그렇기에 허만하의 언어는 관념이 섞인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시적 체험을 선사해준다. 이번 시집에서도 자연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내적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연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내부로 떠올려 신세계를 만들고, “빛과 그늘의 경계”(「눈동자 거울」), 즉 이질적 존재들의 모순과 긴장, 갈등을 서로의 생성과 변신, 전유로 자유롭게 하는 미학의 장(場)이 펼쳐진다. 윤곽, 절대미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한 불투명함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나는 보고 있지만, 나의 시선 끝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의 빛과 그늘이 있다. 나의 숲에서 새가 지저귀지 않고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독한 나무들이 철새처럼 무리 지어 조용히 눈이 내리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시선은 호수 수면에 비치는 물그늘의 미세한 떨림이 아니라, 빛과 그늘의 경계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는 눈동자의 심연이다. ―「눈동자 거울」 부분 허만하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다시 보는 일이다”(뒤표지 글). 자연의 물리적 경치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내부로 떠올려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이는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라기보다 수렴하고 포용하는 “눈동자”에 가깝다. 시인은 이 “눈동자”를 통해 소용돌이치는 “내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즉, 허만하 시인에게 시는 정신적 풍경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인은 세계와 나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무균질의 순수의 세계를 갈망한다. 시인에게 세계는, “세계의 골격은 선과 점의 기하학이”며 “엄정한 논리의 향기”(「세잔의 시론」)이다. 하지만 세계에는 그런 점?선?면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순수”가 있다. “어둠이 없이 빛이 빛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빛의 순수”(「윤곽」)처럼, 빛이든 어둠이든 서로 삼투하지 않는 단독성의 “순수”는 늘 외롭고 고독하다. 내 정신은 무게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내 윤곽을 그려내는 그림자는 미량의 무게를 가지고 정오의 땅에 눕는다. 나를 따라다니는 내 그림자는 무수한 내가 간신히 나와 일치하는 희귀한 순간이다. ―「겨울비 지적도」 부분 세계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시인은 이 시집에서 “윤곽”이라는 시어를 자주 끌어온다. 위의 시에서, “내 그림자”와 “무수한 내가” 일치하는 희귀한 순간, “내 윤곽을 그려내는 그림자”는 “미량의 무게”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무수한 나’는 ‘나’가 아닌 이질적인 타자성의 의미를 내포하므로 “윤곽”은 이질적 존재들의 혼종교배를 통해 문득 출현하고 재구성되는 잡종의 형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단독성의 “순수”는 오히려 “눈부신 절망”(「간절곶 등대」)이며, 타자와의 결합과 연대를 통해 새로 태어나는 것들을 거절하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빛은 어둠을 만나 비로소 자기를 완성하”(「간절곶 등대」)는 것이다. 이러한 “윤곽”에 대해, 해설을 쓴 최현식 평론가는 절대미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차이와 경계를 지워버린 시인의 의도된 불투명함이라고 말한다. “특정 세계를 향한 순정한 숭고와 희열은 미의 파토스를 삶의 에토스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꽤 바람직한 감각적 경험의 일종이다. 하지만 절대미의 지배가, 절실한 삶의 의욕과 개척을 쓸모없음의 지평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는 허위적 폭력으로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다는 범속한 진실은 어쩔 것인가. “윤곽”은 불량한 미와 숭고의 독점을 예방하고 견제하기 위해 차이와 경계를 뒤섞고 지워버린 의도된 불투명함이자 불명료함이 아닌가.”(해설 「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 중에서) 벼랑, 정신의 밑바닥에 뿌리박고 있는 영혼의 지혜 벼랑은 앞가슴만 있지 등이 없다. 자욱한 김 소리 뿜으며 습곡을 흘러내리는 선홍색 용암의 뜨거움과 흰 빙하기의 냉혹한 추위를 기억하는 무기물질의 응집. 