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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자 서문
저자 서문 일러두기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연보 제38장 오시리스 신화 제39장 오시리스 의례 제40장 오시리스의 성격 제41장 이시스 제42장 오시리스와 태양 제43장 디오니소스 제44장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제45장 북구의 '곡물의 어머니'와 '곡물의 아가씨' 제46장 세계의 '곡물의 어머니' 제47장 리티에르세스 제48장 동물로서의 곡물정령 제49장 동물로서의 고대 식물신 제50장 신을 먹는 관습 제51장 육식의 공감주술 제52장 신성한 동물의 살해 제53장 사냥꾼에 의한 야생동물의 회유 제54장 성례전적 동물 살해의 유형 제55장 재앙의 전이 제56장 재앙의 공적 추방 제57장 공적 희생양 제58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 희생양 제59장 멕시코에서의 신의 살해 제60장 하늘과 땅 사이 제61장 발데르 신화 제62장 유럽의 불축제 제63장 불축제의 해석 제64장 인간 불태우기 제65장 발데르와 겨우살이 제66장 민간전승과 외재적 영혼 제67장 민속과 외재적 영혼 제68장 황금가지 제69장 네미여 안녕 찾아보기 |
"근처의 콰 마을에는 한 그루의 야자수가 있었는데, 그 과일을 먹으면 석녀라도 임신한다고 믿었다. 유럽에서는 '오월제 나무(May-tree)' 또는 '오월제 기둥(May-pole)' 이라고 부르는 나무가 여자와 가축에 대해 이와 동일한 효험을 베풀어준다고 여겼다. 예컨대 독일의 어떤 지방에서는 농민들이 5월 1일에 소나 말의 다산을 위해 마구간 입구에다 '오월제 나무'나 '오월제 관목(May-bushes)'을 하나씩 세운다. 그러면 암소들이 많은 젖을 생산할 거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인도 5월 1일에 초록색 가지를 집에 걸어놓으면 그해 여름에 많은 젖이 생산될 거라고 믿는다."
--- 제9장 나무숭배 중에서 |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에 종종 묵은 오월제 나무를 불사르는 풍습이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라하 지방에서는 젊은이들이 오월제에 나무를 꺾어 방 안에 걸린 성화(聖畵) 뒤에 놓아두었다가 다음해 오월제 때 난롯불에 태운다. 뷔르템베르크에서는 수난주일(Palm Sunday)에 각자의 집에 세워진 나무를 한 해 동안 그냥 놓아두었다가 불태운다."
--- 제10장 근대 유럽과 나무숭배 중에서 |
"흔히 근친상간의 죄는 기근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풍요다산의 여신에게 그 속죄를 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풍요다산의 여신은 먼저 그녀 스스로가 풍요다산적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당연히 디아나에게는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 세르비우스의 견해를 믿어도 좋다면, 디아나의 배우자는 네미 숲의 왕으로 표상되고 구현되는 비르비우스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의 결합은 대지와 동물과 인간의 다산성을 촉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디아나와 비르비우스의 인형 또는 그들로 분장한 신랑신부를 연출하여 둘의 신성한 결혼을 축복했다. 그럼으로써 풍요다산의 목적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제12장 신성한 결혼 중에서 |
"그런 쇠퇴의 징후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왕의 부인들을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정력의 감소 현상이었다. 보통 왕에게는 수많은 부인들이 있었고, 파쇼다(Fashoda)의 하렘에는 그녀들을 위한 처소들이 수없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어쨌든 저 불길한 성적 쇠퇴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왕의 부인들이 그 사실을 장로들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장로들은 보통 그 운명을 왕에게 알리기 위해, 무더운 오후에 낮잠을 자고 있는 그의 얼굴 위에다 흰 천을 덮어주고는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의 죽음이 선고되면 바로 형 집행이 이어졌다. 이를 위해 특별히 세운 오두막에 왕을 모시고 들어가면, 거기서 왕은 묘령의 한 처녀 무릎을 베고 눕는다. 그런 다음 오두막 문이 굳게 닫히고 왕과 처녀는 완전히 밀폐된 오두막 안에 죽을 때까지 유폐된다. 물론 이들에게는 일체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제공되지 않으며 불도 때주지 않는다. 이리하여 둘은 굶주림과 추위와 호흡 곤란으로 죽어간다. 이 오래된 관습은 지금으로부터 약 다섯 세대 전에 폐지되었다. 이유는 이런 식으로 죽어간 왕의 고통이 너무도 극심했기 때문이란다. 그 후에도 장로들은 왕에게 죽음의 운명을 고했으나 왕의 살해 방식은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왕은 그를 위해 특별히 지어진 오두막 안에서 교살당하게 된 것이다."
