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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비로운 그녀
2.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3. 승재 4.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 5. 슈베르트, 1986 6.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7. 악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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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필요했던 것은 조각그림 맞추기나 밥 빨래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구. 가족, 그리고 친구 말이야.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웃고 같이 느끼고 서로를 이해해 주는. 그런데 넌 뭐지? 넌 나를 가족으로도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말야. 넌 요즘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지, 밤마다 무슨 꿈에 시달리는지 통 관심도 없잖아. 그러니 너랑 같이 있으면 어떤 줄 알아? 난 더 외로워. 더 외로워진다고. 이해할 수 있어?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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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길이 끝나는 후암동 쪽 벼랑, 지은 지 오래된 구립 도서관. 눈 뜨면 집을 나서 시 경계선 넘는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강 건너 한남동 가로질러 남산길에 들어서서, 관할 행정기관 지명을 따붙인 도서관에 도착해 열람표를 받아드는 아홉시 반 혹은 열시. 자유열람실 창가 가까운 책상에 가방을 부리고 2층 복도 끝 실외 휴게실에서 그날의 첫 번째 흡연으로 시작되는 용산도서관의 하루.
당신을 만난 곳은 1층 구내식당이었다. 오후 세시 이십분. 배식구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천 원짜리 가락국수나 묽은 카레밥을 먹으며 잡담을 나누는 소란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마다 의자들이 삐뚤빼뚤 흩어졌고 식탁 위는 흘리고 간 음식찌꺼기로 지저분하다. 형편없는 식당밥을 홀로 사먹기엔 오히려 속편한 시간대였다. 내가 본 것은 당신의 옆모습이었고, 첫 만남에서부터 당신은 적잖이 나를 당황시켰다. 어쩌면 나는 그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다. 셀 수 없는 매순간 당신을 봐왔다. 열람실에서 인문사회과학 자료실에서 1층 로비의 커피자판기 앞에서 시청각실 근처에서, 언젠가 화장실 입구에서는 서로의 어깨를 아슬아슬 스쳐가기도 했을 것이다. ---pp.159~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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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성적인 목소리, 존재와 기억의 탐구, 혹은 자유로운 도발
한차현 소설의 개성은 보기 드물게 '다성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발견된다. '다성적인 목소리'만으로도 그의 문학적 특질은 어느 정도 설명이되는데 각개의 작품의 표층에서 채록되는 목소리들은 어느 것 하나 공통된 것이 없는 이질적인 것이다.
방민호는 해설에서 그의 작품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자비로운 그녀」나 「슈베르트, 1986」 같은 신변적 이야기 속에 기억의 요소를 끌어들인 작품,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 「악령」 같은 작가 자신과 타자와 세상과의 소통 가능성 및 존재론적 탐구를 소재로 삼고 있는 작품,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과 표제작인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 같은 일종의 관계론 또는 모랄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그것이다. 이를 참고하더라도 우리는 한차현의 작품 세계가 얼마나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작가가 다성적인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작가적 관심의 영역이 다양하다는 것일텐데, 한차현의 경우 그 영역을 확장시키려는 자세가 경직되어 있지 않고 무한히 열려 있어서 목소리들의 균질이 고르면서도 대중적인 설득력을 확보한다. 마치 더빙한 것처럼 보이는 이질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들의 운용은 일차적으로 방민호가 쓴 해설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작품 속에서 작가의 편모를 발견하고 "기억 자체, 기억이 존재한다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해명하"기 위해 작가가 의식적으로 택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기억은 굴절되거나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한 목소리로 재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한차현의 다성적인 목소리를 살피면 그 자체가 내외적으로 강요되는 문학적 관습에서, 저만금 거리를 두고자 하는 신인 작가의 '자유롭고 경쾌한' 도발로도 볼 수 있다. 맨 첫 머리에 놓이는 작품인 「자비로운 그녀」나 「당신을 만나는 개와 늑대의 시간」의 목소리는 매우 중후하다. 진중한 주제의식과 문체가 고전적 서사의 성체를 이루면서 자못 황홀한 우수를 자아낸다. 그 우수가 깔린 목소리는 안정적이면서도 규범적이고 조화로운 서사의 세계만으로도 경탄을 자아내게 했던 이문열의 몇몇 초기작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한차현의 목소리에는 어떤 리듬감이 있다. 교향곡의 리듬이랄까, 운명적인 것으로 고착되고 귀결되는 결말의 어떤 지점에서 급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한차현의 소설 속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해답이 내려지는 순간의 '반복' 혹은 '딴지를 거는 것'과도 같은 통쾌함이다. 위에 언급한 두 작품과는 달리 그의 또 다른 작품, 이를테면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나, 「에티카,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같은 작품에서는 실재적인 시공간을 의식적으로 해체하는 전위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사실 이 두 작품은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중에서 작가의 개성이 가장 함축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존 위클리프나 존 후스 같은 중세의 종교개혁가들의 목소리가 현시적 언어로 재구성되어, 폭력의 구조 속에서 위축된 현대인의 자유를 웅변하고 있는 장면이나, 존재 가치가 훼손된, 중년 남자가 자신의 혼미해진 정체성 상실의 위기를, 아이를 임신, 출산하고 자신의 몸을 분해하여 사회에 공여하는 것으로 극복하는 장면을 보면, 그의 상상력의 수위와 신랄한 위트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들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문체이다. 장중하면서도 발랄하고, 발랄하면서도 범박하지 않고, 또한 날카로우면서도, 억지스럽지 않은 것이 그의 문체이다. 그의 문체는 생경한 비유법 같은 것에서도 그 특징을 여실하게 드러내는데, 가령 '전해질 성분이 떨어진 건전지처럼 게을러갔다', '나는 그만큼 난감했다. 어린 미망인에게 애도의 인사를 전해야 할 때처럼', '독주를 쉴새없이 들이켰음에도 머릿속은 지푸라기로 닦아낸 듯 말짱해지기만 하는', '건전지가 없는 작동완구처럼 축 늘어진 아이의 시체' 같은 비유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가 보여주는 개성적인 세계는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코드화된 이 시대에 희귀한 것임에 틀림없으며 우리 소설의 미래를 내다보는데 있어서도 매우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왕성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젊은 작가가 존재한다는것은 곧 우리 문학의 풍요로움이다. 그의 행보를 우리가 눈여겨 본다면 충분히 그 공연한 노역의 값에 넉넉히 보답을 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