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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의 힘
고진하
생각의나무 200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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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부드러움
부드러움의 힘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날아라, 독수리!
조율의 기술
그대가 바로 꽃인 것을
한 번에 한 사람씩 시작하세요
사랑의 정원사
신은 손발이 없잖니
첫마음, 첫사랑
행복은 햇살과 같이

2. 침묵
침묵의 신비
고요한 숲의 약속
무소유의 거울
홀로 있음으로
진귀한 나무의 교훈
오, 눈먼 자여!
자연의 리듬을 듣다
알몸이 드러나는 가을이 와도
나는 신의 손에 들린 한 자루 피리
가면의 생

3. 여백
여백의 자리
내 영혼의 보석함
훌훌 털어버리고서
아름다움, 베일을 벗다
별똥별이 떨어지거든
그렇게 무심함으로 살 순 없을까
흰구름 걷히면
바람을 만나다
자기를 다루는 예술
신의 지문

저자 소개 1

강원도 원주 명봉산 기슭에 귀농 귀촌한 그는 불편도 불행도 즐기자는 뜻으로 ‘불편당(不便堂)’이라는 당호를 붙인 낡은 한옥에서 살고 있다. ‘흔한 것이 귀하다’는 삶의 화두를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생초의 소중함에 눈떠 새로운 요리 실험을 즐기는 아내와 함께 잡초를 뜯어 먹고 살아간다. 야생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리며, 거친 야생의 풀들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 겸허와 공생의 지혜를 배운다. 낮에는 낡은 한옥을 수리하고 텃밭을 가꾸며, 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87년 〈세계의 문학〉
강원도 원주 명봉산 기슭에 귀농 귀촌한 그는 불편도 불행도 즐기자는 뜻으로 ‘불편당(不便堂)’이라는 당호를 붙인 낡은 한옥에서 살고 있다. ‘흔한 것이 귀하다’는 삶의 화두를 말로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생초의 소중함에 눈떠 새로운 요리 실험을 즐기는 아내와 함께 잡초를 뜯어 먹고 살아간다. 야생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내는 기쁨을 누리며, 거친 야생의 풀들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 겸허와 공생의 지혜를 배운다. 낮에는 낡은 한옥을 수리하고 텃밭을 가꾸며, 밤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여 『지금 남은 자들의 골짜기엔』 『프란체스코의 새들』 『거룩한 낭비』 『명랑의 둘레』 『야생의 위로』 등의 시집과 『시 읽어주는 예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잡초 치유 밥상』 등의 산문집을 냈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영랑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박인환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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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405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4980518

책 속으로

아무것으로도 덧칠하지 않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우리는 정직하게 대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나의 외모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명예, 재산이나 지식 따위와 나 자신을 동일시 하고 산다면, 그것이 사라졌을때 우리는 허탈감에 빠지거나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우리의 본래 면목을 애써 외면하고 이런 가면에만 의존해서 사는 것은 진정한 자기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권력이나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은 조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재산이나 지식 따위를 잃는 것도 조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기의 생 전체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의 상실보다 더 큰 상실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적 가치에 매달려 자기 영혼의 상실을 간과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정신적,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훌륭한 영적 나침반의 역할을 했던 헨리 나웬 신부의 말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과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장애물을 걷어내고 행복에 이르는 열쇠를 지닐 수 있을까요? 나를 덧씌운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나의 약점과 한계조차 인정하고 말입니다. 나무들이 잎새를 벗는 가을이 되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듯이 내 안의 상처, 열등한 육체의 조건, 영적인 빈곤에 처해 있는 모습조차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 선물로 허락한 생을 사랑하고, 신의 솜씨로 빚어진 이 아름다운 우주 안에서 자기 고유의 빛깔과 광채로 빛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 p. 151~152

출판사 리뷰

생의 아름다움 앞에서-가난한 자를 위한 행복의 미학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누군지 모를, 무엇인지도 모를 막연한 존재에 대한 기다림이 무료하게 이어진다. 그 무언지 모를 막연한 기다림만큼 지루한 시간도 없으며, 이때만큼 우리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순간도 없다. 신이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놓고서 오직 자신의 뜻에 따라 살게끔 규정지어두었다면, 이와 같은 막연한 기다림은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존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탐구해야 한다. 

