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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년 인텔리겐치아 - 악마의 늪에서 혁명의 도시로
그의 고통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주 억세고 강인하게 자랐다. 사실 그의 고통은 주로 심리적인 것이었다. 그의 괴로움은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과, 아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요구를 하면서 보살핌과 충고는 간헐적으로만 베푼 아버지, 예민한 젊은이가 거친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당하는 멸시와 굴욕, 시 가족 때문에 집이 비좁다는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열여덟 살도 안 되어 결국 집을 떠났지만, 세르게이는 이미 청소년기에 자신이 기생충 같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 68~69쪽에서 네차예프의 경우에는 자신을 순교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자신을 공격자와 동일시하는 경향과 공존해, 그의 범죄 행위와 권력 추구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네차예프가 걸은 길은 자신이 당국에 체포되어 구타와 고문, 죽음을 당할 거라는, 결국은 실현될 예언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는 일이 많았다. 권력과 복수를 향한 그의 충동 곁에는 늘 벌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가 음모가로서 저지른 실수들은 악마 같은 베르호벤스키보다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떠올리게 만든다. 네차예프는 니체가 말한 의미에서 ‘창백한 범죄자’였다. - 75쪽에서 2장 지하 혁명가 - 니힐리즘 문화 속의 젊은 반란자들 1880년대 유럽에서는 ‘니힐리즘’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혁명적 테러리즘을 뜻했다. 이는 물론 기독교가 십자군을 낳고,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를 낳고, 마르크스주의가 스탈린주의를 낳은 것만큼이나 역설적이었다. 어떤 주의가 상징이 되면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상징의 이름으로 전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네차예프는 니힐리즘에서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이론적 내용을 제거하고 대신 그 자리를 자신이 만든 혁명적 행동을 위한 교리로 채웠다. 과학적인 의미의 니힐리즘이 그에게는 헌신해야 할 구속력이 있는 어떤 이념이 아니라 하나의 형식, 편리한 도구였을 뿐이다. - 98쪽에서 이슈틴은 자신의 혁명 조직 안에 ‘지옥’이라는 엘리트 테러 집단을 만들었다. ‘지옥’의 구성원들은 아주 엄격한 규율과 자기 희생으로 그 지위를 얻었던 것 같다. “‘지옥’의 구성원은 가명으로 살아야 하며, 가족과도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한다. 물론 결혼을 해서도 안 되고, 친구도 포기해야 한다. 결국 한 가지 목표만을 품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조국의 번영을 위한 무한한 헌신이다. ‘지옥’의 구성원은 조국을 위해 개인적인 만족은 모두 포기하고, 대신 증오를 위한 증오를, 악의를 위한 악의를 품고, 자기 안에 있는 이런 감정들에 집중해야 한다.” - 123쪽에서 3장 혁명가의 교리문답 - 네차예프, 바쿠닌을 매혹하다 “완전히 박살내는 행동이 아니면 어떤 행동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행동이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독약, 칼, 올가미 등! …… 이 투쟁에서 혁명은 모든 것을 똑같이 정화한다. 따라서 거리낄 게 없다! 사회에서 남의 고혈을 빠는 자들의 마지막 날이 어둠에 잠기게 하라! 공포와 후회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고, 넝마주의 작가들이 감상적인 신음을 토해낼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울부짖음에 냉담해야 한다. 그리고 사라질 운명에 있는 자들과 어떤 타협도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것을 테러리즘이라 부른다! …… 그들은 이것은 목청껏 비난한다! 내버려둬라.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 199쪽에서 아주 놀라울 정도로 빨리 네차예프는 자신의 혁명에 대한 환상을 실재 비슷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망명자들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뒤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높이고 자금도 얻으려 했다. 바쿠닌은 네차예프에게 자신이 서명하고 유럽 혁명동맹의 인장이 찍힌 문서를 주어 네차예프가 세계 혁명동맹의 러시아 지부 비밀 대표임을 증명해주었다. 자신이 꾸며낸 것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바쿠닌은 문서에 ‘2771번’이라는 번호까지 붙였다. …… 바쿠닌은 주로 조직을 위해 편법으로 속임수를 썼다. 