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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대 중반의 방송작가인 필 도란은 지난 25년간 방송에만 몸 바쳐 살아온 일중독자다. 그의 아내 낸시는 가정에 소홀한 남편 덕분에 일찌감치 이탈리아를 오가며 조각 작업에 전념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그의 허락도 없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시골 마을에 있는 집을 한 채 구입해버린다. 그것도 지은 지 250년이나 된,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의 낡은 집을. 사실 그동안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터라 아내는 이제라도 둘이서 함께 지내며 새로운 노후를 설계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도란은 아직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더구나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산다는 사실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도란은 작업 중이던 대본을 마치고 마지못해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며 거의 이탈리아 사람처럼 변해버린 아내도, 미국과는 많이 다른 이탈리아인들의 생활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네 시간이나 되는 이상한 마을, 약속 시간을 어기기 일쑤인 이탈리아 사람들, 심지어는 요란한 손동작을 하며 뉴스를 전하는 앵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에게는 눈엣가시다. “당신이 날 완전 속물로 생각할까 봐 하는 말인데, 나도 이탈리아가 좋아.” “하지만 여기서 사는 건 싫어하잖아요.” “그래, 여긴 너무 촌구석이야. 내가 얼마나 시골을 못 견뎌 하는지 당신도 알잖아.” “시도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낸시, 모든 게 엉망이야. 그 집도 엉망이고, 계약도 엉망이고. 도대체 왜 이렇게 상황을 꼬이게 만든 거야?” “글쎄요…… 이 동네에서는 다들 그런 식으로 해요.” 게다가 그들의 이탈리아 생활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하는데, 그들에게 집을 팔았던 핑가토레 집안이 그 집을 다시 사들이려고 온갖 방해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집 주변에는 도로가 없어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집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그 집을 사들이기 직전에 도로가 생겼고, 핑가토레 집안에서는 이제 그 집을 다시 사들이려는 심산인 것이다. 아내는 어떻게든 핑가토레 집안과 싸워 반드시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선언한다. 결국 두 사람은 집수리가 끝날 때까지 임시로 거쳐할 집을 빌린다. 집주인 디노는 그들을 한 가족처럼 대해주며, 그곳 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그 사이 도란이 쓴 글에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도란은 서운해 하는 낸시를 뒤로 한 채 얼른 LA로 떠난다. 그는 다시 미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행복해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시나리오를 몽땅 뜯어 고치려 한다. 다음 날 선배 작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닫는다. 무엇보다 자신은 건강하며, 아직 사랑하는 아내가 곁에 있지 않은가! 그는 일과 스트레스에 절어 죽기 전에 지금이 발을 빼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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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행복의 태양 아래, 희망이 떠오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필 도란은 25년간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동한 방송작가 겸 제작자이다(그는 1980~90년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었던 <케빈은 열두 살?The Wonder Years>의 극본을 쓰고 제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나이가 들자 예전의 감각 있던 대사들은 맥이 빠지고 방송국에서도 점차 그를 퇴물 취급하기 시작한다. ‘사오정’‘오륙도’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가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쉰 살이 되면서 방송국에서는 갑자기 나를 퇴물 취급하기 시작했고, 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로 따돌림을 당했다. 내 기분은 배구공처럼 우울과 회한 사이를 오갔으며, 그러다 가끔씩 짜증을 내거나 직접적으로 따지기도 했다. 문제는 내가 잘난 직업과 잘난 직함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어 그 두 가지가 없으면 벌거벗고 공허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출근할 회사가 없으니 하루가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일 분이 몇 세기처럼 느릿느릿 지나갔다. ― 본문(49쪽)에서 그런데 호시탐탐 (다른 이들의 눈엔 가망 없는) 재기만을 노리는 그가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떠난 토스카나는 직업적 성공만이 인생에 있어 최고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은퇴 후의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삶을 즐거이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준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희망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이다. 