--- 제24장 노쇠한 왕의 살해 중에서 |
"사실 종교의 발전에 음악이 끼친 영향은 많은 공감을 자아낼 만한 연구 주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은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친숙하고 가장 사람을 감동시키는 예술로서, 종교적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표현하는 데에 크게 공헌해왔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음악이란 것이 종교적 신앙에 대해 그저 단순한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 이상으로 상당히 심도 깊은 신앙적 변화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음악가들은 종교의 형성에 있어 예언자 겸 사상가로서의 역할을 담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종교는 독자적인 종교음악을 가지게 되었으며, 각 종교 간 신조의 차이가 그런 종교음악의 악보 속에 표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키벨레의 거칠고 소란스런 음악과 가톨릭 교회의 장중한 의례음악 사이에는 심벌즈나 탬버린의 때려부수는 듯한 소음과 팔레스트리나(Palestrin)라든가 헨델(Hendel)의 장엄한 선율 사이를 구분 짓는 거리만큼이나 먼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서로 다른 음악 안에는 서로 다른 정신 혹은 영혼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엿볼 수 있듯이 프레이저는 실제로 대단한 음악애호가였다고 한다."
--- 제31장 키프로스의 아도니스 중에서 |
"떡갈나무의 생명이 겨우살이에 있다는 관념은, 겨울이 되어 떡갈나무 잎들이 다 떨어졌는데도 겨우살이만은 여전히 그 나무 위에서 푸르고 무성하게 나 있는 데에 생겨난 것이리라. 이런 관념은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위치, 즉 그것이 지면이 아니라 나뭇가지나 줄기에서 자란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미개인들은 자기들처럼 떡갈나무의 정령도 그 생명을 어딘가 안전한 장소에 의탁하고자 했으며, 그런 장소를 찾다가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장소에 기생하는 겨우살이로 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앞장에서 미개인들이 그들의 인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아두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는 그 장소야말로 지상에 사는 인간의 생명을 둘러싼 일체의 위험들이 가장 적은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제68장 황금가지 중에서 |
네미의 사제왕과 직접적으로 비교되는 신화 속의 인물 오레스테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미케네(또는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아가멤논과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호메로스에 의하면,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에서 돌아와 아내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자, 오레스테스는 성인이 된 후 아이기스토스와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삼부작 비극인 〈오레스테이아Oresteia〉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어머니를 죽인 후 복수의 여신들로부터 피신하기 위해 델포이로 간다. 다시금 아폴론에게서 힘을 얻은 그는 아테네로 돌아가 아레오파고스 법정에 서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한다. 배심원들의 판결이 팽팽히 맞서자 아테나 여신이 결정권을 갖게 되어 그를 무죄로 석방했고, 대신 복수의 여신들에게는 에우메니데스('자비의 여신'이라는 뜻)라는 칭호를 주어 그들의 불만을 해소시켜 주었다. 한편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카의 이피게네이아Iphigeneia in Tauris〉에서는 복수의 여신들이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고, 오레스테스는 타우리카로 가서 아르테미스(디아나) 여신상을 아테네로 되찾아오라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는다. 친구 필라데스와 동행한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으나, 모든 이방인들을 신의 제물로 바치게 규정되어 있는 지방 관습에 따라 그들은 체포되었다. 그러나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집행하는 여제사장은 오레스테스의 누이 이피게네이아였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 후 그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갖고 함께 도망간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죽은 아버지 아가멤논의 왕국을 계승했으며, 아르고스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을 합병하기도 했다. 그는 헬레네와 메넬라오스의 딸 헤르미오네와 결혼했으나 뱀에 물려죽었다. 이런 오레스테스 이야기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 등 고전 문예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으며, 훗날 볼테르의 『오레스트Oreste』,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Iphigenie auf Tauris』, 유진 오닐의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 장 폴 사르트르의 『파리떼Les Mouches』 같은 문예 및 크리스토프 글루크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Iphig?nie en Tauride〉라든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엘렉트라Elektra〉 같은 오페라에도 등장하는 등 서구인들의 상상력에 풍부한 자극을 주었다."