그는 네차예프를 이미 존재하는 자신의 아나키즘 동맹에 바로 등록시키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바쿠닌 자신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러시아 지부를 만들기로 했다. 따라서 네차예프와 바쿠닌은 서로 속였다기보다는 저마다 자기 기만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222~223쪽에서 4장 인민의 복수 - 동지 살해와 희생 충동 “내가 보기에 그 젊은이는 그다지 매력도 없고 흥미도 끌지 못했다. 그는 여윈 몸에 어깨가 넓었고, 둥근 얼굴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있었다. 내 눈과 누군지 모르는 그 방문객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검고 작은 눈이 어찌나 날 차갑게 노려보는지, 어찌나 매섭게 쏘아보는지 난 내가 창백해지는 것을 느꼈고 …… 공포에, 동물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난 내 삶에서 한 번도, 그 전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느낌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 난 그 이상한 남자와 얘기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평생 세 번밖에 보지 않았고 그것도 그냥 지나쳤을 뿐이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눈을 기억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노예처럼 그에게 복종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 279, 280쪽에서 네차예프는 자신의 사디즘적 충동이나 마조히즘적 충동을 떨쳐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이바노프를 살해할 때도 얼마든지 권총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희생자를 직접 때리고 목을 졸랐다. 네차예프가 이렇게 쓸데없는 폭력을 휘두르며 저주에 찬 욕설을 퍼부은 데는 대의를 저버린 배신자를 처벌하려는 냉혹한 의지와는 다른 뭔가가 있었다. 경찰의 끄나풀이 자기 목을 졸라 죽이려 했다는 이야기에는 사디즘적인 충동과 자신이 언젠가는 순교하리라는 마조히즘적인 기대와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 290~291쪽에서 5장 냉혹한 유혹자 - 고귀한 목적, 사악한 수단 네차예프가 자신에 대해 꾸며낸 거짓말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1869년 1월~2월에는 체포되었다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탈출했고, 시베리아에서는 죽어 오가료프가 시를 써서 그의 죽음을 기렸으며, 시베리아의 네르친스크에서 강제 노동을 하러 가는 길에 경찰관 세 명에게 죽임을 당했고, 앞서 말한 대로 마지막에는 탈출을 했다. 카뮈의 말을 빌리면, 네차예프는 ‘숭고한 희생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나쁜 병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진짜 권력도 원했다. 그래서 그는 타협책을 고안해냈는데, 그 타협책 속에서 그는 ‘순교자-영웅’의 신비한 매력을 확보하되, 곧 그것을 ‘생존자-영웅’의 매력을 얻는 데 써버리는 심리 전략을 구사했다. - 310~311쪽에서 바쿠닌은 결국 자신이 네차예프의 순진한 예수회주의를 참고 견딘 것을 두고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았다. “너의 진실성과 너의 합리성을 부정하면서도 난 너의 열정과 운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은 부정할 수 없으며, 또 이 두 가지 점에서 널 따라올 사람을 러시아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믿는다. 이것이 내가 널 사랑하고 널 믿는 유일한 토대이며, 이 순간에도 난 네가 내가 아는 어떤 러시아인보다도 러시아 혁명 운동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사명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 346쪽에서 6장 신화의 탄생 -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순교자 네차예프는 점차 죄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간수들이 느끼는 저항감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헌병 장교들과 일반 병사들이 규칙을 어기도록 만들고 나니 그들을 공모자처럼 느끼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을 협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의 연기력과 타인의 심리를 교묘히 조종할 수 있는 재능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종교적인 감정과 한 가족 같은 느낌을 이용했다. 그리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출세하지도 못해 생긴 간수들의 열등감을 이용했다. …… 그가 요새 안에서 음모를 꾸민 방법은 전에 썼던 수법과 아주 비슷했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능력이 있었고, 과제는 공모자들 사이에 배분해야 하며, 공모자들은 저마다 다른 공모자들과 제한된 접촉만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도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 415~417쪽에서 네차예프는 마지막 성명서에서 특유의 거칠고 사나운 말투로 혁명을 위한 테러라는 자코뱅의 전통에 전력을 다해 충성할 것임을 천명했다. 