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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의 정치
이제 소수를 위하여
이남석
책세상 200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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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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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차이의 정치란 무엇인가
1. 차이의 정치
2. 여성, 유색 인종, 외국인

제2장 배제의 정치, 차이의 정치
1. 배제의 정치-대의제 민주주의
2. 또다른 배제의 정체-협의 민주주의
3. 차이의 정치의 지형도

제3장 차이의 정치 또는 동지와 적의 정치
1. 정치와 정치적인 것
2. 차이 또는 결사 권리의 양도 불가능성
3. 차이의 정치의 지향점
4. 캐나다의 차이의 정치

제4장 차이의 정치의 한계와 극복
1. 차이의 정치는 실현 가능한다
2. 새로운 정의론을 모색하라

저자 소개

저자 : 이남석
1966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서울로 이주했다. 평범한 소년기를 보냈지만 '두발 자유화'와 '학원 자율화'의 함성, '87 민주대항쟁'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그를 순진한 소년으로 머물러 있도록 하지 않았다. 동국대학교에 입학해 민속극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문화 일반과 전통 문화를 이해했고, 사회와 정치의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그때 생겨났다. 대학원에 진학해 학생회와 인문사회과학연구회, 한국정치연구회 등에 참여했던 것도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석사학위 논문에서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 소외와 해방을 연구했던 그는 박사학위 논문 「기술, 지배, 이데올로기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는 유연생산시대에 기술이 왜 지배 역할을 하며 실업을 불러오는가, 그리고 기술의 지배적 성격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가 등에 대해 논했다. 현재 동국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과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78쪽 | 242g | 128*188*20mm
ISBN13
9788970132754

책 속으로

현대의 정치 체계는 배제를 낳는다. 정당성의 근원인 시민으로 구성된 다수 집단은 정치 영역에 참여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참여한다 해도 피동적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 배제된 집다인 그들은 정치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그에 도전한다. 현정치 체계는 매우 불안정한 체계이다. 그러나 차이의 정치 또한 한계가 있다. 차이의 정치는 민주적 시민의 권리를 파괴하고 한 개인이 다중적 모순에 처해 있으며 도덕적 가치의 극한적 대립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차이의 정치가 무의미한가? 차이는 지배 집단에 의해 배제되고 억압되어 있으므로, 차이가 정치의 주체로 인정받고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무의미한가? 차이의 정치가 주장한 것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으므로 차이의 정치는 무의미한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이다. 차이의 정치가 주장한 내용은 오히려 옳지만 실현 불가능하므로, 현 정치 체제와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의 정치는 이런 점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차이에 속하는 시민이 '왜 정치에 무관심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중적 한계, 즉 차이의 정치가 지적한 현 정치 체계의 한계와 차이의 정치 그 자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이 모색될 수 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보자. 차이에 속하는 시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가? 근본적인 답변은 자유주의 정치 기획 자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근대 정치 체제의 근본 원리인 자유주의에는 처음부터 정치 기획이 없었다. 오히려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탈정치화'를 기획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유주의에는 주권을 의미하는 대외 정치만 존재했고, 정치 즉 국내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에는 대립과 반목, 갈등과 투쟁을 의미하는 국내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경제적인 의미에서 '영원한 경쟁'과 윤리적인 의미에서 '영원한 토론'만이 있었을 뿐이다."투쟁이라는 정치적 개념은 자유주의적 사고에서는 경제적 측면의 경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측면의 토로이 되어버린다. '전쟁'과 '평화'라는 상이한 형태의 명확한 구분 대신에 영원한 경쟁과 영원한 토론이라는 동태학이 등장한다. …… 윤리적
·정신적 측면에서는 '인류'라는 이데올로기적·인도적인 관념으로 바뀌어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일적인 생산과 교통체계라는 경제적·기술적 통일체가 된다. '영원한 경쟁'과 '영원한 토론'은 자유주의의 이념이자 신념이자 행동 강령이다.

