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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부(甲部)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_入世界觀衆苦
을부(乙部) 국경 없이 세계를 하나로_去國界合大地 병부(丙部) 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으로_去級界平民族 정부(丁部) 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로_去種界同人類 무부(戊部) 남녀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_去形界保獨立 기부(己部) 가족 관계가 없는 천민으로_去家界爲天民 경부(庚部) 산업간의 경계를 없애 생업을 공평하게 한다_去産界公生業 신부(辛部) 난세를 태평세로_去亂界治太平 임부(壬部) 인간과 짐승의 구별을 없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_去類界愛衆生 계부(癸部)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_去苦界至極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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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은 마땅히 재능과 덕을 따져서 구분하여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높은 벼슬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낮은 벼슬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황제는 구덕(九德)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하고, 가정은 삼덕(三德)을 갖춘 자가 다스려야 할 것이다. 하늘이 만들고 사람이 이를 돕는 것이 공리(公理)다.
--- p.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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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세계의 대동(大同)이라는 것은 나의 인(仁)이 능히 미칠 수 있는 세계일 뿐이다. 어찌 여러 별들까지 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려 하면 전쟁은 끝내 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여러 별과 우주의 전쟁을 다 없앨 것을 심사숙고하였으나 불가능하리라고 판단되었다. 그러므로 또한 오직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조금이라도 전쟁으로 인한 화를 줄이려고 생각할 뿐이다.
---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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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삼세(三世)로 구분하여 차례대로 구원코자 하면, 먼저 죄수나 노비처럼 취급하여 억압당하던 입장에서 해방하게 하는 것은 거난세(據亂世)의 일이며, 다음에 자유로운 교제와 연회 참석, 출입과 유람을 금지하던 것을 풀어서 구미의 여러 나라와 같게 하는 것은 승평세(升平世)의 일이며, 벼슬을 못하고 선거와 의원의 자격 및 공민의 자격을 금하던 것을 풀어서 남자와 같은 자격을 주는 것은 태평세(太平世)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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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중국 철학사 서적들이 근대 이전 시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근?현대의 철학을 다룬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혹 찾는다 해도 내용에 빈약함을 느껴 곧 책장을 덮게 된다. 이제까지 중국 철학에 대한 연구는 고대 중국의 관념 세계에 매몰되어 있어서 진정한 중국의 모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중국의 연구 역시 그 사상이나 문화적 근원에 대한 탐구가 결핍된 경우가 많아 진정한 중국의 모습을 살펴보기란 쉽지 않다. 이에 중국이 전제군주제의 청나라에서 근대국가인 중화민국으로 거듭 태어나는 거대한 변환기에 살았던 강유위(康有爲)의 사상적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과거 중국 사회에 대한 생생한 모습과 함께 유학이 근대화된 서양 세계를 만나 어떻게 중국 전통 사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는지 그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강유위가 살았던 1858년에서 1927년이란 기간은 중국의 역사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에 없던 커다란 변화의 시기였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서양 제국주의가 침략의 손을 뻗쳐 옴에 따라 중국은 더 이상 중화제국으로서, 더 나아가 하나의 국가로서도 온존(溫存)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중화제국을 떠받쳐오고 있던 사상도 커다란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중국과 서양, 전통과 근대, 보수와 진보 등 여러 가지 가치 개념들이 좌충우돌하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사상가들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사상적 활로를 찾아야만 했다. 강유위의 사상적 고민이 응축된 『대동서(大同書)』는 그 가운데서도 대표로 거론될 수 있다. 그는 중국의 전망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사상적으로는 유학을 기본으로 하고 도교, 불교와 서양 사상까지도 섭렵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이나 행동을 어느 정도 구축함은 물론 당시 시대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녔다 하겠다. 강유위는 1898년 청나라 덕종(德宗) 즉, 광서제(光緖帝)에 의해 그의 변법자강책(變法自强策)이 받아들여지자 국회를 열고 헌법을 만드는 등 일대 정치개혁을 시도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개혁정책은 국민들과의 광범위한 유대를 맺는데 실패했고 서태후(西太后)를 비롯한 보수 세력에 밀려 백일천하로 끝나버렸다. 그가 27세가 되던 해인 1884년에 완성된 『대동서』는 바로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변법자강책의 모태요 최후 목적지가 되었는데, 실패한 강유위의 개혁정책을 보상이라도 하듯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낙관적 신념과 전망을 제시하여 이후 중국의 사상적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대동서』가 이처럼 역사에 진보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유위의 사상은 전통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과도기 사상으로서 유교 자체의 존재 근거를 뿌리째 흔들 만큼 이후 전개되는 근대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