감옥 생활은 그의 복수욕을 더욱 부추겼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쓴 이 이상한 성명서들보다 네차예프의 혁명적인 독재 체제 수립과 그의 회개할 줄 모르는 야만성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 곳은 없다. …… 1881년에 네차예프의 성명서를 읽은 ‘인민의 의지’ 집행위원회 위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비도덕성을 질타했지만, 오히려 그는 그들이 정치 테러라는 성공적인 싸움을 통해 얻은 위치를 적극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그는 속임수를, 위원회가 가진 자원을 두 자리 수만큼 과장할 것을 요구했다. - 422, 424쪽에서 7장 복수의 정치학 - 끝나지 않은 네차예프주의 네차예프주의는 1870년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진보적인 이념이 야만적인 형태로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결국 러시아 혁명가들이 그것을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20세기 혁명 운동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을 보면, 네차예프주의의 문제가 사실은 아주 중대한 인간의 문제를 축소해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끊임없이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네차예프주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뿐 아니라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했던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병리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 449쪽에서 네차예프의 성공은 “젊은 양심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능력에 기댄 것이었다. 네차예프는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있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찾아냈다. 여기에 네차예프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을 더했다. 네차예프는 행동하는 혁명가의 역할을 할 때는 추종자들의 의존성과 수동성, 진보와 의지의 결여에 대한 불안감을 교묘히 이용했고, 인민을 위해 복수하는 역할을 맡을 때는 인민에게 느끼는 그들의 죄책감, 그들이 자신들을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것, 인민의 복수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이용했다. 네차예프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자신도 비슷한 불안과 죄책감을 느꼈고 그것에 대해 추종자들에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된 방어 기제를 제공했기에 성공했다. 네차예프주의에서처럼 방어 기제가 그렇게 곧바로 정치적인 전략으로 전환된 일도 드물었고, 그렇게 바로 심리적인 원천을 드러내는 정치적 수사도 드물었다. - 451~452쪽에서 |
20세기 독재자들의 진정한 선구자 네차예프!
정의로운 목적은 사악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인간 해방의 대의를 복수의 정치학으로 펼친 혁명가, 냉혈과 광기의 테러리스트, 네차예프의 본격 평전!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 혁명가는 그 자신에 관한 한 관심사도 없고, 감정도 없고, 애착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혁명가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유일무이한 배타적 관심사이자 총체적 주제이고 총체적 열정인 혁명으로 흡수된다.” “혁명가는 어떤 종류의 교조주의도 경멸하며, 평화의 과학도 거부한다. 평화는 미래 세대의 몫이다. 혁명가가 아는 과학은 오직 하나, 파괴의 과학이다.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혁명가는 밤낮으로 인민의 삶을, 인민의 특성과 상태를, 이 사회 구조의 모든 조건을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철저하게 연구한다. 목적은 같다. 이 더러운 구조를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역사적 인물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역사학자 필립 폼퍼가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네차예프의 본격 평전이다. 이 책은 증오와 복수의 혁명가 네차예프의 심리적 전기일 뿐 아니라 19세기 러시아 혁명 운동에 관한 정치심리학적 분석서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악령》에서 창조한 불길한 인간형 베르호벤스키의 실제 모델인 세르게이 겐나디예비치 네차예프(Sergei Gennadievich Nechaev, 1847~1882). 그는 19세기 후반의 한 시기, 러시아와 유럽에서 엄청난 구설과 정치적 회오리를 일으킨 젊은 혁명가이다. 