고진하의 『부드러움의 힘』은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존재 탐구의 작업에 쉼표를 찍은 지적 사유의 성과물이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와 존재 의미를 밝히는 그의 실존적 사유는 문학과 종교, 철학으로 어우러지는 지적 궤적으로, 이는 우리 문단에서는 빈곤한 영역이었으므로 단연 그는 우리 문학의 이채로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달콤한 연애시와 감각적인 멜로드라마가 성행하는 시대에 그의 글을 읽기에는 많은 방해물이 앞서 존재한다. 신이 부재하는 시대에 그는 신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며, 철학이 없는 시대에 그는 변하지 않는 진실을 찾고 있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으며 탐날 만큼의 미문도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수사마저 극도로 생략한 나머지 그 표현만으로 보면 옹색하기 그지없다.  이것으로 누군가는 그의 인생철학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의 종교적 신념이 다소 교의적이지 않냐고 조심스레 불평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리와 가슴이 어떤 열망과 감동으로 미어짐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고진하는 크고 거대하고 화려한 거짓들을 강요당하는 도시인들에게 작고 따사로운 삶의 진실들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잠언과 같이 전해지는 명상과 사유들 앞에 지금 나의 모습은 경건해지고 숙연해짐을, 세상의 온갖 소요와 분란, 그리고 속된 바람과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 침묵 그 자체와 마주하게 됨으로써 저 깊은 곳의 나의 모습에, 진실해지고 겸손해짐을 우리는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그의 글은 내면의 빛을 발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문학은 사치가 아니라 노역이며, 깊은 수련의 과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진하가 한국 문단이 흔치 않게 보유한 사상가이며 철학자로서 그가 수행하는 구도 작업이, 개별적 자아를 넘어선 우주적 존재와의 소통 의지로서 어떤 누구의 문학적 성취보다 월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



▶책의 특징  및 구성

『부드러움의 힘』은 '부드러움', '침묵', '여백'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각각의 글은 이야기와 명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적 형식을 띈 이야기 하나가 먼저 나오고, 그 뒤를 그의 명상과 사색의 글이 서로 마주보며 얘기하듯 친근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마지막 울림을 정제된 이미지로 깔끔히 조형한 저자의 잠언시가 끝맺음 해주고 있다. 고진하는 종교들 사이에 인위적으로 그어져 있는 영역 표지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상상력을 펼쳐 보여준다. 부처에서 노자를 거쳐 예수에 이르며, 우파니샤드, 바가바드기타, 도덕경, 성경, 그리고 고대 선사들의 깨달음의 일화들이 인용되고 언급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하나. 매 꼭지 글이 시작되기 전 제목 밑에 달려 있는, 세계 고전에서 발췌한 인용구에 대해 건너뜀 없는 세심한 일독을 권한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타히 닛트 한의 『평화 맛보기』, 소갈 린포체의 『티베트의 지혜』, 에픽테투스의 『삶의 기술』,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의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 등 동서양의 철학자와 시인들의 영적 울림이 있는 저작들의 일부분을 음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사이사이 배치된 아름다운 풍광 사진은 명지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인 이대일 씨의 작품으로, 인공적인 분리와 구획 등으로 삭막해진 도시 공간의 폭력성에 지친 현대인의 심신을 잔잔하게 위무해 주기에 충분하다.  


부드러움-생명의 모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 

보이는 힘, 표면의 힘만을 믿고 그것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맹신하는 사람들, 그들은 단단하고 강한 바위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아래로 흐르는 물만이 씨앗에 새싹을 틔워낼 수 있듯 보이지 않는 힘, 내면의 힘이 생명을 잉태시키는 창조의 모태가 되는 진실을 그는 전해주고 있다. 부드러움의 힘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는 머리에 내 천(川)자를 그리고서 종교의 사원을 드나드는 이들에게, 신성함과 경건함보다 즐거움과 유쾌함이 신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미덕이 됨을 예찬한다. 진정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저 우스꽝스런 광대들의 해학임을 강조한다. 종교란 생의 무거움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는 삶의 예술인 것이다. 이처럼 주어진 것에 순응하고 순간을 즐기며 행복을 찾는 데에 또한 부드러움의 힘이 존재한다.


침묵-無我의 철학
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침묵’입니다. 침묵을 창조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무기를 던져버리고, 실로 풍부한 저 대지의 침묵 소을 거닐어보십시오.