--- 본문 역주 중에서 |
1.『황금가지』를 읽기에 앞서
'황금가지'는 무엇인가? 고대 아리아인의 수목숭배 중에서도 주술 종교적인 의미에서 특히 중요시된 떡갈나무의 '겨우살이'에서 유래한 '황금가지'라는 말을 따서 책 제목으로 삼았다. '겨우살이'는 무엇인가? 다른 나무에 기생하며 스스로 광합성하여 엽록소를 만드는 반기생식물로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닌다. 열매를 먹은 새의 변을 통해 번식된다. 겨우살이가 황금가지라 불리게 된 연유는?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 멸망 뒤에 백성을 이끌고 방랑하다가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 로마를 세운 아에네이아스의 모험을 서사시로 엮었다. 이 『에네이드』에서 아에네이아스는 죽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나기 위해 무녀의 도움을 받는다. 무녀는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옥의 문에 들어가기 위한 열쇠가 바로 황금가지라고 가르쳐 준다. 프레이저는 여기서 착안 『황금가지』에서 다음과 같은 추론을 펼친다. "비둘기 두 마리가 아이네아스를 황금가지가 있는 저 을씨년스럽고 깊은 골짜기로 안내했을 때 어느 나무 위에 내려앉았다고 적고 있다. '거기서 한 줄기 황금빛 섬광이 명멸하며 빛나고 있었다. 엄동설한의 숲 속에 기생식물인 겨우살이가 싱싱한 초록색 잎들로 무성했고 줄기마다 황금빛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그늘진 떡갈나무 위에 달린 이파리의 황금처럼 보이기도 했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바스락거리며 나부끼는 황금 이파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명백히 떡갈나무 위에 자라는 황금가지를 묘사하면서 그것을 겨우살이와 비교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황금가지란 곧 시와 민간신앙의 안개 사이로 비쳐진 겨우살이에 불과하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다." - 본문 68장 황금가지 중에서 2. 『황금가지』는 어떤 책인가? "북이탈리아의 네미 호수 옆에 '디아나의 숲'이라 부르는 신성한 숲과 성소가 있었다. 그 숲 속에는 황금색 가지를 지닌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칼을 든 어떤 남자가 밤낮없이 그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사제이자 동시에 살인자였다. 그는 나무를 지키던 전임자를 살해하고 황금가지를 꺾은 후 비로소 사제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또한 언젠가는 다른 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이 사제는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묘한 장면의 서술로 시작되는 본서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대작 『황금가지』 제3판 전12권(1906∼1915)을 1922년에 저자 자신이 한 권으로 요약하여 맥밀란 출판사에서 간행한 축약본 『황금가지』의 한국어판 역주본이다. 프레이저는 이 책에서 인류의 종교와 성생활, 다양한 제식과 축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민담과 주술, 종교를 비교 연구하면서 이교도의 원시 문화와 기독교 신앙을 평행선상에 두고 보았다. 고대인의 삶은 단순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뿌리친 『황금가지』는 원시 인류가 복잡한 마술과 금기, 미신과 얽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프레이저는 이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미개 상태로부터 문명으로 진화했는지, 어떻게 그의 운명을 개척하고 잔인한 풍습으로부터 벗어나 변치 않는 도덕과 윤리, 종교적인 가치를 얻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황금가지』의 독창성과 포괄성이 종교 인류학에 미친 영향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생물학 분야에 미친 영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여파는 심리학과 문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고루 미쳤다. 본서는 69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심 내용을 제3판의 구성에 따라 일곱 단락으로 나누어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1장에서 제17장까지는 주술의 기법과 왕권의 진화를 논하고 있다. 프레이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주술론에서 그는 '인간의 복지를 위해 자연의 힘을 지배하려는 시도'로서 주술을 규정하는 한편, 주술의 두 가지 상이한 사고 원리인 유사의 법칙(동종주술 혹은 모방주술)과 접촉의 법칙(감염주술 혹은 접촉주술)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이탈리아 네미 숲을 무대로 하여 전개되는 황금가지의 전설에 주목하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숲의 사제를 숲의 왕이자 나무정령의 화신과 동일시하면서 주술로써 풍요를 관장하는 주술사로 해석한다. 이는 곧 왕권의 기원을 주술사에서 찾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2) 제18장에서 제23장까지는 주로 터부론 및 영혼론을 다루고 있다. 