혁명 동지를 살해하여 러시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네차예프는 스위스에서 붙잡혀와 재판을 받고 10년을 아무도 모르는 요새 감방에 갇혀 있다 죽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혁명을 직업으로 삼고,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을 혁명가라고 한다면,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표상이었다. 동시에 그는 음모가였고 사기꾼이었고 공갈범이었고 복수의 화신이었으며, 피에 굶주린 범죄자였다. 오로지 혁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극단적 열정, 너무도 강렬해서 뿌리치기 힘든 사악한 마력은 미하일 바쿠닌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들을 사로잡았으며, 그가 작성한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가장 강력한 혁명가들의 혁명 강령이 되어 1백 년 이상 혁명의 역사를 은밀하게 지배했다. 혁명의 역사에서 완전히 부정되고 잊혀진 존재가 된 불운한 혁명가 네차예프. 그러나 그는 거의 모든 건전한 혁명가들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인간 해방의 대의 뒤에 숨겨진 어두운 내면이다. 네차예프, 그는 어떤 존재인가? 1.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의 주인공의 하나인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의 실제 모델 1860년대 후반에 《죄와 벌》《백치》를 잇따라 발표하여 소설 작가로 입지를 굳힌 도스토예프스키는 1871~1872년 또 하나의 장편 《악령》을 발표하였다. 1869년 11월 21일 일어난 대학생 이반 이바노프 살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가 하나의 인간형을 떠올리고 드라마를 구성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네차예프는 문학작품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물, 하나의 ‘악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네차예프는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 지방 도시의 니힐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인 베르호벤스키는 타락천사와도 같은 풍모의 소유자인 귀족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을 이름뿐인 국제 혁명조직의 대표로 추대해놓고, 그를 추종하는 주변의 젊은이들을 부추겨, 한때 그 집단의 일원이었던 신학생 이반 샤토프를 살해한다. 샤토프 살해 장면은 네차예프가 이바노프를 살해한 정황과 거의 일치한다. 2. 혁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동료를 살해한 사람 네차예프에게 사악한 명성을 안겨준 결정적인 사건은 1869년 11월 21일 벌어진 ‘동료 살해’였다. 민중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비밀 결사조직 ‘인민의 복수’를 결성한 네차예프는 자신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문제를 제기하다가 조직을 떠날 결심을 한 조직원 이반 이바노프를 동료 4명과 함께 잔인하게 죽였다. 쿠즈네초프가 꼼짝 못하게 이바노프의 발을 붙들자 네차예프가 그의 가슴에 앉아 주먹으로 때리며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겁에 질려 얼어붙어버렸다. 그 사이 네차예프는 그들과 이바노프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소리를 질렀고, 이바노프가 네차예프의 오른손을 깨물었다. “너희들 왜 나를 때리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아무래도 그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네차예프가 니콜라예프에게 쿠즈네초프의 두건을 달라고 소리쳤다. “목을 졸라!” 그러자 니콜라예프가 손을 더듬어 이바노프의 목을 찾았다. 그러다 그만 네차예프의 손을 떼어내 이바노프가 바닥에 얼굴을 돌리고 괴로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얼마 뒤 격투는 끝났으나 이바노프의 몸은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 네차예프가 여전히 욕설을 퍼부으며 니콜라예프에게 자기 권총을 달래서 이바노프의 뒤통수에 대고 쏘았다. 총알이 그의 왼쪽 눈을 뚫고 나왔다. - 258쪽에서 3. 기만과 술수로 당대 유럽 제1의 혁명가 바쿠닌을 농락한 사람 네차예프의 사기 행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해를 입은 사람은 러시아 아나키즘의 대부였던 노망명객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이었다. 1869년 스위스에 도착한 22살의 야심만만한 청년 네차예프는 단숨에 바쿠닌을 사로잡는다. 그는 자신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한 정치범이며, ‘러시아 혁명위원회’의 대표자로 혁명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한다. 바쿠닌은 네차예프를 위해 돈을 마련하고 글을 쓰고 사람을 연결해준다. 존재하지도 않는 ‘러시아 혁명위원회’의 대표인 네차예프에게 바쿠닌은 마찬가지로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혁명가동맹’의 러시아 지부 대표를 인증하는 증명서까지 만들어준다. 