세상은 늘 집단의 편에 서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가 홀로 있음으로 절대적 진리와 대면함을 주장했듯이, 종교적 단계는 침묵과 고독의 과정이 불가피하다. 그것은 남들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용기와, 시류를 거스르는 결단을 요구한다. 진리는 언표를 뛰어넘어 존재하며, 침묵만이 신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우리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온갖 소요와 탐욕의 앙금이 가라앉아 침묵과 고요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신과의 영적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 침묵과 명상을 통해 우리의 내면 안으로 들어갈 때만이 참된 나를 만날 수 있으며, 존재의 근원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멋진 향을 가진 사향노루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향기의 원천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얘기를 들려준다. 이처럼 우리는 진리를 찾아, 혹은 신을 찾아, 혹은 신성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그곳이 어떤 교회나 사원이라 할지라도 침묵이 아닌 소란에 휩싸여 있다면 무엇도 찾을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 존재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말이다.


여백-존재의 빈칸
모든 불행의 근원은 한 가지이다.
조용히 혼자서 자신의 방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이다.
-본문中 「여백의 자리」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이 문명의 이기 앞에 대책 없이 무너지는 순간, 존재의 근원에 맞닿고 싶은 열망들, 진실을 찾고자 했던 의지들은 사라지고, 이것으로부터 오늘의 모든 불행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끝간데 없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물질주의적 세계는 우리의 영혼을 타락시켰다.
그에게 여백은 삶의 빈칸이다. 시골길에 피어난 들꽃, 뒷산에서 우짖는 새소리… 이러한 작은 것들이 선사하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는 한가로움과 내면의 평화가 들어앉는 자리이다. 이것은  ‘미래형’의 바람 속에 있지 않고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현재형’으로 진행되면서 존재의 빈칸을 늘려가는 것이다. 
또한 여백의 삶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나 은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예로 그는 산 위에 올라 홀로 수도자의 길을 걷던 많은 이들이 덧없이 스러졌음을 전해준다. 그것은 그들의 행실이 세속적이고 마음으로 사람들과 섞여 살았기 때문이지, 명상을 위한 처소가 특별히 따로 있기 때문이 아님을 보여준다. 마음이 진정으로 내적인 고요에 이를 때 은밀히 존재의 근원과 맞닿을 수 있는 존재의 여백은 만들어진다. 우리의 맘을 깨끗이 비워낸 그 여백의 자리에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가의 탐구는 시작된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

추천평

날아가는 새는 경이롭다. 바다를 건너오는 철새들은 더욱 놀랍다. 저녁  바다에서 날갯짓을 전혀 하지 않고 해지는 쪼긍로 혼자서 날아가는 새가 있다. 고진하의 글은 靜飛(정비)하는 글이다. 정비하는 저녁의 새는 무슨 볼 일이 있길래 저무는 수평선을 넘어가는 것인가. 모든 빛깔은 시간 속에서 빛과 더불어 태어나고 또 죽는다. 빛은 모든 색을 드러나게 하지만, 빛 속에는 색이 보이지 않는다. 사물의 색은 빛을 만날 때만 빛깔이 된다. 인간의 언어는 빛깔을 기술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진하의 글은 가여이도 사물을 비추는 빛이 되려 한다.
김훈 (산문가)
그가 신의 신비와 축복을 발견하는 데에는 따로 범속의 구분이 필요치 않습니다. 일상의 사물들과 자연의 풍광 속에서 그의 신념은 정갈하고 정제된 이미지로, 실존적 사유로 단련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은둔의 삶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산 위에 올라 수도자의 길을 걷던 많은 이들이 멸망했음을 전해줍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내적인 고요에 이르지 못하고 마음으로 사람들과 섞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은둔하는 삶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일지를 찾아, 존재의 근원에 맞닿고 싶은 열망을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그는 전하고자 함입니다.
이현주 (목사)
고진하 선생의 말들은 깨끗하여 험한 말들의 상처를 씻깁니다. 생명이 있는 것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아름다운 것 중에 생명이 아닌 것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부드러워서 끝까지 가는 것들의 힘은 무섭지 않으면서 강합니다. 이것은 그가 섬기는 하느님의 말씀이자, 부처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그가 섬기는 것은, 모든 생명의 본성을 깨우면서 우리를 맑게 하는 깨끗한 시(詩)입니다.
석마근 (신흥사 주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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