먼저 터부의 대상이 되는 행위, 인물, 사물, 언어 등을 다룬 후, 사제왕에게는 특히 엄격한 터부가 부과되었는데 이는 그의 생명 원리인 영혼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3) 제24장에서 제28장까지는 '살해당하는 신'의 모티프가 중심이다. 여기서 프레이저는 "네미 숲의 왕이 왜 규칙적으로 살해되어야 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이는 왕의 쇠약은 곧 해당 공동체의 쇠약을 초래한다는 관념 때문이었다고 해석하면서 왕의 죽음을 살해당하는 신의 이미지와 연결시켜 고찰하고 있다. (4) 제29장에서 제44장까지는 주로 아도니스, 아티스, 오시리스 등에 관한 동양종교의 신화를 다루면서 농경주술에 있어 죽음과 재생의 의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즉 이 신화에서 신성하기 때문에 살해당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신들은 매년 반복되는 식물세계의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5) 제45장에서 제54장까지는 식물세계에 있어 죽음과 재생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각 문화권의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6) 제55장에서 제60장까지는 이른바 '속죄양'의 주제를 중심으로, 병들거나 쇠약해진 왕을 추방하거나 살해하는 관습은 사회 전체의 죄악을 그 왕에게 전이함으로써 공동체의 존속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7) 제61장에서 제69장까지는 발데르 신화 및 유럽 불축제와 외재혼의 문제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황금가지의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여기서 프레이저는 겨우살이에 의해 죽은 북유럽의 신 발데르와 네미 숲 사제를 대비하면서, 황금가지(겨우살이) 안에 신적 생명 즉 사제왕의 생명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신성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황금가지』에서 프레이저가 전제로 깔고 있는 방법론과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프레이저에 의하면, 인간 정신은 본질적으로 유사하며 따라서 여러 문화권의 유사한 사례들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프레이저는 당대의 생물진화론(다윈) 및 사회진화론(스펜서)에 입각하여, 모든 사회는 동일한 발전 단계를 거치며 그 발전 방향은 필연적으로 진보와 개선의 방향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의 주술→종교→과학이라는 진화론적 도식은 바로 이런 전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 프레이저에 대한 비판 이런 전제는 곧바로 프레이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즉 프레이저의 비교방법론은 구체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으며 유사성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많다는 점, 그리고 입증하기 어려운 진화론적 도식과 심리학적 유추에 입각함으로써 일관성이 없고 피상적이며 낭만적인 서술로 흐르기 십상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 밖에 다른 비판들도 많다. 가령 본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민족지학적 사례들은 프레이저 자신이 직접 현장 조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선교사나 식민지 관리자 혹은 여행가들에게서 수집한 자료들이므로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말하자면 프레이저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인류학자였다는 말이다. 또한 '미개인'이나 '미신'이라는 용어를 남발한다든지 혹은 주술을 오류라고 단정짓는 프레이저의 태도는 중립성을 강조하고 섣부른 가치판단을 경계하는 현대 학문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들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황금가지』가 갖는 의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본서는 인간정신이 산출한 고전적인 대작의 하나로 꼽혀 왔던 것이다. 본서는 직접적으로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신화론과 의례론을 촉발시켰으며, 서구 교양인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독단성에 대한 자성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하면, 특히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본서가 갖는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본서의 매력은 무엇보다 인간과 세계의 복마전 같은 수수께끼 앞에서 결코 물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프레이저의 인간미 그 자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60년 동안 평균 하루에 12시간 이상 연구에 몰두한 책벌레였고,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자였고, 개인적으로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논쟁에 끼어들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신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들어도 흥분하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는 세상사에는 지극히 어설프고 서투른 상아탑의 학자였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묻는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강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전사였다. 