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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1981년∼2001년)
이별 없는 이별 산문(山門) 달콤한 인생 몽유도원도 깊고 푸른 밤 이상한 사람들 |
崔仁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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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서평 위원 정은숙
어느 시사주간지에 실린 작가 최인호와의 인터뷰 머리글에 이런 묘사가 있다. "의자에 상체를 비스듬히 누인 채 두 다리를 탁자 위에 올렸다. 다른 사람 같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사유가 되고도 남을 오만방자함이었지만 천진난만한 자유주의자 최인호의 건방짐은 불손은커녕 자유분방함으로 비쳤다. 그의 무례가 무례가 아닌 귀여운 장난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도대체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무슨 까닭이겠는가. 작가가 좀처럼 늙지 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작가는 청년의 필력으로 연이어 화제작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달콤한 인생>은 최인호가 거의 20년 만에 내놓은 여섯 번째 소설집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환자>가 당선된 이후로 따져도 35년여 작품 활동을 계속해온 것이다. 오, 놀라워라. 작가의 천형(天刑)을 30년 이상 지고 있는 자여. 요즘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작가, 시인됨이 그 자체로 무슨 '자리'도 되지 못 하고,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어떤 이는 문단의 침체가 옛날 같으면 문학판으로 왔을 명민한 문화계 지망생들이 모두 영화판으로 가버려서, 그런 연유로 빚어진 것이라고 진단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 시절이니 35년 가까운 세월을 작가로, 그것도 글만 써서(누군가는 그가 찍은 텔레비전 상업광고를 떠올리겠지만, 그것 역시 작가의 자격으로 찍은 것이다)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작가로 살아온 것이 어찌 놀랍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 작가가 걸어온 길이다. <술꾼>, <개미의 탑>, <타인의 방>, <별들의 고향>, <지구인>, <잃어버린 왕국> 그리고 최근의 <상도> 등의 소설이 보여주듯 그의 작품 리스트는 그대로 우리 문학사회학의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매김하였고, 또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이다. <달콤한 인생>에는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종교적인 지향의 한 끝 단을 잘 보여주는 <이별 없는 이별>과 <산문>, 삶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묘사한 <달콤한 인생>과 우화적인 접근으로 생의 비의를 파헤친 <이상한 사람들>, 영화화되어 널리 알려진, 이민자의 비애를 다룬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고 푸른 밤>, 저 백제의 도미설화를 변용한 가작 <몽유도원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은 그의 근작들이 초기의 작품들과는 달리 사소설적인 내면 지향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별 없는 이별>과 <산문>의 경우 특히 그러한데, 이 작가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으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달콤한 인생>에 실린 '작가의 말'에 따르면 빠른 시일내에 제7의, 제8의 소설집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이번 소설집을 읽고 난 후 '단편'이 아니라 '짧은 장편'을 읽은 것 같다고 다소 아쉬워하는 최인호매니아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단편소설은 삶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한 상황을 단일하게 보여줌으로써 삶의 전모를 짐작케 하는 장르다. 작가 최인호가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35년 전과는 문단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단편소설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라는 주문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 시대의 단편소설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이제 장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를 대망하는 세계적인 작단의 분위기로 볼 때 어느 정도 수정되어야 할지 모른다."고. 다시 그 인터뷰 기사를 인용하자면, 왜 달콤한 인생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작가가 말한다. "나의 고통도 남의 눈으로 보면 고통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역설적으로 '달콤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아름답고 달콤하게 보인다는 뜻이지요." 나는 내 인생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나보다. 가끔 인생의 쓴맛에 몸서리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가, 스스로 묻고 또 묻는다. 그 물음이 문학이 될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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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내방송이 짧은 상념에 빠져 있는 그를 일깨웠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낯익은 역의 풍경이 천천히 속력을 줄이며 멎어서는 차창 밖으로 판에 박은 그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도 그러했듯이, 어제의 어제도 그러했듯이. 그는 사람 사이를 뚫고 간신히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가 내리자 열차는 곧 출발했다. 순간 그는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어젯밤 열한시경 신원을 알 수 없는 노숙자 한 사람이 레일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했다.' 바로 이 역이었다. 열차 앞쪽이었으니 지금 그가 서 있는 부근일 것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방금 열차가 빠져나간 역 구내의 레일 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간밤에 있었던 처참한 비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 p.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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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을 때 수호천사는 그 아이 오른편에, 악마는 그 아이 왼편에 섰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수호천사와 악마를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마치 왼팔과 오른팔, 두 팔이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두 개의 영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 아이를 반드시 천국으로 이끌고 말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수호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악마는 낄낄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렇게는 잘 안 될걸." 원래 악마 역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거룩한 천사였는데, 어느 날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해서 그 뜻을 배반했다. 그 이후부터 악의 천사로 전락하여 지옥의 겁벌(劫罰)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아이를 파멸로 이끌 거야." 악마는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이 아이를 자살하게 만들 거야." 악마가 인간에게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승리는 인간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수호천사가 빛나는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반드시 이 아이를 보호하고 지켜나가겠다. 네가 아무리 파멸시키려 하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갖은 함정을 파놓는다 하더라도 이 아이는 절대로 희망을 잃지 않을 거야." ---pp.86~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