머잖아 둘의 관계는 한 쪽으로 급속히 기운다. 네차예프가 바쿠닌을 부하처럼 부리기 시작했고 바쿠닌은 이 모멸스러운 관계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 기이한 관계가 끝내 바쿠닌의 삶을 파국으로 이끌어가기까지 바쿠닌의 네차예프에 대한 애착은 식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제1인터내셔널 안에서 바쿠닌파와 주도권을 다투던 카를 마르크스 진영에 결정적인 빌미를 주었고, 마르크스는 바쿠닌을 네차예프와 엮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해버린다. 바쿠닌을 몰락시킴으로써 네차예프는 세계 혁명운동의 물길마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튼 것이다. 4. 자신을 감시하는 간수들까지 휘어잡아 조종한 마력적 존재 스위스 취리히에서 체포되어 러시아에 인도된 네차예프는 1873년 1월 종신형 판결을 받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섬에 세워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독방에 감금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그의 음모와 조직 활동은 쉬지 않는다. 그는 감옥의 간수들을 압도적 카리스마로 사로잡아 자기 수족으로 만들어 조종한다. 간수들마저 혁명 동조 세력으로 포섭해서 지하 혁명조직인 ‘인민의 의지’와 연락을 하여 탈출 계획을 짠 것이다. 네차예프에게 충실한 간수들은 대부분 1878년에서 1881년 사이에 보루에 들어와 근무했다. 그가 ‘인민의 의지’와 결속되어 있었을 때는 공모자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었고, 간수들의 충성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네차예프는 그들의 ‘독수리’였다. 그들은 그를 존경했고,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들은 그에 의해 무신론으로, 혁명적인 사회주의로, 차르 암살자로 변하였다. …… 결국 모두 69명이 음모와 관련해 체포되었고, 그 가운데 44명은 1881년 12월 29일에 체포되었다. - 438~439쪽에서 알렉산드르 2세 암살에 성공한 ‘인민의 의지’가 와해되고 간수들 중에서 네차예프의 공범자들이 발견되어 요새를 탈출하려던 네차예프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5. 살아서 전설이 된 존재 이바노프 살해 사건은 러시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으며,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후에는 그의 비열하고 사악한 방법에 치를 떨며 어느 누구도 네차예프를 옹호하거나 변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차예프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독가스처럼 러시아 혁명 운동 내부에 스며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채 요새에 갇혀 있던 네차예프가 8년 만에 지하 혁명 조직에 편지를 보내자 그들은 충격에 휩싸인다. 이 편지는 아주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네차예프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고한 사람이 흘린 피와 강탈, 협박할 목적으로 체면을 손상시키는 문서들을 훔친 행위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며 저지른 모든 일이 네차예프의 혁명적인 이미지를 뒤덮고 있던 모든 거짓됨이 사라졌다. 거기에는 몇 년이나 감방에 홀로 갇혀 있었는데도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이성이 있었고, 온갖 형벌의 무게에도 굴하지 않은 의지가 있었으며, 살면서 겪은 모든 실패에도 여전히 고갈되지 않은 에너지가 있었다. 위원회 모임에서 네차예프의 편지를 읽었을 때 우리는 모두 벅찬 감정으로 “그를 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419쪽에서 네차예프는 극심한 감시 속에서 고통 받다가 괴혈병과 결핵으로 1882년 11월 21일 눈을 감았다. 그날은 13년 전 네차예프가 이바노프를 살해한 날이었다. 네차예프의 최후는 혁명가의 교리문답의 첫 문장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란 표현대로 비참했지만 그의 사상과 신념과 생활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혁명가들이 그가 만들어낸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제시한 강령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였다. 네차예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네차예프는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100년 이상 쌓인 러시아 혁명 운동의 여러 복합적 요인이 한데 모여서 극단적 혁명가 네차예프를 탄생시켰다. 네차예프를 키운 그 시대의 문화적 공기의 한 요소는 ‘니힐리즘(허무주의)’이다. 농노해방이 기만적 술책으로 끝나버린 후 새롭게 등장한 인텔리겐치아는 기존의 그 어떤 권위도 인정치 않고 기존 질서를 총체적으로 부정하면서 혁명의 길에 희망을 걸었다. 이들에게 붙여진 니힐리스트라는 명칭은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에서 직업적 혁명가가 등장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였다.