본서는 그런 신뢰와 희망과 호기심의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4. 출간 의의 (판본에 대해) 국내에 소개된 『황금가지』 축약본은 세 종류이다. 프레이저 자신이 축약한 맥밀란판 『황금가지』(1922), 프레이저 연구자인 로버트 프레이저가 축약한 옥스퍼드판 『황금가지』(1994), 메리 더글러스가 서문을 쓰고 세이빈 맥코맥이 축약한 도설판 『황금가지』(1978)가 그것이다. 맥밀란판은 을유문화사(1978)와 삼성출판사(1991)에서, 옥스퍼드판은 한겨레신문사(2003)에서, 그리고 도설판은 까치(1995)에서 각각 번역본이 나와 있다. 그 중 옥스퍼드판은 맥밀란판에 누락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등의 논쟁적인 부분이 복원되어 있으며, 편자의 각주가 첨부되어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한편 도설판은 맥밀란판과 옥스퍼드판의 절반 분량인데다 관련 그림이 많이 실려 있어 보다 대중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본 맥밀란판의 강점은 무엇보다 프레이저 자신이 편집한 것이므로 『황금가지』의 원래 의도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맥밀란판을 대본으로 삼은 본서의 재번역 작업은 이 세 가지 장점을 한데 아울러 제시함으로써 부족하나마 독자들의 『황금가지』 이해에 기여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를 위해 가능한 한 풍부하게 역주와 도판을 삽입하는 한편, 프레이저의 다른 저작물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위해 프레이저 연보를 첨부하여 참고가 되도록 했다. 5.『황금가지』가 미친 영향 - 문학과 영화에 대해 『황금가지』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문학작품은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1871~1948)의 『황무지』(The Waste Land)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와 함께 나란히 1922년에 발표되어 20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시이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황무지』는 성적으로 타락해 삶도 죽음도 아닌 상태를 이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식물의 생장과 풍요 지식의 기원에 빗대어 설명한다. 엘리엇은 이 유명한 시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와 제시 웨스턴의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를 운문으로 옮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명이라는 또 하나의 야만에 항거하는 메시지를 담은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은 원래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조세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 (The Heart of Darkness)의 패러디이다. 바로 벨기에 식민 치하의 콩고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착취와 인간성 상실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이를 다시 베트남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바꾸었다. 외형이 콘래드의 소설이라면 내형은 또 다른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무공 훈장을 여럿 탄 엘리트 군인이던 커츠(말론 브랜도)는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 원주민을 다스리며, 은둔자요, 왕으로 살고 있다. 자기를 찾아온 윌러드(마틴 쉰)가 자객임을 감지하고서도 커츠는 그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놓아둔다. 윌러드는 커츠의 책상에서 두 권의 책을 발견한다. 카메라가 책을 비추는 이 짧은 순간에 영화가 기대고 있는 엄청난 배경이 드러난다. 『황금가지』와 제시 웨스턴의 『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 (From Ritual to Romance)가 그것이다. 이 두 책을 이어주는 고리는 바로 엘리엇의 『황무지』이다. 커츠는 자신이 속한 문명의 '황무지'를 떠나 밀림의 오지로 들어갔고, 윌러드에 의해 목이 잘린다. 왕이 성적(性的)으로 쇠약해지거나 타락하면 대지가 황폐해지고 불모가 되므로 새로운 왕이 나타나 그를 대신해야 한다는 황금가지의 첫 이야기 네미 호의 사제와 같은 내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