바스러지기 직전의 바위 피부에 묻어 있는 무수한 계절의 햇살, 달빛, 그리고 바람의 흔적. ―「벼랑에 대하여」 부분 허만하의 시에서 “윤곽”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시어가 “벼랑”이다. 시인 스스로가 “한 그루 나무처럼 바람 안에 서 있는/시련에 씻기고 씻겨/최초의 별빛처럼 순결한 정신”(「외로운 벼랑」)이라고 말하는 “벼랑”은 “추락하는 정신”(「추락」)의 역설적 비유이다. 또한 위의 시 「벼랑에 대하여」는 벼랑이 되기까지 ‘변신’의 흔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바람은 물처럼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에 투명한 물빛”(「추락」)이란 시구에서 보듯, 바람이 투명한 물빛으로 변신하는 것은, “추락”이 생성과 연대, 변환과 전유의 숨겨진 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현식 평론가는 “「벼랑에 대하여」에 기록된 악전고투와 변신의 흔적, 그리고 타자의 기억은 “벼랑”의 경험일 뿐만 아니라 “윤곽”의 경험이자 내적 풍경이기도 하다. (…) “윤곽”은, 그리고 “벼랑”은, 딱딱한 “암반이 아닌 정신의 밑바닥에 뿌리를 박고 있”는 영혼의 지혜이자 기술인 것이다. 시인이 자연을 끊임없이 소환했지만, 그것을 향한 연서와 취조서를 단 한 장도 작성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주체의 내면으로 흘러들어 최초의 ‘내적 풍경’으로 스스로 태어난 것이다.”(해설 「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 중에서)라고 말한다. 변두리에의 집요한 삶과 침묵의 밑바닥을 떠도는 자 나는 근접하면 동상을 입는 세계의 극한을 찾는 여린 언어다. 예니세이 강을 건너 알타이에 이른 나의 언어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파토스의 얼음이다. 자작나무 숲 흰 줄기 사이에서 뿌드득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적설량보다 순수하다. 시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다. 한겨울 바람 앞에서 내 언어는 땅 밑에서 파릇파릇 돋는 봄풀이다. 온몸으로 가늘게 떠는 연약한 한 줄기 감수성. 역사의 발에 밟힌 끝에 대답처럼 다시 본래의 체위를 찾고 마는 초록색 풀의 강인함.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부분 이 시집의 4부에는 ‘바다’ ‘워낭 소리’ ‘모과’ ‘절개지’ ‘의자’ ‘거울’ 등의 소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체의 다른 형식이자 “나는 파토스의 합금이다. 나는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악이라면 나는 악이다.”를 외치는 또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일 것이다. 허만하의 시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발생하고 울리는 무엇이다. 시인은 “태어나자마자 중심을 떠나 변두리를 찾아 멀어져가는 은빛 시간의 운명”(「시간의 상흔」)에 대해 집요하게 탐색하고 내면화한다. 따라서 무명의 “들꽃의 고독”과 “미지의 꽃 이름 틈새에서 치열하게 내리는 폭설처럼 타오르는 언어의 불길이” “나”(「시의 계절은 겨울이다」)인 것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이에 대해 최현식 평론가는 “변두리에의 집요한 삶과 그것을 파고드는 침묵의 밑바닥을 떠도는 자에게는 M. 피카르트의 금언이 제격이다. “침묵은 하나의 세계로 존재하고, 침묵의 세계성에서 말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세계로 형성하는 법을 배운다. 침묵의 세계와 말의 세계는 마주해 있다.” “기어이 꽃잎처럼 입술에서 떨어지는 최초의 언어를 낳고 마는 침묵의 인내”(「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는 필시 저 “침묵”과 “말”의 또 다른 형상일 것이다.”(해설 「내면의 거울, 주체의 풍경」 중에서)라고 덧붙였다. 시인이 쓰는 시론 시를 쓰는 일은 햇빛과 바람을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들꽃 몸짓을 바라보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다시 보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실명할 때까지 언어의 한계에 도전한 끝에 언어에 묻히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나의 중심에 존재의 논리가 혼자서 발전하는 장소를 마련하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지성과 감성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언어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하루살이 날개처럼 여린 언어로, 보아야 할 것을 넘어선 궁극을 바라보고 그 놀라움을 자신의 고유한 문체에 담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은 시가 운명이 되는 생의 절차를 긍정하는 용기다. ―허만하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