도발적인 진홍빛의 나팔꽃 무더기가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 정원에도 나팔꽃을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예라면 질색하던 내가 지금은 먹지도 못할 꽃을 심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니! 분명 캠비오네의 삶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마을 이름인 캠비오네는 ‘변화시키다’라는 뜻의 동사, ‘cambiare’와 ‘크다’는 뜻의 접미사 ‘-one’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 캠비오네는 ‘커다란 변화’라는 뜻이다! ― 본문(382~3쪽)에서 투명한 햇살 아래서 내 안의 자유 찾기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저자가 토스카나에서 다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가장 큰 은인은 아마도 그 어느 곳보다 자유롭고 경쾌한 토스카나의 생활방식과 그곳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식사는 네 시간 동안이나 이어지고, 황홀했던 맛의 추억을 간직하며 빠져드는 달콤한 낮잠. 그리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울고 즐거운 일은 크게 떠들고 호탕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솔직한 마음 자세……. 필 도란이 소개하는 토스카나와 그곳 사람들은 도시의 밥줄 노릇을 하느라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고갈시키며 살아온 현대 도시인들에게, 억눌릴 대로 억눌린 감정을 이제는 고함이나 호탕한 웃음으로 내보내고, 열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왜 그토록 이탈리아인들에게 적대적이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난 평생을 좁은 감정의 틀 속에서 살아왔다. 울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으며, 심지어 호탕하게 웃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다양하면서도 희석되지 않은 강한 농도의 감정과 마주칠 때마다 거북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 온전히 동참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 나는 지금 우리 모두의 가슴 깊은 곳에 묻힌 채 삶을 음미하기를 갈망하는 내면의 이탈리아인과 접속 중이다. ― 본문(251쪽)에서 지난 7개월 동안 극장은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오페라는 다섯 편이나 봤다. 이제는 해산물이 들어간 파스타에는 절대 파르마산 치즈를 뿌려주지 않고, 식사가 끝나기 전에는 커피를 가져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웨이터들에게 완전히 적응되었다. [……] 한낮에 모든 곳이 네 시간의 점심시간을 갖는 것도 즐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 와인을 마시고, 사랑을 나눌 시간이 있는 것이다. [……] 내 생체 시계에도 변화가 일어나 이탈리아에서는 훨씬 천천히 흘러간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느라 바쁜데 나 혼자 급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는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훨씬 덜 급해졌고, 나는 좀더 평온해졌다. ― 본문(360~1쪽)에서 토스카나, 오래 머물기에 가장 좋은 곳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토스카나를 일컬어 ‘오래 머물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 칭한 바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우선 경치가 아름답고, 포도주와 요리는 흠잡을 데 없이 맛있으며, 사람들의 태도는 다른 지방보다 특별히 부드럽기 때문이다(특히 그들은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매우 열심이다). 그야말로 인생을 즐기기에 바빠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곳이다. 이 책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역시 이런 토스카나의 매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피렌체 외곽의 한 언덕 마을에서 진행되는 야외 콘서트와 올리브 추수, 키안티 지방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포도밭, 입 안 가득 군침 고이게 하는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 등 저자가 펼쳐놓는 토스카나에 대한 정밀한 묘사는 편안히 의자에 앉아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부족함이 없다. 마음까지 스산한 이 가을, 키안티 와인을 한 잔 따라두고 이 아찔하고도 달콤한 이야기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몬테풀치아노로 향하는 길은 키안티 지역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포도밭 사이로 뻗어 있다. 대지가 초여름의 신록으로 고동침에 따라 우리 눈앞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환상적인 곡선처럼 부드럽게 물결치는 언덕이 펼쳐졌다. 반듯하게 늘어선 포도 넝쿨들은 바퀴살 형태로 지평선을 향해 뻗어 있었고, 길고 호리호리한 사이프러스나무들은 바람에 살랑거렸다. 또 햇빛에 달궈진 토양의 냄새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산지오베제 포도 향이 동시에 사방에서 밀려왔다. ― 본문(138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