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가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창조해낸 인물 라흐메토프는 혁명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며, 삶 자체가 혁명을 위한 준비 작업인 사람이고, 직업적 혁명가의 모범이다. 소설 속 이 새로운 인간형이 현실의 네차예프를 탄생시킨 태반이 되었다. 라흐메토프는 혁명을 위해 모든 삶을 바치고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치밀하게 조직하는 사람이다. 그는 혁명가로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일정량의 육식을 하는 것을 포함해 식사량을 정확히 조절하고, 엄격히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생활하며, 체포되었을 때 고문에 대비하기 위해 뾰족뾰족한 대못들을 가득 박은 널판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할 정도이다.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다니되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러 어디를 다니는지 알리지 않기 때문에 그는 주변 사람들과 친밀하게 섞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존재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의도적으로 소외시킨 존재로서의 혁명적 인텔리겐치아이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왜 네차예프인가? 정의로운 목적은 사악하고 비열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네차예프가 보여주었던 범죄성 혹은 사악함을 러시아어로는 ‘네차예프시나’라고 한다. 네차예프시나와 네차예프주의는 공식적으로 부인되고 거부되었지만, 그것이 혁명의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증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가 훨씬 더 많다. 1960~1970년대의 급진 과격 혁명운동이었던 ‘블랙 팬더’나 ‘붉은 여단’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등은 네차예프주의와 혁명가의 교리문답을 자신들의 행동원리로, ‘혁명의 경전’으로 찬양하거나 그 이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공식 혁명사의 상당 부분이 네차예프주의를 내적 원리로 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차예프주의는 그렇지 않았으면 건강했을 혁명 운동에 어쩌다 나타난 병리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수의 심리학이 정치의 차원으로 이동한 것을 아주 뚜렷이 보여주는 예였다. 게다가 복수의 정치학은 러시아와 소련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세계에 제공했을 뿐 러시아만의 고유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20세기 독재자들의 진정한 선구자였다. - 453쪽에서 혁명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과거의 동지들을 학살한 스탈린의 전조라고도 일컬어지는 네차예프주의. 그 속에서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계속 암송되었고, 네차예프는 혁명가의 어두운 전형으로 살아남았다.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은 네차예프주의를 러시아 혁명 운동에서 일어난 단순한 일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네차예프가 걸은 길은 혁명의 정치학에 내재한 위험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나는 네차예프의 삶이 아주 작은 음모 조직에서 큰 국민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떤 인간 사회에서나 출현할 수 있는 불행한 지도자상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의 삶을 죽 훑어보면 좌우를 떠나 급진적인 운동에서 너무나 흔히 나타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 41쪽, ‘머리말’에서 100년이 넘도록 수많은 논란과 찬탄과 혐오의 한가운데를 맴돈 가장 순수하고 열광적이며 허무적인 자기 파괴적 혁명주의, 혁명가의 교리문답 1. 혁명가는 불행한 운명에 갇힌 사람이다. 혁명가는 그 자신에 관한 한 관심사도 없고, 일도 없고, 감정도 없고, 애착도 없고, 재산도 없고 심지어는 이름도 없다. 혁명가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유일무이한 배타적 관심사이자 총체적 주제이고 총체적 열정인 혁명으로 흡수된다. 2. 혁명가는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서부터 모든 시민 질서, 교양 세계와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 세계의 법과 규범, 도덕, 관습과 손을 끊었다. 혁명가는 그 세계의 무자비한 적이며, 그가 그 세계 안에서 계속 산다면 그것은 오로지 더욱 확실하게 그 세계를 파괴할 목적으로 그럴 것이다. 3. 혁명가는 어떤 종류의 교조주의도 경멸하며, 평화의 과학도 거부한다. 평화는 미래 세대의 몫이다. 혁명가가 아는 과학은 오직 하나, 파괴의 과학이다. 혁명가는 파괴를 위해,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역학, 물리학, 화학을, 그리고 어쩌면 의학을 공부한다. 