--- pp.136-138

'차이'는 우리와 무관한 문제인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서 조직화 양상을 보이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는 어떤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동네 슈퍼마켓과 식당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조선족은 또 어떠한가? 인권은커녕 임금도 못 받고 있다고 보도되는 외국인 노동자는 또 어떤가?
그렇다면 차이는 우리가 매일매일 현실에서 접하고 있는 익숙한 주제가 아닐까? '차이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권위주의와 순수 혈통적 민족성을 은폐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아니면 차이에 애써 눈 감아 버림으로써 기득권이 보장되는 집단 때문은 아닐까? 이것도 답이 될 수 없다면, 차이는 존재하되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의 주체로 성장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 '책을 쓰게 된 동기' 중에서

21세기는 차이의 정치가 시행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차이의 문제가 21세기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 정치 체제는 다수의 무산자에게서 소수의 유산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고안하기 위해 확립되었다. 소수의 유산자는 다수의 무산자와 거리를 두어왔다. 소수의 강자가 다수의 약자에 대해서 우월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수적인 면에서 열세라는 점에서 강자는 차이였다. 근대 정치는 이 점에서 기획 단계부터 차이를 배태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정치의 차이는 소수의 유산자, 즉 강자가 차이로 나타나지 않는다. 약자가 소수로 대두되는데, 이들은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지 못하고, 사회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자이다. 예컨대 여성, 유색인, 이민족, 외국인 노동자, 소수파 신앙인, 동성·양성애자, 특정 이념 신봉자 등 이들 약자가 현대 정치에서 차이를 구성한다. 강자의 차이가 근대 정치를 확립하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고안했던 반면, 약자의 차이는 현대 정치 체제 내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 국가를 생각해 보자. 그 정부는 여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성 지배의 정부이고, 유색인의 입장에서는 백인의 정부이며,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족의 입장에서는 특정 민족의 정부이며, 배우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는 식자(識者)의 정부이며, 비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기독교도의 정부이며, 무산자의 입장에서는 유산자의 정부이며, 동성·양성애자의 입장에서는 이성애자의 정부이다. 또한 이념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그 정부는 특정 이념의 신봉자가 지배하는 정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그 정부는 남성, 백인, 특정 민족, 식자, 기독교도, 이성애자, 특정 이념 중심적 국가인 셈이다. 여성, 유색인, 외국인 노동자, 배우지 못한 자, 비기독교도, 무산자, 동성·양성애자를 모두 합하면 차이를 구성하는 집단은 수적으로 다수인 반면, 지배 집단은 소수이다. 그러나 여전히 권력은 소수가 지배한다.

--- pp.17-18

출판사 리뷰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는 선(善)이자, 전부라는 등식이 불문율처럼 관철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또한 정치 지형도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곧잘 배제시켜왔다. 여성,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족, 동성 양성애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젠 그들을 '차이'라는 정치 주체로 인식하는 입장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화의 진행과 유럽을 선두로 한 지역 통합의 가속화 이후, '차이'가 각국의 정치 지형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 사회에는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정치적 태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44번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낙후된 정치 현실에 '차이'의 목소리를 싣고 있어 주목된다. '차이'로 인식되어온 여러 주체들이 이젠 당당히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그러한 주장이 가능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논리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더불어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민주주의란 현대 정치의 주체인 다양한 주체들을 무시함으로써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현대 정치는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차이'는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차이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매우 익숙한 현상이며, 따라서 차이가 우리와 무관하다는 생각은 기득권이 보장되는 집단의 편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의심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정치적 주체로 당당히 존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 측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반란 또는 위기의 조짐이겠으나, 한 사회의 전체 지형도를 조감했을 때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한 사회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이를 정치 주체로 인식했을 때 한국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 민족적 동일성과 정치 지형의 폐쇄성을 지닌 한국 사회의 전체주의적인 폐해가 극복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우선 '차이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 관점을 세우는 데 있어 자유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시즘의 일부 이론이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는 도덕도 규범도 아니다. 정치는 권력을 다루는 것이고, 권력에는 선도 악도 없다. 권력을 장악한 자가 누구냐에 따라 권력의 선과 악이 정해진다.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권력을 말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비판의 자세가 아니다. 차이의 정치, 차이의 주체에게 요구되는 것 또한 권력에 대한 진정한 욕구이다. 그래서 차이가 정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지배 집단의 복지 혜택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 국민의 이익을 조정하고 대표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뜻한다. 여성은 여성의 이익을 대표하고, 소수 민족은 소수 민족의 이익을 대표하고 동성 이성애자는 그들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제2의 상원을 구성해서라도 실질적 평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만의 이익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공공선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와 추구가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집단과 집단 간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정치 제도의 본질을 실현시키는 길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본래 지향했던 의미와는 달리 다양한 정치 주체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배제하고 있다면, 오늘 우리는 저자의 전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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