오로지 파괴만을 위해 혁명가는 밤낮으로 인민의 삶을, 인민의 특성과 상태를, 이 사회 구조의 모든 조건을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 철저하게 연구한다. 목적은 같다. 이 더러운 구조를 가장 빨리 가장 확실하게 파괴하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6. 자신에게 엄격한 혁명가는 다른 사람에게도 엄격해야 한다. 혁명가는 혈육의 정, 우정, 사랑, 고마움, 심지어 존경심까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모든 감정을 혁명의 대의를 향한 총체적인 냉혹한 열정으로 제압해야 한다. 혁명가를 위로해주는 것은, 혁명가에게 위안, 보상, 만족을 주는 것은 단 하나 혁명의 성공뿐이다. 밤낮으로 혁명가는 오로지 한 가지만, 하나의 목표만, 다시 말해 무자비한 파괴만 생각해야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한 순간의 휴지도 없이 이 목표를 향해 분투하면서 혁명가는 늘 스스로 재가 될 각오를, 혁명의 승리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자기 손으로 파괴할 각오를 해야 한다. 13. 혁명가가 공적인 세계, 신분 질서의 세계, 그리고 이른바 교양 세계에 침투하는 것은 오로지 하루라도 빨리 그 세계를 더욱 완전하게 파괴할 목적 때문이다. 만일 그가 그 세계에 있는 어떤 것에라도 연민을 느낀다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가증스러워야 하는데 그 세계 내부의 지위나 관계, 심지어 인명을 제거하는 임무 앞에서 뒤로 물러선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훨씬 더 나쁜 것은 그 안에 가족이나 친구, 연인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있다면, 그는 혁명가가 아니다. 22. 혁명 조직은 인민, 즉 노동하는 사람들의 완전한 해방과 행복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 그러나 이런 해방과 이런 행복은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인민 혁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에, 우리는 인민이 더 참지 못하고 대중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모든 힘과 수단을 다해 인민의 고통과 악이 번성하도록 할 것이다. 네차예프와 네차예프주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는 서울대 한정숙 교수의 머리말 러시아 혁명사를 전공한 한정숙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이 책을 위해 특별히 집필한 한국어판 머리말은 19세기 러시아 사회와 인텔리겐치아의 역사를 한 축으로 하고, 개인의 심리, 주변 상황 등 개인적 특징을 한 축으로 해서 네차예프라는 문제적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해준다. 이바노프를 네차예프가 조직의 다른 성원들과 함께 직접 잔인하게 죽인 내면의 진정한 동기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이를 끝까지 밝혀내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이바노프가 서클의 비밀을 경찰에 알릴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지도자’인 네차예프 자기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조직을 떠나는 이바노프에 대한 개인적 증오감, 반감 때문이었을까, 조직 이탈자를 처치한다는 공동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조직 구성원들을 공동 운명체로 영구히 묶어놓아 혁명 활동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려 한 것이었을까. …… 그런데 네차예프를 진정 혁명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혁명에 대한 그의 헌신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의 기만술, 잔인함, 행위의 비윤리성을 생각하면, 혁명가라 칭해져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묶는 용어로 이 이름을 사용하기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그는 인텔리겐치아라 칭해져 온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불가해한 인물이었다. 네차예프는 나름대로 혁명에 대한 투철한 헌신성과 확신을 특징으로 하는 인물이었으며, 그는 변함 없는 자기 확신 속에서 죽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닫힌 신념이었다. 네차예프시나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실제로 일어난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네차예프 행동의 극단성을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감지된 그들 사회의 출구 없는 상태, 극단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극단적 사회가 극단적 인간을 낳았던 것이다. 그것은 법과 정치를 통한 사회 개혁, 개인적 삶의 의미망 확대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겨지던 사회였다. ―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